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에 등 떠밀린 정치… 김영란법 '졸속 처리'
[CBS노컷뉴스] 2015-03-04 04:00
[사진] 3일 오후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이 본회의에서 재석 247인, 찬성 226인, 반대 4인, 기권 17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위헌소지… 법적 안정성·일관성 결여… 사학 이사장 뒤늦게 포함
깨끗한 사회, 부패방지 등을 명분으로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 일명 '김영란법'이 만들어졌지만 정치권이 비판여론에 등 떠밀려 법안을 졸속처리하는 바람에 부작용이 속출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법사위의 법률제정안 심사과정에서 사립학교 이사장과 이사도 적용대상으로 포함됐다. 김영란법 통과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금전은 물론이고 상품권, 선물, 식사비용, 접대용 술값 등 소액금품과 향응수수까지 처벌할 근거를 만들어 부패를 획기적으로 줄일 것이란 기대가 높다. 과거에는 대가성이 있어도 액수가 적어 처벌하기 어렵거나 금품수수를 포착하고도 대가성이나 직무연관성을 못밝혀 처벌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는데 법망이 더 촘촘해져 처벌 여지가 더 커졌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현재 46위에 머물러 있는 부패지수를 한단계 끌어올리고 사회를 보다 투명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 법이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도 높다.
◇ 김용남 "배우자는 가족이 아니다?"
그러나, 국회가 김영란법을 워낙 서둘러 처리하는 바람에 김영란법의 체계와 자구에 갖가지 허점을 남겼다.
대표적인 것이 배우자에게 신고의무를 부과한 김영란법 22조 1항, '배우자의 금품수수사실을 신고하지 않으면 3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가족이 범인을 숨겨줘도 처벌하지 못하도록 한 형법조항과 배치되는 부분으로 위헌소지가 많다는 지적이 나왔다. 새누리당 김용남 의원은 3일 국회 본회의에서 김영란법 반대토론에 나서 "우리 사회가 깨끗해지기를 바라지만 이 법은 납득이 어려운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김영란법 22조 1항 2호를 불고지죄로 규정, 죄를 지은 범인을 숨겨주거나 도피를 도운 친족이나 가족은 범인은닉죄로 처벌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형법조항과 정면 충돌한다"며 "많은 경우 우리나라 법체계는 가족간 일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하물며 국가보안법도 반국가단체 활동을 하는 가족을 신고하지 않아도 형을 감경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면서 "이 법이 통과되면 오늘부터 배우자는 가족이 아니라고 선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배우자에게 형사처벌을 하도록 강요하는 법조항에 대해 위헌소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 '100만원 기준' 직무관련성 일관성 결여
100만원 이상 수수는 직무관련성과 무관하고 100만원 이하는 직무관련성을 따지도록 한 법체계가 일관성을 잃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액을 기준으로 무조건 형사처벌하는데 대한 적절성 논란도 일고 있다. 이를테면, 105만원 수수자보다 96만원 수수자의 죄질이 훨씬 나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홍일표 의원은 3일 국회 법사위원회 발언에서 "지난번 공청회에서 한 발언자가 '99만원 받은 경우와 105만원 받은 경우 사이에서 99만원 받은 게 훨씬 죄질이 나쁠수 도 있다' 이런 지적이 있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돈을 준 사람이 자기상황에 따라 악용할 여지가 크고 수사기관의 악용 우려도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돈을 줄때는 관계가 원만했지만 나중에 관계가 틀어져 돈 준 것을 이용해 상대방이 법적 처벌을 받도록 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위헌소지와 함께 여러가지 법률체계적 허점이 거론됐기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문제 있는 법을 만들기 보다는 좀 더 시간을 갖고 손질해서 제대로 된 법을 만들자는 입장과 이번 기회를 놓치면 입법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양론이 교차했다. 상당수 국회의원들은 사석에서 김영란법이 통과될 경우 발생할 부작용을 우려하면서 신중한 입법을 해야한다는 입장이 강했지만, 지난달 23일 법사위원회에서 여야간에 3월 3일 처리하기로 한 합의를 무산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 정치권, 여론에 등떠밀려 졸속처리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 김영란법 입법에 찬성하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왔고 여론을 무시하기 힘든 여야 지도부의 입장, 다가오는 재보궐선거, 이른바 '친부패'라는 비판여론 등이 부담스러웠던 것으로 분석된다.
새정치연합의 한 재선 의원은 3일 CBS 기자와 만나 "개인적으로도 김영란법에 반대하고 만나는 다수 의원들도 모두가 반대하지만 막상 드러내놓고 반대하지는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고백했다. 결국 제대로 수정해서 입법절차를 거쳐도 될 것을 서둘러 처리한 데는 여론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정치권이 법의 안정성보다는 비판여론을 의식한 결과다. 지난달 23일, 3월 3일 처리에 합의한 뒤 법사위원회는 김영란법을 소위에 회부하거나 전체회의에 올려 단 한 차례도 논의한 적이 없었다.
◇ 국회 법사위, 비판 두려워 체계 자구심사 포기
본회의 처리 당일인 3일 전체회의를 열어 법안체계와 자구를 심사한 게 전부였다. 당연히 법적인 안정성이 떨어지고 허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 홍일표 의원은 3일 법사위에서 "저도 이 법이 처리되는 과정에 대해 반성문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정무위를 통과한 법이 법사위에 회부됐으면 고유권한을 발휘해서 소위에 회부해 체계 자구심사를 하고 수정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말했다.
오죽했으면 법사위원회는 언론과 사립학교를 공무원으로 의제해 뒤늦게 법적용 대상에 끼워 넣고도 사립학교 이사장과 이사는 적용대상에서 빠진 사실도 모르고 있다가 3일 뒤늦게 발견하고 포함시키는 헤프닝을 벌였다. 법안 자체의 문제 외에 김영란법이 시행될 경우 식당과 주점 등 자영업자들의 매출이 반토막날 것으로 예상되는 등 가뜩이나 침체된 경제에도 커다란 후폭풍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기 기자]
김영란법에 '웃음짓는 검찰', 고삐 쥘 사람은 어디에…
CBS노컷뉴스 2015-03-04 05:00
'김영란법' 통과를 놓고 여야가 국회에서 한창 골머리를 앓고 있던 지난해 말, 검찰의 한 고위간부는 김영란법에 대한 견해를 묻자 "우리야 대가성을 입증할 필요가 없으니 일하기는 더 쉬워지겠지요"라고 웃으며 답했다. 국회가 3일 오후 본회의를 열고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법)을 통과시켰다.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1년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친 뒤 내년 10월부터 김영란법은 현실이 된다.
공직자는 물론이고 언론사 임직원, 사립학교(유치원)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장·이사들 중 직무 관련성과 무관하게 100만 원 이상의 금품을 자신과 배우자가 수수한 사람은 형사처벌을 면키 어렵게 된다. 물론 이들에 대한 처벌 여부는 전적으로 검찰 손에 달렸다. 지나치게 넓은 형사처벌 대상과 벌칙의 과중성 등 김영란법을 둘러싼 쟁점은 법안이 통과된 현재에도 여전하지만, 가장 직면한 우려는 검찰에 의한 김영란법의 남용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동안 정치적으로 권력과 대척점에 있던 정치세력에 대한 검찰의 편파수사 논란은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참여정부의 수장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물론이고 한명숙 전 총리 등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한 검찰의 먼지털이식 수사와 사회적 논란은 당연하다는 듯이 이어져 왔다. 검찰의 남발된 기소가 제동이 걸릴 수 있는 경우는 법원이 대가성을 인정하지 않고 무죄를 선고할 때뿐이었지만 이마저도 김영란법 통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더구나 김영란법 대상에 언론인이 포함되면서 우리 사회에서 거의 유일하게 검찰 권력의 감시기능을 자임했던 언론마저 검찰의 눈치를 살피게 될 처지에 놓였다.
지난 한 해 보도와 관련해 청와대와 법무부가 제기한 민·형사상 고소고발건만 12건에 달하는 등 적극적인 '언론 길들이기'에 나선 박근혜 정부와 검찰이기에, 김영란법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를 가능성은 상당하다.
검찰이 김영란법을 남용하지 않는다 해도 언론의 검찰에 대한 감시기능 위축은 피할 수 없게 될 전망이며, 언론사 스스로 검찰 비판 기사를 자제하는 '자기검열' 현상마저 생겨날 수도 있다.
김영란법은 교통비, 식비, 숙박비 등 일체의 비용을 모두 합산해 1년에 300만 원이 넘는 금품을 제공받으면 대가성과 상관없이 형사처벌 대상이 되도록 못박고 있다. 취재활동을 위해 수많은 외부인들과 접촉해야 하는 언론인들에게 자칫 이런 가이드라인은 투명한 족쇄 역할을 할 수 있다. 학계에서도 김영란법의 과도하게 넓은 법적용 대상이 오히려 '우리 사회의 투명화'라는 본질은 비켜난 채 부작용만 야기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김영란법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 사안을 선별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법을 적용하면서 '보여주기식' 법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김영란법이 공직자들의 유관기관 취업과 법조인들의 전관예우 등 우리 사회 부패구조의 근본적 뿌리에 대한 비판을 흐리게 하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대한변협은 이날 성명을 통해 "언론의 공공성을 감안하더라도 김영란법이 언론 길들이기의 수단으로 악용되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것이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김중호 기자]
이상민 법사위원장 "김영란법 위헌적, 빨리 보완해야"
CBS노컷뉴스 2015-03-04 09:42메일보내기
[사진] 이상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자료사진)
처벌 기준 및 대상 모호 선의의 피해자 생길 가능성 높아
새정치민주연합 이상민 의원은 4일 전날 국회에서 처리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안)에 대해 "위헌적이며 이유 없이 언론인 등 민간분야를 포함시켰다"며 비판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인 이 의원은 이날 CBS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에 출연해 김영란법과 관련해 "거의 대부분의 의원들이 문제점을 지적했다"며 "내용은 위헌성이 있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뚜렷한 이유도 없이 언론이나 민간 부분까지 확대가 됐다"면서 "처벌규정임에도 불구하고 명확하지가 않고 애매모호해서 선의의 피해자가 속출될 수 있다"며 우려감을 피력했다. 이 의원은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에 일관성이 없어 법의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립학교 선생님들이나 유치원 선생님들은 대상이 되는데 정작 비리가 많은 재단 이사들이나 이사장들은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변호사, 의사, 방위산업체, 금융기관, 시민단체 등 다른 '공익' 기관들이 빠져 있는 결함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특히 시민단체가 빠진 점, '제3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는 행위를 제재할 수 없게 해 국회의원들의 활동범위를 참작해 준 점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의원은 "국회의원들이 빠져가는 그런 것으로 비판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며 "그런 오해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일반 공직자, 언론인, 교사들에 대해서는 혹독할 정도로 엄격하게 규정을 했으면서 책임을 면하는 부분에 이런 선출직 공직자들이 빠져나갈 그런 통로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이 의원은 김영란법의 개정 가능성에 대해 "논의의 중심에서 벗어날 수가 있어서 보완할 주동력이 턱없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1년 6개월 이후에 시행되어서 선의의 피해 사례가 없도록 빨리 그걸 보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위헌 가능성'을 거론하며 국회 본회의 표결에서 기권을 했다. 법사위원장이 법안 처리에서 기권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 유동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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