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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흔적의 역사] 내 몸에 네안데르탈인의 피가 흐른다?

잠용(潛蓉) 2019. 12. 22. 20:46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내 몸에 네안데르탈인의 피가 흐른다?

경향신문ㅣ2013.02.06 10:31 수정 : 2013.02.07 14:28


▲ 복원된 네안데르탈인. 돌출이마와 두껍고 굴곡진 대퇴골의 소유자다. /전곡선사박물관 제공

  
1856년 여름이었다. 채석공들이 독일 뒤셀도르프 근처 네안데르 계곡 위쪽의 펠트호프 석회암 동굴에서 채석한 돌을 고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삽에 어떤 뼈들이 걸려 나왔다. 이상했다. 형태로 보아서는 사람의 뼈 같은데 대퇴골이 너무 두껍고 굴곡이 져 있었다. 가장 이상한 것은 이마에 엄청난 크기의 뼈가 튀어나와 있다는 것이었다.


설왕설래를 거듭한 채석공들은 그 지역 아마추어 박물학자인 학교 선생님에게 보여주었다. 우리로 치면 향토사학자 같은 분? 그런데 그 학교 선생님은 혜안을 갖고 있었다.
“사람은 맞는 것 같은데…. 선천적인 저능아의 뼈인가? 아니 굽은 다리를 보면 카자크 사람의 것일 수도 있고….”


이마의 돌출뼈를 보면, 혹여 심각한 스트레스를 동반한 마음의 병을 앓았던 사람의 뼈일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 이 네안더(neander)라는 골짜기는 요아힘 노이만(Joachim neumann, 영어로 Newman)이라는 작곡가 겸 시인의 이름을 딴 것이라 한다. 노이만은 자신의 작품에 자신의 이름과 같은 뜻을 지닌 그리스어인 네안더를 서명하기도 했단다.
또 하나, 19세기 골짜기를 뜻하는 독일어 단어는 ‘thal’이었지만 독일어에는 ‘th’ 발음이 없었기 때문에 20세기 들어와서는 ‘tal‘로 바뀌었다. 그렇게 보면 훗날 이 뼈에 붙은 ‘네안데르탈인’이란 이름은 ‘새로운 사람의 골짜기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네안데르 계곡에서 생긴 일
하지만 채석공들을 비롯한 당대의 사람들은 이 ‘돌출이마’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깨닫지 못했다. 하나님이 기원전 4004년에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었던 기독교인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말이냐. 1650년 무렵, 영국국교회회의 대주교인 제임스 어셔는 성경의 인물들을 토대로 창조일을 역산한 결과 기원전 4004년 10월23일 아침 9시라고 결론지었다. 이후 기독교인들은 이 날짜를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한 날’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랬으니 홀연히 나타난 이 ‘돌출이마’가 누구인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불과 3년 뒤인 1859년 찰스 다윈이 창조론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진화론’을 주장한다. 인간은 기원전 4004년에 갑자기 창조된 게 아니라 원시동굴과 같은 생명체에서 진화했다는 주장이었다. 한마디로 인간은 원숭이로부터 자손으로 이어져 내려왔다는 것이었다. 돌출이마’, 즉 네안데르탈인은 졸지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다윈의 ‘파천황의 세계관’을 설명해주는 핵심적인 존재가 됐기 때문이다.


즉 네안데르탈인이 괴상하게 생긴 것은 낮은 지능이나 질병, 그리고 기마민족 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 그저 다윈의 주장처럼 진화에 의한 변화 때문이라는 것. 결국 네안데르탈인은 진화의 매커니즘을 직접 증거하고 받치는 이른바 ‘반인(半人)’이라는 것. 네안데르탈인의 뼈는 모든 수수께끼를 담은 채 박물관에 고이 모셔졌다.


이스라엘 동굴에서는 무슨 일이?
1932년 5월2일, 영국의 고고학자 도로시 개로드가 이끄는 조사팀은 이스라엘 북서부 카르멜 산의 동굴유적인 스쿨(Skhul)에서 의미심장한 성과를 얻는다.

남자의 머리뼈 윗부분과 팔뼈. 그리고 맷돼지의 턱뼈를 찾은 것이다. 이후 계속된 발굴에서 상당량의 뼈가 쏟아졌다. 모두 11인 분의 사람뼈였다. 이곳은 조사팀의 표현대로 ‘약 10만 년 전 가장 오래된 선사시대의 공동묘지’였던 것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대목이 있었다. 조사팀이 얼마 전 이 스쿨에서 불과 몇 백 미터 떨어진 타분(Tabun)에서 네안데르탈인 여성의 화석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이마가 눈 위 뼈가 튀어나온 부분에서 뒤쪽으로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전형적인 네안데르탈인의 모습이었다. 팔다리는 짧고 굵었다. 그런데 스컬의 공동묘지에서 발견된 뼈들은 달랐다. 두개골은 높고 둥글었으며, 팔다리뼈들은 길었다. 광대뼈는 오목했다. 불과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는 과연 어떤 관계였을까?


 

▲ 1856년 독일 네안데르 계곡 펠트호프 동굴에서 확인된 네안데르탈인 화석. /이영돈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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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점은 1980년대에 들어와 풀렸다. 연대측정기술의 발달이 핵심이었다. 스컬과 타분의 머리뼈를 열발광법과 전자스핀공명법으로 연대측정한 결과는 놀라웠다. 타분, 즉 네안데르탈인의 연대는 20만 년 전~4만5000년 전이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스쿨에서 확인된 뼈, 즉 현생인류의 연대는 약 10만 년 전이라는 것이다.


전쟁이냐 평화공존이냐
약 15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현생인류가 10만 년 전 ‘아웃오브 아프리카’, 즉 아프리카를 떠났다는 게 지금까지의 정설이다. 현생인류가 아프리카를 탈출해서 도착한 곳이 바로 이 중동 회랑지역인 이스라엘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곳, 즉 중동에 도착한 현생인류는 이미 20만 년 전부터 터전을 잡고 살았던 네안데르탈인과 10만 년 전~4만5000년 전까지 함께 살았다는 뜻인가?

그러고 보면 이스라엘을 포함한 중동지역은 약 10만 년 전에도 전혀 다른 종의 인류가 낯선 만남을 가졌던 ‘뜨거운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중동은 분쟁지역이 아닌가. 역사의 뿌리가 이토록 깊은 것이다. 그렇다면?


생기는 의문이 있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공존했을까. 평화공존을 했을까, 아니면 정복전쟁을 치렀을까. 더 흥미로운 궁금증이 있다. 과연 그들은 서로 사랑을 나눴을까. 그래서 후손을 두었을까. 이보다 더 열띤 고고학적인 논쟁은 없었다. 예전에는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의 아이를 잡아 불에 구워먹고 현생인류 부족장을 잡아 죽이는 야만인들이었다. 예컨대 영국의 소설가이자 역사학자인 허버트 조지 웰스는 1921년 <그리즐리족>에서 네안데르탈인을 “끝까지 쫓아가 없애버려야 할 족속”이라고 표현했다. 장 오엘의 1970년대 베스트셀러인 <동굴 곰부족>은 그래도 네안데르탈인을 동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 작품 속에서도 네안데르탈인들이 ‘금발의 큰 키, 푸른 눈, 풍만한 가슴과 둥근 엉덩이를 가진’ 현생인류 여성을 강간하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과연 이것이 사실일까. 단지 상상 속 소설일 뿐이었을까?


▲ 네안데르 펠트호프 동굴. /이영돈 교수 제공


‘남남’으로 확인된 사이?
1980년대 초 수수께끼를 풀 열쇠가 완성됐다. 1981년 인간의 미토콘드리아 게놈 전체가 배열된 것이다. 이로써 유전자 지도가 만들어졌다. 이 지도는 고대 DNA의 분석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연구에 기본이 됐다. 그렇다면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의 관계를 알아보는 방법은 분명했다. 원시인류의 DNA 흔적이 현생인류에게 남아있는 지를 조사하는 방법이다. 생명체가 죽는다 해도 생명체의 DNA는 곧 사라지지 않는다. 완전히 분해될 때까지 남아있는다. 만약 화석이 된 뼈에 들어있는 DNA라도 온도가 낮고 건조한 조건이라면 수 천 년 간 양호한 상태로 남아있을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독일인 고고학자 랄프 슈미츠와 유전학자 슈반테 파보가 흥미로운 착상을 한다.

‘1856년 채석장에서 발견된, 바로 그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에서 DNA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 이스라엘 스쿨에서 발견된 현생인류의 인골. 약 10만 년 전 아프리카를 벗어난 초기의 현생인류라는 연대측정결과가 나왔다. /이영돈 교수 제공


화석은 주립 라인박물관에 보관돼 있었다. 두사람은 박물관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DNA를 뽑아내려면 화석의 일부를 잘라야 했다. 세상에 어느 누가, 그 희대의 화석을 손상시킨단 말인가. 그것은 슈미츠의 말마따나 ‘모나리자의 일부를 잘라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검증조차 되지 않은 연구에 화석을 훼손시킬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끈질긴 설득이 계속됐고, 박물관 측의 허락을 얻어냈다. 1996년이었다. 드디어 뼈 전문가가 네안데르탈인의 오른쪽 위팔뼈에서 1㎝ 길이로 3.5g의 조각을 톱으로 잘라냈다.


일주일에 100시간이 넘는 DNA복제과정을 거쳐 드디어 결과가 나왔다. 그 결과 현생인류와는 전혀 다른 DNA를 찾아냈다. 대부분의 현대인에게는 미토콘드리아 DNA의 1만6223번째 자리에 시토신(C)이 있는데, 네안데르탈인의 DNA에서는 티민(T)이 있었다. 또 1만6254번째 자리에는 보통 존재하는 구아닌(G) 대신 아데닌(A)이 들어 있었다.


네안데르탈인의 미토콘드리아 DNA에서 379개의 뉴클레오티드 서열을 결정할 수 있었는데, 이 서열은 현대인과 27곳이나 달랐다. 이 차이는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달랐다. 교차연구 결과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 계열 사이엔 약 50만 년 정도 떨어진 것으로 계산됐다.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의 서열은 너무도 달라서 사촌도 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둘은 사랑을 나눴을까.
그런데 좀 이상하다. 사람의 성적 욕망은 대단하다. 기회만 있다면 누구와도, 아니 그 무엇과도 성관계를 맺으려 한다. 앨프레드 킨제이가 1940년대 발표한 이른바 킨제이 보고서는 미국남성의 8%가 동물과 성관계를 맺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10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 여성을 마주친 현생인류 남성 가운데 일부는 성적일탈을 감행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네안데르탈인 남성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후 과학자들은 여러 가지 추론을 제시했다. 현생인류의 정자가 네안데르탈인의 난자(혹은 그 반대)가 만날 때 이들의 염색체가 나란히 늘어서지 못해 번식이 불가능했을까. 혹은 난자의 화학작용 때문에 정자가 난자의 세포막을 뚫지 못한 탓일까? 성관계를 맺을 수는 있지만 번식하지는 못했을 수도 있다. 암말과 수탕나귀의 혼혈인 노새와 사자와 호랑이의 혼혈인 라이거 등을 보라. 교배는 할 수 있어도 그 자식들은 번식할 수 없는 사례도 많으니까? 


▲ 스쿨에서 몇 백미터 떨어진 곳에 확인된 네안데르탈인 유골. 눈 위가 툭 튀어나왔다. 10만 년 전 아프리카를 탈출한 현생인류가 이스라엘에서 살고 있던 네안데르탈인과 공존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영돈 교수 제공


또 하나,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은 만나기만 하면 전쟁을 일으켰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지금까지 양 집단이 증오를 품은 적대적인 관계라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예컨대 각지에서 출토되는 네안데르탈인의 뼈를 조사해도 뚜렷한 전쟁의 흔적은 없다. 또한 현생인류의 화석에서도 전쟁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유럽의 동굴벽화에서도 동물을 사냥하는 모습은 있어도 네안데르탈인을 사냥하는 그림은 발견되지 않는다. 적어도 현생인류까리 싸운 흔적이 나타날 때까지는….

이 또한 쉽게 이해할 수는 없는 대목이다. 섹스 뿐 아니라 폭력도 인류의 속성일진대 그런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니 말이다. 이스라엘에서 확인된 현생인류(왼쪽)와 네안데르탈인(오른쪽)의 인골. 아프리카를 벗어난 현생인류가 중동지역에서 네안데르탈인을 만나 최고 6만년동안 공존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영돈 교수 제공


둘은 전쟁을 했을까.
과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의 ‘사랑이야기’를 탐구하는 것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좋은 말로 ‘사랑 나누기’이다. 생물학적인 용어로는 ‘교배’라 하겠지만….

각지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의 화석들이 연구에 동원됐다. 최근 들어서는 이들이 서로 육체관계를 맺었음을 물론이고, 요즘 사람들에게도 네안데르탈인의 DNA가 포함돼있다는 연구결과가 속출하고 있다. 예컨대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3만 년 전 유럽과 일부 아시아에 서식하는 네안데르탈인이 현생 인류와 피를 나눴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즉 아프리카 출신 이외의 현 인류에서 게놈 배열 1~4 %가 네안데르탈인과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이외의 사람들은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경미하게 보유하고 있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이영돈 교수(아주대 해부학교실)의 말마따나 학계에서 공인된 ‘정설’이 아직은 아닌만큼 섣불리 단정지을 수는 없는 일이다.


 

▲ 이스라엘 스쿨 동굴유적. 10만 년 전 현생인류의 공동묘지였던 것으로 확인됐다.|이영돈 교수 제공


생존과 절멸 사이
그렇다면 네안데르탈인을 어떻게 절멸됐는가. 사실 현생인류가 ‘아웃오브아프리카’를 감행, 중동지역에서 네안데르탈인을 만나자 즉각적인 정복전쟁으로 절멸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현생인류가 ‘돌격 앞으로!’하면서 단번에 밀고 올라가지는 않았겠죠. 아주 오랫동안 네안데르탈인보다 앞선 ‘어떤 기능’을 바탕으로 영역을 차츰 넓혀갔겠죠.”(배기동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배교수는 “‘그 어떤 기능’이 바로 ‘언어능력’이 아니겠느냐”고 추정한다. 학자들은 초보적인 언어의 형태는 현생인류가 아프리카를 벗어난 10만 년 전에서 호주대륙에 첫발을 내딛은 약 6만5000년 전으로 추정한다. 인간이 말을 하게 되자 인류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겪는다. 어린 아이들은 어른들로부터 어떠헥 소리를 내고 이 소리가 주변의 사물과 어떻게 연관되는 지를 배운다.


언어로 생각하기 때문에, 언어가 없으면 생각 자체가 불가능하다. 인류의 역사는 언어의 발명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네안데르탈인도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예컨대 파리 남동쪽 석회암 동굴에서는 3만6000년 전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연장과 구슬, 장신구가 발굴됐다. 현생인류의 창작품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것은 네안데르탈인의 것이었다. 이들도 무언가를 배우고 만들고, 발전시킬 줄 알았던 것이다.


어느 날부터 슬쩍 함께 살기 시작했던 새로운 사람들, 즉 현생인류로부터…. 공예품을 나누고, 화덕에 둘러앉아 음식을 함께 나눴을 지도 모른다. 진한 사랑을 나누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역시 언어였을 것이다. 현생인류는 언어를 매개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뛰어난 능력과 욕구를 지녔을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은 서서히 발전해가는 현생인류를 지켜보며 서서히 뒤처져 갔을 것이다.


“사람 뼈는 맞는데….”
1856년, 독일 뒤셀도르프 근처 네안데르 계곡 위쪽 동굴에서 괴상한 뼈들이 나왔다. 비정상적으로 돌출된 이마와 두꺼운 대퇴골…. 선천적 ‘저능아’의 뼈인가. 당시 사람들은 하느님이 세상을 ‘기원전 4004년’에 창조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랬으니 ‘돌출이마’의 존재를 알 수 없었다. 이 화석에 네안데르탈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복원 그림)  


1932년, 이스라엘 카르멜 산에서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의 화석이 잇달아 발견된다. 1980년대 과학적인 연대측정방식으로 두 머리뼈를 검사했다.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네안데르탈인이 20만년 전부터 4만5000년까지 이곳에 살았다는 것. 문제는 현생인류도 10만년 전쯤 이곳에 살았다는 결과가 도출된 것이다. 아프리카를 떠난 현생인류는 첫 도착지인 중동에서 네안데르탈인을 만나 불과 몇 백m 사이에 살았다는 이야기였다. 이들은 피어린 정복전쟁을 했을까. 서로 사랑을 나누며 공존했을까.


1990년대 중반 독일인 고고학자 랄프 슈미츠와 유전학자 슈반테 파보가 나섰다. 1856년 발굴된 네안데르탈인의 DNA와 현대인의 DNA를 비교분석하는 것이었다. 네안데르탈인의 뼈 일부를 잘라 시료를 얻는 것은 마치 ‘모나리자 그림의 일부를 잘라내는 것’으로 비유됐다. 우여곡절 끝에 양질의 네안데르탈인 DNA를 얻었다. 검사결과는 흥미진진했다.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비교해 보니 27곳의 차이가 난 것이다. 둘 사이에 약 50만년이라는 유전적인 차이가 확인된 것이다.


그러니까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며, 성적접촉 또한 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다. 성적욕망에 가득 찬 인류는 기회만 닿으면 누구와도, 아니 그 무엇과도 애정행각을 맺으려 들지 않던가. 그렇다면 10만년 전 마주친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이 사랑을 나누지 않았을까. 이렇게 ‘본능적인 사랑’을 나눴다고 해도 자손은 남길 수 없었던 것일까. 노새나 라이거처럼? 또 하나 궁금증이 있다. 동물벽화나 화석 등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네안데르탈인과 전쟁을 벌였다는 증거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전쟁보다는 평화를, 반목보다는 사랑을 택했다는 것인데….
  
인류의 ‘원초적 본능’을 풀려는 과학자들의 연구는 계속됐다. 그 결과 요즘 현대인에게도 네안데르탈인의 DNA가 포함돼있다는 연구성과가 속출하고 있다. 3만년 전의 네안데르탈인 뼈에서 추출한 게놈을 해독한 결과 1~4%가 현대인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과 나눈 관계는 그저 ‘본능’이었을까, 아니면 ‘사랑’이었을까?



<참고자료>
스티브 올슨, <우리 조상은 아프리카 인이다>, 이영돈 옮김, 몸과마음, 2004
마틴 존스, <고고학자 DNA 사냥을 떠나다>, 신지영 옮김, 바다출판사, 2007
이기환·이형구, <코리안루트를 찾아서>, 성안당, 2009


[이기환/ 문화에디터 겸 스포츠경향 편집국장 lkh@kh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