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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학·설화

[명시감상]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김소월(金素月) 작시

잠용(潛蓉) 2012. 10. 23. 22:41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1923)
- 김소월 지음 -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눈물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원문은 ‘설움인’ 입니다.


(배경음악/ Full moon-Mehdi 작곡)



김소월 지음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를 감상하고...


시가 우리의 생활과 멀어지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 고등학교 시절 우리는 한 편의 시를 읽고 시인이 그 시를 쓰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되짚어보지 않았다. 그저 시인의 경향이나 유파를 따져보고 거기에 맞는 자리매김을 할 뿐이었다. 어쩌면 시인의 생각은 그런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르는데... 그런 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수능 출제자의 의도에 밀려 우리는 시를 감상하기보다 그냥 외워버렸으니... 그러했던 우리가 시에 무슨 정이 가고 애착이 갔겠는가? 그러나 시란 그렇게 멀리 떨어진 무언가가 아님을 얼마 전에야 깨달았다.


김소월의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라는 시의 화자(話者, 소월)는 밤 하늘의 달을 바라보고 있다. 화자가 노래하는 대상은 분명 달이다. 그런데 화자의 진짜 관심은 그 달에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소월의 마음은 처음에는 달에 투사되었다가, 나중에는 임에게 투사된다. 그 임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자연물인 달은 그리움의 대상인 임을 추억하도록 만드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는 것같다.


모든 시나 예술이 그렇겠지만 위의 시는 또한, 새로운 깨달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몰랐다’는 그 말, 그리고 그 달이 ‘설움인 줄을 몰랐다’는 말, 어찌보면 너무 평범해서 새로울 것이 없는 그 고백에서 소월이 바라본 달이 별다른 달이 아니라 우리가 늘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세계 안에 있는 사물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소월의 이 시처럼 시는 꼭 특별하고 낯선 체험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우리가 잊고 지냈던 일들, 혹은 무심결에 그냥 스쳐보았던 많은 평범한 일들 속에서 우리는 우연이든 혹은 어떤 계기를 통해서든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고 바로 그 깨달음이 시의 제재가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소월의 시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처럼...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김소월/‘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1923년 잡지 <개벽>에 실림)

 

김소월(金素月 1902~1934) 
본명은 정식(廷湜). 평안북도 구성(龜城) 출생이다. 오산학교(五山學校) 중학부를 거쳐 배재고보(培材高普)를 졸업하고 도쿄상대[東京商大]에 입학하였으나 관동대지진으로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당시 오산학교 교사였던 안서(岸曙) 김억(金億)의 지도와 영향 아래 시를 쓰기 시작하였으며, 1920년에 <낭인(浪人)의 봄>, <야(夜)의 우적(雨滴)>, <그리워> 등을 『창조(創造)』지에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하였다.


이어 <먼 후일(後日)>, 등을 『학생계(學生界)』 제1호(1920.7)에 발표하여 주목을 끌기 시작하였다. 배재고보에 편입한 1922년에 <금잔디>, <엄마야 누나야>, <닭은 꼬꾸요>, <바람의 봄> 등을 『개벽(開闢)』지에 발표하였으며, 이어 같은 잡지 1922년 7월호에 떠나는 님을 진달래로 축복하는 한국 서정시의 기념비적
작품인 <진달래꽃>을 발표하여 크게 각광받았다.


1923년에는 역시 같은 잡지에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등을 발표하였고, 이듬해인 1924년에는 『영대(靈臺)』지 3호에 인간과 자연을 같은 차원으로 보는 동양적 사상이 깃든 영원한 명시 <산유화(山有花)> 등을 차례로 발표하였다. 1925년에 그의 단 하나의 시집 『진달래꽃』이 매문사(賣文社)에서 간행되었다. 그가 33세 되던 1934년 12월 23일 부인과 함께 밤늦도록 술을 마셨는데, 이튿날 음독자살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불과 5, 6년 남짓 짧은 문단생활 동안 그는 154 편의 시와 시론(詩論)인 <시혼(詩魂)>을 우리에게 남기고 홀연히 떠났다. (야후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