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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악어] 1억 1000만년 전 한반도에서 서식

잠용(潛蓉) 2020. 6. 12. 11:43

1억1000만년 전 한반도에선 두발로 걷는 악어가 살았다

동아사이언스ㅣ윤신영 기자 입력 2020.06.12. 00:00 댓글 728개

 

김경수 진주교대 교수-임종덕 국립문화재연 박사팀 발자국 세계 첫 발견
"중생대 최상위 포식자...공룡과 경쟁했을 것"
1억 1000만 년 전 한반도 남부. 호수 옆의 키 큰 양치식물을 평화로이 뜯던 목이 긴 초식공룡은 자신을 향해 은밀히 다가온 거대한 포식자의 존재를 느끼고 공포심에 몸을 피했다. 하지만 포식자의 강한 턱이 자신의 목을 무는 속도가 더 빨랐다. 쓰러지는 공룡의 눈에 비친 포식자는 육식공룡이 아니었다. 앞발을 들고 걷는 거대한 ‘이족보행 악어’였다. 두 발로 걸으며 중생대를 호령한 거대한 원시악어의 발자국 화석이 세계 최초로 국내에서 발견됐다. 두 발로 걸은 것으로 추정되는 소형 악어의 골격 화석이 미국에서 발견된 적은 있지만, 발자국 화석이라는 ‘물증’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같은 지층에서 육식공룡인 수각류와 초식공룡인 목긴공룡(용각류) 등 다양한 공룡 발자국 화석도 함께 발견돼, 두 발로 걷는 악어가 공룡과 대등한 경쟁을 펼치며 중생대 백악기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했다는 사실도 처음 밝혀졌다.

 

앞 발-꼬리 들고 무리 생활한 이족보행 원시악어 한반도에 살아

김경수 진주교대 과학교육과 교수와 한국지질유산연구소 배슬미 연구원, 임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 복원기술연구실장팀은 마틴 로클리 미국 콜로라도대 교수, 앤서니 로밀리오 호주 퀸스랜드대 교수팀과 공동으로 경남 사천 자혜리의 1억 1000만 년 전 백악기 전기 지층인 ‘진주층’에서 두 발로 걸은 대형 원시악어 발자국 화석을 발견해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 11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지난해 초 자혜리에서 파충류 뒷발자국 화석 수백 개를 발견했다. 발 길이는 18~24cm로, 발바닥 구조는 물론 발가락과 발톱까지 선명히 보존된 화석이었다. 공룡이라면 반드시 발견돼야 할 앞발자국이 없었고, 발가락이 4개로 확인돼 연구팀은 처음에는 비슷한 특징을 지닌 중생대 파충류인 익룡으로 분류하고 연구를 시작했다. 경남 사천 아두섬 화석산지(천연기념물 474호) 및 남해 가인리 화석산지(천연기념물 499호)에서는 지난 10여 년 전부터 비슷한 화석이 여럿 발견됐는데, 김 교수와 임 실장팀은 2012년 논문을 통해 이들이 날개를 들고 두 발로 걷는 독특한 익룡의 발자국 화석이라고 밝혀왔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반전이 일어났다. 공동연구자인 로클리 교수와 자혜리 화석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에서 발바닥 형태가 악어와 비슷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로클리 교수는 e메일 인터뷰에서 “보행렬 화석이 악어의 발 구조와 딱 맞았다”며 “익룡이 아닌 두 발로 걷는 악어일 가능성을 떠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 와이오밍주와 노스캐롤라이나주 등에서 두 발로 걸은 것으로 추정되는 약 2억 년 전(중생대 트라이아스기 후기) 소형 악어 골격 화석이 나온 적이 있지만, 두 발로 걸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줄 발자국 화석은 아직 발견된 적이 없었다.

 

 

▲ 김경수 진주교대 교수와 배슬미 연구원, 마틴 로클리 미국 콜로라도대 교수, 임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 복원기술연구실장팀이 경남 사천 자혜리에서 세계 최초로 두 발로 걸은 원시악어 발자국 화석을 발견했다. 사진은 2019년 10월 현장을 조사 중인 임 실장의 모습이다. 임 실장은 ″이 때만 해도 발자국의 주인공이 익룡이라고 생각했지만, 11월 재조사 과정에서 악어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임종덕 실장 제공

 

 

▲ 김경수 진주교대 교수와 배슬미 연구원, 임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 실장팀이 발견한 두 발로 걷는 중생대 악어의 보행렬(연속된 발자국) 화석이다(왼쪽). 오른쪽은 대표적인 화석을 확대한 모습과, 이를 컴퓨터를 이용해 3차원으로 복원한 그림이다. /김경수 교수 제공

 

 

▲ 2019년 1월 21일 경남 진주시 호탄동에 위치한 진주익룡발자국 전시관 수장고에서 김경수 진주교대 교수가 포즈를 취했다. 주변의 돌은 그가 평생 경남 진주와 사천, 고성 일대에서 발굴해 온 다양한 화석들이다. /진주=윤신영 기자

 

 

▲ 국내 대표적 고생물학자 중 한 명인 임종덕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복원기술연구실장이 10일 연구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이번 연구로 8년 전 연구팀이 ′이상하다′고 보고했던 한반도의 여러 이족보행 익룡도 이족보행 악어로 새롭게 분류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임 실장은 ″관련 후속 연구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전=윤신영 기자


임 실장은 “곧바로 연구에 돌입한 결과 세 번째 발가락이 유독 긴 특징 등 현생악어의 발자국과 매우 비슷한 특징이 확인됐다”며 “결정적으로 화석 일부에서 악어의 특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발바닥 피부 흔적이 발견되면서 악어 발자국 화석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 화석에 ‘대형 바트라초푸스 원시악어 발자국’이라는 뜻의 ‘바트라초푸스 그란디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바트라초푸스의 어원은 ‘꼬리없는 양서류’다. 연구 결과 이 악어는 몸 길이가 최대 3m에 이르며 꼬리와 앞발을 든 채 몸을 수평으로 세우고 뒷발로만 걸은 독특한 걸음걸이를 지녔던 것으로 밝혀졌다. 다리를 좌우로 구부린 채 기듯 걷는 현생악어와 달리 다리가 몸통에서 바로 뻗은 상태로 걸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공룡과 공존..."초식공룡 잡아먹으며 육식공룡과 경쟁했을 것"

이 가운데 가장 특이한 특징은 뒷발로만 걸었다는 점이다. 현생악어는 모두 육지에서 네 발로 걷는다. 김 교수는 “화석의 주인공이 일시적으로 앞발을 들었을 가능성, 뒷발자국이 앞 발자국을 밟아 화석을 지웠을 가능성, 현재의 악어처럼 물 속에서 헤엄치며 앞발을 들어 뒷발자국만 화석이 됐을 가능성 등을 일일이 확인했다”며 “모든 증거가 육지에서 꼬리를 들고 두 발로 걸은 악어의 발자국이라는 가설을 뒷받침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물에서 헤엄치는 현생 악어의 경우, 비록 뒷발만 바닥에 닿긴 하지만 발 끝만 닿기에 화석의 형태가 다르다.

 

여러 보행렬이 엉킨 채 발견된 것으로 보아 수십 마리가 집단생활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몸집도 커서 당시 전성기를 누리던 육식공룡들과도 경쟁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임 실장은 “이 악어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지층에서는 목이 길고 초식을 하는 목긴공룡(용각류)와 주로 육식을 하는 수각류, 덩치가 큰 조각류 등 다양한 공룡 발자국이 함께 발견됐다”며 “원시악어는 조각류나 용각류의 포식자로 이들을 잡아먹었으며 육식공룡과 경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두 발로 걷는 원시악어는 중생대 초기(트라이아스기)부터 전기 백악기까지 1억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생존했고, 지역도 북미와 한반도 등 세계 여러 곳에 널리 살았던 성공적인 종이었음을 알려주는 발견”이라며 “흔히 중생대를 공룡의 시대로 알고 있는데, 악어 역시 공룡과 함께 당시 최상위 포식자를 이루는 생태계의 ‘주연’이었음을 최초로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 교수 역시 “그 동안 트라이아스기에서만 두 발로 걷는 것으로 추정되는 악어 화석이 나와 이후 이들이 멸종했다는 주장이 많았는데, 이번 발견으로 거대한 악어가 백악기까지 오래 생존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120년 논쟁 '두 발 걸음 익룡 존재' 부정할 새 증거일지도

한편 이번 발견은 120년간 이어졌던 또다른 논쟁에도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똑같은 발자국이 발견된 남해 가인리와 사천 아두섬에서 발견된 발자국이 두 발로 걷는 익룡이 아니라 두 발 악어였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날개를 들고 뒷다리로 걷는 익룡의 존재는 지난 120년간 고생물학계의 논란거리 중 하나였다. 김 교수와 임 박사팀이 2012년 이들 두 지역의 화석을 두 발로 걸은 익룡으로 분류하면서 두 발로 걸은 익룡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았는데, 이번 연구로 이들을 악어로 재분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경우 뒷발로만 걸은 익룡의 존재를 뒷받침할 강력한 증거가 사라지게 된다.

 

임 실장은 “익룡의 90% 이상은 네 발로 걸었을 것”이라며 두 발로 걸었다고 해도 뒷발보다는 무게중심이 있는 앞발을 이용해 물 속 등을 걸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앞발만 찍힌 익룡 발자국 화석이 국내외에서 여럿 발견돼 있는 상태다. 그는 “8년 전 연구에서도 두 발로 걷는 익룡의 존재를 보고했지만, 너무나 이상해 논문에 ‘수수께끼의 거대 익룡’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번 발견으로 이들의 정체를 수정할 수 있게 돼 기쁘다”라고 말했다. 이 두 지역에서 발견된 발자국 화석은 이번에 발견된 자혜리보다 더 커서, 발자국 크기를 통해 추정한 악어의 몸 길이는 최대 4.68m에 이른다.

 

이번 화석이 발견된 지층은 진주, 사천, 남해 일대에 널리 퍼진 중생대 지층인 ‘진주층’이다. 이곳에서는 최근 세계 최초의 뜀걸음 포유류, 세계 최고(最古) 개구리, 세계 최소 랩터 공룡, 꼬리를 들고 네 발로 걸은 원시악어, 도마뱀 등 다양한 동물의 발자국 화석이 발견됐다. 1980년대부터 이 지역을 찾았던 로클리 교수는 “한국은 세계 최고의 흔적화석 산지로 특히 진주층은 피부 흔적이 보존될 정도로 화석의 보존 상태가 우수하고 다양한 화석이 발견된다”라며 “아직도 많은 현장이 남아 있어 연구할 거리가 풍부하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와 임 실장은 “중생대 척추동물의 생태계 다양성을 보여주는 세계 대표적인 화석 산지로 거듭나게 됐다”며 “기존 익룡을 악어로 재분류하는 연구와, 이족보행 악어발자국의 주인공 골격 화석을 찾는 후속 연구가 향후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윤신영 기자 ashill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