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비유집>’은 최순실 비유집? 주옥같은 말 ‘새록
한겨레 2016-11-03 16:33수정 :2016-11-04 00:27
올해 2월 취임 3년 기념해 발간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은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10월25일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 사과문 중에서)
올해 2월 정부가 박 대통령 취임 3년을 기념해 발간한 <사람 나고 법 났지, 법 나고 사람 났나요 : 정책을 만드는 대통령의 비유>(클릭)가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사태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직접 최씨의 도움을 인정하고, 각종 언론 보도를 통해 최씨의 국정 농단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박근혜 비유집’은 주요 정부 정책들과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었던 박 대통령의 말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자료다. 이 비유집은 모두 11개 분야 40개 정책을 다루고 있다. 이 가운데는 최씨와 차은택씨가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는 문화융성 정책도 포함돼 있다. ‘영세교 주교’ 최태민을 아버지로 둔 최씨로부터 종교적 영향을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 ‘우주’ ‘혼’같은 특유의 표현들도 비유집에 들어가 있다.
왜 비유집일까?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당시 국정홍보처가 ‘대통령 어록집’을 낸 적은 있지만 ‘대통령 비유집’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사실 박 대통령을 ‘달변가’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는 “대전은요?" 같이 짧은 말로 판세를 뒤집곤 했다. 취임 뒤 창조경제, 규제개혁, 국정교과서 추진 등 굵직한 정책들을 주문할 때는 ‘손톱 밑 가시’ ‘불어터진 국수’ 같은 비유를 즐겨 썼다. 말이 길어지는 순간 비문이 섞여 좀처럼 뜻을 파악하기 쉽잖은 ‘근혜체’(▶관련링크: 박근혜 어록 업데이트)가 튀어나오기 때문일까? 정부는 머리글에서 “박 대통령이 비유와 신조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살아있는 대중적 언어로 사물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썼다. 박 대통령은 “(비유에) 선조의 지혜를 활용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심사숙고’ 끝에 공식적으로 남긴 박 대통령의 주옥같은 말 가운데 몇 개만 골라 소개한다.
1.우주,기,정신,혼
“기가 충만하게 쌓이게 되면,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진다”
2015년 8월7일 대한민국 학군단(ROTC) 대표단과의 대화에서 “여러분들은 애국심이 충만하고 리더십이 있고 사회에서 지도자적인 역할을 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중심 힘이 되어서 우리가 힘을 합쳐서 가야 한다, 그런 동참을 이끌어내는 노력을 해달라”고 주문.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준다” 2015년 5월5일 어린이날 꿈나들이에서 ‘꿈’과 ‘끼’를 가지라고 조언하며 “그런 아름다운 꿈이 꼭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하고, 또 여기 있는 우리 어린이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꿈도 꼭 이루어지도록 응원하겠다”고 말해.
“역사를 모른다고 하면 혼이 빠진 인간” “역사를 잘못 알고 돌아다니는 것은 영혼이 썩는 것” 2015년 10월13일 제15차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고려시대 역사학자의 말을 인용, 올바른 역사교육은 ‘우리 사명’이라고 강조. “마음이 하나가 되면 무쇠도 끊을 수 있는 힘이 생긴다” 2013년 11월25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운영·상임위원과의 대화에서 ‘옛말’ 인용해 “평화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발언. “정신을 집중해서 화살을 쏘면 바위도 뚫을 수 있다” 2016년 1월4일 신년 인사회에서 전쟁의 폐허와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함께 힘을 모아 세계가 놀란 발전을 이루어냈다며 “마음과 힘을 하나로 모은다면 못 해낼 일이 없다”고 말함.
↑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5월5일 오전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어린이날 꿈나들이 청와대 초청행사에서 어린이들과 대화하며 웃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 생활언어? 대중언어? 누구의 말?
“손톱 밑 가시”
후보 시절인 2012년 8월30일 중소기업인 간담회에서 “정부의 역할이란 손톱 밑에 가시를 뽑듯 중소기업의 제도나 관행을 고쳐나가는 것”이라고 처음 사용된 뒤 박근혜 정부 출범 뒤엔 최우선 정책과제가 됨. “사람 나고 법 났지, 법 나고 사람 났나요” 2015년 12월16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 식품 전문기업 대표가 엄격한 환경규제로 신규투자와 수출길이 막히게 됐다고 건의하자 대통령은 “사람 나고 법 났지, 법 나고 사람 났나요”라는 비유를 들어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오염방지시설 구비 등에 융통성을 발휘해 규제를 완화하라고 관련 부처들에 지시.
“콜라가 없다면 식혜나 사이다를 고를 수 있게 하라” 2014년 4월15일 제17회 국무회의에서 ‘서비스 정부’ 개념을 설명하며 “한창 더운 날씨에 어떤 음료수 파는 가게에 들어와서 ‘콜라 한 잔 달라’고 하는데 마침 콜라가 떨어졌다고 ‘콜라 없어요’ 이렇게 하고 끝나면 안되지 않습니까? ‘콜라는 떨어져서 없지만 여기 식혜도 있고 사이다도 있고 시원한 거 이런저런 것이 있습니다’하고 고를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그런 정신으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고 발언.
“이 풀은 그 가치를 우리가 알아내기 전까지는 잡초였다” 2014년 9월2일 제51회 방송의 날 축하연에서 문화와 산업의 ‘융합’을 강조하며 한 발언. 원 출처는 불확실. “그런 얘기가 있더라고요, 우리가 별로 생각하지 않으면 그냥 잡초일 뿐이에요. 거기에서 뭔가를 발굴해 내서 창조적으로 해석하면 그게 신데렐라같이 대박을 터뜨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부지런히 찾으면 좋을 것입니다”
“통일은 대박이다” 2014년 1월6일 신년구상 발표 기자회견에서 “굳이 통일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고 생각하는 그런 분들도 계시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저는 한 마디로 ‘통일은 대박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발언. 이 발언은 두 달 뒤 독일 드레스덴 연설에서 구체화하는데 최근 최순실씨가 쓴 것으로 보이는 태블릿피시 자료가 공개되면서 최씨가 사전에 이 연설문을 고친 정황이 드러남.
“견우와 직녀를 이어 주는 오작교처럼” 2014년 8월27일 융·복합 뮤지컬 <원 데이> 관람 소감. “정부도 견우와 직녀를 이어 주는 오작교처럼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 여러분의 만남의 기회를 이어 줄 수 있도록 앞으로 더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혀. 공연 줄거리가 전통 설화 ‘견우와 직녀’ 이야기였고, 이 공연의 총연출은 ‘문화계 황태자’로 불렸다는 차은택 광고감독.
↑ 박근혜 대통령이 10월11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청와대-세종청사간 영상 국무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3.알듯 모를듯… ‘근혜어’ 못잖은 ‘근혜비유법’
“멘토가 가난을 구한다”
2013년 3월25일 산업통상자원부·중소기업청 업무보고와 1월28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고용복지분과 업무보고에서 발언. 박 대통령은 “‘멘토가 가난을 구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멘토가 중요하다. 어떤 소질이 있고, 예전에 어떤 직업을 가졌는데 지금은 어떤 능력을 보강해 어느 곳으로 연결을 해줘야 하는지는 청년뿐만 아니라 중장년·노년층에게도 필요하다”며 멘토링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 그런데 “멘토가 가난을 구한다”는 말은 박 대통령 이외에 쓴 사람을 찾기 힘듦.
“우유가 냉장고에서 나온다?” 2015년 3월31일 제13회 국무회의에서 ‘우스갯소리’를 예로 들며 역사교육의 중요성 역설. “이런저런 것을 모르고 배울 기회도 없었던 어린이한테 우유가 어디서 나오냐고 물으니까 냉장고에서 나온다고. 그게 어린이 잘못이겠습니까? 알려주지 않은 기성세대의 잘못이지. 역사를 모른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혼이 없는 사람이 되는 거거든요.”
“우리 뇌에 고속도로를 만들자” 2013년 9월23일 제3차 무역투자진흥회의 발언. 창조 붐 조성을 위한 제언. “꼬불꼬불하고 좁은 길로 나가서 무엇을 하려면 굉장히 어렵지만 고속도로는 빨리 갈 수 있고, 효과적으로 갈 수 있어요. 그런데 그런 것은 우리 머리에서 다 아이디어가 나오고 추진력도 나오고 하는 건데, 그런 것에 열정이 없으면 자연히 생각을 많이 안 하게 돼죠. 많이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이것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할 때 우리 뇌에 그렇게 고속도로가 만들어집니다.”
4.박 대통령이 박 대통령에게 하는 조언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진돗개 정신으로”
2014년 2월5일 국정평가 종합분야 업무보고에서 “국무조정실은 불독 같은 정신이 필요합니다. 불독보다 진돗개가 더, 한번 물면 안 놓는다고 해요. 그래서 진돗개를 하나 딱 그려 놓으시고 우리는 진돗개 같은 정신으로 한다, 이것을 위해서는 우리가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발언. 부패 척결을 촉구하는 비유로 소개됨. 이와 관련, 정부는 비유집에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 관련 권력형 비리가 전무해 정직·청렴함에 있어 역대 정부와 차별화된 평가를 받고 있다”고 덧붙임.
“가뭄으로 강바닥이 드러나는 위기는 묵은 오물을 청소할 기회다” 2014년 7월14일 새누리당 제3차 전당대회에서 적폐 해소 주창. “가뭄으로 강바닥이 드러난다면 위기일 것이나, 그 위기는 강바닥에 쌓여 있는 묵은 오물을 청소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지금 바꾸지 않으면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각오로 근본부터 하나하나 바꿔가겠습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최순실이 싹 다 해묵었다카데, 대통령이 정신차리야”
한겨레ㅣ2016-11-03 21:44수정 :2016-11-04 01:19
박근혜 대통령 정치적 고향인 서문시장 상인
“온몸으로 밀어줬는데 배신감” 허탈감에 분노
대구·경북 대학가도 ‘하야’ 매일 시국선언
대선 ‘80% 몰표’ TK 지지율 최근 14%로 급락
↑ 박근혜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했던 대구 서문시장 상인들은 3일 최근 ‘최순실 사태’를 보고 “잘할 것으로 믿고 찍어줬는데, 이럴 줄 몰랐다”며 배신감마저 느낀다고 말했다. /구대선 기자
“한마음으로 밀어줬는데, 우째 이럴 수가 있습니까?”
3일 오전 대구시 중구 서문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면 잘할 것으로 믿고 몰표를 줬지만,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 안타깝고 허탈감을 느낀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때 대구(80.14%)와 경북(80.82%)에서 압도적 득표율을 기록했다. 상인들은 배신감마저 든다고 말했다. 30여년 동안 서문시장에서 포목점포를 해온 정종달(57)씨는 “여기서도 대통령이 잘했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모두 ‘대통령이 정신 차리야 된다’고들 해요”라고 말했다.
서울 남대문시장, 부산 자갈치시장과 함께 국내 3대 시장으로 손꼽히는 대구 서문시장은 포목과 비단 등 점포가 4천곳이 넘고 상인은 2만명을 웃돈다. 1998년 대구 달성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당선돼 정치 활동을 시작한 박 대통령은 정치적 위기를 맞을 때마다 서문시장을 찾았고, 상인들은 박 대통령을 뜨겁게 환영했다. ‘정치인 박근혜’에게 이곳은 힘들 때마다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는 ‘정치적 고향’이었다. 하지만 ‘최순실씨 국정농단 파문’으로 철옹성 같은 서문시장의 민심마저 박 대통령을 떠나고 있다.
포목점을 운영하는 김아무개(64)씨는 “박 대통령이 더 낮은 자세로 국민들한테 호소를 해야지”라고 말했다. 서문시장을 벗어나 대구 시내로 발걸음을 옮기면 박 대통령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진다. ‘달리는 여론 전도사’로 불리는 택시기사 박정호(59)씨는 “요즘 택시 손님들이 마 온통 그 이야기뿐이라 카니까요. 다들 격앙된 반응도 보이고, 고함을 지르는 사람도 있다니께요. 내가 생각해도 최순실이 싹 다 해 묵었다 카데예. 온몸으로 밀어줬는데 배신감마저 느껴요”라고 말했다.
선거 때마다 여당을 지지해온 대구의 한 공기업 간부 이아무개(52)씨도 “주변에서 대통령 비난하는 소리밖에 안 들린다. 특히 대통령 사과 성명이 기름에 불을 붙였다”고 밝혔다. 여권의 핵심지지 기반인 대구·경북 지역에서도 박 대통령 하야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경북 김천 농소면에 사는 김도환(83)씨는 “이거는 청와대 책임자, 대통령이 잘못한 기라. 애초부터 (최순실을) 가까이 안 했으믄 청와대 들락날락할 일이 없었겠지. 온 나라가 난린데 이거 수습할라믄 대통령이 고만둬야 돼” 라고 말했다.
↑ 3일 오후 1시 대구 남구 대구교대 상록교육관 앞에서 대구교대 학생 400여명이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김일우 기자
그동안 박 대통령에 대한 공개적 비판을 삼가던 대구·경북지역 대학가에서도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침없이 쏟아진다. 이날 오후 1시 대구 남구 대구교대 상록교육관 앞에서 열린 대구교육대학 시국선언에는 학생 400여명이 참여했다. 대구교대 전체 학생은 1700여명이다. “그래도 박근혜 대통령이 여기 출신이기도 한데 불쌍하지 않아요?” “대통령이 뭐가 불쌍해요. 제가 더 불쌍하거든요.” 시국선언에 참여한 한 대구교대 학생이 <한겨레>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이 학교 학생 김다은(21)씨는 “이 분노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대통령이 하야하고 내각을 다시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경북대 총학생회(회장 박상연)의 시국선언을 시작으로 대구·경북지역에서는 모두 10개 대학 학생들이 시국선언에 참여했다. 박 대통령에게 싸늘해진 대구·경북지역 민심은 최근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 박 대통령 지지율 폭락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10월31일부터 이달 2일까지 전국 성인 15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3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구·경북에서 박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가 1주일 전에 견줘 19.0%포인트 급락한 14.2%였다.
여론조사기관 디오피니언이 지난달 31일 조사한 결과, 대구·경북지역의 박 대통령 지지율은 전국 평균치(9.2%)조차 밑도는 8.8%로 조사됐으며, 1개월 전 44.3%에 견줘 35.5%포인트나 곤두박질쳤다고 <내일신문>이 최근 보도했다. 배병일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청와대는 사태의 심각성을 절실히 깨달아야 한다. 정국을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당장 더욱 강도 높고, 더욱 과감한 인적 청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구/구대선 김일우 기자 sunnyk@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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