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홍 잠수사 짧지만 위대한 생애…
그 길 빛낼 것” 추모사
한겨레ㅣ2016-06-18 17:49 수정 2016-06-19 14:56
박주민 의원 추모사
18일 오후, 고 김관홍 잠수사 추모의 밤 마련돼
세월호 유가족, 민간잠수사, 시민들 발길 이어져
[현장 2신]
18일, 고 김관홍 잠수사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특별시 서북병원 장례식장 주차장 한 구석에 마련된 테이블 위에는 고인의 젊은 시절 영정사진과 근조 화환이 놓였다. ‘세월호 의인, 고 김관홍 잠수사 추모의 밤’이라는 입간판이 중앙에 놓여 지자, 옷과 가방 등에 노란 리본을 달고 찾아온 시민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후 7시께, “형님은 아시죠? 우리 잠수사들 뭐 바라고 간 게 아닙니다. 잠수사니까 갔고요, 가서 아이들 하나 둘 건져 올렸어요. 우리 잠수사들은 아내고 아이고 안아주지를 못해서 오해도 받아요.” 고 김관홍 잠수사에게 보내는 추모의 글을 읽어 내려가는 박래군 4.16 상임운영위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한 밤 중 고인에게 이렇게 전화가 걸려올 것 같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박 위원의 추모사를 듣고, 김 잠수사의 어머니 박귀순(68)씨는 통곡했다.
이날 추모의 밤에는 김 잠수사의 가족들을 비롯해 세월호 유가족들,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 활동에 함께 나섰던 민간 잠수사, 박주민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시민 등 3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전명선 4.16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304명을 다 수습하지 못한 자신들은 죄인이라며 우리 세월호 가족을 보는 것조차 어려워했던 민간 잠수사님들에게 우리 가족들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며 “유가족들에게 민간 잠수사들은 영원한 은인이며, 국가가 제대로 대우해줘야 할 세월호 의인”이라고 강조했다. 전 위원장은 그러면서 “유가족들에게 두 딸과 한 명의 아들, 모셔야 할 부모님들이 생겼다”며 “고 김관홍 잠수사를 대신해 저희들이 모시고 함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흐느꼈다.
[사진 ]18일 오후7시, 서울 은평구 시립 서북병원 장례식장 앞 주차장에서 ‘세월호 의인 고 김관홍 추모의 밤’ 행사가 열렸다. 추모 행사가 시작되기에 앞서 4·16연대, 4·16가족협의회 등 추모객들이 김 잠수사를 애도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이어서 4.16 미디어 연대가 준비한 추모 영상이 흘러나왔다. 영상 속 김 잠수사는 “사회 지도층이신 고위 공무원께서는 왜 모르고 기억이 안 나는지, (세월호) 가족분들하고 저희(민간 잠수사)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희는 단순한 거예요.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거. 진실은 다를 수 있지만, 상황은 정확히 얘기해야죠. 욕을 먹더라도”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열린 국회 국민안전처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나와 증언했던 내용이었다. 영상을 통해 김 잠수사의 음성이 흘러나왔을 때, 그의 아내와 어머니는 주먹을 쥐고 가슴을 내리치며 한참동안 통곡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온몸을 던져 희생자들을 구했던 민간 잠수사 김상우씨는 동료를 떠나보내며 애써 눈물을 삼켰다. 김씨는 “관홍이가 현장에서 부상을 많이 입었는데도 다른 잠수사들이 힘들까봐 자신이 해야 한다며, 몸을 사리지 않았다”면서 “잠수사들 옷에 구멍이 나면 자신 것이 아닌데도 슈트도 붙여줬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고인이 희망했던 바람을 소개하면서 “4.16세월호 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에 민간 잠수사들의 명예회복과 치료를 위한 개정안이 담겨져 있고, 국회에 접수됐다”며 “늘 곁에서 도움을 주었던 4.16연대와 변호사들, 시민들에게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지난 20대 총선을 앞두고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운전기사로 자원봉사를 자청했던 김 잠수사는 박 의원과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박주민 의원은 “선거 운동 당시 많은 분들이 김 잠수사님과 저의 관계를 ‘톰과 제리’와 같다고 했다. 서로 잔소리하고 짜증내면서 선거운동 기간 내내 붙어 다녔었다”며 고인에 대한 추억을 떠올렸다. 박 의원은 “돌이켜보니 잠수사님은 제 당선이 절실했고, 아꼈고 제 당선을 통해서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절실함이 강했다”며 “그런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김 잠수사님이 힘든 상황이지만 나름 잘 지내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힘듦을 제대로 몰랐던 것 같다”고 눈물을 흘렸다.
이날 추모제에는 자발적으로 참석한 350여 명의 시민들은 자리를 가득 채웠다. 추모사를 듣고 있던 이해나(26)씨는 “잠수사님 사망 소식을 듣고 너무나 놀랐고 황망했다. 아이들을 구하러 간 잠수사님이 이렇게까지 된 상황이 안타깝고, 가시는 길에 추모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찾아왔다”고 울먹였다. 1시간30분께 이어진 추모 행사가 끝나자, 추모객들은 고 김 잠수사의 영정사진 앞으로 다가가 헌화를 시작했다. 고인의 아버지는 추모객들에게 “너무나 슬픈 일이지만, 열심히 살아내겠다”라고 인사했다.
고인과 인연이 있었다던 송아무개(43)씨는 “지난해 5월께 처음 만났을 때도 정신적으로 고통 받고 있었던 고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했었다”며 “지난 17일 세월호 관련 행사에서 만났을 때도 쾌활한 모습이었는데, 평소에 안부라도 자주 묻을 걸 밝은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게 돼 더욱 미안하다”라고 슬픔을 삼켰다.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현장 1신]
세월호 참사 당시 실종자 수색에 참가했던 민간잠수사 김관홍(43)씨의 빈소가 서울 은평구 서북시립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가운데, 김 잠수사의 아내와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등 세월호 유가족, 세월호 실종자 수색작업에 참가했던 민간 잠수사 등이 빈소를 지키고 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빈소를 지키고 있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8일 “세월호 참사 당시 희생자를 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섰던 민간 잠수사들에 대한 보호와 지원 방안을 강화해 개정 특별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은 이날 오후 3시30분께 빈소를 방문해 고인을 추모했다. 백 소장은 조문을 마친 뒤, 김 잠수사의 아버지를 만나 “원통하게 목숨을 빼앗겨 눈물이 앞을 가린다”며 “(아드님이) 짧지만 소신껏 위대한 생애를 사셨고, 우리가 그 길을 빛내겠다”고 말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 이정미, 김종대, 윤소하 의원도 4시께 빈소를 방문했다. 심상정 대표는 가족들을 조문한 뒤 “민간인 잠수사들은 세월호 참사 당시, 직접 바다에 잠수해 희생자들을 찾기 위해 가장 고생을 많이한 분들이다”라며 “민간 잠수사들을 위한 지원과 구제안이 빠지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박주민 의원과도 얘기를 나눴는데, 민간 잠수사들이 지원 대상에 포함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사진]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 김종대, 이정미, 윤소하 의원이 고 김관홍 잠수사의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오후 7시부터는 장례식장 앞에서 '세월호 의인 고 김관홍 잠수사 추모의 밤'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유경근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협의회 집행위원장은 “국가가 버린 김관홍 잠수사를 이제라도 우리가 함께 지켜내면 좋겠다”면서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했을 세 아이와 젊은 부인을 우리가 함께 지키는 것이 김관홍 잠수사님의 헌신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아울러 그는 “4.16가족협의회는 고인이 가시는 길은 물론 남겨진 가족들을 위해 늘 함께 할 것”이라고 했다. 고 김관홍 잠수사의 사망 소식에 세월호 유가족은 참담함을 감추지 못했다. 단원고 희생자인 고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는 17일, 페이스북에 “우리 (단원고 희생자)아이들을 가족 품에 안겨주고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진실을 말해주고 힘써 주셨던, 매일 유가족들과 함께 했던 분”이라며 고인을 기억했다. 그는 이어 “유가족들과 참사(수습)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언제나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석태 4·16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도 같은 날 애도의 메시지를 띄웠다. 특조위는 “김 잠수사님은 참사 이후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고 원래의 잠수 일로 복귀하지 못하는 등 여러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특조위 제1차 청문회에 나와 참사 당시 수색현장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증언해 주셨고, 민간 잠수사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여러 잠수사들을 대표해 말씀해 주셨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의 아픔과 고통은 사회 모두가 짊어져야 했으나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며 “최악의 조건에서도 언제나 당당했던 그를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했다.
김 잠수사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17일 밤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역시 깊은 슬픔에 잠겼다.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지난해 9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국민안전처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증언한 내용을 소개했다. 정 전 의원은 “(김관홍 잠수사가) 세월호 선체에 진입한 것은 해경이 아니고 민간 잠수사였고 시신 수습 활동도중 사고사를 당해 숨진 잠수사에 대한 책임을 물어 공우영 잠수사를 지목해죄를 덮어씌우려 했던 국가의 몰염치를 고발했다”라고 언급한 뒤, “국가는 무엇이고 왜 존재해야 하는지 그의 목소리를 듣고 나면 더욱 먹먹해 집니다. 김관홍 잠수사님, 정말 미안합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었다. 시사평론가 김용민 피디는 “담담하게 추도하는데 유족방에서 아이들 떠드는 소리에 눈물 흘리고 말았다”면서 “마지막 순간에 왜 아이들 생각을 안했어요. 천국에 가도록 노력할 테니 관홍형 거기서 다시 봅시다”라고 추모했다. 발인은 19일 오전 8시30분, 장지는 경기 고양시 벽제승화원이다.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세월호 의인' 김관홍 잠수사 죽음, 온라인 애도 물결
포커스뉴스ㅣ2016-06-19 15:10
[사진] (서울=포커스뉴스)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추모 공간이 한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2015.08.14 양지웅 기자 yangdoo@focus.kr
정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통해 고인 추모
누리꾼 "참사는 진행형" 안타까움 내비쳐
(서울=포커스뉴스) 세월호 참사 당시 수색작업에 참여했던 민간잠수사 고 김관홍(43)씨의 발인식이 19일 오전 서울 은평구 서북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가운데 온라인에서도 고인을 애도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에 목소리를 냈던 정치인들은 본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을 통해 고인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세월호변호사로 알려진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7일 트위터를 통해 "뭐라고 해야할지…. 글을 쓰다가도 눈물이 흐른다.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너무 미안하다"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진상규명을 위해 유가족들의 변호인을 자처했던 박 의원은 김씨의 발인식에도 참석해 자리를 지켰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본인 페이스북에 "세월호 구조 작업에 큰 공을 세운 의인 김관홍 민간 잠수부께서 돌아가셨다. 고인은 잠수병이 생겨서 잠수부를 은퇴하고 낮에는 비닐하우스에서 꽃을 키우고 밤에는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이어왔다고 한다"고 남겼다. 19대 안전행정위원회에서 간사로 활동했던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김관홍 잠수사님 삼가 명복을 빕니다. 미안합니다"라고 애도의 뜻을 밝혔다.
고인은 작년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해 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를 대신해 생존자 수색과 희생자 주검 수습에 앞장섰던 민간잠수사들이 과실 문제로 검찰에 기소되는 상황을 알린 바 있다.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무관심과, 거짓, 그리고 망각을 향해가던 슬픈 진실을 위해 스스로 자신을 던지는 길을 선택했다"며 "당신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일을 온 국민의 책무로 남겼다. 그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고 밝혔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고인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아이디 'zss***' 페이스북 이용자는 "세월호 참사의 트라우마로 매우 힘들게 살아가면서도 진실을 밝히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줬던 분인데...가슴이 아프다. 부디 영면하시길 바란다"고 고인을 애도했다. 아이디 'wou****' 이용자도"세월호 청문회에 참석해 진실을 밝혀달라는 그의 외침은 아직도 허공에 떠돌고 있다.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일이 멈춰선 안된다"고 말했다.
아이디 'so9****'의 트위터 이용자는 "세월호 참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의 죽음이 너무 안타깝다"고 반응했으며, 아이디 'pop***'의 이용자는 "무책임으로 일관하는 이들은 멀쩡하게 생활하고 있고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위해 싸우던 이들은 이렇게 또 희생됐다"고 말했다. 김관홍 잠수사는 지난 17일 오전 7시25분쯤 고양시 용두동에 위치한 화원에서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김 잠수사는 앞서 "다음 생에서 보자" 등 자살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지인에게 보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김씨의 부검을 의뢰했다. [박지선 기자 jsp@focus.kr]
세월호 실종자 292구 찾고 기소 당한 민간 잠수사
시사INLive | 2015.12.08. 13:19 | 수정 2015.12.24. 21:14
공우영씨(60)는 수중공사를 전문으로 하는 중견 업체 유성수중개발 이사다. 천안함 인양 때도 참여할 정도로 경험과 능력을 인정받아 벌이도 괜찮았다. 40년 잠수 경력을 마무리하고 노후를 준비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뉴스에 나온 세월호 침몰 현장을 외면하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어지간한 경험으로는 잠수하기 힘들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소속 잠수사들과 진도로 향할 때까지만 해도 그는 일주일 안에 작업이 끝날 줄 알았다. 석 달 가까이 목숨을 걸고 시신만 292구를 수습할 줄은 몰랐다.
그런 노고 끝에 검찰로부터 기소를 당하리라고는 더더욱 상상도 못했다. 민간 잠수사 공우영씨는 현재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1년 넘게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해 8월26일 쓰인 광주지검 목포지청의 공소장에 따르면 사건은 이렇다. ‘2014년 5월6일 세월호 실종자 수색 현장에서 민간 잠수사 이광욱씨가 숨졌다. 잠수 도중 공기 공급 호스가 가이드라인에 걸려서다. 공씨는 현장에서 실종자 수색작업을 총괄적으로 관리했다. 공씨가 지시한 ‘하잠색 설치’ 작업은 고도의 잠수 기술을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그는 전문 잠수 자격증이 없고 고혈압이 있는 이씨에게 이 작업을 맡겼다. 또한 사고 직후 이씨를 신속하게 끌어올리지 못해 응급처치가 늦어졌다. 이씨는 공우영씨가 업무상 주의 의무를 게을리해 숨졌다.’ 검찰은 9월15일 공판에서 공우영씨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다.
[사진] ⓒ시사IN 신선영 : 민간 잠수사 공우영씨(위)는 세월호 실종자 수색 현장에서 숨진 잠수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기소당했다. 공씨가 수색작업 당시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아래).
공우영씨는 잠수사를 선발할 권한이 자기에게 없었다고 주장한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 나송진 서기관 역시 수사 과정에서 '민간 잠수사 모집 및 현장 투입은 해경에서 담당했다'라고 진술했다. 실종자 수색에 참여한 김관홍 잠수사는 '5월 초 민간 잠수사들이 반대하는데도 해경이 무리하게 인력을 늘리려 했다. 이광욱씨는 이 과정에서 합류한 분이었다'라고 말했다(참조). 공우영씨는 '나는 모여 있는 잠수사들의 입수 순서를 결정하고, 고참으로서 기술 조언을 한 것이 다였다'라고 말했다.
공씨는 '만약 내게 잠수사를 선발하거나 배제할 권한이 있었다면 사고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해경이 보낸 사람이라고 하니 함께 일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해경 측은 공우영씨를 ‘수색업무 총괄 감독관’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잠수사들보다 돈을 많이 받아서다. 원칙적으로 수난구호는 국가의 몫이다. 조난 현장 지휘 책임도 구조본부장에게 있다. 구조본부가 부득이할 때 민간인에게 구호 업무를 일부 위임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 과정이 ‘종사명령’이다.
세월호 실종자 수색에 참여한 민간 잠수사들은 해경으로부터 ‘수난구호업무 종사명령서’를 받았다. 해경은 이 종사명령서를 근거로, 공우영씨가 ‘민간 감독관’이라고 주장했다. 해경은 지난 1월 광주지법 목포지원에 보낸 ‘사실조회에 대한 회신’에서, '공우영에게 구조조정본부 명의의 수난구호 종사명령을 내린 바 있으며, 민간 분야 잠수 감독관으로 지정해 임무 부여(잠수사의 130% 비용 지급)를 했다'라고 답했다. '수난구호업무 종사명령서를 언제 발급하였는지'라는 질문에 해경 측은 '종사자의 투입 일자에 따라 개인별로 발급'했다고만 썼다. 서류상 공우영씨의 종사명령서 발급일은 2014년 4월19일이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종사명령서로 ‘계약’을 맺은 뒤, 다른 민간 잠수사들보다 수당을 많이 받고 감독관이 됐다’는 근거로 읽힌다.
해경의 종사명령서 발급 날짜는 왜 다를까?
공우영씨는 감독관으로서 국가 업무를 대리한다고 생각했을까?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해경이 종사명령서를 실제로 발부한 날짜는 서류상 날짜와 다르다. 국민안전처 해양경비안전본부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공우영씨는 지난해 5월26일 종사명령서를 전달받았다'라고 확인했다. 게다가 공씨가 받은 종사명령서에는 수당이나 지위에 대한 내용은 없다. 공씨에게 130% 비용을 지급하기로 결정한 것은 6월17일이 되어서다. 공우영씨는 '내가 얼마나 받는지는 뉴스를 보고서야 알았다. 이전에는 비용 이야기를 아무도 꺼내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광욱씨 사망일은 5월6일이다. 일련의 사실을 보면, 사망사고 한 달 후에 해경이 공씨를 ‘웃돈’을 줘가며 책임자로 앉힌 격이다.
11월26일 선고 전 마지막 공판에서 담당 검사는 '국가와 해경이 체계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피고인 공우영의 법률적 권한을 판단하기 어렵다. 실질적 현장에서의 권한 판단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형은 종전과 같은 징역 1년이었다. 공우영씨는 지난 1월 쓰러져서 입원했다. 병원에서는 스트레스에 의한 허혈성 뇌질환이라고 진단했다. 앞으로 비슷한 재난이 발생하면 어떻게 할지 묻자 공씨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한 민간 잠수사는 '나서봤자 손해만 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 누구도 선뜻 국가적 재난구호를 돕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공우영씨 재판의 1심 선고일은 12월 7일이다. [이상원 기자 / prodeo@sisain.co.kr]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6년 6월 20일 '김관홍 잠수사 영면'
[6월 20일 한겨레 그림판] '세월호 구조작업 종료'
[장도리] 2016년 6월 20일 ''김밥 한 줄의 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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