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織女에게'(1976)
離別이 너무 길다 歲月이 너무 길다
말라붙은 銀河水 눈물로 녹이고 노둣돌을 놓아
그대 손짓하는 戀人아 은하수 건너 가슴 딛고 다시 만날 우리들
戀人아 戀人아 離別은 끝나야 한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간주>
그대 손짓하는 戀人아 은하수 건너 가슴 딛고 다시 만날 우리들
戀人아 戀人아 離別은 끝나야 한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 * 노둣돌: 말을 타고 내릴 때에 발돋움으로 쓰기 위해 대문 앞에 놓은 큰 돌.
통일 염원의 노래 <직녀에게>
문병란 시인(1935~2015)
◇ <직녀에게>라는 나의 통일염원을 읊은 서정시는 70년대 중반쯤 <심상>이라는 시 전문지에 발표한 작품으로 1981년 창비사에서 간행된 <땅의 戀歌>란 시선집에 실려 있다. 이 시가 노래로 작곡되어 불리워진 사연은 다음과 같다. 1980년 5월 이후 검거망을 피하여 미국으로 망명한 윤한봉의 청탁에 의해 같이 활동하던 작곡가 김형성씨가 통일염원의 노래로 작곡을 하였고 그 노래는 미주와 유럽등지에서 해외동포에 의해 불리워지게 되었다.
내가 84년 제 3세계 예술제가 열리는 서독 베를린에 들렀다가 거기서 뜻있는 해외동포로부터 이 노래의 악보와 육성으로 부른 테잎을 가지고 왔다. 나는 이 노래가 국내에서도 불리워지기를 바라고 당시 전남사대 영문과를 나왔으나 딴따라 기질이 있어 방송계로 진출한 애제자 오창규군에게 건네어 주었다. 오창규는 그것을 다시 역시 교단을 버리고 통기타의 반려자가 된 노래꾼 박문옥에 건네었다. 해외에서 부르는 노래가 가곡풍인데다 국내의 정서와 맞지 않다고 판단, 일면 작곡에 대한 야심도 있었던지, 그는 동일 가사에다 다른 곡을 붙였다.
그리하여 새로 탄생한 민중가요 <직녀에게>는 당시 <바위섬>이라는 노래로 한창 방송가의 인기를 타고 있던 신선한 목소리의 대학생 가수 김원중을 만나 음반으로 취입되었다. 그 노래는 서서이 반향을 일으켜 <바위섬>의 여운을 이어받는 듯했으나 작사자인 내가 군부독재정권에 의해 반체제 운운하는 원동권 재야 세력 탓인지 방송가의 전파에서 조금씩 밀리는 듯했다.
그러나 이 노래는 김원중의 열창과 더불어 이 땅의 모든 현장에서 민중가수의 상징적 애창곡이 되어 이 시대의 대표적 통일염원 노래로 사랑을 받았다. 분단 반세기를 넘긴 이 시점에서 김원중의 <직녀에게>는 남북한 구석구석까지 울려퍼져 이 땅의 통일을 앞당겨 올 것이며, '우리는 만나야 한다'는 그의 절규는 온 누리에 메아리칠 것이다. [문병란/ 시인]
------------------------ ◇ 6.15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지 7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분단의 장벽은 두텁다. 그날의 감격만으로 오늘 삐걱거리는 감정을 돌려 놓지 못한다. 우리를 흥분시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고름이 맺히면 속시원하게 터지기라도 하련만 재깍거리는 시계바늘은 더디기만 하다. 우리 스스로 준비하지 못한 탓도 크다. 그날 이후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해진 것은 사실이나 아직 만족하기에는 이르다. 이토록 아픔이 길어질 줄 몰랐다. 녹음이 짙푸른 이 6월에 뒤를 돌아보면 회한이 더 짙다. 아침 밥상에 희망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테잎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직녀에게>가 흘러나왔다. 그렇지, 이 노래가 있었지. 이 노래, 꿈길을 걸으면서 아마 몇 번은 불렀을 노래. 분단의 멍에를 짊어진 조국의 아들 딸이라면 한번쯤은 듣거나 불렀을 노래. 달팽이관을 거쳐 노래는 내 몸 안으로 들어왔다. 문병란 시인의 표현을 빌자면 <직녀에게>는 '통일을 염원한 서정시'다. 70년대 중반에 발표한 작품이다. 80년대 초 펴낸 <땅의 연가>란 시집에도 들어 있다. 시인 자신은 아직도 <직녀에게>를 매우 아낀다는 소문이 있다.
그러나 지금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직녀에게>는 해외에서 부르던 처음의 노래와는 다르다. 1984년 문병란 시인이 베를린에 갔다가 이 노래의 악보와 육성 노래테잎을 얻게 되었다. 김형성씨의 노래를 들은 문 시인은 생각을 달리했다. 가곡풍인데다 국내 정서에 맞지 않다는 느낌을 가졌다. <직녀에게> 노래가 다시 만들어진 사연이다. 이렇게 하여 작곡가이자 통기타 노래꾼인 박문옥이 같은 가사에 새로 곡을 붙였고, 대학생 가수 김원중이 음반으로 취입하면서 세상에 나왔다.
민중가수 김원중(48). 나는 그의 삶과 노래를 사랑한다. 그는 철학이 있는 사람이다. 격랑의 세월을 살아온 그에게서 '노래하는 시인'의 모습을 본다. 그의 노래는 그의 인생이다. 어쩌면 이토록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민중 앞에 겸손한 사람, 언제나 평화와 통일을 꿈꾸고 실천하는 사람, 그는 노래하는 전사다. 개인적으로 그의 노래 <꿈꾸는 사람만이 세상을 가질 수 있지>와 <모래시계>를 무지 좋아한다. 정말 좋은 노래다.
<직녀에게>를 따라 부르며 눈을 감았다. 분단의 아픔과 통일을 그리는 시대의 감정이 느껴진다. 지난날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직녀에게>를 부르며 맺힌 가슴을 쓸어내렸던가.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민중가수 김원중에게 시로 말했다. "어느 세상이든 진정한 노래는 있었다. 노래는 아픈데서 태어나고 아픈 곳에서 꽃처럼 피어난다"고. 아픈데서 꽃처럼 피어나는 노래가 있다면 아마 <직녀에게> 같은 노래일 것이다.
분단이 너무 길다. 그 길이만큼 아픔의 시간도 길다.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몇 번을 건너가 만나야 분단의 시계가 멈출 것인가. 이럴 순 없다. 말라붙은 가슴, 눈물로 녹여서라도 겨레의 손으로 분단의 철조망을 걷어내야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동강난 반도 그 등허리를 잇고, 반세기 넘게 박혀 있는 통한의 가시를 모두 빼내는 그날. 남누리 북누리 통일의 노둣돌을 놓을 기쁨의 그날. 그날이 오면 이 노래는 분단의 마침표를 찍는 역사의 유물로 남겨 두어야 하리. /굴렁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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