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알라모' (The Alamo, 1960)
■ 감독: 존 웨인(John Wayne) 로렌스 하비(Laurence Harvey) 외 ■ 음악 : 디미트리 티옴킨 (Dimitri Tiomkin) 웨스턴 액션의 대부 존 웨인 제작, 감독, 주연 그러나 수입업자의 무지로 우리나라에서는 개봉되지 못했던 그 영화!! 뒤늦게나마 그 명성, 그 배역, 영화 음악의 거장 디미트리 티옴킨의 그 불후의 '디 알라모' 음악을 들어보자!!
◇ 때는 1836년, 당시 멕시코 영토였던 텍사스가 독립선언을 하자, 멕시코의 독재자 산타 안나는 7,000명의 정규군대를 이끌고 텍사스 토벌군을 파견하게 된다. 이에 텍사스 민병대는 산 안토니오 교외의 알라모로 몰아 붙이게 되고 샘 휴스턴 장군은 텍사스 민병대가 병력을 재조직할 수 있는 시간을 벌도록 며칠만 버텨 달라고 한다. 젊고 고집센 트래비스 대령과 능력은 있지만 늘 술에 취해 있는 짐 보위는 항상 부딪치는데 그런 때 중재자로 나서는 사람은 데이빗 크로켓 대령. 그는 산타 안나의 독재에 반대하고 정의를 위해 그들과 함께 싸우기로 하고 자신이 이끄는 텍사스출신 대원들과 함께 합류한다. 드디어 알라모 요새 앞에 당도한 멕시코 군은 먼저 연락 장교를 보내 알라모 요새 성문 앞에서 그들에게 항복할 것을 요구하고, 항복한다면 모두 목숨을 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트래비스 대령은 대답 대신에 포탄을 발사하고 이로써 전쟁은 시작된다. 알라모 수비대원은 이후 수일간의 전투로 멕시코군의 발목을 붙잡아 두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대원들 지쳐가고 수적으로 열세인 아군들은 요새 함락의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알라모"는 텍사스 독립전쟁 초기, 샘 휴스턴 장군의 방어계획을 성공시키고 텍사스인들에게 영웅적 저항정신의 상징이 된 185명의 텍사스 민병대의 알라모 요새 전투를 그린 작품이다. 이 전투는 당시 텍사스 수비대원 전원이 목숨을 바쳐 미국 건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러면서 참혹한 비극으로 기록되었다. 이 사건을 토대로 그간 여러 편의 영화가 제작되었지만 서부영화의 "액션 히어로"로 불리는 존 웨인이 메가폰을 잡고 주연한 이 작품이 가장 완성도가 높은 걸작으로 손꼽힌다. 이 영화를 위해 2년여에 걸쳐 완성한 알라모 요새 세트는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유명 관광지로 호평받고 있다. 1961년 아카데미 음향상을 비롯해 작품상, 여우조연상, 촬영상, 편집상, 주제가상, 작품상 등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음악의 디미트리 티옴킨은 골든 글로브 작곡상을 수상했다. (Daum 영화)
"Eyes of Texas" (텍사스의 눈) Let the old men tell the story (노인들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게 하라) Of the thirteen days of glory (영광의 13일에 대하여)
◇ 영화 '디 알라모' 요약
감독 : 존 웨인 각본 : 제임스 에드워드 그랜트 배역 : 존 웨인, 리차드 Widmark, 로렌스 하비 외 음악 : 디미트리 티옴킨 (Dimitri Tiomkin) 편집 : 스튜어트 길모어 스튜디오 : The Alamo Company, United Artists, Batjac Productions 배급 : United Artists 상영시간 : 3시간 22분(Road show), 2시간 47분(일반 버전)
◇ 영화 <디 알라모>는 United Artists사가 1960년에 제작한 미국의 독립운동에 관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데비 크로켓 대위로 연출한 존 웨인이 감독했다. 캐스트는, Richard Widmark (Jim Bowie역), Laurence Harvey (William B. Travis역) Frankie Avalon, Chill Wills, Patrick Wayne, Linda Cristal, Joseph Calleia, Ruben Padilla, Richard Boone (Sam Houston역), Ken Curtis, Hank Worden, 그리고 Denver Pyle 등이 출연했다. 촬영은 William H. Clothier에 의해 70mm Todd-AO로 촬영되었고, 주제는 텍사스주 알라모 요새의 1836년 민병대 전투를 다루었다.
◇ 배 역 → 존 웨인(John Wayne) : 데비 크로켓 대령역, 테네시 출신의 실제보다 더 큰 적설적 인물로 싸움이라면 마다 않는 동료 모험가 대원 60명을 이끌고 알라모에 도착한다.
→ 랭프랭키 아발론(Frankie Avalon) : 스미티역, 알라모 방위군의 막내다, 그리고 크로켓의 테네시안의 한 사람이다, 멕시코의 지원병을 인도하는 산 안토니오 (San Antonio)의 행정 요원.
→ 아이싸 웨인(Aissa Wayne) : 존 웨인의 친딸. 리사 디킨슨역, Almeron과 슈와 디킨슨의 딸역을 한다. → 행크 워든(Hank Worden) : 파슨역. 크로켓의 테네시 민병대 중의 한 사람. → 척 로버트슨(Chuck Robertson) : 테네시인으로 크로켓의 민병대 중 한 사람이다.
→ 빅보이 윌리암스(Guinn 'Big Boy' Williams) : 영국계 핀(Finn) 중위역. 보위의 자원병 중 한 사람.
이 영화는 미국 건국사상 유명한 <알라모 전투>를 그리고 있다. 따라서 그에 관한 일련의 사건으로 이어진다. 샘 휴스턴 대령은 텍사스 독립을 위해 싸우는 군대를 이끌고 있지만 보다 큰 군대로 조직할 시간이 필요하다. 산타 안나 장군이 이끄는 반대쪽 멕시코 군대는 숫적으로 몇 배나 우세하고 더 나은 무기를 가지고 잘 훈련된 정규군 조직이다. 그렇지만 텍사스 민병대에게는 강한 정신력과 하늘을 찌르는 사기를 가지고 있었다. 윌리엄 트래비스 대령은 27명의 수비군을 가지고 알라모 요새를 방위하면서, 산 안토니오(San Antonio) 외곽을 방어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그때 짐 보위가 100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지원군으로 도착하면서, 알라모 수비대는 많은 힘을 얻고 또 한편으로 데비 크로켓 대령이 이끄는 테네시출신 60명의 부하들을 데리고 산 안토니오 (San Antonio)에 도착한다. 크로켓이 트래비스를 면담하러 갔을 때 상황의 심각성을 알게된 크로켓은 자기 부하들에게 알라모 수비대와 힘을 합치도록 명령한다.
한편 산타 안나의 군대는 이 곳에 도착하자마자 요새를 둘러싸고 한바탕 대포를 쏘아 공격한다. 그리고나서 산타 안나는 척후병을 보내 트래비스에게 항복을 요구한다. 그러나 지휘관 트래비스는 자기도 대포를 쏘아 끝까지 항전하겠다는 의사로 대답한다. 그러자 멕시코 군대는 수비대가 한번도 보지 못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포를 쏘아 요새가 한쪽 벽이 무너져버린다. 이에 놀란 텍사스 출신 수비대는 크로켓의 지휘하에 야간 기습작전으로 멕시코의 주둔지에 몰래 들어가 문제의 그 대형 대포를 진흙을 집어넣어 파괴하고 돌아온다. 또한편 수비대는 희소식을 듣는다. 즉, 멕시코 군대의 포위을 파괴하기 위해 제임스 Fannin 대령이 이끄는 강력한 군대가 여기로 오고 있다는것이다. 이 말을 모두가 듣고 희망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크로켓은 임박한 공격을 감지하고, 휴스턴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 자신의 젊은 부하 중에서 가장 나이 어린 스미티를 휴스턴 장군에게 보낸다. 그러나 크로켓은 내심 스미티가 가는 도중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멕시코군의 알라모 정면 공격 때 텍사스 출신으로 자신의 상처가 작은 것이 아니지만 수비대가 밀어 주어 사기가 진작되어 멕시코의 무장한 병사 수백명을 죽인. 보위 대령은 다리에 상처까지 입는다. 그러나 지휘관 트래비스가 Fannin 장군의 지원군이 이곳으로 오다가 그만 매복해 있던 멕시코군에 의해 전부 학살되었다는 사실을 부하들에게 알려주자 부하들의 사기는 크게 떨어진다. 마침내 지휘관 트래비스는, 자신의 수비대만으로 알라모 요새를 방어하기로 결심하고, 나중에 온 다른 민병대에게는 이곳을 떠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러자 크로켓과 짐 보위의 부하들이 떠날 준비를 한다. 그러나 트래비스는 마지막으로 그들이 남아서 수비대와 함께 끝까지 싸워달라고 일장 연설을 하여 민병대는 대부분 계속 요새에 남기로 한다.
마침내, 멕시코군에게 포위된지 13 일째 되는 결전의 날이 밝았다. 산타 안나는 대포로 알라모를 포격하고 택사스 수비대 몇 명을 죽이고 상해를 입힌다. 그러자 멕시코 군대는 전 방향에서 공격 앞으로 진군한다. 수비대는 무장한 멕시코군 수십 명을 죽이지만, 멕시코군의 공격은 숫적으로 민병대를 압도한다. 멕시코군대는 알라모 요새의 벽을 사다리로 타고 넘어와 요새는 마침내 멕시고 병사로 뒤덮힌다. 트래비스는 부하들이 구멍을 파 놓은 지점으로 이동하려고 하지만, 그만 총을 맞고 살해된다. 요새의 최종 방어선을 이제는 텍사스 출신 크로켓 민병들이 이끌고 있다. 멕시코군에게 막대한 손실을 당하면서 텍사스 출신 민병대는 최종 수비위치로 후퇴한다.
크로켓은 창으로 적군을 퇴치하다가 포탄 파편을 맞았고 혼란 속에 죽어간다. 짐 보위 대령은 자신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자기 침대에 올라온 몇몇 멕시코군을 죽이지만 심한 부상을 당해 사망한다. 마지막 텍사스 수비군이 살해되면서 이제 멕시코 군인들은 수비대장 디킨스의 아내와 자녀들이 숨어있는 은신처를 발견한다. 전쟁은 멕시코 군대가 바란대로 끝났다. 산타 안나는 대학살을 보고 디킨스 부인과 그녀의 아이들에게 안전한 통로를 제공하도록 명령한다. 샘 휴스턴 장군에게 갔다온 스미티는 이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고, 자신이 너무 늦게 돌아온 것을 후회한다. 그는 존경의 의미로 모자를 벗어서 디킨스 가족에게 인사하고 전장터에서 멀리 떨어져 디킨슨 부인을 끝까지 에스코트 해준다.
영화는 트래비스와, 짐 보위, 그리고 크로켓 세 사람의 강한 의지와 개성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트래비스는 고집스럽게 다른 두 사람의 제안에 대해 수비대의 지휘관으로서 자신의 결정을 끝까지 지키려 하고 - 특히 짐 보위가 가장 심한 갈등을 키워왔던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민병대에서는 자신의 유식함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주로 독립 지향적인 개척자들과 정착민들로 구성된 짐 보위가 지속적으로 트래비스와의 계약보다는 자기 부하들의 안전을 위해 철수하겠다고 위협한다, 그리고 크로켓은, 짐 보위와 트래비스 두 사람 모두를 좋아해서, 결국 둘 사이의 중재자 위치가 된다. 그러면서 개인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은 모두 서로의 차이점을 죽이면서 대의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할 수 없는 패배에 대항해 알라모 요새를 방어하기 위한 거사에 스스로를 함께 하기로 결심한다.
[영화 제작사에 얽힌 배경] 1945년에 존 웨인은 1836년에 일어난 텍사스의 '알라모 전투'에 대해 영화를 만들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대본 작가로 제임스 에드워드 그랜트를 고용하고, 두 사람은 이 전투에 대해 연구하고 초벌 스크립트(대본)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연구 조수로 유명한 웨스턴 영화 감독인 존 포드의 아들 Pat Ford를 고용한다. 대본이 거의 완성되었을 때, 존 웨인과 Republic Pictures 사장 Herbert Yates 사이에, 제안된 300만 달러 예산의 초과 문제로 충돌이 일어난다. 이 불화로 존 웨인은 이 영화사를 떠났으나 완성된 대본은 가져갈 수 없었다. 그 대본은 나중에 다시 수정되어 영화 <최후의 명령 The Last Command>의 대본이 되었다.
[막대한 제작비 문제] Wayne과 프로듀서 로버트 펠로우는 그들 자신의 제작사인 Batjac사를 만들었다. 웨인은 영화 <알라모>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비젼을 가졌고, 그는 자신의 비전이 변경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 제작과 감독은 자신이 맡더라도 영화에 직접 출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화면에 얼굴을 내놓지 않고도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는 보장 없이는 프로젝트에 대한 재정 지원을 얻어 낼 수가 없었다. 1956년 그는 마침내 United Artists사와 계약한다. UA는 영화의 현상에 250만 달러를 투자하고 영화의 유통을 담당하기로 한다. 계약에서 웨인의 회사 Batjac는 추가로 150~25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하고, 웨인이 직접 영화에 출연하기로 한다. 웨인은 텍사스에서 촬영한다는 조건으로 텍사스 출신 금융 재벌들로부터 나머지 예산을 확보하게 된다. 나중에 "알라모 마을"로 알려진 이 영화 세트장은 텍사스의 Brackettville에 세워졌는데 제임스 T. Shahan의 목장을 이용해서 건설되었다. Brackettville에서 축소형 건물이 모인 Chatto Rodriquez까지 접근로로 사용할 14 마일(23km)의 포장 도로도 만들었다. 또한 매일 사용될 12,000 갤런의 물을 공급하기 위해 여섯개 우물을 팠고, 수 마일에 걸친 하수도와 상수도 배관을 설치했다. 그리고 5,000 에이커(2,000 헥타르)에 달하는 말 목장도 만들었다.
Rodriquez 세트장를 만드는 데는 아트 디자이너 알프레드 Ybarra가 설계하고 건축했다. 역사학자 랜디 로버츠와 제임스 올슨은 이 세트장을 "영화사상 가장 확실성 있는 세트"라고 설명했다. 125만 장 이상의 수제 점토 벽돌로 지어진 옛 알라모 교회의 주벽을 새로 창조했다. 이 세트는 교회의 크기를 원래의 3/4 규모의 복제로 만들었는데, 이후 전투의 다른 묘사를 포함해서 지금까지 100회 이상 서부영화에 사용되었다. 이 세트장 건설은 2년 여에 걸려서 완공되었다. (사진은 새로 세운 알라모 교회의 정면 외벽)
[배역 선정] John Wayne은 처음 주안점을 감독에 대한 노력에 두고, 샘 휴스턴에게 자신의 역할을 맡기려고 했지만, 돈을 댄 채권자들은 존 웨인이 주역을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리차드 분에게 휴스턴 역을 건네주고, 자기는 데비 크로켓의 역할을 맡았다. 윌리암 배럿 트웨인은 리처드 위드마크에게 짐 보위를 맡기고. 로렌스 하비에게는 윌리암 바레트 트래비스역을 배역했다. 하비는 웨인이 그가 영국의 무대 배우였던 경력을 존경하고 또 영국 고전을 좋아했기 때문에 선정되었다. 영화 촬영이 본격화되자, 하비는 텍사스 억양으로 셰익스피어 대사를 말했다. 다른 역할은 웨인의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에게 돌아갔다. 특히 아들 Patric과 딸 Aissa를 포함헤서, 그리고 미래의 서부영화 작곡가이자 스턴트맨인 루디 로빈스는 테네시의 자원병으로 영화에서 단역이 주어졌다.
촬영이 시작된 며칠 뒤에, 리처드 Widmark는 자신이 잘못 캐스팅 되었다고 불평하면서 떠나겠다고 했다. 웨인이 법적조치의 위협 끝에, 그는 영화를 끝내기로 합의했다. 촬영하는 동안 그는, 버트 케네디에게 자신의 대사를 다시 쓰도록 했다.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는 노예 부분에서 노래와 춤을 제외시키도록 존 웨인에게 요구했다. 일부 제작진이 Davis가 백인 여배우 May Britt와 데이트를 했다고 영화 제작을 방해하기도 했다.
[존 포드 감독과의 불화] Wayne의 멘토인 존 포드가 불만을 보이며 영화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려 했다. 웨인는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불필요한 2부의 촬영 필름을 모두 제외시켜 버렸다. 실제로 존 포드의 영상은 거의 아무 것도 사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포드는 종종 잘못 알려져 이 영화의 공동 감독으로 설명되고 있다. 이 영화와 관련된 많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존 웨인은 그가 좋아하는 작가인 제임스 에드워드 그랜트의 장황한 대사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지적이고 재능있는 감독으로 평가되었다. 로버츠와 올슨은 그의 영화 감독은 "competent but not outstanding: 유능은 하지만 뛰어나지는 못하다"고 셨다. Richrd Widmark는 웨인이 종종 자기와 다른 배우들에게 그들의 역할에 대한 연기 방법을 말해주려고 하는데 그것이 종종 그들의 개성과 반대되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불평했다. 촬영 도중 그는 버트 케네디에게 자신의 대사를 바꾸도록 했다. (사진은 촬영중인 존 웨인 감독- image courtesy mptvimages.com)
[촬영에 얽힌 일화] 촬영은 1959년 9월 9일에 시작되었다. 어떤 배우, 특히 프랭키 아발론은 촬영장 근처에 흔히 있는 방울뱀의 위협을 받았다. 귀뚜라미도 종종 여배우의 어깨에 뛰어올라 촬영을 망치거나 큰 소리로 울었다, 단역 배우인 LeJean Ethridge는 촬영 도중에 자신의 국내 분쟁으로 죽었는데 존 웨인이 이 사건 심리에서 증언을 위해 당국에 호출되기도 했다. 하비는 대포 발사에서 코일 되감기를 잊어버렸는데 그 장면에서 트래비스가 멕시코의 항복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 대포를 발사할 때 그 대포가 그의 발등에 내려왔다 - 그러나 그는 웨인이 "컷" 이라고 외칠 때까지 고통 속에서도 비명을 지르지 않고 참고 있았다. 그뒤 웨인은 그의 직업정신을 칭찬했다. 촬영은 12월 15일에 종료되었다. 총 56만 피트에 달하는 필름은 566개의 장면을 촬영했다. 그 많은 촬영 범위에도 불구하고, 원래 스케줄보다 3주가 연장되었을 뿐이었다. 현상 결과, 영화는 총 3시간 13분으로 편집되었다.
[영화 음악] 영화의 주제가 악보는 ("여름날의 푸른 잎새") Dimitri Tiomkin (가사는 폴 프란시스 웹스터)이 작곡했고, 여러 번 발표되었다. 브라더스 포의 The Green Leaves of Summer 버전을 포함해서.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앨범은 콜롬비아 레코드와 바레 세 사라반드, 그리고 2010년에 Ryko Records사에서 발표했다. Tiomkin 음악의 새로운 녹음 버전을 포함한 완결 악보는 Tadlow/Prometheus Records사에서 발행했는데 Nic Raine가 지휘하고, 프라하시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했다. 이 새로 나온 음반은 이전에 출시되지 않은 음악도 포함되어 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음악은 <Ballard of the Alamo>로 Marty Robbins와 프랭키 아발론이 cover했다. (사진: Dimitri Tiomkin)
[역사적 부정확성]
[이 영화의 정치성]
이 영화는 그것이 생성된 냉전 환경의 요소를 그리고 있다. 로버츠와 올슨에 따르면 "이 영화의 대본은 산타 안나의 멕시코와 후르시체프의 소련과, 동시에 히틀러의 독일 사이에 존재하는 평행선을 일깨운다. 즉, 세 사람은 모두 모래 위에 그린 선과 같이 죽음에 대한 저항을 요구하고 있다고. 영화에 대한 소수 의견중 대부분은, 자유나 또는 죽음에 대한 웨인의 "연설"을 지적하는데 그런 정서는 웨인 자신의 관점을 반영한 것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각계의 반응]
[70mm 원판의 행방]
◇ 기타 자료
(트래비스 수비대장이 산타 안나에게 항전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그 대포)
(알라모 수비대장 트래비스 대령이 샘 휴스턴 장군에게 보낸 최후의 편지)
1836년 2월 25일, 샘 휴스턴 장군님께 (전략)… 우리의 숫자는 너무도 적고 적은 여전히 우리에게 접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주 가까운 시일 내에 산타 안나가 모든 군대를 이끌고 공격할 것을 우려하는 많은 증거를 가지고 잇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지금 하루 이틀 안에 증원군이 확보되기를 바라면서 마지막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가능한 빨리 저에게 지원을 서둘러 주십시요. 적군의 우세한 숫자 때문에 더이상 우리가 그들을 저지하기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만일 그들의 힘이 우리를 압도하게 되면 우리는 이 나라의 성지에서 하나의 제물로 전락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조국의 번영을 바라면서 조국이 우리가 옳았음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를 도와 주십시요. 오 조국이여! 승리를, 아니면 죽음을 ! - 지휘관 윌리엄 바렛 트래비스 중령 (사진: 알라모박물관 소장, todlane.tripod.com)
The Alamo(1960) 예고편 EL ALAMO - Suite - John Wayne - Dimitri Tiomkin ☞ [영화 음악] 'The Green Leaves of Summer' (여름날의 푸른 잎새) - 'Alamo' 주제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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