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통일의 시작입니다] [1]
"南北관계 안 풀려도…
인도적 지원은 늘려 北주민 마음 얻어야"
조선일보 ㅣ이태훈 기자 ㅣ입력: 2015.06.29 03:00 | 수정: 2015.06.29 08:09
국내 국제구호단체들 "어려울수록 더 다가서야"
"주민들 '統一경험' 시켜주면 진짜 통일도 앞당겨질 것
北 우수한 인력·자원 가져… 개도국에 투자하듯 지원을"
굿네이버스, 월드비전, 기아대책 등 국내의 대표적 국제구호단체 관계자들은 저개발 국가에 대한 우리 정부의 지원이 계속 늘어나는 가운데 북한 주민들에 대한 지원의 물꼬는 막혀 있는 현 상황에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있다. 굿네이버스는 2008년 85억원에서 지난해 13억원으로 대북 지원 규모가 6년 만에 약 7분의 1로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기아대책은 31억원에서 9억원으로, 월드비전은 19억원에서 4억원으로 줄었다. 이들은 다양한 국가와 환경 속에서 인도적 지원과 개발 협력 사업을 진행하며 주민, 마을, 지역이 변하는 모습을 숱하게 목격했다. 이들은 "어려울수록 더 지혜로워져야 한다. 남북관계가 안 풀릴수록 북한 사람들의 마음에 더 적극적으로, 더 가깝게 다가서야 한다"고 말했다.
◇ "통일경험 남북 함께 맛보자"
"북한 땅에서 북한 주민들과 종일 함께 일하고 밥도 먹고 춤도 추고 잠도 자는 것. 서로에게 공포(恐怖) 대신 공감(共感)을 갖고, 오래 못 만나면 '보고 싶다' 느끼는 것. 그게 통일 아닌가요?" 이일하(68) 굿네이버스 회장은 "나는 이미 통일을 경험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는 1997년 3월 처음 평양 땅을 밟은 뒤 2009년 말까지 13년 동안 연인원 2000여명과 함께 120여 차례 방북했다.
굿네이버스는 25개 사업장에서 북한 아이들과 주민 22만여명을 도왔다. 특히 평양 강동군 구빈리 협동농장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통일 경험'을 선물한 곳이다. 굿네이버스는 지난 1998년 이 마을에 젖소 200여마리와 함께 소가 먹을 풀 종자도 함께 전했다. 직접 짠 우유를 가공할 공장을 세우고 한국 목장의 시스템도 전수했다. 조건은 한 가지. 이익금 절반은 마을 사람들이 갖고, 나머지 절반은 어려운 아이들 먹이는 데 쓰라는 것이었다. 평양에서 가장 낙후됐던 이 마을은 10년 후 소득이 10배로 높아졌다. 사업 모니터링 방북단은 열흘씩 함께 머물며 주민들과 친구가 됐다. 북한 측 관계자는 이 회장을 오랜만에 만나면 "보고 싶었다"고 했고, 주민들은 "우리 마을이 진짜 통일 마을"이라고 입을 모았다.
[도표] 주요 국제 구호 단체의 해외 및 대북 사업비 비교.
(국내 민간 단체의 최근 5년간 대북 인도적 지원 현황)
이 회장은 "개발도상국에 유상 원조하듯, 북한을 우수한 인력과 풍부한 자원을 갖춘 가능성 있는 시장으로 보고 투자하면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이런 '통일 경험'을 하는 북한 주민이 늘어나면 진짜 통일도 절로 앞당겨질 것"이라고 했다. 이 회장은 처음 방북 때 "해병대 출신 베트남전 참전 용사"라고 밝히고 평양 만수대 김일성 주석 동상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북측 관계자들은 '그 용기를 존중한다'고 했다. 이 회장은 "비위를 맞추려 비굴하게 굴지 않고 당당할 때 북한 사람들도 신뢰할 것"이라고 했다.
◇ "오래 지속되는 개발 협력을"
북한 측의 관심은 식량이나 비료 지원보다 장기적·지속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개발 협력 쪽에 쏠리고 있다. 국내 대북지원단체들도 2000년대 초반 이후 대부분 단순 물자 지원에서 장기간 지속되는 경제 개발 협력 쪽으로 방향을 바꿨었다. 하지만 현재는 이런 사업도 대부분 정지된 상태다. 월드비전 관계자는 "우리도 씨감자 사업, 종자 개량 사업 등에 초점을 뒀다. 북측은 농업기술을 이전받을 수 있고 우리도 북한 주민을 직접 만나 교육하며 교류할 수 있어 모두가 원하는 방향이었다"고 했다.
기아대책 관계자는 "북한은 1970년대까지도 남한에 원조 물품을 보낼 정도로 경제 사정이 괜찮았고, 도시계획이나 교육 시스템, 기간산업의 틀도 어느 정도 잡혀 있다. 아프리카 아시아 등의 다른 저개발 국가와는 상황이 매우 다르다"며 "북한의 지역사회와 파트너십을 맺고 주민들의 자립을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물꼬를 터줘야 한다. 당장 중요한 것은 신뢰 회복과 남북 협력 분위기를 되살리는 것"이라고 했다. [이태훈 기자]
[나눔, 통일의 시작입니다] [2]
70년 分斷이 만든 딴세상...
"외모·文化·웃음코드 등 모든 게 달라져"
조선일보 | 김명성 기자 | 입력 2015.07.03. 03:00 | 수정 2015.07.03. 03:10
심각해지는 민족 異質化 -사고방식 큰 차이 한국 온지 2년 넘은 탈북자 "개그 프로 왜 웃는지 몰라" 탈북자 절반 이상이 아직도 "주체사상 자부심 갖고 있다" -생활 풍속도 달라 北 최고명절은 金부자 생일 송편, 추석 아닌 설날에 먹고 결혼식은 대부분 신랑집서
남북 분단 70년을 맞으면서 남북 간 이질화(異質化) 현상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대북 지원 단체 관계자들은 "이대로 두면 남북이 인종(人種)마저 달라질 것 같다"고 했다. 대북단체 간부 A씨는 "여자가 시집가서 10년만 살아도 생활 습관과 문화가 친정 것에서 시집 것으로 바뀌는데 남북은 70년을 따로 살지 않았느냐"며 "지금 남북은 정말 모든 게 다르다"고 했다. 탈북자 김철진(35)씨는 "한국에 온 지 2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개그콘서트'를 보면 왜 웃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회사의 남측 친구들에게 북한 코미디를 보여줬더니 웃지 않고 아리송한 표정을 짓더라"고 했다. 분단의 장기화가 웃음 코드까지 이질화시킨 것이다.
지난 2007년 남북은 공동으로 드라마 '사육신'을 제작했다. 남한은 자본을 대고 북한의 톱스타들이 대거 출연했다. 남북에서 공동 방영을 했는데 북한에선 방영 시간에 거리에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남한에선 시청률이 2%에도 못 미쳤다. 영화에 대한 남북 주민들의 눈높이와 평가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분단 70년 세월은 같은 민족의 외모마저 바꿨다. 기무라 미쓰히코 일본 아오야마 가쿠인대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1940년 당시 북한 20대 남성의 평균 신장은 163.4㎝로 남한(162.3㎝)보다 컸다. 그러나 2010년 남한 20대 남성 평균 신장은 174.2㎝인 데 비해 북한은 165.4㎝에 불과했다. 남북한 주민의 평균 수명도 10~13세가량 차이가 난다.
더 큰 문제는 주민들의 사고방식과 세계관 등 '소프트웨어'도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근현대사를 김일성과 그 가계의 활동을 중심으로 왜곡하고 유치원 시절부터 주민들에게 세뇌시킨다. 3·1운동도 김일성의 부친 김형직이 조직하고 8세의 김일성이 만세 운동에 참가했다는 식이다. 북한에서는 90도 인사는 김일성·김정일 부자에게만 허용된다.
서울대통일평화연구원의 2014년 탈북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주체사상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응답이 57%였다. 북한을 떠났지만 주체사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하나원에서 탈북자를 상대로 강의한 A씨는 "100여명의 탈북자에게 '사람이 살아가는 데 정신이 중요한가, 아니면 물질이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했더니 90% 이상이 정신이 중요하다고 손을 들었다"고 했다.
민족 고유의 풍속도 달라졌다. 북한의 최고 명절은 김일성의 생일인 태양절(4월 15일)과 김정일의 생일인 광명성절(2월 16일)이다. 설날은 그저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날로 여길 뿐이다. 남한에서는 추석에 송편을 먹지만 북에서는 설날에 송편을 먹는다. 북한은 에너지 사정으로 인해 열차 운행이 사실상 마비된 상태라 명절맞이 민족 대이동 같은 풍속은 보기 어렵다. 1994년부터 북한을 30번 정도 왕래한 대북 지원 단체 관계자는 "북한에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이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공산주의에 기존 유교문화가 이상하게 합쳐져서 여성들이 차별을 받는다"고 했다.
휴일과 여가를 즐기는 법도 다르다. 북한의 협동농장에서 일하는 농민들은 매달 1일, 11일, 21일 등 열흘에 하루를 쉰다. 쉬는 날에는 삼삼오오 모여서 서양식 트럼프 카드를 이용한 '주패놀이'를 한다. 주말에 외식을 하거나 야외로 떠나는 우리와 많이 다르다. 결혼식 문화도 다르다. 북한의 신부는 결혼식에서 한복을 입는다. 결혼식은 예식장이 아니라 주로 신랑 집에서 하며, 식이 끝난 후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참배하고 기념 촬영을 한다. 신혼여행은 없다. 장례 문화도 남한은 화장(火葬)이 많은 데 비해 북한은 대부분 매장(埋葬)이다. 국제구호단체의 한 인사는 "북한에 가보면 말 빼고 모든 게 다르다는 느낌이 들고, 우리가 정말 같은 민족인가 회의감이 들 때도 있다"면서 "더 이상 분단이 고착화되기 전에 민족 동질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했다. [김명성 기자]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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