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2주일 행보로 본 문재인-노무현의 데자뷔
매일경제ㅣ강계만ㅣ입력 2017.05.24. 06:04 댓글 337개
↑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뉴스&와이] 문재인 대통령의 2017년 취임 이후 격의 없는 소통 행보와 개혁 의지가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집권 초기 모습과 많이 닮았다. 14년여만에 어디서 본 듯한 '데자뷔'로 국민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다만 과거 노 전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신선함을 넘어 돌출행동으로도 언론에 비쳤다면, 지금 문 대통령의 행보는 비정상의 정상화로 호평받는 게 차이점이다. 보수정권 9년을 거쳐 최순실 게이트까지 터지면서 국민 눈높이와 시대정신 역시 이처럼 많이 달라졌다. 특히 '노무현 친구'인 문 대통령이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에 참석하면서 두 대통령 인연이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5월 23일 매일경제가 제19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5월 10일부터 이날까지 2주일간 동선과 연설문, 업무지시 등을 정리해 제16대 노무현 전 대통령(2003년 2월 25일~3월 10일)의 초창기 2주일치 기록과 비교했다. 그 결과 국민 소통 행보, 능력 위주 비주류 인사의 파격적인 등용, 검찰·국가정보원·언론 등 개혁 의지가 정확히 일치했다. 또 문 대통령은 '나라다운 나라'를 지향하면서 경제철학으로 사람중심 경제를 이야기하는데, 노 전 대통령의 '사람 사는 세상'과 맞닿아 있다. 두 대통령의 취임일부터 소탈한 모습은 상당히 일치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당선 직후 서울 홍은동 자택을 나와 현충원을 참배하러 가는 길에 만난 시민들과 일일이 감사인사를 건넸다. 현충원을 참배한 뒤에는 방명록에 대선 슬로건이었던 '나라다운 나라 든든한 대통령'이라고 적었다. 노 전 대통령 역시 취임 첫날인 2003년 2월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명륜동 집을 나서면서 골목에서 기다리던 주민들과 환송식을 가졌다. 노 전 대통령은 주민들에게 "국민과 함께 따뜻하고 밝은 정치를 해보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현충원에 도착해 헌화와 분향을 한 뒤 방명록에는 '대통령 노무현'이라고 간단히 서명했다.
취임식은 차이를 보였다. 대통령 궐위 상태에서 치러진 대선이라서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했기에 문 대통령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국민에게 가급적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선서식을 국회 본관 로텐더홀에서 5부 인사와 국회의원 등 300명만 초청해 간소하게 치렀다. 자리 배치도 없고 선착순으로 앉는 형태였다. 문 대통령은 취임선서에서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며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면서 국민 통합을 강조했다. 또 "대화하고 소통하는 광화문 시대 대통령이 되겠다"면서 김대중·노무현에 이은 민주정부 3기 국정 운영 방향을 설명했다. 아울러 "깨끗한 대통령이 되어 빈손으로 취임하고 빈손으로 퇴임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은 국회 잔디마당에서 국내외 귀빈들과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공식적인 취임식을 가졌다. 노 전 대통령은 "새 정부는 개혁과 통합을 바탕으로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사회,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를 열어나갈 것"이라며 "이런 목표로 가기 위해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 대화와 타협, 분권과 자율을 국정 운영의 좌표로 삼고자 한다"고 밝혔다. 또한 노 전 대통령은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하고, 정정당당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로 나가자"고 선언했다. 이처럼 두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보면 개혁과 통합이라는 키워드가 관통한다.
문 대통령은 취임선서 직후 국회를 빠져나오면서 차량 덮개문을 열고 상반신을 드러낸 채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었는데, 노 전 대통령 역시 14년 전 똑같은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또 문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 가는 길에 환영 나온 주민들에게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취임 첫날 야 4당 지도부와 회동해서 국정협력을 당부했고 청와대 춘추관에서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주영훈 경호실장 등 인선 발표를 하면서 직접 소개했다. 이어 비검찰 출신인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흙수저 출신의 이정도 총무비서관 등 참모진 인사를 순차적으로 단행했다. 문 대통령이 그동안 임명한 총 33명 인사 특징은 대부분 지방 출신으로서 개혁 성향의 비주류 50대라는 점이다.
일하는 청와대와 내각을 만들겠다는 의중을 반영한 것이다. 이로 인해 야당에서도 문 대통령의 인선에 호평을 쏟아내고 있다. 문 대통령은 과거 자서전 운명을 통해 "문민정부와 국민의정부 때 개혁적 인사들이 한두 명씩 내각이나 청와대에 발탁됐다가 견디지 못하고 물러나는 모습을 많이 봤다"며 "그래서 나는 개혁적 인사들이 일거에 내각과 청와대 대세를 장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생각이 노 전 대통령의 뜻과도 같았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도 2003년 취임 이후 장관 임명식을 가진 직후 춘추관에 들러서 기자들에게 인선 배경을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 법무부와 검찰 독립의 적임자로 강금실 법무부 장관, 이장 출신의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영화감독인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 삼성전자 출신의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등이 파격 인사로 주목받았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적재적소를 첫 번째 인사 원칙으로 삼고, 안배를 보완적인 고려 사항으로 삼았다"고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를 시작으로 4강 국가들과의 외교에 들어갔다. 노 전 대통령 역시 취임식에 참석한 4강 특사들과 만나 외교안보 이슈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아울러 문 대통령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 테이블로 북한을 이끌어내려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노 전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중심국가로서 균형외교를 강조한 것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일자리위원회 설치를 제1호 업무지시로 하달했다. 이어 인천공항에 방문해 공공 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약속했다. 또한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를 지시하면서 본격적인 개혁 신호탄을 쐈다.
특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재수사를 지시하면서 검찰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문 대통령은 '검찰 돈봉투 만찬' 사건에 대한 감찰지시를 내렸으며 일부 인사에 대한 책임을 물어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예를 들어 최순실 게이트 특별검사팀에서 수사팀장을 맡았던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승진 발탁했다. 윤 신임 지검장은 2013년 국정원의 대선개입 댓글 사건을 수사하다가 박근혜정부의 외압 의혹을 폭로하는 등 이른바 항명 파동으로 좌천됐다가 이번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 같은 문 대통령의 검찰개혁 의지는 노 전 대통령의 초창기 행보와도 닮았다. 노 전 대통령은 강금실 법무부 장관과 검찰 인사에 집단항명하는 전국 평검사들과 직접 만나 토론회를 개최한 적이 있다. 취임 이후 불과 13일이 지난 시기였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검찰개혁 방향을 의논하기 위해서 평검사들을 만나려고 했는데 문재인 수석까지도 '대통령이 직접 검사들을 만나는 것이 무리하게 보인다'고 다들 말렸다"면서도 본인이 강행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검찰개혁 방안으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을 약속했는데, 이 역시 노 전 대통령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적극 추진했던 사안이다.
또 문 대통령이 국정원과 방송개혁을 내세웠는데, 노 전 대통령이 취임 며칠 만에 개최한 '참여정부 국정토론회'에서 강조했던 정치·정부·언론·재벌·검찰·국정원 등 개혁 구상과 일치한다. 문 대통령은 이날 노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에서 "제가 이 추도식에 대통령으로 참석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킬 수 있게 해주신 것에 대해 깊이 감사드린다"며 "노 대통령님도 오늘만큼은 여기 어디에선가 우리들 가운데 숨어서 모든 분들께 고마워하면서 '야, 기분 좋다' 하실 것 같다"며 무한한 애정을 보였다. 문 대통령은 이어 "당신이 그립지만 앞으로 임기 동안 노 대통령님을 가슴에만 간직하겠다"며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다"고 약속했다. [강계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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