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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애청곡

[분단의 노래] "함경도 사나이" (1956) - 손인호(1927~2016) 노래

잠용(潛蓉) 2019. 7. 10. 21:14



 


"咸鏡道 사나이"

孫露源 작사/ 羅花朗 작곡/ 노래 孫仁鎬 

(1956년 킹스타레코드사 발매)


< 1 > 
興南 埠頭 울며 찾던

눈보라 치든 그날 밤


내 子息 내 아내 잃고

나만이 외로이
恨이 맺혀 설움에 맺혀

南韓 땅에 왔건만


釜山 港口 갈매기의

노래조차 슬프고나

影島다리 欄干에서

누구를 찾어보나?


< 2 >

東亞劇場 그림 같은

피눈물 젖은 故鄕 꿈


내 洞里 물방아 도는

마을 언덕에
양떼 몰며 송아지 몰며

버들피리 불었소


農土까지 빼앗기고

二千里 길 배를 곯고
南浦洞을 헤매도는

이 밤도 비가 온다 ~


< 3 >

麗水 統營 님을 싣고

떠나만 가는 똑딱 船


내 家庭 내 子息 싣고

내 아내 싣고
내 품에다 내 가슴에다

반겨 주게 하련만


하루 終日 埠頭 勞動

땀 방울을 흘리면서
四十階段 板子집에

오늘도 우는구려 ~




손인호 - 함경도 사나이


김준규 - 함경도 사나이


함경도 사나이/ 손인호


함경도 사나이/ 김희갑


함경도사나이 - 손인호 -- TJ노래방 (No.3217)




[이동순의 가요 이야기]

"피난살이 서러움을 다룬 노래"
국제신문ㅣ이동순 2006.06.25 09:39


흥남 부두 울며 새는 눈보라 치든 그 날 밤
내 자식 내 아내 잃고 나만이 외로이
한이 맺혀 설움에 맺혀 남한 땅에 왔건만
부산항구 갈매기에 노래조차 슬프구나
영도다리 난간에서 누구를 찾어 보나


동아극장 그림 같은 피눈물 젖은 고향 꿈
내 동리 물방아 도는 마을 언덕에
양떼 몰며 송아지 몰며 버들피리 불었소
농토까지 빼앗기고 이천리 길 배를 곯고
남포동을 헤매 도는 이 밤도 비가 온다


여수 통영 님을 싣고 떠나만 가는 똑딱선
내 가족 내 자식 싣고 내 아내 싣고
내 품에다 내 가슴에다 반겨 주게 하련만
하루 종일 부두 노동 땀방울을 흘리면서
사십계단 판자집에 오늘도 우는구려

<손인호/ 함경도 사나이> 
  
해마다 6 월이 오면 못내 잊히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한국전쟁의 발발과 더불어 임시수도로 지정되었던 항도 부산에서의 피난살이와 그 서러움이다. 인민군의 기습적 남침으로 시작된 6.25는 향후 3년 동안 전국토를 완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잔혹한 파괴와 살상, 유린과 보복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휴전 후 이날까지도 전쟁의 상흔은 그대로 남아서 민족의 가슴엔 시퍼런 피멍이 들어있는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6.25의 상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이 과연 그 누구인가?  집안 사람 중 어느 누군가는 꼭 전쟁에 나갔다가 전사했거나 부상을 입어서 오늘까지 고통을 겪고 있다. 행방불명은 왜 그리도 많았던 것인가? 이로 말미암아 한 가문, 한 집안의 중심이 무너지고 근본마저 뒤흔들리게 했던 것이 바로 한국전쟁의 후유증이었다.

▲ 가수 손인호


.▲ 작사가  손로원


전쟁의 포성이 멈춘 지 올해로 꼭 59 년째.
그때 태어난 아기가 벌써 회갑을 바라보는 초로(初老)가 되었다. 이 글을 쓰는 필자가 바로 그러하다. 나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꼭 사흘 뒤에 태어났다. 워낙 격동의 시기여서 어머님께서는 만삭의 몸으로 피난길을 떠나 산지기 집 오두막에서 몸을 풀었다. 전쟁 중에 산후 구완인들 제대로 할 수 있었으랴? 나를 낳으시고 부황이 들어서 누렇게 뜬 얼굴로 고생을 하시다가 내 나이 첫 돌도 되기 전에 세상을 뜨셨던 것이다. 전쟁만 아니었어도 나는 어머니를 그토록 허무하게 잃어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의 얼굴조차 모르는 채로 이날까지 살아온 것이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내가 흘러간 옛 가요의 애잔한 선율과 슬프고 서러움을 가득 담은 정서에 대하여 그토록 살뜰한 애정을 갖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어머니를 잃어버린 아쉽고 허전한 마음을 노래로써 위로 받고 거기서 어떤 모성적 만족을 얻고자 했던 심리의 작용이 아니었던가 한다.


피난살이의 경과는 처참하였다. 1.4 후퇴로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은  오직 생존을 위해서 부산 국제시장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제3 부두로 나가서 가대기로 날품도 팔았다. 미군부대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잔반을 모아  다시 끓인 꿀꿀이죽은 절박한 인생들에게 대단한 인기였다. 영도다리 부근에는 항시 헤어진 가족의 이름을 등에 써서 붙이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보였다. 다리 밑의 무당집이 번창했음은 물론이다. 당시의 이런 사정을 그림처럼 생생하게 전해주는 노래들이 있다. 한정무의 '나그네의 꿈'은 '지붕도 낯설고 길도 낯선 피난길'에서의 실향민의 심정을 노래한다. 박재홍의 노래 '경상도 아가씨'에는 사십계단도 나오고, 피난살이의 힘겨운 삶을 담고 있는 판잣집도 등장한다. 국제시장 거리에서 담배 장사하던 사연도 들어 있다. 남백송의 '이북 나그네'는 부산항에 정 붙이고 살아가는 처량한 신세에 대한 푸념과 팔베개에 얼룩진 피난살이의 눈물이 아프게 배어난다.
 

손인호가 불렀던 '함경도 사나이'에는 1.4후퇴의 처절한 현장과 부산으로 내려온 뒤 남포동, 영도다리 주변을 헤매는 실향민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부산은 실향민들에게 생존의 안전과 보호공간을 제공해 주었다. 비록 고달프고 힘겨웠던 삶이었을지라도 당시의 고통은 이후의 발전과 번성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항도 부산에서의 피난살이를 잘 견디고 버틴 피난민들은 휴전 이후 대개 고향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은 부산에 그대로 눌러앉은 경우도 많았다. '한 많은 피난살이 설움도 많어/ 그래도 잊지 못할 판잣집이여'라는 대목처럼 피난살이의 서러움과 작별의 아픔을 절규로 엮어갔던 남인수의 가요 '이별의 부산정거장'은 이 시기의 사연을 담은 가장 뛰어난 절창으로 평가된다. 흘러간 옛 노래의 가사는 시보다 한층 아름답고 소중한 가치를 담아낼 때가 있다. 왜냐하면 가요시야말로 우리 민족사의 온갖 사연과 생활사를 감동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역사적 자료이기 때문이다.
<글/ 이동순-시인ㆍ영남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