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下 /宿 /生 (1965) < 1 > 어디로 가는가? 떠돌다 가는 길에 未練일랑 두지 말자
定處 없이 흘러서 간다~ < 2 > 빈 손으로 가는가? 여울져 가는 길에 未練일랑 두지 말자
소리 없이 흘러서 간다~
1960년대 톱스타 '下宿生' 가수 최희준 하숙생 처럼 떠나 ▲ 원로가수 최희준 (뉴시스)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하숙생' 등으로 당대를 풍미한 1960년대 톱가수 최희준(82)이 24일 별세했다. '영원한 하숙생'으로 통하는 최희준은 1936년 서울 익선동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미군방송 'AFKN'을 즐겨 들으며 최신 팝송을 외우다시피했을 정도로 음악광이었다. 그러다 1959년 미8군 무대에서 직업가수로 노래를 시작했다. 1960년 손석우가 작사, 작곡한 '우리애인은 올드미스'를 녹음하면서 데뷔했다. 이 곡이 1961년부터 유명해지면서 이름을 알렸다. ▲ '제2회 무궁화대상 시상식'에서 좌측 두번째부터 최희준, 한명숙. 가장 우측이 작곡가 이봉조. 2018.08.24. (사진 =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 씨 제공) ▲ 최희준과 '하숙생'의 작곡가 김호길. 2018.08.24. (사진 =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 씨 제공) '인생은 나그네 길'로 이어지는 가사로 유명한 '하숙생'은 시나리오 작가 김석야가 노랫말을 쓰고, 작곡가 김호길이 멜로디를 붙였다. 전파를 타자마자 주제가를 틀어달라는 청취자들의 요청이 쇄도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2001년 '하숙생' 노래비가 김석야의 고향인 천안 삼거리공원에 세워졌다. '하숙생'은 뒷날 가수 이승환(53)이 리메이크하는 등 꾸준히 재조명되고 있다. 최희준은 서울대 법대 출신 가수로도 이름을 날렸다. 대학을 졸업한 가수가 드물던 시기에 명문대 출신 '학사가수'로 주목 받았다.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하숙생'을 비롯해 '맨발의 청춘' '어차피 보낼 사람' 등 1960년대 대중 정서를 함축한 노래를 허스키하면서도 그윽한 목소리로 불러 인기를 끌었다. 이로 인해 한국 대중음악계의 폭을 한층 넓혔다고 평가 받는다. ▲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최희준 한명숙 유주용, 박재란, 현미, 윤복희, 이금희. 2018.08.24. (사진 =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 씨 제공)
▲ 최희준, 가수. 2018.08.24. (사진 =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 씨 제공)
▲ 최근의 공연 모습 (뉴시스) 박 평론가는 "최희준은 의정활동을 하면서 늘 자신의 지역구가 둘이라고 웃으며 강조했다"면서 "'하나는 출신지역인 안양의 동안갑구, 그리고 또 하나는 바로 가요계'라고 인터뷰 당시 털어놓았다"고 밝혔다. "'가수 출신 정치인'으로 가요계, 나아가 연예계의 발전을 위한 시금석이 되겠다는 소박한 꿈을 펼치기도 한 인물"이라고 덧붙였다. 장례식은 가수협회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성모장례식장에 차려졌다. [realpaper7@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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