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미용사부터 불렀다"... 靑 주장과 다른 증언
SBSㅣ김기태 기자ㅣ입력 2016.12.08 21:05 수정 2016.12.08 21:40 댓글 2172개
'오후 1시 미용사 호출'이 의미하는 것
<앵커> 청와대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머리를 손질하기 위해서 전속 미용사 등 2명이 출입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실토했습니다. 그런데 청와대 안의 누가 언제 이들 미용사를 호출했는지는 아직 베일에 가려 있습니다. SBS가 미용사의 호출 시각과 관련한 새로운 증언을 확보했는데, 청와대가 밝힌 세월호 7시간과는 다른 내용입니다. 김기태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기자> 2014년 4월 16일 오후 3시 22분, 박 대통령의 전속 미용사인 정 모 원장 자매가 청와대에 도착한 시간입니다. 어제(7일) 실제 주행을 해본 결과 평일 낮 시간, 정 원장이 일하는 청담동 미용실에서 청와대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50분 정도로 측정됐습니다. 게다가 정 원장 자매는 서로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어, 함께 만나서 가려면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오후 3시 22분에 청와대에 도착하려면 적어도 오후 2시 반 이전에는 청와대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SBS가 만난 정 원장의 동료는 정 원장이 당일 미용실을 출발한 시간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정 원장 동료 :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나는데 오후 때였던 것 같아요. 대략 오후 1시? 그전에 출발했던 걸로 기억해요.] 또 정 원장이 청와대의 연락을 받은 뒤 아주 급하게 나간 탓에 오후 일반 손님 예약은 모두 취소됐다고 말합니다.
[정 원장 동료 : (그럼 그날 (일반 손님들) 예약이 취소됐나요?) 그렇죠. 몇 건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사실 그게 몇 건인지까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어요.] 출발시각에 대한 기억이 다소 틀릴 수 있다는 점과 청와대까지 걸리는 소요시간을 고려해 폭넓게 청와대에서 연락 온 시각을 추산하면 낮 12시 반부터 오후 2시 반 사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청와대는 당일 2시 50분에야 370명 구조가 오보라는 것을 알았고, 오후 3시 중대본 방문 준비를 지시했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미용사의 호출 추정시각을 놓고 보면 결국 청와대는 대통령의 중대본 방문 결정에 훨씬 앞서 미용사부터 불렀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입니다. 정 원장은 몇 시에 청와대를 갔는지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기도 했습니다.
[정 원장 : 말 잘못했다가는 죽음이죠….] 7시간의 진실과 관련해 누가, 언제 정 원장 자매에게 청와대로 오도록 연락했는지 반드시 밝혀져야 할 이유입니다.
[김기태 기자] (영상취재 : 김승태, 이찬수, 영상편집 : 오영택)
[여성동아·채널A 단독]
전직 靑 조리장 "지진이 나도 새벽엔 보고 못한다"
채널Aㅣ입력 2016.12.08 19:50 댓글 2102개
[앵커] 지금부턴 어제에 이어 청와대 전 조리장의 증언관련 단독뉴스 집중 보도합니다. 관저생활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전 조리장은 박 대통령의 소통방식에 얼마나 문제가 많았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혔습니다. 이른 아침 박 대통령에 대한 보고는 금기사항이었다고 합니다. 먼저 김지환 기자의 단독보돕니다.
[리포트] [2015년 신년 기자회견] "대면보고를 좀 더 늘려나가는 방향으로 하겠습니다마는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취임 이후 계속 문제가 됐던 박 대통령의 소통부재를 전직 청와대 조리장 A씨도 생생히 기억했습니다. '지진이 나도 새벽에는 윗선, 즉 박 대통령에게 바로 보고하지 말고 아침 몇 시에 보고하라'는 말이 있었다는 것. 또, 누가 됐든 함부로 박 대통령에게 직통으로 전화를 못하고 문고리 3인방을 거쳐야만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박 대통령의 이런 불통은 가장 밀접하게 국정을 논의해야할 비서실장과도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김기춘 / 전 청와대 비서실장(어제)] "일이 있을 때는 일주일에 두 번도 되고 일주일에 한 번도 못 뵙는 경우도 있고 그렇습니다." 한 주 내내 아예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 한 언론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당일에도 대통령 직보가 불가능해 대응이 늦어지기도 했습니다. 청와대 관계자가 정호성 부속비서관에게 박 대통령의 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을 제안했지만 소용 없었다는 것. 당시 정 비서관은 '갑작스러운 외부 방문을 꺼리는 대통령의 스타일을 알지 않느냐'며 보고를 막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채널A 뉴스 김지환입니다. [영상편집: 이희정]
[여성동아·채널A 단독]
"박 대통령, 평일에도 관저 머물며 TV 시청"
채널Aㅣ2016.12.08 19:52 댓글 3185개
[앵커] 박근혜 대통령은 집무실인 청와대 본관이 아니라 개인공간인 관저에 머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관저에서 TV를 보고 혼자 식사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말인데요. 눈을 뜨면 그곳이 곧 집무실이라고 했던 김기춘 전 실장의 말이 떠오릅니다. 이어서 정부경 기자의 단독보돕니다.
[리포트] 전직 청와대 조리장 A씨는 "박 대통령이 회의나 외부 일정이 없으면 늘 관저에 머물렀다"고 밝혔습니다. 일반적인 근무 개념과 달리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었다는 것. 관저는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본관에서 동쪽으로 약 200m 떨어져 있는 별도의 건물로 대통령의 사생활이 이뤄지는 곳. A씨는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문제가 된 '7시간' 때에도 관저에 있었다"면서 관저 내부에서 TV를 봤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는 여전히 별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
[한광옥 / 대통령 비서실장(지난 5일, 국정조사)]
"대통령이 어디에서 집무했느냐 하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집무하시는 건 관저에서도 할 수 있고, 본관에서도 할 수 있고… " 하지만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 등 역대 대통령들은 오전 8시에서 9시 사이에 관저에서 본관 집무실로 출근했고, 퇴근 뒤 관저로 돌아갔습니다. A씨는 또 "박 대통령이 TV 시청을 매우 좋아했다"면서 "평소 혼자 TV를 보며 식사하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고 전했습니다. "TV에서 특정 음식이 건강에 좋다고 하면, 그 음식을 식사에 올리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털어놨습니다. 채널A 뉴스 정부경입니다.
[영상편집: 최동훈, 그래픽: 홍세미 윤승희]
드러나는 세월호 7시간 미스터리
시사저널ㅣ이민우 기자ㅣ입력 2016.12.13 12:23 수정 2016.12.13 13:21 댓글 1481개
靑 관저에서 무슨 일 있었나..12시 홀로 점심, 16시 머리 손질
영원한 비밀은 없었다. 대통령이 침묵하고 최측근들이 ‘모르쇠’로 일관해도 그날의 행적은 차츰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2014년 4월16일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목격한 제3의 인물들이 차츰 입을 열고 있어서다. 세월호 7시간의 미스터리는 그동안 청와대의 금기어였다. 2년8개월 동안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은 그날의 대통령 행적에 대한 의혹을 해소해 달라고 꾸준히 요구했다. 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청와대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정윤회 밀회설, 최태민 천도재 참가설, 성형시술설, 약물 처방설 등 온갖 소문이 떠돌았지만, 청와대는 늘 ‘부인’만 할 뿐 ‘적극적인 해명’에 나서진 않았다. 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조차 국정감사장에서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청와대의 설명과 새롭게 드러난 내용 등을 토대로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을 재구성해 보자. 일단 박 대통령은 당일 오후 5시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방문하기 전까지 청와대 관저에 머물렀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비서실장이나 국가안보실 등으로부터 관저에서 유선 보고를 받았다. 거꾸로 유선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이후 중대본에 모습을 드러내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드냐”고 말했다. 상황 파악이 전혀 되지 않은 듯한 발언이었다.
↑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일인 2014년 4월16일 오후 5시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했다. 방문에 앞서 박 대통령은 미용사를 부른 뒤 최소 20분 이상 머리 손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 청와대 제공
靑 관저 사람들 ‘입’ 통해 드러나는 행적
ⓒ 시사저널 미술팀
당연히 의문점은 관저에서 무엇을 했는지에 쏠렸다. 2년8개월 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진실은 의외의 인물들의 입을 통해 한 꺼풀씩 밝혀지고 있다. 우선 ‘미용실 원장이 참사 당일 관저에서 박 대통령의 머리를 손질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대통령의 머리 손질과 메이크업을 위해 계약직으로 채용된 2명이 이날 오후 3시22분부터 4시47분까지 청와대에 머물렀다. 단원고 학생들이 세월호에 갇혀 생사를 오가는 순간, 머리 손질을 위해 최소 20분(청와대 주장) 이상 시간을 허비한 셈이다.
또 다른 증언도 나왔다. 2008년부터 올해 7월까지 청와대에서 근무한 전직 조리장은 여성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참사 당일 “관저에 딸린 주방에서 낮 12시와 오후 6시에 각 1인분의 식사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그는 “(박 대통령은) 식사는 평소처럼 했고, 중대본 회의 참석 후 관저로 돌아와 식사했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은 회의나 외부 일정이 없으면 늘 관저에 머물렀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중대본 방문 준비를 고려하더라도 여전히 유선 보고나 지시조차 없었던 221분에 대해선 의혹이 풀리지 않았다. 청와대를 통해 확인된 내용은 박 대통령이 수습을 위한 어떠한 지시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서면 보고를 받고, 띄엄띄엄 전화로 구조 상황을 물은 것이 전부였다. 박 대통령은 오전 10시30분 해양경찰청장과 유선 통화를 한 뒤 오후 2시11분 국가안보실장에게 “구조 상황을 재확인하라”고 지시했다. 3시간41분 동안 박 대통령 행적은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 있다. 세월호가 뱃머리 일부만 남기고 거의 침몰(오전 11시18분)한 이후 3시간 가까이 대통령의 목소리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7시간 이후’도 수수께끼
‘7시간 이후’도 수수께끼다. 중대본 방문 후 박 대통령은 관저로 퇴근했다. 구조 상황을 지휘해야 할 대통령이 또 자리를 비웠다. 저녁 식사 사실 외에는 확인되지 않았다. 김기춘 비서실장 주재로 새벽까지 수석비서관회의를 열었지만 박 대통령은 또다시 모습을 감췄다. 때문에 성형시술설과 수면제 복용설 등 각종 의혹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여전히 풀리지 않은 그날의 행적은 청와대 대통령 관저에 머물렀던 이들의 진술을 통해 규명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경호실 내 관저팀은 8시간씩 3개 조로 근무하며 하루 24시간 관저 출입자를 감시하고 대통령의 안위를 살핀다. 안봉근 전 비서관이 발탁한 구아무개씨와 A씨, B씨 세 경호관이 모두 관저팀 소속이다. 이들 모르게 청와대 관저를 출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이들 가운데 전직 경찰관이었던 구씨는 12월16일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실시하는 대통령 경호실 현장조사에 참석하라는 요구를 받은 상태다. 구씨의 증인 채택을 요청한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본인이 양심 고백을 할 마음의 준비가 돼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관저 경호를 담당해 온 청와대 구씨의 증언이 더해지면 박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일 일정은 좀 더 구체화될 전망이다.
‘올림머리’ 담당 정 원장 미용실 방문해 보니
“매일 하던 업무였는데…”
[구민주 기자 mjooo@sisapress.com]
↑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ㅌ미용실 /©시사저널 최준필
12월7일 청담동 ㅌ미용실 건물 앞은 이미 취재진들로 북적였다. 오전 중 한 차례 기자들이 미용실 진입을 시도했지만 직원들에게 가로막혔다. 간간이 직원들이 드나들었지만 취재진의 질문엔 침묵으로 일관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머리를 담당한 원장은 오전 예약을 취소한 후 출근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후 1시30분 손님으로 위장한 채 미용실 안으로 들어갔다. 머리를 감겨주던 보조 미용사는 “안 그래도 시국이 뒤숭숭해 장사가 안 되던 차에 이번 일까지 터져 손님이 더 없는 상태”라며 영업상 피해를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원들 대부분은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것도 모른다”고 답했다.
카운터에 있던 점장은 “정 원장이 수년간 매일 오전 청와대로 가 대통령 머리를 해 줬다”고 말했다. 점장은 세월호 당일 청와대를 방문한 것에 대해 “그날도 매일 하던 당연한 업무를 행한 것뿐인데 우리로선 그저 억울한 입장”이라고 했다. 한편 정 원장의 오랜 고객으로 알려진 최순실씨에 대해선 “올해 들어 온 적이 없다”고 답했다. 점장은 이날 취재진들에게 정 원장이 미용실에 나오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원장은 오후 2시 무렵 취재진을 뚫고 출근해 예정대로 모든 예약 손님을 맞았다. 마감 시간까지 업무를 정상적으로 소화한 정 원장은 오후 8시쯤 준비된 차량에 올라탄 뒤 급히 자리를 떴다.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단독] 우병우 "해경 상황실 서버 수색 말라"...
세월호 수사팀에 압력
한겨레ㅣ강희철 김정필ㅣ입력 2016.12.20 07:16 수정 2016.12.20 08:26 댓글 2060개
[한겨레] 지난달 6일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14년 6월 민정비서관 때 직접 전화 '전산장비 제외' 종용
"청와대·해경 통화내역 등 민감"..영장범위 문제삼기도
수사본부장에도 수차례 전화..특검, 직권남용 수사 방침
지난달 6일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민정비서관이던 2014년 6월 검찰의 ‘세월호’ 사건 수사와 관련해 광주지검 수사팀에 직접 전화를 걸어 ‘외압’을 행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도 이런 내용을 파악하고 우 전 수석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검찰 및 특검의 여러 관계자들은 19일 <한겨레>에 우병우 전 수석이 민정비서관으로 있던 2014년 6월5일 오후 세월호 사건 수사를 위해 해경 본청을 압수수색하고 있던 광주지검 수사팀에 직접 전화를 걸어 ‘해경 상황실 전산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은 하지 말라’는 취지로 압력을 행사했다고 밝혔다. 우 전 수석은 당시 “(본청과 별도 건물에 있는) 상황실 서버에는 청와대와 해경 사이의 통화내역 등 민감한 부분이 보관돼 있는데, 거길 꼭 압수수색하려는 이유가 뭐냐”며 압수수색 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강력히 종용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수사팀이 압수수색 의지를 굽히지 않자 우 전 수석은 다시 “서버가 별도 건물에 있으니 그걸 압수수색하려면 영장을 다시 끊으라”고 ‘영장 범위’까지 문제 삼으면서 지체를 시켰다고 한다. 이에 수사팀은 광주지법에서 새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그날 자정께에야 상황실을 압수수색했다. 검찰 관계자는 “당시 현장에 갔던 수사팀이 서버 압수수색 문제로 해경 쪽과 승강이를 벌이고 있을 때 우 전 수석의 전화가 걸려왔다고 한다. 우 전 수석이 실시간으로 해경의 보고를 받고 있었을 것”이라며 “그때 서버를 압수수색하지 못했으면 청와대와 해경 사이의 통신기록 등은 확보하지 못할 뻔했다”고 말했다. 우 전 수석은 세월호 검경합동수사본부장이던 안상돈 광주고검 차장(현 대전지검장)에게도 수사와 관련해 여러 차례 전화를 건 것으로 알려졌다.
박영수 특검팀도 우 전 수석의 ‘전화 외압’ 사실을 파악하고,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특검팀 핵심 관계자는 “민정비서관이 아니라 민정수석이라고 해도 수사기관에 직접 전화를 걸어 수사를 하라 마라고 할 법적 권한이 없다”며 “특히 압수수색 중인 수사팀에 전화해서 ‘그만하고 오라’는 것은 그 자체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에 해당한다. 우 전 수석의 다른 의혹과 함께 우리가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 전 수석은 세월호 사건 직후인 2014년 5월 민정비서관으로 청와대에 들어간 뒤 이듬해 2월 고 김영한 민정수석의 후임으로 영전했다. <한겨레>는 우 전 수석의 설명을 듣기 위해 여러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닿지 않았다.
형법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제123조)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 성립하며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등에 처하도록 돼 있다. 과거 신승남 검찰총장이 직위를 이용해 울산지검의 내사 사건을 종결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가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바 있다. [김정필 강희철 기자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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