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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애청곡

[광복의 노래] "4대문을 열어리" (인민의 노래) - 쟈니브라더스 노래

잠용(潛蓉) 2019. 7. 23. 18:35




"四大門을 열어라" (1945)

(일명/ 人民의 노래)

朴英鎬 작사/ 金龍煥 작곡/ 노래 쟈니브라더스


< 1 >

四大門을 열어라

人定을 쳐라

半萬年 옛 터에

먼동이 튼다


勞動者야 農民아

靑年 學徒야

새 世上은 우리의 것

앞으로 앞으로~


< 2 >
쇠사슬을 끊어라

날개를 펴라

半世紀 눈물이

아랑곳이냐?


自由民아 同志여

海外 同胞야

새 世上은 우리의 것

앞으로 앞으로~  


< 3 >
太陽 우에 걸어라

우리의 理想

自由와 平等의

징을 울려라


鎔鑛爐야 괭이야

무쇠 마치야

새 世上은 우리의 것

앞으로 앞으로~



* 위의 가사는 2014년 가요무대에서 방영된 노래를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원래 가사가 어떠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출처] 건국준비위원회 - 사대문을 열어라 |작성자 동의과학연구소


[악보 출처] http://terms.aver.com/entry.nhn?docId=552953&cid=46662&categoryId=46662 



박영호 작사, 김용환(金龍煥) 작곡의 대중가요. 원래 제목은 「인민의 노래」이다. 광복 후 이승만(李承晩)의 환국, 충칭(重慶)에서 임시정부와 김구(金九)의 귀국 등으로 들뜬 분위기 속에서 1945년 8월 22일 연예관계 인사들이 종로 2가의 기독교서적빌딩 4층에 모여 이들을 맞이할 환영준비를 하자는 중론 속에 조국광복과 독립의 기쁨을 상징하는 노래를 만들기로 합의하였다.


사대문을 열어라 인경을 쳐라

반만년 옛 터에 먼동이 튼다

노동자야 농민아 청년학도야

새 세상은 우리의 것 앞으로 앞으로


이 노래는 종각 옆에 있던 한청빌딩 3층 간이녹음실에서 아코디언과 기타 반주로 남녀혼성합창으로 불렀던 노래를 레코딩 원판(왁스판)에다 녹음을 했다. 그 뒤 방송국에서 이 원판 레코드를 매일 방송해주었으나 며칠 뒤 노래보다 잡음이 심해진 원판 레코드는 방송할 수 없게 되었다. 1983년 「TV로 본 한국가요사」 제2편(MBC―TV 제작)에서 38년 만에 방송합창단의 노래로 재방송되었다. 이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나 해방가요 제1호로서 의의를 지니고 있다. <민족문화대백과>


1945년 8월15일 해방의 기쁨을 노래한 첫 곡을 상상으로 편곡하면서 사대문을 열어라 지난 8월1일 녹화하는 가요무대 프로그램에서는 8월15일에 방송되는 광복절 특집의 내용이었는데 본인에게 편곡의뢰 온 곡이 아래의 설명처럼 자료도 없는 안타까운 곡이었다.    작가의 의견으로는 행진곡풍일거라는 전언을 들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것은 아닌것 같다. 왜냐하면 행진곡풍 가요는 그 시절에는 없었던것이 우리 가요계의 당시 풍토였다. 


행진곡풍은 군가와 국민가요에나 해당되는데 일정때는 일본 군가와 일본을 찬양하는 가요들이 행진곡풍이었고 우리나라 는 만주에 있던 독립군들이 군가를 지어 부르는 정도였기에 우리나라 가요계에서는 우리만의 행진곡풍 가요는 있을수가 없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그런 가요가  옛 가요를 집대성한 "가요반세기" 에도 안 보인다. 나는 그래서 그 곡의 리듬을 당시 국내 가요에 많이 쓰인 경쾌한 리듬인  Fox Trot 로 설정했다. KBS가요무대에서 보내온 악보는 아래에 있는것으로 "인민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었다. 

 

사대문(四大門)을 열어라
고려성(본명 曺慶煥) 작사, 김용환(金龍煥) 작곡의 1945년 해방 1호의 대중가요. 광복 후 이승만(李承晩)의 환국, 중칭(重慶)에서 임시정부와 김구(金九)의 귀국 등으로 들뜬 분위기 속에서  1945년 8월 22일 연예관계 인사들이 종로 2가의 기독교서적빌딩 4층에 모여 이들을 맞이할 환영준비를 하자는 중론 속에 조국광복과 독립의 기쁨을 상징하는 노래를 만들기로 합의하였다.

 

사대문을 열어라, 인경을 쳐라

삼천리 곳곳마다 물결치는 이 기쁨,

민족의 꽃은 다시 피었네,

영광된 내 조국, 영원무궁하리라.

 

이 노래는 종각 옆에 있던 한청빌딩 3층 간이녹음실에서 아코디언과 기타 반주로 남녀혼성합창으로 불렀던 노래를 레코딩원판(왁스판)에다 녹음을 했다. 그 뒤 방송국에서 이 원판 레코드를 매일 방송해주었으나 며칠 뒤 노래보다 잡음이 심해진 원판 레코드는 방송할 수 없게 되었다. 1983년「TV로 본 한국가요사」 제2편(MBC―TV제작)에서 38년만에 방송합창단의 노래로 재방송되었다. 이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나 해방가요 제1호로서의 의의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