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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대선

[문재인] 찬조연설 동영상 모음

잠용(潛蓉) 2012. 12. 18. 10:41
◇ 문재인 후보 지지연설 동영상 모음


부산 김성연씨 찬조연설(2012. 12. 03)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찬조연설(2012.12.05)


연출자 이윤택씨 찬조연설(2012. 12. 07)


문성근 광화문대첩에서 지지연설(2012. 12. 08)


정혜신박사 찬조연설(2012.12.09)


안철수교수 이화여대 지원유세(2012. 12. 11)


안철수교수 고려대 지원유세(2012. 12. 11)


손학규의원 찬조연설(2012. 12. 11)


윤여준 전 환경장관 지지연설,(2012.12.12)


가수 이은미씨 찬조연설(2012. 12. 13)


조국 교수 찬조연설(2012. 12. 15)


구성애씨 찬조연설 (2012.12.17)


[미공개 영상] 노무현, "문재인은 제일 좋은 친구"(부산 국민참여운동본부 발대식 2002.11.2)


노 대통령 비서실장 문재인


음대출신 부인 김정숙 여사의 노래 실력은?


18대 대통령 후보 문재인 TV광고…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사회!”

 

◇ 대통령 후보 문재인은 어떤 사람인가?

 

 

[기본 정보]
출생: 1953년 1월 24일생 (59세)
고향: 경상남도 거제
학력: 경희대학교 법률학 학사
종교: 카톨릭
배우자: 김정숙 (경희대 음대 성악과 졸업)
자녀: 아들 문준용, 딸 문다혜

 

[출 생]

문재인(文在寅, 1953년 1월 24일~, 현 59세)은 대한민국 법조인겸 정치인이다. 부모가 함경남도 흥남에서 피난을 온 후 1953년 경상남도 거제에서 태어났다. 1975년 경희대학교 법률학과 재학 시절 <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 위반으로 수감된 적이 있고,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에서 차석을 하였지만 학생운동 전력 때문에 판사 임용에 실패했다. 이후 변호사 노무현과 함께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면서 부산에서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등의 활동을 하였다. 노무현 정부 시절 2003년부터 2006년 5월까지 청와대 민정수석 · 시민사회수석, 2007년부터 2008년 2월까지 청와대 비서실장을 역임하였고, 노무현 사후 <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 의 이사장을 맡았다. 2012년 대한민국 제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1]

 

2012년 6월 17일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로 출마 선언을 하였고, 2012년 9월 16일 민주통합당 경선을 통하여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었다.

 

[생 애]

(생애 초기) 1953년 경상남도 거제에서 아버지 문용형 씨와 어머니 강한옥 씨 슬하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문용형씨는 함경남도 흥남 출신으로 함흥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흥남시청 농업계장으로 근무하다가 한국 전쟁 당시 흥남 철수 작전 때 미군 군용 함정(LST)에 몸을 실어 북한에서 대한민국으로 피난을 왔다.[2] 그는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노무자로 일하면서 가족을 먹여 살렸다. [3]

 

문재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부산 영도로 이사했다. 2004년 문재인은 함경남도 흥남이 고향인 어머니 강한옥씨와 함께 북한에 살고 있는 막내 이모 강병옥씨와 이산가족 상봉을 한 바 있다.[4]

 

(학창 시절) 부산 남항초등학교와 경남중학교,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 끝에 예비고사 후기로 4년 장학금을 받아 경희대학교 법과대학에 72학번으로 입학했다.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재학시절 운동권으로서 총학생회장이던 강삼재를 대신하여 당시 총학생회 총무부장으로서 집회를 주도하다가 1975년 4월 11일 구속되어 그 해 6월 <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 위반으로 징역 8월, 집행 유예 1년을 선고받고 경희대에서 제적당했다. 출소 후 강제 징집되어 1975년 8월 육군에 입대하였고 대한민국 39향토보병사단 훈련소를 거쳐 특수전사령부 예하 제1공수 특전여단 제3대대에서 특전병으로 근무했다. UDT로 복무했다고 잘못 알려지기도 했으나, UDT는 해군 소속이기 때문에 육군소속 특수전사령부와는 관계가 없다.[5]

 

(사회 생활) 제대 후 2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0년 5월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가 내려지면서 실시된 예비 검속으로 체포돼, 사법시험 합격통지서를 청량리 경찰서 유치장에서 받았다. 1982년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했으나, 시위 전력 때문에 판사 임용이 좌절되었고, 노무현과 사법시험 동기인 박정규(노무현 정부시절 민정수석 역임)의 소개로 노무현을 만나 법무법인 부산에 합류했다. 법무법인 부산에서 노무현과 인연을 맺은 것을 계기로 30년 가까이 가장 친한 친구이자 최측근으로 활동했다.[6]

 

노무현이 정계에 입문하여 청문회 스타가 된 뒤에도 부산변호사협회 인권위원장을 지내면서 인권변호사로 일했으며 '부림사건',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동의대학교 사건' 등 굵직한 시국사건을 변론했다. 그는 1996년 8월 발생한 '페스카마호 사건'에서 한국인 선원 11명을 살해한 조선족 선원들의 변호를 맡았다.[7]

 

< 한겨례신문 > 설립 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문재인은 무료로 변론을 하게 되면 자칫 사건 당사자와 가족들이 재판을 경시하는 풍조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무료 변론은 하지 않았는데, 경상대학교 교수들이 《한국사회의 이해》라는 저서를 강의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자 5년 간 변론을 맡아 항소심에서 승소를 했을 때, 문재인이 받은 수임료는 고작 1백만∼2백만 원대였다.[8]

 

[참여정부 시절]

변호사 활동을 하며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기도 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특히 2002년 대한민국 제3대 지방 선거를 앞두고,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노무현이 몇 차례 부산광역시장 출마를 권유했음에도 ‘나는 참모용’이라며 ‘더 나은 사람이 출마해야 한다’고 고사했다.[8]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문재인은 ‘변호사 업무에 복귀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8]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을 지냈으나, 녹내장과 고혈압 등 건강 악화로 1년 만에 청와대를 떠났다. 그러나 민정 수석을 그만두고 네팔 산행 도중[9] 연락이 두절된 상황에서 영자 신문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듣고 즉시 귀국하여 변호인단을 꾸렸으며[10], 2005년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을 거쳐 참여정부 마지막 비서실장을 지냈다.

 

청와대 안에서 이정호 시민사회수석, 이호철 국정 상황실장 등과 함께 PK인맥을 대표했는데, ‘왕수석’으로 불리며 한나라당으로부터 ‘왕수석인 문재인 수석의 월권과 청와대의 시스템 경시로 인해 국정 원칙이 파괴됐다’는 비난을 받으며 2인자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11]

 

비서실장 시절 이해찬 국무총리가 부적절한 관계에 있는 인사들과 내기골프를 쳤다는 소식을 듣고 고심하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해임을 촉구하기도 했으며[12],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시절 모든 직원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으로 유명했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늘 다양한 의견을 듣고 상황을 명확하게 정리해내는 업무 스타일을 보였다.[13] 또한 참여정부 들어 검사장으로 승진한 17명 중 문재인과 이호철 비서관의 경남고등학교 동문은 한 명도 없었는데, 두 사람은 아예 동창회에 얼굴을 비추지도 않았고, 고등학교 동창인 고위 공직자가 문재인의 방에 들렀다가 얼굴도 못 본 채 쫓겨난 적도 있으며, 또한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단 한차례의 식사나 환담 자리도 갖지 않았다고 한다.[14]

 

2006년 11월 6일 국정자문회의 의원 138명을 보궐할 때, 국정자문위원으로 추가 보선되었으며[15],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문재인에 대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다.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원칙주의자’라고 평가했다.[16]

 

[참여정부 이후]

(정계 입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장례 절차와 관련한 일체의 일을 도맡았으며, 이후<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 이사장을 역임했다.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비서실장, 특수전사령부 출신, 사법연수원 차석 졸업 등 화려한 이력으로 인하여 대선에서 야권 후보들 중 지지율이 가장 높았다. 2011년 8월 언론사 여론 조사에서 ‘당신이 원하는 국회의원’ 부문에서 지지율 1위를 차지했고[17], 2012년 대한민국 제 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1], 2012년 9월 16일 국민참여 경선을 거쳐 < 민주통합당 >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2012년 11월 18일 2기 지도부 총사퇴에 의해 < 민주통합당 >의 대표권한 대행이 되었다.  (자료: 위키백과)

 

 

 

 

(문재인의 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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