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용의 타임머신... 영원한 시간 속에서 자세히보기

칼럼· 기념일

[3.1절] 무관심 속에 잊혀지는 소중한 '정신유산'

잠용(潛蓉) 2013. 3. 1. 12:59

3.1운동이 ‘1970년’에 발생? 주동자는 ‘김구’?
노컷뉴스 | 이대희 | 입력 2013.03.01 06:03 | 수정 2013.03.01 09:03

 

서울 초등학생 278명 대면 설문조사 결과 3.1절 인식 수준 '심각'

[CBS 이대희 기자] 최근 이마트의 한 매장에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했던 3.1운동을 기념하는 3.1절을 '지루하다'고 표현해 논란이 되는 등 3.1운동의 의미가 날로 퇴색되고 있다. 실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초등학생 절반이 3.1절이 어떤 날인지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부실한 역사 교육이 도마에 오르게 됐다.

 

◈ 초등학생 절반 "3.1운동 몰라요"

CBS노컷뉴스는 94주년 3.1절을 맞아 서울 18개 구에서 초등학교 1~6학년 278명(남 144명, 여 134명)을 대상으로 3.1운동의 인식에 대한 대면 설문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절반에 해당하는 139명이 "3.1 운동을 모른다"는 응답을 했다. 학년별로 모른다는 응답자의 비율은 1학년이 82%(34명 중 28명)로 가장 높았고 5학년이 25%(61명 중 15명)로 가장 낮았다.

 

동대문구에서 만난 박 모(12)양은 "임진왜란 이후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돼 안중근 같은 사람이 밤에 비밀로 만나서 우리나라를 되찾은 날"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6학년 김 모 양은 "3.1운동은 3일만 하는 운동인 것 같다"는 다소 황당한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구로구에서 만난 5학년 임 모 양은 "3.1운동은 사회 시간에 한두 페이지 본 것 같은데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3.1운동이 몇 년도에 일어났나"는 문항에는 무려 85%인 235명이 "모른다"는 답변을 했다. 정답(1919년)을 말한 초등학생은 14명인 5%에 그쳤다. 6명은 1945년 해방 이후에 3.1운동이 벌어졌다고 답하기도 했다. 3.1운동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가 몇 명이었는지 묻는 질문에도 80.5%인 224명이 "모른다"고 답했다. 정답인 33명을 답한 학생은 3.6%인 10명뿐이었다. 심지어는 5백만명이라고 답한 학생도 있었다.

 

◈ 유관순열사 영정과 사진 보여주자 초등학생 25% "누구에요?"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일제에 항거하다 17살 나이에 목숨을 잃은 유관순 열사의 인식은 그나마 나은 수준이었다. 설문에 응답한 초등학생들에게 유관순 열사의 영정사진 3장과 서대문형무소에서 수의를 입고 찍은 사진 1장을 보여주며 누구인지 물었지만 25%인 68명이 "모른다"고 답했다. 74%인 207명이 "유관순 열사"라고 답했지만 관기 출신으로 구휼 사업을 펼친 김만덕이라고 답한 학생도 있었고 '아저씨'라고 답한 학생도 있었다.

 

금천구에서 만난 초등학교 3학년생에게 사진을 보여주자 "잘 모르는 사람인데 책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안 본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3.1운동하면 떠오르는 인물을 묻자 59%인 164명이 역시 모르겠다는 답변을 내놨다. 유관순 열사를 답한 학생은 38%에 그쳤다. 5명은 3.1운동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백범 김구 선생을 답했고 '단군할아버지'라고 응답한 학생도 있었다. 6학년 박 모 양은 "3.1운동은 1970년에 일어났고 김구가 주모자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 빈약한 근.현대사 교육 내용과· 방법 다시 생각해야
전문가들은 이런 초등학생들의 3.1운동에 대한 인식이 빈약한 근현대사 교육 문제라고 지적한다.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사무국장은 "역사를 배우지 않아도 사회 지도층이 되는데 전혀 문제가 없으니 학교나 가정에서도 역사 교육에 소홀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럽의 경우 역사 교육에서 근현대사 비중이 70% 가량 할애된다"면서 "독도 문제의 경우도 근본적인 원인이 일제 강점인데 원인을 가르치기보다는 이벤트 중심이라 깊이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교원대학교 초등교육과 최용규 교수는 "5학년 때 역사를 배운 학생들도 3.1절에 대해 정확히 모른다면 역사 교육의 방법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교육 관계자들은 학사 일정 상의 맹점도 원인으로 지적한다. 3.1절은 개학 직전 있는 기념일이라 교육이 소홀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3.1절이 개학 전에 있다 보니 교육이 잘 안 되는 측면이 있다"면서 "광복절도 마찬가지로 방학 중에 있는 국경일이라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도 "교과 과정이 있는 5학년을 제외한 나머지 학년의 역사교육은 기념일을 맞아 교육하는 '계기교육'의 형태"라면서 "3.1절의 경우 학사 일정과 맞물려 소홀히 다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2vs2@cbs.co.kr]

 

서울 탑골공원의 <3·1독립선언서> 영문번역 엉망(종합)
연합뉴스 | 입력 2013.03.01 09:13

 

전문가들 "문장 왜곡에 어색한 표현, 오자 투성이"
서울시·종로구청 "당시 번역자가 누군지도 몰라"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김보경 기자 =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세계 만국에 알리어 인류 평등의 큰 도의를 분명히 하는 바이며, 이로써 자손만대에 깨우쳐 일러 민족의 독자적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려 가지게 하는 바이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발표한 독립선언서의 첫 문단이다. 시인이자 당대 최고 문장가이던 육당(六堂) 최남선이 쓴 이 선언서는 지금도 명문장으로 통한다. 독립운동가이자 국어학자인 이희승 박사가 쓴 현대어 풀이본도 마찬가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3·1운동이 일어났던 서울 종로2가 탑골공원에 설치된 독립선언서 영문 번역본은 어색한 표현과 오자, 원문의 뜻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거나 왜곡한 문장 투성이어서 당대의 명문장인 원문의 격을 심각하게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연합뉴스가 탑골공원에 있는 독립선언서 영문본을 살펴보고 영문학자들에게 조언을 구한 결과, 이 같은 오류나 적절하지 않은 번역이 한눈에도 적지 않은 곳에서 발견됐다. 일례로 선언서 두번째 문단 '5천년 역사의 권위를 의지하여 이를 선언함이며'는 'We make this proclamation having back of us 5000 years of history'라고 번역돼 있다. 하지만 'have back of us'라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쓰이지 않는다. 이는 'on the foundation of 5000 years of history' 정도로 충분히 풀어쓸 수 있다고 학자들은 지적했다.

 

넷째 문단의 '슬프다! 오래전부터의 억울을 떨쳐 펴려면'은 'Assuredly, if the defects of past are to be rectified'로 번역됐다. '슬프다'는 의미가 다른 'Assuredly'(기필코)보다 'Alas' 'Woe to us' 등 원문의 감정을 살리는 표현으로 대체할 수 있다. 또 뒷부분은 '과거의 결함을 바로잡으려면'으로 해석돼 외세 침략에 따른 민족의 비통함을 드러낸 원문의 느낌이 사라졌다는 게 학자들의 견해다.

 

선언문 아래 붙은 '공약 3장' 중 첫 문장은 원문의 표현을 아예 빼버렸다. '오늘 우리의 이번 거사는 정의, 인도와 생존과 영광을 갈망하는 민족 전체의 요구' 부분을 번역문은 'This work of ours is in behalf of truth, religion, and life, undertaken at the request of our people'로 옮겼다. '정의'를 영어로 번역할 때 일반적으로 쓰는 단어는 'justice'이지만 '진실' 또는 '진 리'에 가까운 'truth'를 썼다. 원문에는 '종교'(religion)라는 말이 없고, 'morality' 정도로 번역 가능한 '인도(人道)'는 번역 과정에서 아예 빼버렸다. '생존'은 'life' 대신 'survival'이 더 적절하다. 이어지는 '결코 배타적인 감정으로 정도에서 벗어난 잘못을 저지르지 마라'는 '누구에게도 폭력이 가해지게 하지 마라'(let no violence be done to any one)로 단순하게 의역, 원문의 격조를 살리지 못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다른 문장에서는 '혹심한 추위가 사람의 숨을 막아 꼼짝 못 하게 한 것'을 번역하면서 원문의 목적어구 중 '사람'을 'insect'(곤충)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심지어 'sincere'를 'sincero'라고 쓴 오자까지 나왔다. 주술관계가 명확하지 않아 거의 비문 수준으로 보이는 문장이나 나쁜 글쓰기의 대표 사례인 수동태 남발도 곳곳에서 발견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국내 한 대학 강사로 재직 중인 호주인 M(38)씨는 선언문 영역본을 살펴보고는 "너무 문제가 많아 계속 읽기조차 어려운 수준"이라며 "수많은 오류를 다 고치려면 상당히 많은 시간이 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문과 출신으로 영어를 강의하는 한 학원 원장 김모(32·여)씨는 "멋대로 표현을 빼버리고 문법에 맞지 않는 부분도 발견되는 등 엉망진창"이라며 "외국인이 이런 문장을 보고 과연 3·1절의 역사적 의미를 알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관할 자치단체는 선언문 번역자가 누구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종로구 관계자는 "1980년에 선언문 비문을 세웠는데, 당시 설치를 서울시가 담당해 번역자가 누구인지 여기서는 알 수 없다"며 "자치구에서는 비문을 관리만 하지 그 역사나 내용상 오류 등은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서울시의 담당 부서 관계자도 "번역자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겠다"고 말했다. [pulse@yna.co.kr, vivid@yna.co.kr]

 

[3·1절 94돌]

태극기, 어떻게 달아야 맞는 걸까?
뉴시스 | 한정선 | 입력 2013.03.01 05:02

 

【서울=뉴시스】한정선 기자 = 3·1절은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날이다. 1919년 3월1일 탑골공원에서 독립을 외치는 사람들의 손에는 태극기가 있었다. 태극기 게양은 3·1절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올바른 태극기 게양을 위해 태극기에 대한 상식들, 역사와 의미, 게양법 등을 알아봤다.

 

◇ 올바른 태극기 게양과 보관법은?
태극기를 다른 깃발과 함께 게양할 때 반드시 다른 깃발보다 높게 깃대를 해야 한다. 다른 나라의 깃발과 나란히 할 때는 태극기를 가장 왼쪽에 배치한다. 집에서 태극기를 게양할 때는 게양 장소인 베란다나 대문을 바라보고 왼쪽에 달아야 한다.

 

또 집에 소장하고 있는 태극기에 얼룩이 생겼거나 때가 묻었을때 세탁할 수 있는지에 헷갈려 하는 사람이 많다. 태극기를 세탁하면 민족의 혼이 빠져 나간다는 등의 설로 세탁을 하면 안된다는 선입견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국기법은 다르다. 대한민국 국기법 시행령 제22조에 따르면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태극기 세탁을 허용한다. 태극기가 구겨진 경우에는 다림질을 해 보관할 수 있게 한다. 오히려 훼손된 태극기를 그대로 게양하거나 부러진 깃대 등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태극기를 사용한 후에는 모서리를 잘 맞춰 접은 후 국기함에 넣는 것이 좋다. 국기함이 원통형이면 태극기 위에 깨끗한 종이를 올려놓고 함께 말아 넣는다. 다만 태극기를 버릴 때에는 소각해 버려야 한다. 국기법 제10조에서는 국기가 훼손됐을 때에는 이를 소각 등 적절한 방법으로 폐기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태극기가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실제 아파트나 주택가 등에서 태극기를 소각해 버리는 일은 쉽지 않아 문제가 지적되기도 했다. 일부 공공기관이나 지자체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별도로 태극기 수거함을 설치해 태극기를 함께 모아 소각하는 방법 등을 택하고 있다.

 

◇ 태극기 어떤 의미 담겨 있을까?
'태극기'(太極旗)는 흰색 바탕에 가운데 태극문양과 네 모서리의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四卦)로 구성돼 있다. 태극기의 흰색 바탕은 밝음과 순수,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의 민족성을 나타내고 있다. 가운데의 태극문양은 음(陰-파랑)과 양(陽-빨강)의 조화를 상징하고 있다. 우주만물이 음양의 상호작용에 의해 생성하고 발전한다는 대자연의 진리를 형상화한 것이다.

 

모서리의 4괘는 음과 양이 서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효(爻-음·양)의 조합을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 가운데 '건'괘는 우주 만물 중에서 하늘을, '곤'괘는 땅을, '감'괘는 물을, '리'괘는 불을 각각 상징한다. 이들 4괘는 태극을 중심으로 통일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 태극기 제정 역사는?
우리나라의 국기 제정은 1882년(고종 19년) 5월22일에 체결된 조미수호 통상조약 조인식에서 비롯됐다. 당시 조선 정부는 청(淸)이 자기나라 국기인 용기(龍旗)를 약간 변형해 사용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를 거부하고 태극 문양을 흰색 바탕에 빨강과 파랑으로 그려 넣은 '태극 도형기'(太極 圖形旗)를 임시 국기로 사용했다.이후 국기 제정의 필요성을 느낀 조선 정부는 종전의 '태극 도형기'에 8괘(卦)를 첨가해 '태극·8괘 도안'의 기를 만들었다.

 

1882년 9월 박영효는 고종의 명을 받아 특명전권대신겸 수신사로 이 국기를 지니고 일본으로 가던 중 선상에서 태극 문양과 그 둘레에 8괘 대신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만을 그려 넣은 '태극·4괘 도안'의 기를 만들어 같은달 25일부터 사용했다. 고종은 1883년 3월6일 왕명으로 '태극·4괘 도안'의 '태극기'(太極旗)를 국기(國旗)로 제정·공포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1942년 6월29일 국기제작법을 일치시키기 위해 '국기통일양식'을 제정·공포했다. 그러나 일반 국민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태극기의 제작법을 통일할 필요성이 커졌다. 정부는 1949년 1월 '국기시정위원회'를 구성해 같은해 10월15일 현재의 '국기제작법'을 확정·발표했다. [jsh@newsis.com]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제 94주년

박 대통령 3·1절 기념사 [전문]
[청와대] 2013-03-01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700만 해외동포와 북녘 동포, 그리고 독립유공자와 내외귀빈 여러분,

오늘 우리는 뜻 깊은 제94주년 3·1절을 맞이하였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고난의 가시밭길을 헤쳐오신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이 설 수 있었습니다. 순국선열과 독립유공자, 그리고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저는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으로서, 선열들이 남겨주신 고귀한 뜻을 이어 받아 희망의 새 시대를 열어나갈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3·1운동은 식민지라는 척박한 토양에 우리 스스로 자주 독립의 기초를 만든 자랑스런 역사입니다. 그것이 임시정부 수립과 독립운동으로 전개되었고, 마침내 조국의 광복과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귀중한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1919년 오늘, 우리 2천만 동포는 빈부도, 지역도 따로 없었습니다. 오직 뜨거운 애국심과 조국의 독립을 향한 열망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대한민국도 안팎의 숱한 도전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온 국민이 하나로 뭉쳐 한강의 기적이라는 신화를 이룩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산업화와 민주화의 꿈을 동시에 이루었습니다. 이것을 이뤄 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위대한 국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저는 그 국민들과 함께, 제가 취임사에서 밝힌 경제부흥과 국민행복, 문화융성으로 희망의 새 시대를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자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94년 전, 우리 선열들은 <독립선언문>에서 ‘자자손손 완전한 경사와 행복을 길이 누리기’위해 자주 독립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선열들이 간절하게 열망했던 국민 행복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우리를 둘러싼 안팎의 도전들을 지혜롭게 극복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경제가 양적으로는 성장했지만 국민 개개인의 행복으로는 연결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창조경제를 통해 새로운 시장과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국민 개개인의 행복이 국력의 토대가 되도록 만들 것입니다. 또 복지에 사각지대가 많아서 노후가 불안하고, 기초적인 삶조차 불안을 느끼는 국민들이 많습니다.  새 정부는 맞춤형 복지시스템을 구축해서 국민 누구나 기본적인 삶은 안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우리는 5천년의 빛나는 전통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문화는 전 세계인들과 함께 공유하고 교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저는 문화융성을 통해 국민행복과 한반도 평화통일,그리고 행복한 지구촌을 만드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우리 민족의 얼과 정신을 되살려서 국민 누구나 삶 속에서 문화의 향기를 누릴 수 있고, 문화를 통해 국민이 하나가 되고 세계인이 함께 할 수 있는 문화 융성시대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역사는 자기 성찰의 거울이자, 희망의 미래를 여는 열쇠입니다. 한국과 일본, 양국 간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역사에 대한 정직한 성찰이 이루어질 때, 공동 번영의 미래도 함께 열어갈 수 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일본이 우리와 동반자가 되어 21세기 동아시아 시대를 함께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역사를 올바르게 직시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양국 간에 굳건한 신뢰가 쌓일 수 있고, 진정한 화해와 협력도 가능해질 것입니다.

 

양국의 미래 세대에까지, 과거사의 무거운 짐을 지워서는 안 됩니다. 우리 세대 정치지도자들의 결단과 용기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한국과 일본이 아픈 과거를 하루빨리 치유하고, 공영의 미래로 함께 나갈 수 있도록, 일본 정부는 적극적인 변화와 책임있는 행동을 해야 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민족의 공존과 공영은 조국독립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선열들이 3.1운동을 통해 우리에게 남겨준 고귀한 정신이자 유산입니다. 그동안 우리 대한민국은 6·25 전쟁을 비롯한 북한의 수많은 군사적 도발에도 불구하고,  남북 화해와 평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 왔습니다. 저는 확고한 안보를 바탕으로 한반도에 신뢰를 쌓아서 행복한 통일의 기반을 조성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북한은 핵 개발과 도발로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고, 고립과 고통만 커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도발을 중지할 때에만,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이 될 수 있고, 남북한 공동 발전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또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도 제대로 진행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북한의 도발에는 더욱 강력하게 대응하되, 북한이 올바른 선택으로 변화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더욱 유연하게 접근할 것입니다. 북한도 그 동안의 남북 합의와 국제적 합의를 존중하고, 서로를 인정하는 신뢰의 길로 나오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루 속히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 한반도 행복시대를 함께 열어갈 것을 촉구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은 우리 선조들이 피와 땀으로 이룩해 온 소중한 국가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순국선열들의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대한민국을 선진대열에 올려놔야 합니다. 저는 대한민국이 대내외 도전과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행복한 국민, 행복한 한반도를 이룩하고, 지구촌 행복시대를 여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저의 모든 것을 바쳐 노력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도 선열들의 정신을 되새겨, 작은 차이는 뛰어 넘어 공동체를 위한 대승적인 양보와 나눔의 대열에 동참해 주시고, 대립과 분열의 현장에 상생과 화합의 길이 열릴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국민 모두가 행복한 희망의 새 시대를  함께 만들어 나갑시다. 감사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