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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대참사

[세월호 증인신문] 단원고 생존승객, '퇴선명령 없었고 대기 방송만'

잠용(潛蓉) 2014. 7. 28. 20:07

세월호 부실구조 목포해경 123정 정장 긴급체포 (종합)
연합뉴스 | 입력 2014.07.29 11:50


 공용서류 손상 등 혐의…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적용은 검토

(광주=연합뉴스) 조근영 손상원 기자 = 세월호 침몰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고도 소극적인 구조활동으로 비난을 산 목포해경 경비정 책임자가 체포됐다. 검찰이 관제소홀로 세월호의 이상징후를 알아차리지 못한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 소속 해경 전원을 기소한 데 이어 구조활동 부실로 수사의 중심을 옮기는 모양새다.

 


↑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침몰 당시 구조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광주지검 해경 수사 전담팀(팀장 윤대진 형사2부장)은 29일 오전 3시께 목포해경 123정 정장 김모(53) 경위를 긴급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김 경위에게는 공용서류 손상, 허위 공문서 작성·행사 혐의가 적용됐다. 김 경위는 출동 당시 근무일지를 일부 찢어버린 뒤 새로운 내용을 적어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김 경위를 상대로 초기 구조과정의 과실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일지를 훼손했는지, 가담·공모한 해경 직원이 또 있는지 조사해 30일중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검찰은 일단 명확히 드러난 혐의를 적용해 김 경위를 체포했으며 추가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 경우 사법처리 규모는 일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123정에는 모두 13명이 탔다. 123정은 침몰 당시 선체 밖으로 탈출한 승객 구조에만 급급했으며 지휘부로부터 선내 진입 지시를 받고도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한 것으로 드러나 비난을 샀다.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사실상 해체된 뒤 광주지검은 진도 VTS의 관제소홀, 구난업체 언딘과의 유착 의혹, 123정의 허술한 초동 대처 등 세가지 핵심 사실을 놓고 해경을 수사해왔다. 검찰은 센터장과 팀장 4명을 구속하는 등 진도 VTS 소속 해경 13명을 전원 기소했으며 나머지 수사는 아직 진행중이다. [chogy@yna.co.kr, sangwon700@yna.co.kr]

 

세월호 생존 승객 증언...

"퇴선명령 없고 대기 방송만"
연합뉴스 | 입력 2014.07.24 17:44 | 수정 2014.07.24 18:13 

 

생존 승객 등 13명 증인 신문… 다음주 단원고 학생 증언

(광주=연합뉴스) 장덕종 기자 = 세월호 생존 승객에 대한 증인 신문에서 승객들은 대기하라는 안내 방송만 있었고 퇴선 명령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광주지법 형사 11부(임정엽 부장판사)는 지난 22일부터 24일까지 201호 법정에서 일반인 승객 10명, 서비스직 승무원 2명, 아르바이트생 1명에 대한 증인 신문을 진행했다.

 


↑ 지난 4월 16일 침몰하는 세월호의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당초 19명을 증인으로 채택할 예정이었지만 일부 증인들이 증언을 거부하거나 개인적인 이유 등으로 불참했다. 세월호 침몰 당시 조타실에서 승무원들과 머무르다가 함께 탈출한 필리핀 가수 부부에 대해서는 다음주 이뤄지는 단원고 학생의 증인 신문과 함께 진행될 예정이다. 생존 승객들은 대기하라는 안내 방송만 계속되면서 신속하게 대피하지 못해 대형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고 입을 모았다. 승객들이 구조를 기다리며 침몰하는 선체에서 대기하는데도 이준석 선장과 승무원들은 퇴선 지시도 내리지 않고 탈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생존한 서비스직 승무원도 "선장으로부터 퇴선 명령을 받지 않아 승객들이 다치는 것을 막기 위해 대기하라는 방송만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신속하게 퇴선 명령이 내려지지 않은 것에 안타까운 심경을 전했다. 승객들을 버리고 탈출한 승무원들과는 달리 침몰하는 배를 지키며 끝까지 구조에 힘쓴 의인들에 대한 증언도 잇따랐다.

승객들은 고 양대홍 사무장과 박지영 씨가 구조에 힘쓴 모습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당시 배식 업무를 담당한 아르바이트생은 양 사무장이 자신의 탈출을 돕고 빠져나오지 못한 사실을 전해 법정을 숙연케 했다.

 

특히 침몰하는 순간까지 승객들 구조에 힘쓴 화물차 기사 김동수(49)씨가 더 많은 승객들을 구하지 못하고 혼자 살아남아 죄송하다며 사죄의 눈물을 흘려 보는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참사 이후 생존 승객들은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고통받으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어두운 곳에 갈 수 없다", "학생들을 보면 괴롭다"고 증언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재판부는 기말고사가 끝나는 28∼29일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단원고 학생들의 진술을 듣기로 했다. 학생들은 법정이 아닌 별도의 화상증언실에서 진술하며 재판도 비공개로 진행된다. [cbebop@yna.co.kr]


[전문] 세월호 생존 학생들 법정 진술
한겨레 | 입력 2014.07.28 16:40


[한겨레]세월호 생존 단원고 학생들 법정서 진술

 

▲ 김○○ 학생(여)

△ 검사, 증인 문답

- SP1에 탔다. 4층 선미 쪽 왼편(배치도 보며). 16일 아침 잠에서 깨어 세월호 기울어질 때까지 밥먹고 방에서 잤다. 밥 언제 먹었는지 정확히 기억 안나지만 3층 식당에서 먹고 돌아와서 자고 있었다. 배 기울 때 몇시 쯤인지 기억 안난다. 당시 방 안에 상황은 사람, 물건 등이 한쪽으로 다 쏠린 상황. 창문 쪽으로. 창문 밖으로 컨테이너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것 봤다. 쿵하는 소리는 못들었다. 사고 이후 안내방송 들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 언제 처음 나왔는지 기억 안나지만 반복해서 나왔다. 이후에는 주변에 잡을 것 있으면 잡고 구명조끼 착용하고 특히 단원고 학생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 나왔다. 구명조끼 입으라는 방송 사고 이후 조금 있다가 나왔다. 바로 나오지 않았다. 지금 배가 침몰 중이다 또는 선원이 어떻게 조치하고 있다 등 당시 상황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배에서 나올 때까지 대피하라거나 어디로 탈출하라는 방송 못들었다. 해경이 나중에 왔을 때 승객 여러분 배에서 빨리 탈출하세요 등 방송이나 얘기 못들었다. 반장 친구가 입으라고 해서 구명조끼 입었다. 방송 나오기 전에 반장 말듣고 입었다. 사고 이후 방송 듣고 기다리다가 방에 물이 많이 차서 나왔다.

 

- 사진 제시. 기울어져서 창문이 바다 속에 잠긴 사진. 촬영 시간 9시 58분. 증인이 찍은 것.

- 저 사진 찍을 때까지 대기했다. SP1과 맞은편 SP2 사이 복도로 나와서 선미 쪽 갑판으로 탈출. 선실에서 나올 때 기울어서 오르막이었는데 물이 많이 차서 구명조끼 입고 친구들이 밀어 올려줘서. 복도를 걸어갈 때는 원래 벽이었던 곳이 바닥처럼 되서 걸어서 선미 갑판까지 별로 힘들이지 않고 나왔다. 이 과정에서 선원, 해경 없었고 도와준 적 없다. 나와보니 해경인지 누군가가 밖에 있었다. 바다에 빠지면 건져올려주는 사람. 학교 친구들끼리 서로 도와서 출입구까지 나왔다. 나올 때 발가락 긁혀서 조금 다쳤다. 세월호 계속 생각나지는 않는다. 전혀 생각 안나는 것은 아니고.. 선원 엄하게 처벌해야한다고 생각한다.

 

- 사진 제시. 4.15일 찍힌 사진. 증인이 있던 선실과 같은 구조. 사진 오른쪽 캐비넷. 위에 서랍, 밑에 침구 놓도록 비어있는 캐비넷.

- 캐비넷 때문에 탈출할 때 더 힘들었다. 학생들이 바다에 잠길수록 침구 놓인 공간에 들어가 있었다. 나중에 캐비넷이 쏟아지면서 탈출할 때 힘들었다. 나올 때 천장까지 물이 차있었다. 구명조끼 입어서 떠올라 맨 위 조금 남은 공간에서 숨쉬었다. 몇초 동안 잠겨있기도. 기울어서 숨 쉴수 있는 공간은 문쪽.

 

△ 변호인, 증인 문답

- 증인이 카톡한 화면 제시.

- 9시18분부터 21분. 카톡할 때는 그렇게 심각하던 상황 아니었다. 안내방송이 카톡 전에 처음 나왔는지 후인지 기억 안난다. SP1 방에는 당시 몇명 있었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처음에 기울었을 때 대략 몇도 기울었는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기우는지 모를 정도로 조금씩 기울다가 조금씩 빨리 기울었다. 언제 구조선 도착한다 등 방송 있었는지 기억 안난다.

 

▲ 설○○ 학생(여·화상증언)

△ 검사, 증인 문답

- 4층 선미 쪽 SP1에 탔다. 배가 기울어지기 전까지 일어나서 3층 식당서 밥먹고 방에 돌아가서 쉬고 있었다. 시간은 기억 안난다. 친구들과 음료수 마시며 각자 쉬고 있었다. 배가 기울 때 선실 안 상황은 친구들과 앉아있었는데 왼쪽 창가 쪽으로 친구들이랑 캐리어랑 다 쏠렸다. 창 밖으로 컨테이너 큰거 한개 떠다니는 것 봤다.

쿵 소리는 못들었다. 안내방송 나왔다. 구명조끼 입고 가만히 있으라는. (방청석 가족 한숨). 방송 언제 나왔는지 기억 안난다. 다른 내용 방송은 못들었다. 배에서 나올 때까지 대피하라, 어디로 탈출하라는 방송 안나왔다. 해경 방송도 못들었다. 구명조끼 입었다. 반장도 얘기하고 방송 듣고 반 친구들 입길래 입었다. 탈출 전까지 선실서 대기. 우리 방이 좀 구석진 곳에 있었는데 앞쪽 방 애들부터 구하겠다는 다급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서 기다리고 있었다. 정확히 들리진 않았지만 큰 남자 목소리. 기다리고 있는데 창가에 있던 애들이 물이 점점 차고 들어온다고 하고 창이 바닥으로 내려가고 문이 위쪽으로 올라가서 구명조끼 입었으니까 반장이 물 차면 올라가자고 해서 기다렸다가 나갔다. 완전히 물이 차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밖으로 나간 애들이 끌어당겨줬다. 먼저 나간 애들은 방 안에 있던 캐비넷 밝고 나갔다. 나온 뒤에 보니 방문에서 끌어줘야하는데 앞에 끌어주는 애들이 없길래 친구 1명 잡고 끌어줬다. 끌어주다가 다시 빠질 위험도 있었는데 빠져도 그때는 물이 많이 찼기 때문에 다시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서 도와줬다. 이런 과정에서 선원이나 해경이 도와줬는지 기억 나지 않는다. 선실에서 나와 복도를 걸어서 마지막 비상구 앞에서 물에 한번 잠겼다가 나왔는데 눈을 감고 있어서 그때 누가 날 끌어올려줬는지 모르겠다. 선실에서 올라올 때는 친구들 도움받아 올라왔고 나온 뒤에 친구 1명 도와주고 선미 쪽 갑판으로 나갈 때는 걸어서 나갔다. 멍만 들고 다친데 없다. (그때 생각하면 힘든가 질문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 승무원 엄하게 처벌해야.

 

△ 변호인, 증인 문답

- SP1에 원래 몇명 잤는지 모르겠다. 캐비넷 밑에 침구 놓인 공간 들어가면 옆이 보이지 않아 배 기울어질 때에도 몇명 있었는지 기억 안난다. 눈에 보인 건 5명 정도. 물이 차기 전에는 너무 기울어서 나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캐비넷을 밟고 올라가도 캐비넷과 방문 사이 거리 있어서. 밧줄이나 사다리 없으면 나가기 힘든 상황.

 

▲ 오○○ 학생(여)

△ 검사, 증인 문답

반 친구와 함께 손잡고 입장. 교복. 긴장된 얼굴. 조용한 목소리.

- SP1. 아침 먹고 졸려서 방에 돌아와 자고 있었다. 아침 먹을 때가 오전 8시 정도. 기울었을 때 시간은 모르겠다. 기울어지자마자 캐비넷에 있던 짐들 창 쪽으로 쏠려. 창밖으로 컨테이너 2개 떠다니는 것과 철근 봤다. 자고 있어서 소리는 기억 안나. 여자 애기가 없어졌다고 데리고 있는 쪽 소리 질러달라. 헬기 오고 있으니 기다려달라. 가만히 있어달라. 특히 제발 단원고 학생 등 가만히 좀 있어달라는 방송 나왔다. 그래서 친구가 울면서 가만히 있는데 왜 자꾸 그러냐고 해서 기억. 그러고나서 방송이 한번 끊긴 기억. 잠깐 정전. 다시 불켜졌다. 그리고 구명조끼 입고 잡을 것 있으면 잡고 있으라고 한참 후에 방송 나왔다. 세월호 침몰 중입니다, 어떤 조치 취하고 있다 등 상황에 대한 설명 방송 없었다. 탈출 안내 방송도 없었다. 친구한테 구명조끼 입으라고 했다. 창문 밖으로 보니 상황이 너무 위험해서 입어야겠다고 판단. 애들 다 캐비넷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물이 들어오면서 캐비넷 부서지기 시작. 창문 바로 앞칸에 나까지 세명이 들어가 있었는데 캐비넷이 다행히 거꾸로 서면서 에어포켓이 생겨 거기서 숨을 쉬고 있었다. 한쪽으로 친구 잡고 옆에 부서진 캐비넷 공간으로 나왔다. 그때 90도로 기울어져 방문이 위에 있었다. 먼저 나온 친구가 끌어주고 밑에 친구가 엉덩이 밀어줘서. 캐비넷에서 위에 있던 문까지 거리는 손을 뻗어야 간신히 닿을 정도 거리. 밑에 있던 친구도 나와서 복도에 나온 애들끼리 서로 살겠다고 그러지 않고 비상구를 향해 줄을 서고 있었다. 차례차례 나갔는데 내가 나갈 때 비상구에 파도가 쳐서 나오던 친구들 다시 안쪽으로 밀려. 내가 마지막으로 나왔다. 이 과정에 승무원, 해경 전혀 도와주지 않아. 바다로 떨어지면 건져줬는데 들어오지는 않았다. 검정보트. 비상구 바로 앞, 떨어지면 건져줄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나무 캐비넷이 부서지면서 파편에 긁혔다. 엄벌에 처해달라. 안전교육 전혀 없었다. 안전교육 방송 나오는가 싶더니 휴식시간이어서 바로 껐다.

 

△ 변호인, 증인 문답

- 처음에 40도 정도 기울었다. 다른 사람 목소리 전혀 듣지 못했다. 해경 도착할 거라는 방송은 두세번 들었다. 처음에 10분 뒤, 그다음 5분 뒤에 도착한다는 방송 나왔다. 남자 목소리인데 여자 거친 목소리 같기도. 아무튼 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가라는 방송 있었다면 물이 차지 않은 상황에서도 캐비넷 등 밟고 나갔을 것. 선실 복도 나왔을 때 한반 인원 정도 복도에 있었다. 맞은편 방 SP2 친구들은 없었다. 보트에 해경은 2명 정도. 한 보트에 2명. 보트 2대 정도. 해경이 비상구 열어준게 아니고 지나가다 비상구로 애들이 많이 나오는거 보고 그쪽에 대기. 내가 마지막으로 나오면서 안쪽에 친구들 많이 있다고 했는데도 가만히 있었다. 복도에 서있던 친구들 중 절반은 나오고 절반은 못나와. 해경은 손닿으면 닿을 거리.

 

▲박○○ 학생(여)

△ 검사, 증인 문답

선생님 손잡고. 교복.

- SP1. 아침먹고 방에서 누워있었다. 8시 반쯤. 갑자기 기울어. 한쪽으로 쏠려. 컨테이너 떠다니는건 못봐. 쿵 소리 못들어. 안내방송 움직이지 말고 가만 있으라는 방송만 나와다. 조금 지나서 구명조끼 입고 잡을 것 잡고 가만히 기다리라고. 구명조끼 갖고 있다가 방송 듣고 착용. 친구들도 다 입고 혹시 몰라서 입었다. 물이 조금씩 들어오다가 갑자기 확 들어왔다. 캐비넷이 무너지면서 턱까지 찼다. 다 기울어서 출입문이 위로 가서 물이 들어온 뒤 떠서 나갔다. 밑에서 애들이 받쳐 올려주고. 밑에 애들도 같이 물에 빠져있던 상황. 내가 방에서 제일 먼저 나왔다. 먼저 나와서 애들 당겨줬다. 이 과정에 해경, 승무원 도움 없었다. 나와서 해경은 못봤고 어선만 봤다. 바다에 빠진 뒤 어선에 타서 다음 어선으로 옮겨탔고 이후에 구조대 배에 탔다. 복도에 나와보니 이미 애들이 한줄로 서있었다. 처음에는 배 안쪽으로 가려고 했다가 내 쪽에 비상구가 있고 문이 열려 있었고 애들이 나가고 있어서 그쪽으로 갔다. 승무원이 올거라고 믿고 기다리고 있었다. 탈출할 때 다리 조금 멍들었다. 가끔 친구, 선생님 생각나고 가끔 꿈꾼다. 승무원 엄벌보다 왜 친구들이 그렇게 됐는지 근본적 이유 밝혀달라.

 

△ 변호인, 증인 문답

- 처음에 느끼지 못할 정도로 기울다가 시동이 꺼지고 나서 그때부터 급격히 기울어. 헬기랑 구명보트 오고 있다는 방송도 나왔다. 시간을 언급하며 몇분 뒤에 도착한다는 내용. 처음에 선실 출입문 바로 앞까지 올라왔는데 움직이지 말라고 해서 다시 거기 있었다. 내가 한번 움직이면 더 기울까봐 무섭기도 하고. 캐비넷을 사다리로 이용.

 

▲ 이○○ 학생(여)

△ 검사, 증인 문답

친구와 손잡고. 교복.

- SP1. 머리감고 밥먹고 방에서 얘기하고 있었다. 시간은 기억 안나. 기울어지면서 부딪치고 그랬다. 반장이 괜찮다고 그러고 선생님이 카톡으로 괜찮으니까 침착하라고. 안내방송도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가만있었다. 더 기울어지면서 쩌저적 소리 나고 콸콸콸 물 들어오는 소리. 그후 탕 소리와 함께 캐비넷 부서져. 안내방송 나왔다. 시간 좀 지난 뒤에 움직이면 위험하니까 가만히 있으라는. 주변 잡을 것 잡고 구명조끼 입으라고. 방송 나오기 전에 입었다. 승무원, 해경 도움 없었다. 해경 본 적 없다. 나왔는데 바로 밑에 물인데 어떤 아저씨가 밑에서 뛰어내리라고 했는데 해경인지 모르겠다. 선원들 행동에 대한 마땅한 대가 받아야.

 

△ 변호인, 증인 문답

- 처음부터 빠져나오라는 방송 나왔다면 부서진 캐비넷 밝고서라도 나왔을 것. 물 온도는 매우 찼다.

 

▲ 전○○ 학생(여)

△ 검사, 증인 문답

선생님과 손잡고. 교복. 토끼인형 안고.

- 사고당시 B22. 4층. 처음 배정받은 선실은 SP1. 사고 당시에는 중앙 부분 좌현쪽 B22. 전날 SP1에서 자고 일어나 식당에서 밥먹고 SP1 돌아가 있다가 잠깐 친구방으로 놀러갔고 그때 사고가 났다. 방안에 있는데 기울었다. 쿵 소리 등 못들었다. 구명조끼 입으라는 방송 못들었지만 복도에 있던 애들이 전달해줘서 입었다. 반대쪽인 우현쪽으로 탈출했다. 방에서 나와 우현으로 향하는 복도에서 어떤 아저씨들이 커튼으로 만 로프를 던져줘서 그걸 잡고 우현 선실까지 올라갔다. 우현 선실에서는 아저씨들이 던져준 고무 호스를 잡고 출입문으로 빠져나가 마지막으로 헬기 타고 탈출했다. B22에서 나갈 때는 친구가 위에서 잡아줬다. 이 과정에서 승무원이나 해경으로부터 도움받지 못했다. 마지막에 출입문 앞에 있는 계단 올라갈 때 해경이 도와줬다. 대피하라는 방송 못들었다. 밖에서 헬기 온 소리 들었고 어떤 남자애가 다 나오라는 소리 듣고 나갔다. (사고 당시 생각나서 정신적으로 힘든가 질문에 고개 끄덕). 승무원 엄하게 처벌해달라.

 

△ 변호인, 증인 문답

- B22는 이층침대 있는 침실. 사고 당시 나까지 7명 있었다.

[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4월 16일 9시 58분, 창문 밖은 바다 속이었다"
[오마이뉴스] 2014.07.29 01:26 l 최종 업데이트 2014.07.29 02:09l
박소희(sost) 기자

 

 

▲  4월 16일 오전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과 여행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하고 있다. ⓒ 해양경찰청 제공

 

[단원고 생존 학생들, 입을 열다⑤] A학생의 법정 증언  

참사 104일 만에, 단원고 생존 학생 가운데 첫 번째로 증인석에 앉은 A학생(여, 기자 주 - 발언순서에 따라 알파벳순으로 명명)은 다소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는 약 30분 동안 진술을 하는 내내 옆자리에 앉은 친구의 손을 놓지 않았다. 맞잡은 두 사람의 손목에는 노란 팔찌가 걸려 있었다. 4월 16일 그는 아침식사를 마친 뒤 숙소 SP-1번 방에서 쉬고 있었다. 갑자기 확 기울었던 배는 점점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28일 검찰이 법정에 제시한, A학생이 사고 당일 오전 9시 58분 찍은 선실 창문 밖 풍경은 그저 퍼렇기만 했다. 이미 바다 속에 가라앉았기 때문이었다. A학생은 방에 물이 차올랐을 때 캐비닛 안에 잠깐 갇혔다가 빠져나왔다고 했다.

당시 겁을 먹은 학생들은 캐비닛 안으로 들어가 웅크리고 있었다. 그런데 배가 중심을 잃고 한쪽으로 넘어지면서 캐비닛이 쏟아지는 바람에 학생들은 그만 그 속에 갇혀 버렸다. A학생은 캐비닛을 치운 다음 잠깐 물에 잠겼지만, 구명조끼 덕에 곧바로 몸이 떠올라 복도로 탈출할 수 있었다. 다음은 A학생의 증언 전문이다. 앞부분은 검찰 측, 뒷부분은 변호인 측 신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단원고 학생들은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이 나왔다


[검찰 신문]
- 세월호에서 배정받은 선실이 어디였는지 기억하나?
"SP-1번 방이다."
- 4월 16일 아침에 일어나서 사고 직전까지 뭘 하고 있었나?
"밥 먹고 방에 있었다."
- 배가 기울었을 때 주변 상황은?
"그냥 한쪽으로 다 쏠렸다. 창문 쪽(좌현)으로."
- 창밖으로 컨테이너가 떠있는 건 봤나?
"그냥 떠있더라."
- 쿵하는 소리도 들었는가?
"아니요."
- 사고 이후에 배안에서 뭐라고 안내방송이 나왔나?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처음 나왔던 시각은 기억나지 않는데, 계속 방송이 나왔다. 다른 내용도 있었다. 주변에 잡을 것 있으면 잡고, 구명조끼 착용할 수 있는 사람은 착용하라고. 특히 단원고 학생들은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 구명조끼를 입으라는 방송은 언제 나왔나? 사고 나자마자 나오진 않고 시간이 흐른 뒤에 있었나?
"… (고개를 끄덕임)."
- 안내방송에서 현재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나. 배에서 대피하라거나 어디로 해서 탈출하라고 하는 말은 없었는지?
"없었다."
- 나중에 해경이 왔는데, 해경은 빨리 탈출하라고 선내에 방송하거나 그냥 말한 적 없었나?
"아니요."
- 당시 구명조끼는 입고 있었나?
"네. 반장 친구가 입으라고 줬다. 방송이 나오기 전에 입으라고 해서 입었다."
- 사고 이후에는 어떻게 탈출했나?
"어… 기다리다가 방에 물이 막 차서 어쩔 수 없이 나오게 됐다."

◇ 9시 58분, 창밖은 이미 바다... "방에 물이 차서 나왔다"
- (사진을 제시하며) 이 사진 기억나는가?
"네. 배가 기울어서 창문이 바다 속에 잠긴… 내가 그날 9시 58분쯤에 촬영한 것 맞다."
- 창문을 보면 이미 물속에 들어가서 그 바깥이 바다다. 그래서 (창밖 풍경이) 녹색인 거죠? 그때까지 왜 기다리고 있었나?
"(방송에서) 기다리라고 해서…."

- 방에서 나와서 좌현 선미 쪽으로 탈출했다고 했는데. 어떻게 빠져나왔나?
"물이 방안까지 다 찼는데 친구들이 밑에서 받쳐줘서 (선실 밖으로) 올라왔다."
- 물이 차올라서 구명조끼를 입고 있으니까 몸이 떴고, 친구들이 올려줘서 올라온 건가. 친구들은 지탱할 게 있었나? 어떻게 올려줬나?
"아뇨. 그냥 팔 힘으로 이렇게 조금씩…."
- 그럼 출입구로 나와서 복도를 걸어갈 때는 힘들지 않았나?
"복도가 아예, 바닥이 벽이 되고 벽이 바닥이 되어서 힘들진 않았다."
- 탈출할 때 선원들이나 해경이 도와준 적은 있는가?
"(배에서) 나가는 중에요? 그때엔 없었고. 딱 나갔을 때, 밖에 (누군가) 있었다. 해경인지 누군지는 모르는데 바다에 빠진 애들 건져 올려주는…."

- 그럼 선실에서 선미 쪽 갑판으로 나갈 때까지는 아무도 없었고, (해경이나 선원이) 도와준 적 없고, 선원들처럼 구조를 위한 전문 교육 받지 않은 학교 친구들끼리 서로서로 도와주면서 나왔다는 건가?
"네 (계속 증인석 밑에서 옆자리에 앉은 친구 손을 잡은 채 대답함)."
- 나올 때 다치진 않았나?
"발가락 약간 까졌는데, 언제 어떻게 다쳤는지는 모르겠다."

◇ 무서워서 캐비닛 안에 웅크렸는데... 숨쉬기 힘들었다
- 다른 피해자들은 사고 당시 상황이 생각나면 힘들다던데, 증인은 어떤가?
"다 생각나진 않는다…."
- 다른 피해자들은 선원들을 엄벌에 처해달라고도 했다. 같은 생각인가?
"네."
- (선실 사진을 제시하며) 탈출할 때 캐비닛을 이용했나?
"이용한 게 아니라 저것 때문에 (밖으로) 나오기가 더 힘들었다. 원래 저 밑에 공간으로, 배가 좀 많이 기울었을 때 창문 쪽이 무서워서 그쪽으로 안 가려고 들어가 있었다. 근데 물이 조금씩 들어오다가 나중에 (밀려오면서) 캐비닛이랑 물건들이 다 쏟아지고, 캐비닛끼리 부딪치면서 물이 내 머리까지 올라갔다(손으로 머리 위에 물이 찼다는 시늉을 함). 캐비닛이 떠올라서 놀라서…."
- 그럼 친구들이 치워줬나?
"아니요. 그냥 발버둥 치니까…."
- 물이 방에 어느 정도까지 찼을 때 빠져나온 건가?
"천장까지 찼을 때였다."
- 선실이 물로 다 가득 차면 호흡을 할 수 없을 텐데...
"구명조끼를 입었으니까 (몸이) 떠올랐다. 처음에 캐비닛 안에 갇혔을 때는 숨을 잘 못 쉬었는데, 치우고 나왔을 때는 구명조끼를 입어서 떠올랐다."
- 물에 잠겼던 시간은 얼마나?
"한 몇 초 동안."

- 몸이 떠올랐을 때,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은 어느 쪽이었나?
"문 쪽이었다. 그리로 올라와서 (복도로) 나왔다."

◇ '나 죽을지도 모른다'고 카카오톡 보냈다

[변호인 측 신문]
- (이아무개 3등 기관사·이아무개 조기수·박아무개 조기수의 변호인) 사고 당일 9시 18분에서 9시 21분 사이에 '나 죽을지도 몰라, 배에 있던 화물들 바다로 다 떨어지고 난리 났다, 전기도 다 나갔다'는 내용으로 카카오톡 보냈던 것 기억하는가?
"네."
- 그럼 안내방송은 이 메시지를 보내기 전에 나왔나, 후에 나왔나?
"모르겠다. 카카오톡을 보낼 때까지만 해도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
- (강아무개 1등 항해사·전아무개 조기장·김아무개 조기수의 변호인) SP-1번 방에는 사고 당시 몇 명이나 있었나?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 그럼 물이 차서 방에서 나올 때에는 방 안에 몇 명이…?
"모르겠다."
- (이준석 선장의 변호인) 배가 처음으로 갑자기 한 번에 기울었을 때, 그때 기울기가 어느 정도 였나. 예를 들어 30도, 40도…방 모양 등을 볼 때 대충 어느 정도 기울었다는 느낌이 있었나?
"모르겠다."
- 그럼 배가 기우는 속도는 대략 어땠는지?
"처음 배가 기우는 줄 몰랐는데, 조금씩 기울다가 창문에 (바다가) 가까워졌을 땐 그전보다 빨리 기울었다."
-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 말고, '10분 또는 5분 후에 구조선이 도착한다, 헬기 또는 구조선이 도착했다, 배에서 탈출하라' 이런 얘기는 들은 기억 있는가?
"모르겠다."

- 그럼 지금까지 말한 것 말고 다른 내용의 방송은 없었나?
"모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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