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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념

[헬조선] 극우들에게 '헬조선'이 왜 혐오단어가 되었을까?

잠용(潛蓉) 2015. 11. 1. 10:46

[헬조선외전 ①]
'헬조선'은 왜 極右들의 혐오단어가 되었나?

[경향신문] 수정2015-10-02 20:37:02

 

“우리나라가 Hell(지옥)이라구?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헬조선’이란 유행어로 기획을 한다고 했을 때, 기사가 나간 후에 나온 반응입니다. 경향신문 토요판 커버스토리 ‘헬조선에 태어나 노오력이 필요해’(2015년 9월 5일자 1·12·13면 보도)는 말에 담긴 정서를 분석한 기사입니다. ‘헬조선’과 ‘노오력’이란 말을 들여다보면서, 이 말을 사용하는 한국인들이 어떤 심정으로 어떻게 살아가는지 역추적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헬조선’이란 말이 특정인을 비하하고 괴롭힐 목적의 나쁜말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헬조선’이란 표현을 들은 건 지난해 초입니다. ‘디시인사이드 정도전갤러리’였죠. KBS 대하사극 <정도전> 방영을 계기로 만들어진 이 게시판에서는 매 주말 드라마가 끝나면 “헬고려VS헬조선”, “헬조선VS 갓본” 같은 제목을 단 게시글이 줄줄이 올라와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헬조선’은 19세기 말 근대국가로 거듭난 일본과 비교해 조선왕조를 비하하는 말로 쓰였습니다.

 

2009년 무렵 디시인사이드 역사갤러리·주식갤러리 등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역사에 당위적 방향을 설정하고 현재 기준을 과거에 들이대며 비하 또는 미화하는 것은 현명한 태도는 아닙니다. 정도전갤러리에서 ‘헬조선’이란 제목이 달린 글은 <정도전> 팬들을 약올릴 목적으로 쓴 것이죠. 이런 글을 쓰는 사람들을 ‘어그로꾼’이라고 부릅니다. ‘어그로글’에는 반응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약 1년 후 ‘헬조선’이 갑자기 많이 보였습니다. 지난 5월 메르스 사태 전후로 포털 댓글·트위터·페이스북에다 일상의 농담에도 ‘헬조선’이 등장했습니다. 재미삼아 하는 ‘어그로’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취재에 들어가기로 했죠. 제 느낌이 타당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데이터 기반 컨설팅업체 아르스프락시아의 도움을 받아 인터넷 게시글을 문장 단위로 분석해봤습니다. ‘헬조선’이란 표현을 사용하거나 아는 사람들을 별도로 인터뷰했습니다. 분석은 아르스프락시아 김학준 연구원과 공동으로 진행했습니다.

 

결과를 보면서 ‘헬조선’은 한국 젊은이 각자가 접하는 부조리를 표현하는 말로 사용된다고 판단했습니다. ‘헬조선’과 비슷한 시기 유행한 ‘노오력’을 같은 방식으로 분석해 부조리 실체에 접근하려 했습니다. ‘헬조선에 태어나 노오력이 필요해’(2015년 9월 5일자 1·12·13면 보도)는 그 결과물입니다. 기사에 넣지 못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데이터와 그래픽, 취재일지를 온라인 외전에 공개합니다.

 

■ ‘헬조선’ 메르스 사태 이후 인터넷을 점령하다

 

“왕조 같은 권위를 지닌 자가 군림하고, 개인은 노예로 사는 삶을 택하는 ‘시대정신’을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해요.” 지방사립대 휴학생 김현곤씨(19)는 지난 5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를 풍자한 인터넷 게시글에서 한 단어를 보고 통쾌해 했다. ‘헬조선’. 그는 “내가 ‘흙수저’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주변을 보면 ‘망할 놈의 세상’이라는 말 정도론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고 말했다. ‘흙수저’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지 못한 사람을 일컫는 자조적 표현이다. 김씨 아버지는 경북 봉화에서 농사일로 한 달에 120만원 정도 번다. 김씨는 “평소 ‘힘든 사람들을 방치하는 나라는 이미 망한 것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헬조선은) 그런 우리나라의 모습을 정확하게 상징한다”고 덧붙였다.


[커버스토리]‘사회’ 없는 국가, ‘희망’ 잃은 청년…

“한국은 지옥이라 불려 마땅하다”

 

김현곤씨는 지난 5월 페이스북 ‘망했어요’ 페이지에서 ‘헬조선’이란 표현을 처음 접했다고 합니다. “국가가 제기능을 못하고 힘든 사람들을 방치하는 곳”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헬조선’이란 표현이 처음 시작된 디시인사이드 역사갤러리는 근대지상주의에 뿌리를 둔 보수성향이 강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헬조선이 진보 혹은 보수진영에서만 쓰이는 것인지, 전체적으로 다 쓰이는 말인지 확인하기 위해 일간베스트 저장소와 트위터 두 곳에서 2015년 1~7월 ‘헬조선’이 등장하는 게시물을 수집했습니다. 트위터는 커뮤니티가 아니고 진보성향 이용자들만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약점이 있지만 데이터 수집이 용이하고 다른 커뮤니티사이트에 비해 이용자들이 광범위하다는 점에서 선택했습니다.

 

[도표] 데이터수집/아르스프락시아

 

총 4593건을 수집했습니다. 일베보다 트위터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헬조센’(조선의 일본어 발음 적용)이란 표현은 걸러내서 나온 결과입니다. 트위터의 경우는 리트윗(재전송)은 제외하고 순버즈(처음 생성된 메시지)로만 집계했습니다. 사용빈도가 완만하게 늘어나다 특히 5~6월를 기점으로 2배씩 늘어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메르스 사태’와 ‘가뭄’이 한창이던 시기였습니다. 김현곤씨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하는 모습에서 왕조 말기 같다”며 “전부터 비슷한 생각을 하다가 ‘헬조선’이란 표현을 보고 ‘내가 생각하던 게 바로 이거야’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해외 스카웃 제의를 받은 박사급 연구원 장명원씨(30대·가명)는 ‘헬조선’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지 않지만 “왠지 나라가 망할 거 같은 기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장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박사급 연구자들 상당 수가 해외로 빠져나가려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지도교수와의 관계, 정부 정책 등에 신경쓰느라 연구에 전념할 수 없다. 지금 한국을 먹여살리는 최고 수준의 기술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 소속돼 있지 않다. 기업의 사적 소유다. 정부는 기업에 기술이전을 하라고 무작정 대학에 압박을 넣고 연구소의 개성을 없앤다.

 

반면 기업은 최고수준의 기술을 독점해 논문 등의 결과로는 내놓지 않으면서, 이익을 위해 오히려 공장을 해외로 이전한다. 기업이나 기업으로부터 프로젝트를 따오는 ]수들은 ‘내 덕에 너희가 먹고 사는 것’이라며 대학원생을 노예처럼 부려먹으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과학기술의 면에서 보더라도 ‘먹고 사는 공동체’로서 한국은 끝났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이 일하던 시절에는 ‘경제개발하면 다같이 먹고 산다, 한 회사 직원들은 한 가족이다’ 이런 관념이 있지 않았나. 지금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것 같다. 사회의 상층부는 탈출하는 마당에, 취업이나 부동산 문제까지 더하면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앞날이 있을까?”

 

■ 헬조선과 함께 쓰이는 단어…

불분명한 ‘미개’, 뚜렷한 ‘청년’·‘취업’·‘탈출’

 

어떤 단어의 쓰임새를 파악하기 위해 함께 문장을 이룰 가능성이 큰 단어를 찾아내 그룹을 짓는 방식을 ‘의미망 분석’이라고 합니다. ‘헬조선’이 정확히 어떤 뜻으로 사용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김학준 연구원이 의미망 분석을 진행했습니다. 헬조선과 함께 쓰이는 단어 중 비슷한 맥락으로 사용되는 단어를 같은 색깔로 분류했습니다. 화살표가 굵을수록 한 문장에서 함께 쓰이는 빈도가 높다는 의미입니다. 화살표 방향에 따라 문장에서 구성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일베에서 ‘헬조선’ 의미망 분석을 한 결과입니다.

 


그래픽/아르스프락시아

 

‘헬조선’이 들어간 문장 중에 “이 나라는 헬조선”, “한국은 지옥”이라는 표현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그래픽 중앙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입니다. 일베 이용자들이 파악한 한국이 지옥같은 이유는 크게 네 갈래로 제시됐습니다. 짙은 청색 그륩의 중심어는 ‘미개’입니다. “헬조선의 미개한 국민들”, “헬조선의 쓰레기 같은 국민성”이라는 표현이 눈에 띄었습니다. ‘주입식 교육’, ‘한줄서기 교육’ 등이 그 이유로 제시됐습니다. 또한 “군대에 끌려가고 결혼하기 힘들고 노예같이 일해서 여자에게 갖다 바치는 삶”을 “헬조선 남자들의 삶”으로 표현했니다. ‘회색’ 그룹은 트위터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모습입니다. 다음은 일베에서 실제로 쓰이는 예문입니다.

 

“나라가 망하지는 않고, 지저분하고,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시궁창 사회가 되어간다 애당초 박정희 경제개발이 국민성, 질서의식, 합리성을 가르치지 않은 것에서 기인한다 (중략) 그런 국민들의 수준, 민도를 개선하지 않고 경제만 성장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허영심과 탐욕은 밑도 끝도 없이 올라간 것이다 지금의 독신자, 만혼 증가가 바로 박정희 경제개발 때 높아진 눈높이를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취직을 기피하는 것 역시 내일이면 더 좋은 일자리가 있는데 이런 일을 왜 하냐 이런 심보다 결국 국민들의 눈높이도 어떻게든 낮춰야 된다 현실에 맞게.”

 

일베는 흔히 극우사이트라고 생각하지만 ‘애국심’에 대한 반발도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애국심이 누굴 위한것 같냐? 베충이들아..나라가 망할때 가장 피해보는것은 기득권 세력들이다.그래서 너희들에게 주입하는거다. 애국심을 가져라 국가에 충성해라”(일베) 김학준 연구원은 “일베가 원하는 것은 질서이지 애국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취업문제도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취업은 불가능하다”는 좌절이 압도적입니다. 뒤이어 볼 트위터와 겹치는 부분이자 차이가 극명한 대목입니다.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는 밝은 청색으로 표현한 “헬조선을 탈출해야 한다”는 문장이었습니다. 트위터에서 본 ‘헬조선’ 의미망 분석 결과입니다.

 


그래픽/아르스프락시아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일베와 비슷합니다. ’한국은 지옥같은 나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개’, ‘국민성’이라는 단어가 나왔지만 ‘미개하다’고 생각하는 것의 내용은 다릅니다. “성차별을 하지 말랬더니 성차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내서 성역할을 더욱 확고히 하다니...사슥아(역시) 헬조선”, “고대문명국가 노예의 삶이 헬조선 국민보다 더 행복하지않을가 짐작해봅니다” 등 각종 차별이나 무시당하고도 가만히 있는 삶에 대한 조롱이 나타났습니다. 일베와 마찬가지로 “시민의식이 문제”라는 표현도 보이는데 표현이 부드럽고 빈도는 덜합니다.

 

트위터에서도 일베와 마찬가지로 청년·취업문제가 헬조선의 핵심문제로 인식됩니다. 연두색으로 표시된 부분입니다. 일베와 다른 점은 ‘내가 못한다’, ‘내가 불가능하다’는 개인적 좌절보다 ‘대기업’, ‘채용정책’, ‘최저임금’ 등 구조 문제에 불만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김학준 연구원은 “헬조선에서 비롯되는 문제에 대해 일베는 ‘내 탓’과 ‘구조 탓’이 섞여 있는 반면, 트위터는 ‘구조 탓’을 지목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분석했습니다. 청년들이 말한 ‘지옥같은 노동’, ‘노예같은 삶’의 현실입니다. 취업이 안 되는 것도 문제지만, 취업을 하고 나서도 문제라는 절망감이 드러났습니다.

 

[커버스토리] 헬조선에 태어나 노오오오오오력이 필요해

 

“서울 강남구의 대형 피트니스 클럽에서 6개월 간 일하다 그만뒀어요. 헬스장 보면 3개월에 9만9000원,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회원 모집하잖아요. 그래놓고 부족한 부분은 트레이너(운동강사)들이 P,T(개인운동교습) 영업을 해서 메우라고 강요합니다. 손님이 오면 무조건 수십~수백만원 PT계약을 팔고 봐요. 오전 6시에 출근하면 오후 3시에 퇴근해야 하는데 잘 안 지켜져요. ‘P.T실적이 그 모양인데 어딜 퇴근해?’라는 거에요.

 

가장 괴로운 건 못해서 나만 혼나면 되는데 제가 할당량 못 채우면 팀 전체를 괴롭혀요. 여자 트레이너 같은 경우는 손님이 안 끊기기 위해 스피닝(자전거타기)을 무리하게 하다가 자기 무릎이 나가는 경우도 많아요. 저는 영업을 못해서 다른 팀원들에게도, 손님들에게도 미안해서 계약기간만 억지로 채우고 그만뒀습니다.”(전직 트레이너 윤00)

 

“광고회사에서 광고주는 무조건 ‘갑’이에요. 광고주는 회사 사정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이날까지 해와’라고 날짜를 줘요. 광고주가 요구한 날짜를 맞추기 위해 한 주 내내 새벽 2~3시에 퇴근한 적도 있고, 한 달에 딱 이틀 쉰 적도 있어요. 막내 때는 더 그래요. 후배가 들어오면 지옥같은 근무패턴에서 좀 벗어나죠. 대신 걔가 뒤집어쓰는 것이고.” (광고회사 직원 최00)

 

 ■ ‘헬조선’의 또 다른 모습 ‘노오력’

 

‘헬조선’보다 많이 쓰이는 말이 있다. ‘노오력’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어린이날 행사에서 한 말 때문이었다. 박 대통령은 “나라가 발전하고, 국민이 편안하게 살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하다가 대통령까지 됐다”며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고 말한 게 유행의 계기였다. 누리꾼들은 “내가 힘든 이유는 온 우주가 감동할 만큼 노오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응수했다. 구조적 문제를 도외시하고 “노력하면 된다”는 메시지를 전파하는 것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 것이다.

 

[커버스토리] 헬조선에 태어나 노오오오오오력이 필요해

 

김학준 연구원은 "같은 시기 유행한 '헬조선’과 ‘노오력’은 자웅동체(암수한몸)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유행하는 패턴과 일베·트위터에서의 반응이 유사하다”고 분석합니다. 2015년 8월 시점에서 ‘헬조선’이 ‘갓본’(god+일본)과 세트로 돌아다니는 것보다 ‘헬조선’과 ‘노오력’이 세트로 돌아다니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고 합니다. 데이터로 측정해봤습니다. 데이터를 8월 중순까지 집계해 표는 7월까지의 결과로만 만들어봤습니다.

 


집계/아르스프락시아

 

트위터에선 ‘노오력’ 역시 5월을 기점으로 게시글이 2배로 늘어났습니다. 일베에서는 7월 들어 ‘헬조선’의 사용빈도는 줄어도 ‘노오력’은 더 증가하는 모양새를 보였습니다. ‘노오력’의 변주인 ‘노오오오력’, ‘노오오오오오력’ 등은 수집에서 제외돼 실제 용례는 더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트위터와 일베 모두 ‘헬조선’과 ‘노오력’의 사용빈도가 많아지는 패턴이 비슷합니다.


집계/아르프 프락시아

 

트위터에서 ‘노오력’을 키워드로 진행한 의미망 분석 결과입니다.

 


그래픽/아르스프락시아

 

“노오력이 부족해”라는 표현이 압도적으로 많이 쓰였습니다. 짙은 청색으로 분류된 부분입니다. ‘진짜 노력이 부족하다’는 자책이라기보다 풍자에 더 가깝습니다. “내가 감기에 걸린 것은 노오력이 부족한 탓”, “금수저로 태어나려는 노오력이 부족했다” 등이 대표적입니다. ‘금수저’란 표현이 등장했습니다. “금수저요? 부모 도움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금수저죠. 제가 볼 때 현대차 다니는 부모를 둔 사람들도 금수저에요.”(대학생 김현곤), “불로소득이 가능한 사람들이죠. 건물주 같은”(대학생 이태경)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등장합니다.

 

트위터에서는 ‘헬조선’을 키워드로 했을 때도, ‘노오력’을 했을 때도 청년문제와 관련한 유사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트위터 이용자들은 취업·일자리분야야말로 부당한 ‘노오력’이 강요받는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창>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대화를 하는데, 역시 아버지도 기성세대이시긴 했다. 최저임금 얘기를 하자 저런 알바를 하지 않게끔 노오력을 하라고 말 하신다.”(트위터) 일베에서 ‘노오력’을 키워드로 의미망분석한 결과입니다.

 


그래픽/아르스프락시아

 

트위터와 마찬가지로 “금수저로 태어나려는 노오력이 부족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노오력이 중요해”, “노오력은 가능하다”는 긍정인지 부정인지 알쏭달쏭한 표현도 등장합니다. 전반적으로는 노력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불만이 읽혔지만 ‘내가 노력하는 것 외에 답이 없다’는 체념적 정서가 트위터와 달리 두드러졌습니다. “공부를 못했으니 노오력이 필요해”, “흙수저 인생은 노오력이라도 해야 한다”, “대기업 들어가려면 노오력해야 해”, “학점 잘 받으려면 노오력 해야 해”라는 문장들을 노란색으로 엮었습니다. “알바·노가다 인생은 노오력이라도 해야 한다”는 자조와 체념은 밝은 청색으로 엮었습니다. 트위터에서는 ‘노오력’에서 ‘헬조선’과 ‘죽창’으로 이어지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일베에서 등장한 다음 게시글에서는 ‘공부’ 밖에 답이 없는 사회에서 ‘노력’으로 공부 잘 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좌절이 드러납니다. 비속어는 일부 순화했습니다. “ㄹㅇ(레알, 진짜) 공부잘하는 법. 1. 금수저로 태어나기. 이게 제일 중요. 2. 어머니 머리가 상타취(평균이상)일 것. 자식 머리는 어머니에게서 물려받는다. 3. 부모가 상위권 인서울 파워엘리트일 것”

 

■‘ 노오력이 필요한 헬조선’ 인식은 비슷하지만

 

 
그래픽/경향신문

 

경향신문 그래픽팀에서 제작한 일베와 트위터에서 나타난 ‘헬조선’ 의미망 분석을 합친 그래픽입니다. ‘탈출’, ‘청년(취직)’, ‘미개’가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청년’ 문제에 비해 ‘미개’ 부분은 화살표가 어지럽습니다. 정확하게 정리되지 않고 자신이 불만을 느끼는 영역에 대해 “미개하다”고 뭉뚱그려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젊은이라고 누구나 ‘헬조선’, ‘미개’ 등의 표현을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학생 황성만씨(22)는 “헬조선은 자기 마음에 안 드는 모든 대상을 싸잡아 부르는 말로도 쓰인다.

 

사회문제의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지 않고, ‘어차피 헬조선은 안 돼’라고 냉소하는 데서 끝나서 이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동갑내기 대학생 이태경씨(22)는 “학교다닐 적 성적이 떨어지면 다짜고짜 팼다. 기독교 계열 학교라서 강제로 예배를 보는데 ‘김상곤 교육감은 사탄’ 따위의 말이 학교 주임목사 입에서 나온다. 학부에서 전문대학원 진학자가 많아지니까 대학원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학점을 짜게 준다. 이런 걸 ‘미개’ 외에 어떤 표현으로 써야 할 지 모르겠다”며 “미개한 시스템과 국민성이 ‘헬조선’의 핵심”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픽 / 경향신문

 

청년층의 취업문제와 노동문제가 심각하다는 점, 구조적 문제를 도외시하고 노력만 강요하는 것에 대한 불만과 개개인의 노력으로 현재 처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없다는 절망감 역시 트위터·일베 이용자들 간에 공통적으로 드러났습니다. 반응은 상반됐습니다. 트위터에서는 ‘죽창을 달라’고 응수하고, 일베에서는 ‘내 책임’이 두드러집니다.

 

박모씨(31)는 택배일을 하며 군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박씨의 아버지는 막노동 일을 했고, 가게를 하던 어머니는 폐업했다. 지방대 출신인 그를 받아주는 곳은 군 조직뿐이었다. 부사관으로 자원입대해 4년간 모은 돈으로 등록금 빚을 갚고, 어머니의 전세금을 대고 나니 남는 것이 없었다. 박씨는 “이게 다 학교 다닐 때 공부 못한 탓이다. 부모님은 누가 모시나. 결국 내가 노력해야지”라고 말했다.

“죽창요? ‘금수저’들이 연애 자랑, 여행 자랑, 자기 뭐 먹은 거, 자동차 산 거 자랑하면 ‘그래 봤자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 죽창 앞에서는 다 평등하다’고 댓글 달아요. ‘네까짓 게 금수저라고 아무리 잘난 척해도 죽창 앞에서는 너나 나나 한방에 나가 죽는 평등한 존재’라고 말해주는 것인데 속이 시원해지죠.”


[커버스토리] 헬조선에 태어나 노오력이 필요해

 

■ 헬조선 답은 없을까?

 

동료 시민에 대한 분노 아니면 자기책임 혹은 정말 나라를 뜨는 것 외에 ‘헬조선’의 탈출구는 없는 것일까요? 사회학 연구자 류연미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박정희 정권 때 경제적 부흥이나 1980년대 정치적 변혁 때처럼 많은 국민들이 같은 열망을 공유하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IMF 외환위기 전후 한국사회는 자기계발과 경쟁을 통해 각자 알아서 살길을 찾아 노력하라(각자도생)고 주문했고, 각자도생으로 사회는 기능적으로 유지됐습니다.

 

하지만 지금 많은 사람들이 ‘헬조선’, 즉 ‘한국사회가 지옥같다’고 말하게 된 것은 이제 각자도생마저도 불가능하며 그것이 나의 노력의 부족이 아니라 이 국가의 구조적 문제라는 인식까지 도달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하지만 이 지경까지 오게 된 요인이 너무나 촘촘하고 견고해서 어떤 대상을 잡아 이슈로 만들지조차 난망하다고 생각하게 된 사람들이 많다면, 여기에 저항하는 것 역시 손에 잡히지 않는 선택지일 것이고요. 저항 대상이 한국사회 전체가 됐을 때 구체적인 실천방식은 막막해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헬조선의 지옥 지도)

 

일본 히토쓰바시대학에서 사회학을 연구하는 박지원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한국의 청년들과 일본의 청년들을 너무 쉽게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만 처한 여건이 완전히 다릅니다. 가령 ‘사토리(득도)세대’는 조직사회에 들어가기 거부하며 자본주의적 삶이나 일본 특유의 전통적 위계질서에 대해 소극적으로 저항합니다. 일본의 청년들은 조직사회 밖에서 개인의 생계와 욕망은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한국의 청년들은 불가능합니다. 최선을 다해도 욕망은커녕 자기 생계를 해결하기도 버겁습니다. 헬조선의 문제는 체제 밖의 ‘다양한 삶’이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그것부터 해결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해요.

 

헬조선과 케이블채널의 힙합 오디션을 내건 방송 <쇼미더머니>를 비교해서 지적한 대학생도 있었습니다. 아마추어 랩퍼이기도 한 이경준씨는 “고생 대결을 하자는 게 아니라 미래에 대한 요구로 보라”고 말했습니다.

“기성세대와 고생경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에요. 기성세대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다 알죠. 그렇지만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는 거에요. 취미로 랩을 하는데 <쇼미더머니> 보면 그거야말로 헬조선의 축소판이죠. 힙합에 대해 모르는 방송국 몇몇 사람들이 권력을 쥐고 지들 입맛대로 말도 안 되는 기준 만들어 강요하는데 젊은 래퍼들이 그 안에 들려고 죽자사자 노오오오오오오오력하잖아요.

 

그 바깥은 아예 없으니까. 한국의 인디 씬이 완전 망했으니까. 그러니 좌절부터 드는거죠. 가장 자유롭다는 문화영역조차 누군가 다 장악해버리고 그 안에서 굴러가버리고 밖에서는 생존할 수 없다는 거. ‘헬조선’이란 ‘우리가 제일 고생한다’는 게 아니라 이런 판을 말하는 거에요. 이 시스템에서 래퍼들은 개인별로 봐도 미래가 없고, 한국의 문화 자체가 망하는 거죠.”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헬조선외전 ②]
노오력은 왜 불가능한가?

[경향신문] 입력 2015-09-19 10:26:18ㅣ수정 2015-09-22 10:29:25  


‘노오력’은 ‘한국에 사는 젊은이로서 더 이상의 노력은 불가능하다’는 비아냥을 담은 표현입니다. 노력은 왜 불가능한지, 경향신문 2015년 9월5일자 커버스토리 ‘헬조선에 태어나 노오력이 필요해’ 기사에 수록한 관련 내용 및 기사에 담지 못한 인터뷰, 통계자료, 청년 취업문제를 다룬 주간경향의 기사를 토대로 구성했습니다. 취재과정에서 느낀 감상과 후일담도 ▶표시 뒤에 적었습니다.

 


[사진] 서울 대치동 어린이들이 학원을 마친뒤 버스에 오르고 있다. /김기남 기자


1. 노력에도 유리한 사람들이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사는 양기혁씨(29·가명)는 대학 졸업 후 아버지 친구로부터 “어렵게 취업 준비하지 말고 아무 교육대학원에나 진학해서 학위만 따오면 ‘우리 학교’에 꽂아주겠다”는 말을 들었다. 아버지 친구는 경북 지역 사립학교 이사장이며 그의 자녀들은 모두 해당 학교에서 근무한다. 양씨의 조부·외조부는 모두 은행장 출신이고, 아버지 친구와 친·인척 중에는 정·관계 요직에 있는 사람이 즐비하다. 양씨는 고등학교에 가서 공부에 흥미를 잃었지만 중학교 때까지 사교육으로 선행학습한 내용으로 버티며 수도권의 4년제 대학에 진학했다. 아버지는 “어느 학교에 진학하든 앞으로는 중국이 뜨니까 중국 관련학과에 진학하면 취업은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양씨는 대기업 해외 주재원으로 근무한 아버지 덕에 해외경험도 풍부하게 할 수 있었다.

 


[사진] 서울 대치동의 한 어학원에 내걸린 여름방학 특강 안내 /김기남 기자


한국개발연구원(KDI) 김영철 연구위원이 2007년 신규취업자 6753명을 대상으로 한 분석을 보면 한국에서 인맥에 의한 채용빈도는 60%에 달한다. 생애 첫 취업자는 39.9%, 경력직은 60.1%, 전체 56.40%로 집계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비교를 보면 “믿을 만한 친척이나 지인이 있다”는 응답 비율은 고졸(41.6%)이 대졸(81.8%)의 절반 수준이다. OECD 국가 중 가장 격차가 크다. 김희삼 KDI 연구위원은 이 국제비교 자료에 대해 “인맥에 의한 구직비율은 미국에서도 50%에 달하지만, 학력에 따라 사회적 네트워크 격차가 크게 나타나는 것은 한국에서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도표] 김희삼 KDI 연구위원, <사회이동성 복원을 위한 교육정책의 방향> . 왼쪽은 한국의 40~60대 남성을 중심으로 부자 간 교육·소득의 대물림 정도를 아버지 세대와 본인 세대, 본인의 자녀 세대 간 비교했다. 부자 간 교육·소득 대물림 정도가 다시 이전 세대만큼 심화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오른쪽은 “믿을 만한 친척이나 지인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의 OECD 국가 간 비교


▶ 양기혁씨는 아버지 친구의 제안을 거절하고 중국어 실력 등을 살려 다른 곳에 취직해 인턴사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사범대에서 4년 동안 성실하게 공부한 사람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정규직 교사를 뽑지 않아 기간제 교사 자리도 어렵게 구하는데 ‘학위만 따오면’ 교직을 줄 수 있다는 사학재단 이사장이 존재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입니다. 서양에서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는 표현이 있습니다. 부모 덕을 보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데, 한국 청년층 사이에 ‘은수저’도 모자라 ‘금수저’란 표현이 등장한 것은 이러한 현실과 무관치 않습니다.


2. 정상적인 노력을 요구하는가?

 


[사진] 2014년 11월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의 블랙기업 선포식 /김정근기자


전직 피트니스 클럽 트레이너(운동강사) 윤소림씨(28)는 서울 강남구의 대형 피트니스 클럽에서 6개월간 일했다. 오전 6시에 출근하면 오후 3시에 퇴근해야 하는데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P.T(개인운동교습)계약 실적을 채우지 못해서였다. “3개월에 9만9000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에 회원을 받아놓고, 트레이너에게 회원을 상대로 수십만~수백만원짜리 개인운동 교습권을 강매하게 해요. 제가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팀 전체를 괴롭혀서 그만뒀어요. 무조건 비싼 코스의 P.T부터 권하게 되서 손님들에게도 미안했고요. 여자 트레이너 중에는 실적을 채우려고 무리하다가 무릎이 나가는 경우도 많았어요. 다른 사람의 건강을 챙겨주는 사람들이 정작 자기 건강은 망치는 경우가 많아요.”

 

소규모 사무실에서 일하는 디자이너 강수정씨(26)는 휴일에도 사장이 부르면 달려 나갔다. “여기서 열심히 하면 키워주겠다”는 말 때문이었다. 강씨는 “속았다. 1년만 채우고 주 5일 하는 업체로 옮길 것”이라고 말했다. 실업급여도 못 받고, ‘한 직장에 오래 버티지 못하는 근성 없는 젊은이’로 낙인찍히기 때문에 당장 그만둘 순 없다.

 

▶ 임대료만 수백만원대인 서울 강남에서 회원 1명당 한 달에 3만3000원의 회비를 받아서는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고객을 모집하기 위해 이용료는 비정상적으로 책정해놓고 손실을 메우는 일은 ‘트레이너’들에게 떠넘겨지고 있습니다. ‘주5일제’와 같이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지키기 위해 부당함을 버티는 노력을 하는 젊은이도 있습니다. 이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노력일까요, 노동부의 엄격한 근로감독과 실업급여 수급조건 완화일까요. 강씨를 위해 지역 혹은 중앙정부는 어떤 노력을 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도표] 2013년 OECD 연평균 근로시간 비교. 한국은 전체 대상국 중 2위를 차지했다./경향신문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 도저히 가족과 지낼 시간이 없어요. 비유하자면 삼성은 10명 일할 상황에 12명을 뽑아서 사람을 죽도록 괴롭힌 뒤 2명을 자르는 시스템이고, 현대는 10명 일할 상황에 8명을 뽑아서 죽도록 일하는 시스템이에요. 이게 한국에서 제일 좋은 직장이라죠.” (토목업계 종사자 정00)

 

 ▶ ‘노력’ 강요에 대기업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죽도록 노력해서 소위 ’좋은 직장’에 취직했는데도 ‘비정상적’ 상황을 맞닥뜨린 청년들의 ‘허탈감’과 ‘분노’도 강렬했습니다. ’금수저’로 태어나지 않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려면 소위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합니다. ‘좋은 대학’을 가기까지 필요한 노력의 이야기도 들어보았습니다.


 

[사진] 2015년 8월 자기소개서 설명회에 참석한 고등학생들/정지윤기자


대학생 황성만씨(22)는 고교시절 대학 수시전형 응시를 앞두고 이범 당시 서울시교육청 정책보좌관에게 서면 인터뷰 메일을 보낸 적 있다. 그는 일면식도 없는 한겨레 교육담당 기자, KDI 연구원에게도 메일을 보낸 적 있다고 했다. 황씨는 “교육에 관심이 있고 사범대에 진학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어떤 분야에 관심이 생기면 ‘해당 분야의 일면식도 없는 전문가를 찾아가 매달릴 정도의 열정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호기심 많고 창의적이고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인재가 돼야 한다’는 가치관을 내면화해 스스로의 열정을 키우고 입증하려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유명인에게 메일을 보내는 것은 경기 안산의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그가 자신의 열정을 확인하는 몇 안 되는 방법 중 하나였다. 그는 서울대 수시모집에 낙방했지만 원래 가려던 학과에 정시모집으로 합격했다. 황씨는 “성과세대라고 해야 할까, 어릴 때부터 자기소개서 엄청 써 봤다. 매사의 열정이나 감정, 호기심 꼭 성과로 연결지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포장하고 홍보하는데 익숙한 사람이 되고 만다”며 “대학에 와서 동아리 회장을 맡으니 모르는 고교생에게 메일이 왔다. 나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진취성을 입증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 황씨는 고교 3년 동안 내신 관리·자기소개서·수능·구술면접 준비 및 입시동향 분석을 병행해야 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성과정신(자신을 입증해야 하는 정신)을 충실히 내면화하고 있는 거 같다”고 합니다. ‘수시’와 ‘정시’ 중 어느 전형이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각 전형의 존재 이유와 장점이 있습니다. ‘3당4락’이란 말에서 보이듯, 학력고사로 줄 세우는 방식의 입시제도에서도 수험생들은 비정상적 노력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대학 진학제도 역시 고교생이 감당하기 어려운 새로운 형태의 비정상적 노력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도표] 출처:김희삼 KDI 연구위원, <사회이동성 복원을 위한 교육정책의 방향>

 

3. 노력을 안 해서 문제인가?

 


[사진] 서울시내 한 편의점에서 일 하는 청년/강윤중기자

 

대학생 김현곤씨(19)는 1996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났다. 김씨의 아버지는 일본까지 가서 신농법을 배워올 정도로 의욕 넘치는 영농인이었다. 지금도 새벽 3시면 일어나 밤 11시에 일터에서 돌아온다. 하지만 여느 농촌처럼 김씨의 고향마을도 점점 더 가난해졌다. 황폐한 마을주민들의 심리를 악용한 대출사기, 도박, 다단계 열풍이 차례로 지나가면서 가정이 깨지고 가족들은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교육열’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김씨도 중학생 때부터 방학이면 인근 공장에서 시급 2500원을 받고 조립 아르바이트를 했다. 고교 동급생 13명 중 4명만 4년제 대학에 갔다. 간신히 대학에는 갔지만 홀로 벌어 객지 생활하는 김씨는 문화생활은 꿈도 못 꾼다. 김씨는 “나나 아버지나 친구들이나 대부분 너무 노력하고 있다. ‘1시간 덜 자고 노력하라’고 하는데, 여기서 1시간 덜 자면 죽는다”고 말했다.

 

▶ 김현곤씨의 아버지는 약 1만8000㎡(6000평)의 땅을 빌려 사과와 브로콜리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농업으로 벌어들인 대부분 소득은 빚 갚는데 나가고 기초생활수급지원을 받으며 94세 노모를 봉양하고 있습니다. 늘 “내가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며 묵묵하게 일만 하던 아버지는 몇주 전 공황장애가 와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김씨도 몸이 아파 최근 병원에서 링거주사를 맞았습니다.

 


[사진] 방학 증 학교 도서관에서 인터넷 강의를 듣는 대학생들/김기남기자


한국 청년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지적 능력과 경력을 겸비한 우수한 인력이다. 자화자찬이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보고서에 따르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및 직업교육을 이수한 25∼34세 청년 비율은 한국이 67.1%로 조사 대상국 가운데 1위였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도 한국 학생은 수리능력 1위, 읽기 등 문장 이해능력에서는 2위를 차지했다. 한국의 15세에서 29세까지 청년층 중 ‘직업이 있는 집단’과 ‘구직·직업훈련·교육에 참여하지 않는 집단(NEET·니트)’ 간 능력치의 차이는 1% 이하로 가장 낮았다. OECD 평균은 6%대로 직업이 있는 집단의 능력이 니트 집단에 비해 높았다. 바꿔 말하면 한국 청년은 일자리를 잡는 데 성공했건 실패했건 능력은 거의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나다는 말이 된다.(▶[주간경향] 당신이 못나서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 한국에서는 청년니트와 구직자들의 능력치가 1%밖에 차이나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유능한 청년들이 취업시장에서 두텁게 대기하고 있으니, 일자리를 못 구한 청년들에게는 ”좀 더 노력하라”고 말하면서 일자리가 있는 청년들에게는 “너 말고도 일할 사람 많다. 싫으면 나가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4. 노력하면 들어주는가?

 

김현곤씨는 대학에 입학한 뒤 학내신문사에 들어갔다. 장학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지만, 학내신문 기자가 된 이상 최선을 다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불평만 할 뿐 저항하지 않는 청년’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학내언론 생활은 쉽지 않았다. 의외의 난관에 부딛쳤다. 한 과에서 관행적으로 대물림되던 선배들의 폭력을 후배들이 고발해 이를 대서특필하자 학교 측과 마찰을 빚었다. 보도가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는 이유에서였다. 학교 측은 신문 발행에 필요한 예산을 줄이고 행정절차를 차일피일 미루며 압박했다. 기자들이 떠나고 1학년인 김씨 혼자서 신문사를 떠맡는 사태까지 내몰렸다. 김씨는 ‘헬조선’의 의미에 대해 “왕조 같은 권위를 지닌 자가 군림하고, 개인은 노예로 사는 삶을 택하는 ‘시대정신’을 표현한 말”이라고 해석했다.

 

 

 

[사진] 서울여대 학보사 기자들이 졸업생들의 청소노동자 파업지지 성명을 1면에 실으려 했으나 주간교수가 반대해, 항의표시로 1면을 백지로 발행했다. 2015.5.27 /김정근 기자


대학생 이태경씨(22·가명)는 고교 시절 모의고사 성적이 떨어지면 매를 맞았다. “나도 삽으로 300대씩 맞고 사람 됐다”는 동문 출신의 기숙사 사감 말에 질겁했다. 학교를 옮겼다. 새 학교엔 ‘연애금지’, ‘강제 0교시’ 등의 교칙이 있었다. 공부를 잘하면 교칙을 어겨도 처벌받지 않았다. 교칙이 부당하다고 생각한 이씨는 김상곤 경기 교육감이 ‘학생인권조례’를 발표하자 학내에 이를 적용해보려 애썼다. “말이 안 통해요. 학생·교사·학부모로 구성된 자리에서 ‘두발제한 규정을 풀어줬으면 좋겠습니다’, ‘교복도 없애지 그래?’ ‘무작정 교칙을 바꾸자는 것이 아닙니다. 옷값 부담을 덜고 학생 간 위화감을 없애준다는 점에서 교복에는 찬성합니다. 하지만 두발제한은 자유를 지나치게 막는 것에 비해 장점이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너희는 참 이기적이구나’, ‘두발제한 완화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데 왜 이기적이라는 건가요?’, ‘됐어. 교복도 없애지 그래’ 이런 대화의 무한반복이었습니다. 기독교계 학교라 예배시간이 있었는데 목사가 ‘사탄 김상곤’이란 말을 공공연히 했습니다. 비인권적인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은 그냥 개인이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 돼 탈출하는 것뿐이었습니다.”

 

▶ 청년들이 진학이나 취업을 위해서 뿐 아니라 자기가 속한 공동체를 나아지게 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학내언론, 학생회, 학생인권조례 등 주어진 제도를 활용해 저항을 시도했지만 가로막혔습니다. 사립학교법이 재개정을 거쳐 통과된 이후의 일입니다.


5. 노오오오오오오력하라는 사회, 그 결과는?

 

‘노력강요’에 지친 청년들의 반응은 대체로 다음 세 갈래로 나타났습니다. 각각에 해당하더라도 ‘한국사회가 좋아졌으면 좋겠고 나도 역할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에는 “막막하다”, “안 될 거 같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사진] 2015년 3월 코엑스 이민 및 해외유학 박람회 /김기남 기자


① 탈 출

연세대에서 석사과정까지 공부한 차은경씨(가명)는 방송통신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며 캐나다 이민을 알아보고 있다. 유치원 교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캐나다에 ‘취업이민’을 지원할 수 있다. 차씨는 “남편이 제 명에 못 살 거 같아 이민을 생각해봤다”고 말했다. 차씨 남편은 명문대를 졸업한 대기업 직원이다. 일주일에 적어도 4일은 오전 6시에 출근해 밤 12시에 돌아온다. 토요일에도 출근한다. 2012년 업계 전체의 실적이 나빠진 뒤 ‘최선을 다 하고 있다’는 것을 위에다 보여주기 위한 면피성 근무다. “대기업은 그래도 주말근무·야근 수당이라도 받지 않느냐”며 부러워하는 친구들에게 고민을 토로할 수도 없었다. 차씨의 집 근처 유치원 정문엔 ‘○○○어린이 한자급수 합격’이라고 쓴 현수막이 걸려 있다. 동네에서 가외 학습을 가장 덜 시키는 유치원이 이 정도다. 아들 대에서 반복될 교육경쟁 역시 그가 보기엔 ‘지옥’이다. 차씨는 “어릴 적에는 ‘공부하라’는 말만 믿었는데, 그 결과가 죽어라 일하기만 하는 삶이라면, 나는 내 아들에게 뭐라고 교육시켜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한국에서 ‘공부하지 말고 하고 싶은대로 살아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 취재과정에서 만난 많은 젊은이들이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이민을 시도할 수 있는 사람은 명문대에서 주로 공학 계열을 전공하고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들뿐이었습니다. 차씨 부부도 실제로 이민을 갈 수 있을지 여부를 알 수 없습니다. 이민 ‘스터디’까지 가 봤지만 뾰족한 방법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어느 취재원은 “그저 어느 곳에서든 비참하다면 사람들이 날 모르는 곳에서 비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차씨는 떠나지 못한다면 유치원 교사로 일하면서 “내 자식 뿐 아니라 남의 자식의 교육에도 힘써서 그나마 이 사회가 나아지는데 기여하고 싶다”고 했지만 “아들이 받을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한숨 나온다”고 말했다.

 

[사진] 죽창으로 서로 찌르는 상상을 구호화한 온라인 현수막/헬조선닷컴


② 상호 증오

이태경씨(가명)는 “이십년 남짓 살면서 한국사회가 함께 사는 공동체란 걸 경험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가 보기엔 ‘미개한 국민성’과 ‘후진 시스템’ 때문이다. 이씨는 수도권의 한 공업도시에서 자랐다. 중학교 때 공부에 두각을 보이자 비슷한 형편의 이웃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서울 대치동까지 2시간 넘게 걸려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자 “실력도 없는데 과학고 준비한다”란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과학고에 낙방하자 “고소하다”는 듯한 시선이 날아왔다. 또래가 아니라 어른들이 그랬다. 서울대에 합격하자 확인전화가 오더니 몇몇 이웃들은 연락이 두절됐다. 이씨는 “사람들이 미개한 건 맞는데, 그들의 미개함 역시 구조의 탓 아니겠느냐. 그런데 도무지 개선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수십년간 그런 상태로 살았을 텐데”라고 한숨을 쉬었다.

 

▶ 이웃 주민들은 왜 그랬을까요? 예전 농촌에서 누군가 명문대 진학하거나 고등고시에 합격했다면 현수막이 붙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이씨가 무엇이 되든 격차만 벌어질 뿐 이씨가 살던 동네가 달라지진 않을 것입니다. 이웃 간의 정을 운운하기에는 각자가 살기 너무 팍팍한 걸까요. 주민들의 질시는 개천에서 용이 나오더라도 용 혼자 개천을 탈출해버릴 뿐 개천은 낙후한 상태로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죽창’이란 말은 스누라이프(서울대 학내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봤어요. ‘금수저’들이 연애 자랑, 여행 자랑, 자기 뭐 먹은 거, 자동차 산 거 자랑하면 ‘그래 봤자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 죽창 앞에서는 다 평등하다’고 댓글 달아요. ‘네까짓 게 금수저라고 아무리 잘난 척해도 죽창 앞에서는 너나 나나 한방에 나가 죽는 똑같은 존재’라고 말해주는 것인데 속이 시원해지죠.”

 

▶ 대학에 간 이씨는 ‘금수저’들에게 박탈감을 느끼며 또 다시 좌절을 맛봤습니다. 학내게시판의 댓글을 보며 ‘죽창으로 찌르는 상상’만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알고 보면 다들 똑같은 사람인데’란 사실을 새삼 깨달을 뿐이라 합니다.

 

③ 짓눌린 개인


일러스트/경향신문

 

박모씨(31)는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자원입대했다. 박씨의 아버지는 건설회사를 다녔지만 2000년 전후로 회사가 부도가 나 막노동 일을 해 왔다. 어머니는 가게를 하다 최근 폐업했다. 안정적으로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주는 조직 중에서 지방대 출신인 그를 받아주는 곳은 군뿐이었다. 군에서도 학사장교는 서울 4년제 대졸자들의 몫이었다. 그는 부사관으로 4년간 복무하며 돈을 모아 제대했다. 등록금 빚을 갚고, 부모님이 사는 집 전세금 인상분을 대고 나니 남는 것이 없었다. 박씨는 “등록금 융자 갚은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나도 영어 잘 했으면 다른 직업을 알아보거나 해외라도 갈 수 있었을 텐데. 이게 다 학교 다닐 때 공부 못한 탓이다. 이제 와서 공부 할 수도 없다. 부모님은 누가 모시나. 결국 내가 어떻게든 노력해야지”라고 말했다. 그는 택배일을 하면서 기능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직종에 따라 영어시험은 안 보는 곳도 있더라”고 말했다.

 

 ▶ 4년 동안 군에서 부사관 역할을 해 내며 등록금 빚을 갚고 집 전세금을 댈 만큼 돈을 모아 제대할 정도로 성실한 사람에게 “노력하지 않아서 힘들게 산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요. 택배일을 하면서 겸사겸사 공부하는 박씨는 ‘노력하지 않은 사람’일까요. 택배일로 충분히 대우받으며 먹고 살 수 있는 사회라면 박씨가 “노력이 부족하다”고 자책하면서 이직준비를 했을까요.

 

▶ 직접 들은 말이 아니라 전해 들은 말이라 기사에 수록하지 못한 내용도 있습니다. 기사체로 옮깁니다.

강원 춘천에 있는 어느 대학 교수가 말했다. “우리학교 학생들이 입학할 때부터 ‘지잡대(지방대학을 비하하는 말)’라며 기죽어 있어서 대체 어느 정도 수준인가 입학생들의 수능점수를 확인해봤다. 전체 수험생 중 상위 20%이더라. ‘우리나라는 망했구나’라고 생각했다. 상위 20%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자리조차 없고, 이들마저도 스스로 패배자라고 여기며 짓눌려 살아야 하는 나라라면 미래는 없다.” <박은하 기자>


[헬조선외전 ③]
중국동포 발 관리사가 본 요즘 한국  

     
‘헬조선’ 취재를 하던 중에 중국동포 두명을 만났습니다. 이들에게 ‘헬조선’은 배부른 표현일까 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습니다. 한국의 ‘삶의 질’ 지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삶의 질’ 관련 지표는 나쁘지만 세계 평균 보단 부유하죠. 치안도 안정된 편이고, 각종 기반시설도 잘 갖춰진 편이죠. 한국에 일하러 오는 동포들에겐 ‘살기 좋은 나라’ 나라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죠.


“한국인들이 요즘 힘들어 보인다.”


‘살기 좋은 나라’입니다. 비판적 의미를 담은 말이라 해도 ‘헬조선’이란 표현은 배부른 표현인 걸까요? 서울 인근 도시에서 만난 중국동포 발 관리사 ㄱ씨와 중국어 강사 ㄴ씨는 “한국인들은 일을 너무 많이 한다”고 말합니다. “한국생활에 장점도, 부러운 점도 많다”는 말에는 동의했습니다. ‘코리언 드림’보다도 ‘가족과 함께 사는 삶’ 을 위해 한국에 건너온 본인들 또한 한국의 관행에 맞춰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음은 중국동포 발 관리사 ㄱ씨(40대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ㄱ씨는 최근에 정말로 몸이 아픈 사람이 많이 찾아와 안타깝다고 합니다.

 


[사진] 경향신문 자료사진

 

- 한국에는 언제쯤 어떻게 오게 됐나요?
“10년 전쯤 한국에 왔습니다. 저는 가족이 모두 한국에 와 있어서 자연스럽게 오게 됐습니다.”

-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무슨 일을 했나요?
“처음에는 식당에서 일했어요. 점심에 끊임없이 손님들이 밀려오는 거예요. 하루 종일 조금도 쉴 틈이 없이 일했어요. 밤에 끝나고 나니까 사장님이 ‘일 잘한다’고 5000원 더 주더라구요. ‘내일도 나오라’고요. 그거 쥐고 집에 가는데 왠지 서러워서 눈물이 막 쏟아졌어요. 집에 가서 펑펑 울었죠. 일주일을 아팠어요. 한국에서 10년 동안만 식당일만 한 사람이 있다던데 그 사람은 대체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다음에는 미싱 하는데 취업하기로 했어요. 중국에서도 미싱은 해 봤으니까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웬걸요. 한국 사람들 기계 같아요.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하는데 따라할 수가 없어요.”

- 중국에서 일 하는 것과 차이가 있어요?
“한국이 훨씬 힘들어요. 중국에서는 8시간 밖에 일 안 해요. 일 빨리 끝내면 쉬어요. 그리고 문화가 달라요. 가령 식당이라면 일 하다가 설거지감이 너무 쌓여서 힘들면 ‘쉬었다 좀 다시 하자’면서 알아서 쉬어요. 한국에서 식당에서 일할 때는 일이 없어도 사장 눈치 보여서 계속 뭔가 해야 해요.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어딘가 위축돼 있어요. 항상 조심조심해요. 중국인들이 너무 시끄러워서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도 몰라요. 중국에서는 옆에 누가 있어도 막 통화하니까.”

- 왜 발 관리사를 하게 됐나요?
“마사지가 좋은 게 내 기술 배워서 내 일 하는 거죠. 일 하고 있을 때는 아무도 뭐라 안 해요. 손님이 없으면 좀 쉬거나 밖에 나갔다 올 수도 있죠. 무엇보다도 마음이 편해요.”

- 발 관리사로서는 어떻게 일 하나요?
“일주일에 한 번 쉬고 오전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 일하는데 평일에는 하루 6번 정도 마사지를 하는 거 같아요. 그런데 80분 마사지 하고 또 연타로 80분을 하게 되면 너무너무 힘들어요. 쓰러질 거 같아요. 한 번 하면 한 만큼 쉬어야 하는데. 고객이 내는 요금의 절반 조금 못 되게 받아요.”

- 사는 건 어때요?
“오래 살다보니 한국이 더 친숙하죠. 얼마 전 중국 갔다 왔는데 오히려 중국이 더 불편한 것도 같고요. 인천공항 보니까 마음이 편했어요. 귀화도 고민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기계처럼 일하는 것은 여전히 따라 하기 쉽지 않아요. ‘한국은 작은 나라지만 이렇게 일하니까 잘 사는 건가’ 싶기도 하구요.”

- 한국에 온 10년 동안 어떤 변화를 느끼나요?
“몇년 사이 마사지 문화가 변했어요. 옛날에는 다 같이 즐기러 마사지 받으러 오는데, 지금은 다들 아파서 와요. 사람들이 몇년 사이에 참 힘들어졌구나 싶어요.”

 

다음은 중국동포 중국어 강사 ㄴ씨(30대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ㄴ씨는 학습지교사 생활을 하다 힘들어서 지금은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사진] 강사가 서울 한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특기적성 수업으로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한국에는 언제쯤 어떻게 왔나요? 한국에 오기 전에는 무슨 일을 했어요?
“2007년에 한국에 왔습니다. 1990년대 부모님이 한국에서 일하셨고요. 언니도 한국인과 결혼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가족과 함께 살려고 오게 됐습니다. 중국에서는 IT쪽을 전공했습니다.”

- 중국어 학습지교사로 출발하셨죠?
“원래 아이들을 좋아해서 학습지 회사에 들어가면 아이들을 가르칠 수도 있고 전공을 살려서 학습지 계발도 할 수 있다고 하여 들어왔습니다.”

- 학습지교사 생활은 만족스럽나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재미있어요. 하지만 쉴 틈이 없어요. 수업은 일주일에 40시간을 해요. 교재 연구시간과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을 합치면 60시간 가까이 일해요. 학생 사정을 따르다보니 토요일이나 일요일도 완전히 쉬는 날은 드물었어요. 토요일은 보통 하루 11시간가량 수업하고 일요일도 1~2시간이라도 항상 해왔죠. 월요일 오전은 사무실에서 교육 및 실적 포상을 해서 항상 비워야 하고. 누군가 갑자기 수업일정을 변경하면 한주 전체가 꼬여요. 그러다보니 제 몸이 안 좋아져서 요가라도 배우고 싶은데 시간이 없었어요. 아주 가끔 심야영화라도 보면 너무 행복했죠. 일주일에 수업은 30시간만 하면 참 좋겠는데 그렇게 못하게 해요. 사무실에서 시켜서 홍보전단지를 돌려야 할 때도 있었구요. 그래서 그만두고 프리랜서 강사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어요.”

- 교사 생활을 하며 놀랐던 점이 있다면?
“5~6살 꼬마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그 나이에 영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배운다는 점이 놀랐어요. 외고 준비하는 초등학생이랑 중학생도 많이 가르쳤어요. 다들 영어랑 같이 공부해요. 한국에서는 영어를 못 하면 중국어를 잘 해도 다른 일은 하기 힘듭니다. 저도 그래서 영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 한국 사람들의 생활은 어떤 거 같아요?
“너무 열심히 일해요. 제가 가르치는 한 분은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7시에 회사에 도착해 2시간 중국어 공부를 하고 9시부터 일을 해요. 시키기 않아도 그렇게 해요. 덩달아 저도 5시에 일어납니다. 부모님은 한국에서 가정관리사, 식당일 등을 해 봤는데 다들 너무 열심히 일한대요.”

- 한국인들의 삶에 부러운 점이 있다면?
“선거할 때. 2007년에 대통령 선거가 한창일 때 한국에 왔어요. 막 모르는 사람들이 나한테 인사하고 명함 주니까 ‘어머 이 사람들 왜 이래?’ 하고 너무 놀랐어요. 2012년에는 선거하는 모습이 너무 재밌어 보이고 부러웠습니다. 또 전세 제도가 있어서 중국보다 집값 부담이 덜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전세도 지금은 많이 올랐습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음악: Helloween - Gambling With The Devil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