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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학·설화

[명시감상] '나그네' - 박 목월(朴木月) 작시

잠용(潛蓉) 2015. 2. 1. 15:47


 


(solomong 사진합성)

 

“나 그 네”
- 朴 木 月 -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출처: 청록집(靑鹿集)에서>


‘Peace’-by Mehdi




자작시 '나그네' 해설 / 박목월


‘나그네’는 청록집(靑鹿集)에 수록한 내 작품들의 가장 바탕이 되는 세계다. 그 즈음, 나는 ‘강나루 건너서 밀밭’과 ‘술 익는 강마을’과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의 그 향토적이며, 한국적인 정서가 어린 풍경을 묵화적(墨畵的)인 고담(枯淡)한 필치로 표현하려고 애를 썼으며, 묵화에서 점 하나를 소중히 하듯 말 하나를 아꼈다.

‘나그네’의 주제적인 것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였다. 그야말로 혈혈단신 떠도는 나그네를 나는 억압된 조국의 하늘 아래서, 우리 민족의 총체적인 얼의 상징으로 느꼈으리라. 나그네의 깊은 고독과 애수, 혹은 나그네의 애달픈 향수 그 나그네가 우리 고장에 봄 가을이면 드나드는 과객(過客)들이거나 혹은 신라 때부터 맥맥히 내려오는 우리의 구슬픈 핏줄에 젖어드는 꿈이거나, 혹은 한평생을 건너가는 인생 행로의 과객으로서 나 자신이거나, 그것을 헤아리지 않았다.

다만, 생에 대한 가냘픈 꿈과 그 꿈조차 오히려 체념한, 바람같이 떠도는, 절망과 체념의 모습으로서 나그네가 내게는 너무나 애달픈 꿈(영상)이었다. 더구나, 우리는 세상을 다 버리고 떠도는 자를 나그네라 부르는, 그 버리는 정신, 그것은 모든 소망을 잃은 자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버리는 것’으로서 스스로를 충만하게 하는 그 허전한 심정과 그 심정이 꿈꾸는 애달픈 하늘, 그 달관의 세계.―이런 뜻의 총화적인 영상으로서 나그네를 꿈꾸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설명하기 위한 설명일지 모른다. 내가 ‘나그네’를 쓸 무렵에는 오히려 뜻을 따져서가 아니다. 다만 막연하게 답답한 심령의 세계가, ‘나그네’로 말미암아 ‘울음’이라는 구원의 통로를 얻게 된 것이며, 통곡함으로써 얻는 후련한 위안을 이 작품에서 느꼈으리라 믿는다. 위에서 ‘나그네’의 주제적인 모티프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라 했다. 그러나 사실은 구름 사이로 빠져나가는 그 맑은 달의 모습이라 함이 정확하리라.

새까만 구름장 사이로 달은 씻은 듯 말갛게 건너간다. 바람이라도 불어, 구름이 빨리 흐르면 흐를수록 날개가 돋친 듯 날아가는 달의 그 황홀한 정경. 그 달의 모습에서 나는 세상을 버린 자의 애달프게 맑은 정신을 느낀 것이다. 그러므로 ‘구름장 새로 흐르는 달’이 곧 나그네며, 나그네가 구름을 건너가는 달이었던 것이다. 이 체념과 달관의 세계에서 오히려 일말의 애수를 띄운 것을, ‘강나루를 건너, 퍼런 밀밭머리의 길’이나 혹은 ‘술이 익듯 저녁놀이 타는 마을’같은 향토적인 풍경 위에 수를 놓아 보려고 애를 썼다.

과연, 그것이 어느 정도 성공했는지 나 자신은 모르거니와, 어떻든 ‘나그네’는 내게 한 편의 작품으로서가 아니라, 청록집(靑鹿集)에 수록한 작품들과 모조리 통하는, 그 무렵의 내 정신의 전 우주 같은 느낌이다. 이것은 작품으로서의 좋고, 나쁜 것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나그네’에 잠겨 있는 세계가 그렇다는 뜻이다. 이 ‘나그네’에서 표현의 특이한 점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혹은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등, 구마다 명사로 끊은 점일 것이다. 그것은 ‘나그네’에서만 아니라 나의 다른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대로의 독특한 표현 방법이다. 이것을 쉽게 설명하면, 구를 고정시키고, 구에 어린 정감량을 확립시키기 위한 것이다. 가령,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이 한 구로 예를 들면, 이 구의 실린 의미와 감동이 ‘가는 나그네’라는, 그 ‘나그네’에 집중되는 것이다.만일 ‘나그네가 가네’ 하면, ‘나그네가 가는 것’에 의미와 감동이 실리게 되므로, ‘나그네’에 쏠리는 감동의 집중감이 희박해지기 쉽다. 이렇게 구마다 끝에 주어를 놓고 그것에 ‘의미와 감동의 악센트’를 쏠리게 함으로써 구마다 감동의 집중감을 돋우게 한다. 또한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처럼, ‘길은…’ 하는 구를 ‘삼백 리’로써 끊어 실렸는 정서가 다음 구로 유동하는 것을 막아, 고정화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윤사월(閏四月)’에서도

송화 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역시 첫 구를 ‘봉우리’로 끊음으로써 다음 구로, 의미나 감동이 번지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래서 한 구는, 구로서의 독자성을 강하게 하고 구간의 여백을 절연(絶緣)시키는 것이다. 구간의 절연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절연을 넘어서 정서나 의미의 암시가 깔리게 되면 한결 ‘생략의 여음’이 돌게 되는 것이다. 시의 구간에 깃드는 ‘생략과 여음’이야말로 시를 더욱 생기가 돌고, 함축이 강하게 이루는 것이리라.

또한, 가락으로서도, 명사로 끊는 것이 보다 오묘한 것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나그네’는 7·5조의 안이성을 만일 이 작품에서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조사를 달지 않은 명사로서 구를 끊은 그 효과일 것이다. ‘나그네’를 읊는 경우에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하고, ‘건너서’, ‘길을’, ‘가듯이’, ‘길은’, ‘타는’, ‘가듯이’ 등에서 길게 뽑아 이렇게 호흡을 늦추더라도,‘가는 나그네’, ‘삼백 리’, ‘저녁놀’에서는 완전히 호흡을 멈추었다가 새로 모아서 다음 구를 시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호흡이 면면히 이어지지 않고, 구마다 다급하게 끊어지는, 심한 호흡의 굴곡이 구마다 정감을 모으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작품이 가락에 쉽사리 유동 융합되는 출렁거리는 가락으로서 흘러 버리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읊으면서 안으로 새겨지는 힘’이 깃드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이렇게 구절구절이 제대로 뚜렷이 살아나게 함으로 ‘가락에 맡겨 버려지는 것’을 거부하고, 그 의미나 회화적인 이미지를 한결 확립시키는 소임을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이 될 것이리라.

실로 ‘나그네’는 가락에 맡겨서 이룬 것만이 아니다. ‘구름에 달 가듯이’를 반복한 것은 음악적인 조화만을 위한 것이기보다 한 편의 작품에 ‘정감의 균등과 그 비중을 살펴서 구성상의 배의(配意)에 유의한 것이리라. 그리고 ‘남도 삼백 리’라는 구의 ‘삼백 리’가 말썽이다. ‘남도 삼백 리’가 어디서 어디까지냐고 묻는 이가 있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삼백 리’는 원 노트에 ‘남도 팔백 리’로 되었던 것을 발표 때 ‘삼백 리’로 고친 것이다. 이것은 ‘삼백 리’ 혹 ‘팔백 리’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예이츠(W. B. Yeats)의 ‘이니스프리’라는 작품 중에,

나는 일어나 바로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외 엮고 흙을 발러 조그만 집을 얽어
아홉 니랑 콩을 심고, 꿀벌은 한 통
숲 가운데 비인 땅에 벌 잉잉거리는 곳
나 홀로 거기서 살으리.<박용철 편>

라는 구절이 있다. 이 경우에 ‘아홉 니랑 콩을 심어’의 ‘아홉 니랑’은 아홉 개의 밭이랑이라는 뜻이 아니다. 평화로운 그 꿈의 섬에서 가난하게 충만히 살 수 있는 ‘가난한 충족’을 꿈꾸는 그야말로 가난한 행복의 면적이다. 다시 말하면 가난하게 행복된 감정이 실감하는 수량 ― 그것이 아홉 니랑이다. ‘나그네’에서 남도 삼백 리도, 내 서러운 정서가 감정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거리 ― 그것이 남도 삼백 리일 따름이다.

끝으로, 이 ‘나그네’를 내가 처음 썼을 무렵의 노트를 그냥 초(抄)하면 다음과 같다.

나루를 건너서
외줄기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달빛 어린
남도 삼백 리

구비마다 여울이
우는 가람을

바람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첫 구는 설명이 지나친 것 같아 ‘밀밭 길’로, ‘달빛 어린 길’은 진부한 것 같아 수정했고, ‘구비마다…’는, 조지훈의 ‘완화삼(玩花衫)’에서 화답시를 이루고, ‘바람에 달 가듯이’는 이미 ‘구름에 달 가듯이’와 중압된 것 같아 고쳤다. 이렇게 작품에 손을 댈 적마다 생각나는 것은, 추천을 받을 때, 그 선자(選者)가 한 말이다. “옥의 티와 미인의 이마에 사마귀 한 낱이야 버리기는 아까운 점도 있겠으나, 서정시에서 말 한 개 밉게 놓이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현대시의 비밀>

-박목월 지음 <보라빛 소묘> 중에서 -
* 하선은 편집자가 참고로 붙인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