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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민속·역사

[허술한 국립묘지 관리] 물 속에 수장된 국립묘지 유공자들

잠용(潛蓉) 2015. 12. 18. 07:09

父 묘지 찾았다 '깜짝'... 수장되는 유공자들
SBS | 조기호 기자 | 입력 2015.12.17. 20:50 | 수정 2015.12.17. 21:50

 

 

<앵커> 국가유공자들이 사망하면 국립묘지에 안장됩니다. 국가나 사회를 위하여 희생하고 공을 세우신 분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예우죠, 그래서 국립묘지 하면 물이 잘 빠지고 햇볕이 잘 들 거라고 생각되지만, 유공자가 묻힌 묘지에 물이 고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국립 대전현충원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조기호 기자의 기동취재입니다.

<기자>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아버지 묘지를 찾은 송 모 씨. 30미터 정도 떨어진 다른 묘지에서 합장하는 모습을 보다가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비도 오지 않는 맑은 날인데, 묘지 바로 옆을 파서 생긴 구덩이에 물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송 모 씨/국가유공자 유족 : (다른 묘지 옆에) 구멍을 팠는데 그 안에 물이 꽉 차 있다 못 해서 그걸 다 퍼내는 모습을 봤는데 유족 입장에서는 얼마나 답답한 일이겠습니까.] 옆 묘지의 합장은 유공자 묘비 옆으로 깊이 70cm 정도 구덩이를 파낸 뒤에 배우자의 분골함을 유공자 분골함 옆에 밀어 넣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묘역의 배수가 잘 안 되는 사실이 드러난 겁니다.

 

[지금도 비가 오는데 확인할 수 없지만 (아버지) 유골함에 물이 찬 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요.] 현장을 둘러본 전문가는 묘역에 설치된 배수로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최재순 교수/서경대 토목건축공학과 : (묘역의) 지표까지 올라와 있는 지하수를 빼는 용도가 아니라 홍수나 집중호우 시에 묘역이 물에 차는 것을 배수로 용도로….] 현장 인부들 역시 배수에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대전현충원 시설 관리 관계자 : (땅을 파셨을 때 물 나온 적이 없나요?) 요즘 비가 많이 오니까 자꾸 스며들죠. 웅덩이도 파면 조금씩 고이니까….] 취재진을 찾아온 현충원 관계자들의 얘기는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일부 유공자의 분골함이 물에 잠겨 있을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대전현충원 관계자 : 이렇게 넓은 지역에서 백 퍼센트 다 물이 없다고는 말씀을 드릴 수는 없지만…저희 입장에서는 불편한 부분이죠.] 5년 전부터 배수관 설치 작업을 시작해 현재 전체 묘역의 70% 정도까지 공사가 진행됐다고 털어놓았습니다.

[한 번에 전체 묘역에 다 배수관을 설치할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예산을 받아서 점차 점차….] 1985년 문을 연 대전 국립현충원에는 11만 명의 국가 유공자들이 안장돼 있습니다. (영상편집 : 김종우, VJ : 김종갑)  

[조기호 기자cjkh@sbs.co.kr]


눈 앞에서 태극기만 펄럭이면 다 애국인가요?
SBS | 조기호 기자  | 입력 2015.12.25. 08:30 | 수정 2015.12.25. 11:50 

 

눈에 안 보이는
물 찬 국립묘지부터 해결해야 

국가 유공자가 사망할 경우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자격이 주어집니다. 나라에 봉사한 사람들에게 국가가 최선의 예우를 다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유공자를 모신 묏자리가 물에 차 있다면 유족의 심정은 어떨까요? 이게 제대로 된 나라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이런 일이 대전 국립현충원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1985년 문을 연 대전 현충원은 독립 운동가부터 연평해전과 천안함 용사, 경찰과 소방관까지 11만여 명의 국가 유공자가 안장돼 있습니다. 오와 열이 잘 맞춰진 이들의 묘비엔 형형색색의 꽃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등 적어도 ‘눈으로 보기’엔 깔끔하게 조성돼 있습니다.

 

하지만 ‘눈에 안 보이는’ 묘비 아래에선 기막힌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이 한 장의 사진이 그 일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사진에 나온 구덩이는 어느 유공자 묘소 바로 옆을 한 70cm 팠을 때 만들어진 겁니다. 국가 유공자의 배우자가 숨질 경우 현충원에 함께 안장될 수 있는데 구덩이를 파서 배우자의 분골함을 넣은 뒤 유공자 분골함 쪽으로 밀어 넣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합장을 위해 판 구덩이에 가득 고인 물. 그걸 퍼낸 바가지와 흥건히 젖은 땅. 이건 과연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그 일대의 지표 턱밑까지 물이 차 있다는 뜻이지요. 유공자의 분골함이 지표에서 60~70cm 아래 묻혀 있으니까 적어도 이 일대 묻힌 유공자들은 ‘안장(安葬)’, 즉 편안하게 묻힌 게 아니라 ‘수장(水葬)’, 다시 말해 물에 잠겨 있다는 말이 됩니다.

 

이해 당사자가 아닌데도 기가 찰 노릇이지요. 하물며 그 일대에 아버지가 묻혀 있는 유족의 입장은 어떻겠습니까. 문제의 ‘물 찬 구덩이’ 사진을 촬영해 취재진에게 제보한 사람이 바로 유족 중 한 분인 송 모 씨입니다. 후두둑 빗방울 떨어지던 날 취재진과 함께 대전 현충원을 찾은 송 씨가 울먹이며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확인할 수 없어서 답답하지만 아버지 분골함이 물에 찼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요. 지금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엔 더 그렇죠.”

 

 

유공자를 안장한 땅 속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서경대학교 최재순 교수(토목건축공학과)와 함께 묘역을 둘러봤습니다. 현충원 주변을 둘러싼 지형과 지표의 높낮이 등을 한참 살펴본 최 교수는 ‘배수로’를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묘역 아래 땅 속엔 일정량의 지하수가 있는데 비가 올 경우 수위가 높아져서 분골함을 덮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묘비 중간 중간에 배수관을 따로 설치해서 물을 빼야 유공자의 분골이 수장(水葬)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지적하더군요.

 

그렇다면 정말 그 일대 유공자의 분골함은 물에 잠겨 있는 걸까요? 대전 현충원 내 다른 묘역은 또 어떤 상태일까요? 놀랍게도, 취재 중에 저를 찾아온 현충원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렇게 넓은 지역에서 물 찬 곳이 100%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털어놓더군요. 덧붙여 “우리 입장에선 불편한 부분”이라고도 했습니다. 다시 말해 문제를 알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대전 현충원 측은 “그렇지 않아도 5년 전부터 묘역의 묘비 사이사이에 배수관을 설치하고 있고 전체 묘역 중에 70%는 공사를 완료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예산이 부족해 한 번에 해결하지 못한 게 안타깝다”고 말하더군요.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최근 벌어진 대형 태극기 논란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설치 예산만 10억 원이 든다고 하죠. 과연 보훈처는 눈앞에서 태극기가 펄럭여야만 애국심이 생긴다고 믿는 걸까요? 보이는 것에만 치장하지 말고 안 보이는 것까지 묵묵하게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유공자들을 물 찬 땅 속에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나라에서 애국심이 들어설 자리가 있겠습니까? [조기호 기자 cjkh@sbs.co.kr]

 

뒤늦은 도굴 논란…

정철(鄭澈)의 묘지명, 국립중앙박물관이 불법소장 '미스터리'
SBS뉴스 ㅣ 2015.09.03 18:07

 

묘지에 고이 묻혀 있어야 할 조상의 '묘지명(墓誌銘·죽은 사람의 행적을 기록한 물품)'이 나보란듯이 떠억 국립 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습니다. 문중에서는 조사의 묘지명이 언제 어떻게 세상으로 나왔는지조차 몰랐습니다. 박물관 특별전에 전시된 것을 관람하면서도 조상의 묘소에 잠들어 있던 그 묘지명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뒤늦게 경찰이 수사하면서 비로소 도굴된 사실을 알았지만 이 장물을 중앙박물관이 보관해온지 이미 15년이나 지난 뒤의 일이었습니다.

 

다름아닌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도 나오는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松江 鄭澈1536∼1593)의 묘지명 얘기입니다. 송강의 묘소는 원래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에 있습니다. 처음에는 경기도 고양시 원당읍에 있었으나 조선 현종 6년(1665년)에 이곳으로 이장됐습니다. 봉죽리 묘소에 묻혀 있어야 할 송강 정철의 묘지명은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이 불법 소장하고 있습니다.

 

26.5 x 18㎝의 납작한 사각형 도자기 23개로 이뤄진 이 묘지명에는 '정철 자묘지(鄭澈 磁墓誌)'라는 유뮬명칭이 붙여졌고 '신수(新收)-015769-000'이라는 중앙박물관 소장번호도 매겨졌습니다. 대전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최근 이 묘지명의 도굴 여부와 중앙박물관까지 흘러 들어가게 된 유통 경위를 수사하고 있습니다. 골동품 장물아비 A씨가 지난해 검거됐는데, 판매 목록에 이 묘지명이 포함된 것이 수사의 시작이었습니다.

 

경찰은 묘지명이 송강의 묘소 밖으로 나온 시기가 적어도 15년 이상 된, 오래전의 일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중앙박물관이 이 묘지명을 불법 소장하기 시작한 시기가 2000년쯤이기 때문입니다. 송강의 후손인 영일 정씨 문청공파 문중도 묘지명 도난사실을 작년까지 까마득하게 몰랐다고 합니다.

 

지난해 골동품 장물아비가 검거되기 전까지 송강 문중은 이 묘지명이 묘소에 고이 '모셔져' 있을 것으로 철석같이 믿었다고 합니다. 송강의 묘지가 도굴된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2008년 이 묘지명이 국립 청주박물관에 전시된 것을 보고도, 조상의 묘소에서 출토된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청주박물관은 그해 충북 진천을 주제로 한 특별전을 열었는데, 이때 송강 정철의 묘지명도 함께 전시됐던 것입니다. 문중의 관계자들은 당시 이 특별전에 참석, 묘지명을 봤지만 가볍게 여겼다고 합니다.

 

지난해 이 사건 수사를 시작한 대전 지방경찰청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하면서 비로소 7년 전 청주박물관에 전시됐던 묘지명이 진천 소재 송강의 묘소에 묻혔던 것임을 뒤늦게 알았다는 게 문중의 얘기입니다. 경찰은 누가, 언제, 어떤 방법으로 도굴했는지는 물론 암거래를 통해 유통된 이 묘지명이 어떻게 중앙박물관까지 흘러들어오게 됐는지에 대해서 수사하고 있습니다. 수사 결과 묘지명이 도굴된 사실이 드러나면 중앙박물관 소유인 이 묘지명의 소유권은 다시 문중으로 넘어가게 되고 중앙박물관도 장물소장의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됩니다. (SBS 뉴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