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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청와대

[고려대 대자보] '김일성 만세'… '표현의 자유' 억압에 항의

잠용(潛蓉) 2015. 12. 11. 22:55

"김일성대학이냐" vs "표현의 자유 억압에 항의"
세계일보 | 입력 2015.12.11. 21:54 | 수정 2015.12.11. 21:57 
 

고려대 대학게시판 뒤덮은 '김일성 만세' 대자보
“김일성 만세/ 한국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웃음이 나올 수밖에.”(김수영의 시 ‘김일성 만세’ 중 일부) 11일 오후 서울 고려대 안암캠퍼스 정경대학 후문. ‘김일성 만세’라는 제목의 대자보 10여장이 게시판을 뒤덮었다. 전날 경찰이 같은 제목의 대자보를 수거한 것에 항의하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대자보 게재에 나선 것이다.

 

 

 
[사진] 11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후문 부근 게시판 앞에서 학생들이 ‘김일성 만세’ 등이 적힌 대자보들을 살펴보고 있다. ‘김일성 만세’는 ‘풀’로 유명한 김수영 시인이 쓴 시다./ 연합뉴스

 

성북경찰서와 고대 관계자 등에 따르면 지난 10일 밤 고대에 다니는 한 대학원생이 게시판에 붙어 있던 ‘김일성 만세’ 대자보를 직접 수거해 경찰에 신고했다. 해당 대학원생은 “여기가 김일성종합대학이냐, 고대에 이게 붙어 있는 게 말이 되느냐”고 화를 내며 해당 게시물을 뜯어낸 것으로 전해졌다. 대자보를 붙인 고대 사회학과 학생 권순민(20)씨는 “김수영 시의 맥락은 검열에 저항한 것이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며 “김일성을 찬양하기 위한 게 아니라, 현재 벌어지고 있는 표현의 자유 억압을 비판하고 자유를 확산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붙인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고대 후문 부근 게시판에는 ‘김일성 만세’ 대신 ‘전두환 만세’나 ‘천황폐하 만세’ 등의 문구를 적어 반대의사를 밝힌 대자보도 등장했다. 이 대자보는 “독일, 러시아에선 나치 문양 ‘하켄크로이츠’ 사용이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며 “상식적인 선을 지키자”는 주장을 담고 있다.

 

 

고대에 다니는 박상용(20)씨는 “개개인이 대자보를 붙이는 취지는 모두 다르겠지만, 이런 논의가 다른 대학으로 확산하면 생산적 논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대 사학과 학생 이건희(20)씨도 “대자보를 일방적으로 뜯어내는 것은 옳지 않다”며 “대자보가 담은 의견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은 건전하게 자신의 반대의견을 같은 형식으로 게재하면 공론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일성 만세’ 대자보는 앞서 경희대 서울캠퍼스에 처음 붙었다가 수거돼 논란이 일었다. 이 대자보는 지난달 경찰이 마포구 한 가구공방에 붙은 제1차 민중총궐기 집회 홍보 포스터를 ‘독재자의 딸’이란 문구가 담겼다는 이유로 수거한 것에 항의하고자 게재했다. 경찰 관계자는 “고대에 붙은 대자보의 경우 게재 경위 등 사실관계를 현재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