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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개혁

[진보당 해산청구] '법무부 무리한 법적 논리 드러나'

잠용(潛蓉) 2013. 11. 5. 23:05

정부, 재판중인 RO사건에 근거

"진보당 전체를 종북화" 강변
한겨레 | 입력 2013.11.05 22:00

 


초유의 '정당해산' 청구- 법무부 논리 따져보니...

5일 법무부가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면서 내놓은 주장은 하나로 요약된다. 이석기 의원이 주도했다는 이른바 '아르오'(RO) 활동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는데, 통합진보당은 아르오와 한몸으로 '종북정당'이기 때문에 해산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르오 관련 사건은 현재 재판 중이고 사실관계가 확정되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법무부가 통합진보당에 부정적인 여론을 등에 업고 서둘러 정당해산심판 청구를 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1) 진보적 민주주의는 김일성 사상인가?
정부 "국민 전체 아닌 민중주권주의, 북한 주장과 동일"
법학자 "정당은 특정계파 대변… '민중'에 지나친 의미 부여"

 

■ 통합진보당 전체가 종북정당?

헌법 8조는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면 정당해산심판에 의해 해산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통합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배했는지 여부가 정당해산심판의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법무부는 통합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이 모두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며 "당 전체가 종북정당화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선 통합진보당 '목적'의 위헌성에 대해 법무부는 이들이 내세운 '진보적 민주주의'를 문제삼았다. 민중주권주의에 대해서도 "국민 모두가 주권을 갖는다는 국민주권주의에 반한다"며 위헌적이라고 봤다. 법무부는 통합진보당 강령과 공약 중 '대외적 지배종속관계 극복, 종속적 한-미 동맹체제 해체' 등을 "북한의 주장과 동일하다"며 위헌적이라고 해석하고, 비례대표 부정경선, 국회 본회의장 최루탄 투척 등을 근거로 들며 "의회제와 정당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위헌적 행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당은 특정 계파나 세력을 대변한다. 법무부가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이라는 말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한 것 같다. 북한 주장과 같다고 친북으로 규정하는 것도 일차원적이다. 창당한 지 10년이 지난 정당이고 선거도 여러번 치렀다. 그동안 강령이 문제된 적이 없다가 갑자기 이걸 문제삼으니 너무 뜬금없다"고 비판했다.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당헌상 목적 등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어긋난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구체적 위험'에 이를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당내 부정경선의 경우 헌법 위반 문제가 아니라 법률 위반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부장판사도 "한-미 동맹을 비난한다고 해서 민주적 기본질서를 어기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2) 사실관계 입증 안된 RO와 진보당이 '한몸'인가?
정부 "내란음모·전국봉기 강조… 발각 뒤에도 집회 계속"
법학자 "주사파 다수 있더라도 진보당 전체 동일시 안돼"

 

■ RO= 통합진보당? 동일시는 문제

법무부가 통합진보당 '활동'의 위헌성 근거로 제시한 핵심 사례는 아르오 사건이다. 법무부는 "아르오는 지난 3월 내란을 모의하면서, 총공격 명령시 봉기할 것을 강조했다. 통합진보당은 아르오의 내란음모 행위가 발각되자 조직적인 공안탄압 중단 운동을 해왔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르오 사건은 현재 수원지방법원에서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아르오라는 조직의 성격과 어떤 활동을 했는지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국가정보원이 '(천주교) 절두산 성지'라는 표현을 '결전 성지' 등으로 옮기는 등 녹취록 일부를 왜곡·조작했다는 의혹도 있다.

 

RO를 둘러싼 검찰 주장이 인정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아르오=진보당'이 입증돼야 하기 때문이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르오가 '주사파 혁명조직'이라고 판명난다고 하더라도 아르오를 통합진보당 전체와 동일시할 수 없다. 같은 맥락에서 통합진보당 내에 '주사파'가 다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을 통합진보당 전체와 동일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2009년 법제처가 발간한 '헌법주석서'는 "정당해산 사유는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야당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그만큼 정당해산심판 청구와 결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종수 교수는 "독일이 정당해산 결정을 했던 건 서독이 정치적으로 불안정했던 1950년대다. 이후 독일은 국민들이 그런 정당을 외면하도록 할 뿐 강제해산은 없었다. 지난해 네오나치당이라는 극우정당이 외국인 여러명을 살해했는데,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라는 여론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독일 정부는 하지 않고 있다. 대신 이들의 활동상을 국민들에게 소상히 알려준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는 대로 불편부당한 필요한 조처를 취할 것이고, 재발 방지책도 마련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이라는 '국기 문란' 사건은 사법부 판단을 기다리고, 오히려 민주사회에서 엄격하고 신중해야 할 정당해산심판 청구는 서둘러 강행한 꼴이다. 이에 대해 정점식 법무부 위헌정당·단체 관련 대책 티에프(TF) 팀장은 "우리는 이렇게 판단하니, 우리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 헌재에서 심의해주시기 바란다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헌재 관계자는 "헌재가 따로 사실관계를 구체적으로 심리해야 할 듯하다. 증거조사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여현호 선임기자wonchul@hani.co.kr

 

“정부 해석대로라면 모든 야당도 해산될 운명”
[한겨레] 2013.11.05 19:51 수정 : 2013.11.05 21:47 

 

 
[샤진]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가운데)와 김선동 의원(오른쪽) 등이 5일 오전 서울 대방동 당사에서 회의를 마친 뒤 승강기를 타고 있다. /김경호 기자

 

[초유의 ‘정당해산’ 청구] 진보정치권 반응
“통합진보당 약점 과대포장해 야권 전체를 친 것”
‘이석기 사건’처럼 정치적 효과를 노린 것’ 분석도

 

정부가 5일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의 정당해산심판안을 청구하고 정당활동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자, 통합진보당과 함께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정당 활동을 했던 정의당과 노동당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권 전체를 겨냥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통합진보당이 지난 대선까지 이어져온 야권연대의 한 축인 동시에 ‘종북’ 논란의 당사자인 탓에 야권의 아킬레스건이 된 점을 정부가 악용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통합진보당을 치는 것 같지만, 실은 통합진보당의 약점을 과대포장해서 야권 전체를 친 것”(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이며, “‘이석기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정부는 야권 전체의 가장 약한 고리를 쳤다”(장석준 노동당 부대표)는 것이다.

 

 더구나 ‘한 뿌리’였던 정의당과 노동당은 통합진보당의 ‘종북’ 논란을 가장 먼저 제기하면서 갈라져나온 탓에 진보당과 이들 진보정당 사이엔 쉽게 메울 수 없는 틈이 존재한다. ‘종북’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보수세력이 야권 전체를 싸잡아 ‘종북세력’으로 낙인찍고, 이 때문에 적지 않은 정치적 타격을 받아온 탓에 민주당은 물론이고 한 때 한솥밥을 먹던 정의당과 노동당도 통합진보당을 두둔하기 어려운 처지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정당해산심판 청구안을 꺼내든 정부의 의도가 통합진보당 해산을 넘어 야권 전체를 무력화하려는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은 “이런 식이라면 다른 정당의 정치적 활동까지도 이데올로기적 잣대, 자신들이 주장하는 ‘법과 원칙’의 잣대로 재단하려는 시도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러므로 더더욱 용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노회찬 전 의원은 “이번 사건의 핵심은 통합진보당을 소재로 야권 특히 민주당을 공격한 것으로 봐야 한다. 민주당이 거리를 둔다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은지 노동당 대변인은 “황교안 법무부장관의 해석대로라면, 이 땅의 모든 진보정당은 물론 어떤 정치 세력도 박근혜 정권의 선택에 의해 강제해산 당할 수 있다. 헌법의 이름을 더럽히며 정당 해산에 나서려면 노동당도 그리 하라”고 일침을 놓았다.

 

이들은 또,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박근혜 정부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분위기 ‘쇄신’을 시도한 것이라는 인식도 드러냈다. 김종철 전 노동당 부대표는 “(설령 헌법재판소가 정당해산심판안을 인용하더라도) 해산 절차엔 6개월이 걸리고, 정당활동정지 가처분은 법에도 없다. 정부가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일을 벌인 건, 지방선거를 앞두고 언제든 꺼내쓸 수 있는 카드인 ‘종북’ 논란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석준 노동당 부대표는 “정통성 위기에 처한 박근혜 정권이 정치적인 반격에 나선 것이다. 구체적인 증거가 부족한데도 ‘이석기 사건’을 터트린 것처럼, 지금도 반드시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키려는 목적보다는 정치적인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

 

'한줌도 안되는' 진보당 해산시키려고
두 동안 머리 싸매고 만들어낸 논리가 고작…

[한겨레] 2013.11.05 19:57 수정 : 2013.11.06 13:45
 
[초유의 ‘정당 해산’ 청구] 법무부의 황당·억지 주장

종편·문화일보 여론조사 내놓고 “아, 여론이 이렇구나”
교수 달랑 5명 의견에 “대부분의 헌법학자들이 동의해”

 

법무부가 팀을 꾸려 두달 동안 머리를 싸매고 내놓은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청구서 내용을 보면 통합진보당에 ‘종북 딱지’를 붙이려고 갖다 붙인 억지들이 역력하다. 일부 보수언론의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국민들이 통합진보당 해산에 찬성하는 듯 비치게 하고, 통상적인 정부의 보도자료에선 보기 힘든 북한 인공기를 4차례 시각물로 넣어 북한과의 연계성을 도드라져 보이게 하기도 했다.

 

법무부는 정당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조성됐다며 여론조사 결과와 헌법학 권위자 등의 의견을 근거로 제시했다. 여론조사의 공정성을 담보하려면 외부기관에 별도로 용역을 맡기는 게 상식인데, 그대신 보수언론인 <티브이(TV)조선>과 <제이티비시>(JTBC), <문화일보> 3곳의 조사결과를 인용했다. 이들 여론조사에선 정당해산심판 청구에 찬성하는 의견이 모두 60%대를 웃돌았다.

 

정점식 법무부 위헌정당·단체 관련 대책 티에프(TF) 팀장은 “세 언론사에서 여론조사한 결과를 보고 ‘아, 여론이 이렇구나’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학자 5명의 의견을 수렴해 놓고 마치 대부분의 헌법학자가 정당해산심판 청구에 동의한 것처럼 꾸미기도 했다.

 

법무부는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에서 핵심세력인 ‘아르오’(RO) 조직원은 극좌세력, 그 외 당직자는 아르오를 비호·묵인한 세력으로 진보당을 나눴다. 그런데 법무부는 아르오 구성원의 정확한 인원을 파악하지 못했고, 일반 당직자들의 비호·묵인 정황에 대해서도 마땅한 근거를 대지 못했다. 정 팀장은 “구체적으로 (아르오 규모를) 확인해보진 않았다.

 

통합진보당이 내란음모 사건의 경기도당 행사를 자기들 것이라고 하고 검찰이 기소한 사건을 비난하는 집회를 시·도당 차원에서 하는 것은 아르오의 행위를 옹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한 헌재 관계자는 “법무부 설명을 적용하면 통합진보당원들은 뭘 해도 아르오다. 그런데 명확히 드러난 아르오 조직원은 전체 당원 중 극히 일부다. 정당해산심판의 대상은 ‘정당’이지 아르오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진보당의 주장들을 북한 헌법 등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는 위헌적 활동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국가 기간산업 및 사회 서비스의 민영화를 중단하고 국·공유화 등 사회적 개입을 강화해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강령은 ‘생산수단은 국가와 사회협동단체가 소유한다’는 북한 헌법 20조와 비슷하다며 진보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형태의 경제질서 도입을 지향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 헌법 119조도 시장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가 규제 및 조정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국가보안법 폐지를 담은 진보당 강령 5조는 체제를 부정한 대남혁명의 일환으로 분석했는데,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은 통합진보당뿐 아니라 상당수 시민단체나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나오고 있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