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1839) (어셔 가의 침몰) [Part 6] 나는 잘 기억하고 있다. 이 시에서 일어난 암시가 우리를 생각의 연속으로 이끌었고 어셔에 대한 견해가 다양하게 되었다는 것을. 나는 그것의 신기함에 관해서 별로 많아 언급하지 않았다(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가 그것을 지속하려는 끈질김에 관해서. 이런 견해, 그것의 일반적인 형태에 있어서, 즉 모든 식물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그러나 그의 이런 혼란스런 공상에서, 그런 생각은 좀더 대담한 성격을 띠었고, 어떤 조건 하에서는 무생물의 왕국에도 전이된다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의 이런 확신이 얼마나 강하고 진지하고 저돌적이었는지 나는 도저히 그가 이런 생각을 포기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표현할 말이 부족했다.
The belief, however, was connected (as I have previously hinted) with the gray stones of the home of his forefathers. The conditions of the sentience had been here, he imagined, fulfilled in the method of collocation of these stones — in the order of their arrangement, as well as in that of the many fungi which overspread them, and of the decayed trees which stood around — above all, in the long undisturbed endurance of this arrangement, and in its reduplication in the still waters of the tarn. 그러나 그런 신념은 그의 선조들이 살던 회색 건물과 (내가 이전에 암시한 것처럼) 연결되어있다. 그런 정감(정서)의 조건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가 머리 속에서 상상하고, 돌을 모아 배열해서 건물을 완공시킨 -- 그들이 배열한 그 순서에 따라, 그 위에 펼쳐진 많은 진균(眞菌)들처럼, 주위에 서 있는 썩은 나무들처럼 -- 무엇보다, 이런 배열이 오랫동안 방해받자 않고 견뎌온 것처럼, 그리고 호수의 고요한 물 속에 잠긴 그 반복 속에 들어있었다.
Its evidence — the evidence of the sentience — was to be seen, he said, (and I here started as he spoke,) in the gradual yet certain condensation of an atmosphere of their own about the waters and the walls. The result was discoverable, he added, in that silent, [page 91:] yet importunate and terrible influence which for centuries had moulded the destinies of his family, and which made him what I now saw him — what he was. Such opinions need no comment, and I will make none. 그것의 증거는 - 정감의 증거 - 눈으로 볼 수가 있었다, 그는 말했다, (그가 말한대로 나는 여기서 시작했다) 그들의 자손이 호수와 담벼락에 대한 그들 자신의 분위기의 어떤 점진적 축적에서. 그리고 그 결과는 눈에 보였다, 그는 추가했다, 침묵 속에서, 그러나 수세기 동안의 성가시고 끔찍한 영향이 가족의 운명을 성형했고, 내가 지금 보고있는 그를 만들었다 - 그의 과거를, 이런 의견에는 코멘트가 필요 없을 것이고, 나도 하지 않겠다.
Our books — the books which, for years, had formed no small portion of the mental existence of the invalid — were, as might be supposed, in strict keeping with this character of phantasm. We pored together over such works as the Ververt et Chartreuse of Gresset; the Belphegor of Machiavelli; the Selenography of Brewster; the Heaven and Hell of Swedenborg; the Subterranean Voyage of Nicholas Klimm de Holberg; the Chiromancy of Robert Flud, of Jean d’Indaginé, and of De la Chambre; the Journey into the Blue Distance of Tieck; and the City of the Sun of Campanella. 우리들의 책 -- 수년 동안 허약한 자들의 정신 생활에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했던 -- 은 상상할 수 있는 것처럼 그의 이러한 공상벽과 엄격히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함께 이런 저서들을 탐독했다. 그레세의 <배르베르와 샤르트뢰즈>; 마키아벨리의 <벨파고>; 스베덴보르의 <천국과 지옥>; 홀베르의 <니컬러스 크림의 지하여행>; 드라 샹브르의 <수상학(手象學)>; 티크의 <먼 창공으로의 여행>; 캄파넬라의 <태양의 도시> 등이다.
One favorite volume was a small octavo edition of the Directorium Inquisitorium, by the Dominican Eymeric de Gironne; and there were passages in Pomponius Mela, about the old African Satyrs and œgipans, over which Usher would sit dreaming for hours. His chief delight, however, was found in the earnest and repeated perusal of an exceedingly rare and curious book in quarto Gothic — the manual of a forgotten church — the Vigilae Mortuorum secundum Chorum Ecclesiae Maguntinae. 특히 좋아한 책 중의 하나는 도미니크 파의 에이메릭 드 지론의 <종교재판 지침서>라는 소형 8절판 책자였다; 그리고 폼포니우스 멜라의 구절이 있었는데 고대 아프리카의 사티로스와 에지판에 대해 쓴 것이었다. 그것을 읽으며 어셔는 오랜 시간 꿈꾸며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주요 기쁨은 특별히 희귀하고 기묘한 4절 고오트어판이었다. -- 잊혀진 교회의 기도서 -- <마인츠 교회 합창단의 죽은자를 위한 노래>
I could not help thinking of the wild ritual of this work, and of its probable influence upon the hypochondriac, when, one evening, having informed me abruptly that the lady Madeline was no more, he stated his intention of preserving her corpse for a fortnight, (previously to its final interment,) in one of the numerous vaults within the main walls of the building. 나는 이 작품의 야생적 종교의식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신증에 대한 영향의 가능성에 대해서, 어느날 저녁, 마델라인 아가씨가 더이상 없다는 것을 급히 알렸을 때, 그는 그녀의 시체를 2주 동안 건물의 주벽 안에 있는 지하 납골소 중 한 곳에 보관하겠다는 의도를 진술했다. (최종 매장 전에)
The wordly [worldly] reason, however, assigned for this singular proceeding, was one which I did not feel at liberty to dispute. The brother had been led to his resolution (so he told me) by considerations of the unusual character of the malady of the deceased, of certain obtrusive and eager inquiries on the part of her medical men, and of the remote and exposed situation of the burial-ground of the family. I will not deny that when I called to mind the sinister countenance of the person whom I met upon the staircase, on the day of my arrival at the house, I had no desire to oppose what I regarded as at best but a harmless, and not by any means an unnatural, precaution. 그러나 세상에서의 이유는, 이것은 단순한 절차로 정한 것이었다. 나는 이의를 제기할 자유에 대해 느끼지 않았다. 오빠는 자신의 결심에 따랐다고 (그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고인의 질병상 특이성을 고려해서, 그녀의 의료진에 대한 어떤 강요나 간절한 의문, 그리고 가족 매장지의 먼 거리와 노출된 위치에 대해서 나는 부정하지 않겠다. 나는 내가 이 집에 도착하던 날, 계단에서 만난 짐안 사람들에 대한 여동생의 그 표정을 떠올릴 때, 반대할 아무런 의욕이 없었다. 그 방법이 최고이면서 해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어떤 부자연스런 예방적 수단으로서가 아니기 때문에.
At the request of Usher, I personally aided him in the arrangements for the temporary entombment. The body having been encoffined, we two alone bore it to its rest. The vault in which we placed it (and which had been so long unopened that our torches, half smothered in its oppressive atmosphere, gave us little opportunity for investigation) was small, damp, and entirely without means of admission for light; lying, at great depth, immediately beneath that portion of the building in which was my own sleeping apartment. 어셔의 요청에 따라서, 나는 몸소 임시 매장에 대한 준비에서 그를 도왔다. 시신을 관에서 내리는, 우리 둘만으로 처리했고 나머지도 그렇게 했다, 우리가 시신을 안치한 그 지하 묘소는 (그곳은 우리가 들고 간 횟불이 억압된 분위기로 반쯤 꺼질 정도로 그렇게 오랫동안 열지 않았고, 우리에게 조사해 볼 기회조차 거의 주지 않았다) 작고, 축축하고, 빛을 허용할 어떤 수단도 없이, 누워 있었다. 매우 깊게, 건물 바로 아래 부분에, 나의 침실이 있는.
It had been used, apparently, in remote feudal times, for the worst purposes of a donjon-keep, and, in later days, as a place of deposit for powder, or other highly combustible substance, as a portion of its floor, and the whole interior of a long archway through which we reached it, were carefully sheathed with copper. The door, of massive iron, had been, also, similarly protected. Its immense weight caused an unusually sharp grating sound, as it moved upon its hinges. 이것은 분명히 먼 봉건시대부터 사용해 왔다. 주탑(主塔)의 최악의 경우에 대비한 목적으로. 그리고 뒷날 화약의 저장 장소(화약고)로, 혹은 불타기 쉬운 다른 물질의. 마루의 일부로, 그리고 우리가 도착한 긴 아치 통로의 전체 인테리어는 모두 정교하게 구리로 도금되어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철제 출입문이 이것을 보호하고 있었다, 또한, 그 엄청난 무게 때문에 비정상적인 날카로운 삐걱소리가 났다. 경첩 위에서 움직일 때. [7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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