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용의 타임머신... 영원한 시간 속에서 자세히보기

교육·이념

[한국사 교과서] 정권 바뀔 때마다 이념적 잣대 제시는 안돼

잠용(潛蓉) 2013. 10. 17. 08:25

"미래세대에게 균형잡힌 역사교육을".. 정부가 잣대 제시 논란
세계일보 | 입력 2013.10.17 02:35

 

교육부 교과서 수정 배경과 파장
교육부가 8종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 대해 '심각하게' 편향된 관점(사관)으로 서술된 내용까지 바로잡겠다고 나선 것은 미래 주역이 될 학생들에게 균형 잡힌 역사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당국의 일정한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는 역사교과서 검정제도의 취지를 무력화하고, 국가가 역사를 보는 관점의 기준을 제시한다는 위험한 발상이란 지적도 적지 않다. 특히 '관점의 편향성 기준' 자체를 정하기가 쉽지 않고, 학문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역사문제를 이념·정치적으로 접근한 데 따른 부작용이 심각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관점 수정방침 배경

"역사교과서의 사실관계 오류 수정이야 당연하고, 좌편향이든 우편향이든 서술 내용이 사회 통념상 정말 문제가 있는 부분은 교육부로서 당연히 (수정권고) 의견을 내야 한다고 본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16일 교육부가 당초 검정을 통과한 모든 한국사 교과서의 팩트 오류를 바로잡기로 한 것에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관점까지 바로잡기로 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대한민국의 헌법정신과 정통성을 고려한 역사를 가르치는 게 국사교육의 기본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예컨대 우파적 시각의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좌파적 시각의 '6·25전쟁 남북공동책임론' 식 역사교과서 기술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제강점기에 한국 경제가 크게 발전했고 광복 후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는 논리이고, 남북공동책임론은 북한의 남침이 명백한 6·25전쟁을 남한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논리이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지난 14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역사교과서가 균형잡힌 시각에서 제대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새누리당 박성호 의원의 의견에 "그렇다"며 공감을 표시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서 장관은 당시 "여러가지 문제 제기가 있으니 최대한 수정·보완을 해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며 "사실 오류나 지나친 편향 기술 등 교과서 8종 교과서에 문제가 있어 모두 수정을 권고하려 한다"고 말했다.

 

 
[사진] 지난 14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이 노트북에 '친일·독재 미화하는 교학사 교과서 검정 취소'라는 문구를 붙힌 채(왼쪽) 국감에 임하고 있다. 여당 의원들은 '좌편향·왜곡 교과서 검정 취소' 문구를 붙여 극명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이제원 기자

 
◆ 역사전쟁 격화 등 부작용 클 듯
문제는 이런 교육부의 방침이 현실화할 경우 엄청난 파장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우선 지나치거나 심각하게 편향됐다는 기준을 모두가 공감할 수 있게 정할 수 있겠느냐다. 당장 교학사 외 7종 교과서의 집필진은 "(정부 수립 등 현대사도)그 동안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에 기초해 서술했고, 검정기준도 아무런 문제 없이 통과한 교과서를 좌편향이라고 하는 것 자체에 동의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게다가 국민 각자의 사관에 따라 이념 편향성 기준은 '고무줄 잣대'가 될 수 있다. 명백한 팩트 오류와 달리 관점 수정 문제는 집필자 동의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정부가 나서 검정제도 근간을 흔든다는 비판과 함께 정치권의 가세와 겹쳐 '역사전쟁'을 더욱 격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그러잖아도 교학사 교과서의 친일·독재 미화 논란 이후 여야가 '교학사 교과서파'(새누리당) 대 '7종 교과서파'(민주당)로 갈려 볼썽사나운 진흙탕싸움을 하면서 국론이 분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역사 교과서 집필기준개발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이익주 서울시립대 교수(국사학)는 "특정 역사인식을 강요하고 관점을 문제 삼으면 학문적이 아닌 정치적 논의로 변질돼 심각한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며 "정부와 정치권은 '정권에 따라 교과서가 바뀌어선 절대 안 된다'는 자세로 역사교과서 문제는 학계 자율 논의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