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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윤석열] '아픈 손가락' 담겼다... 영화 블랙머니 속 론스타 수사

잠용(潛蓉) 2019. 12. 1. 12:07

윤석열 '아픈 손가락' 담겼다... 영화 블랙머니 속 론스타 수사
중앙일보ㅣ정진호 입력 2019.12.01. 05:00 수정 2019.12.01. 07:05 댓글 506개


▲ 영화 '블랙머니'(감독 정지영)는 좌충우돌 열혈 평검사 양민혁(조진웅)이 론스타 외환은행 사건을 연상시키는 금융 비리 실체에 접근하는 이야기다.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2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영화 ‘블랙머니’는 검찰의 ‘론스타 사건’을 주제로 한다. 영화는 외국계 사모펀드 회사인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헐값에 인수한 뒤 ‘먹튀’했다는 의혹과 이를 수사한 검찰을 조명한다. 영화 속에서 외환은행은 대한은행으로, 론스타는 스타 펀드로 나온다.

블랙머니 조진웅과 론스타 수사 윤석열
배우 조진웅은 물불 가리지 않는 성격의 양민혁 검사로 등장한다. 영화 속 양 검사는 스타 펀드 사건에 관심을 갖고 고군분투하며 대한은행 헐값 매각 의혹의 실체를 파헤친다. 조진웅의 풍채와 외모가 윤석열(59·사법연수원 23기) 검찰총장을 떠올리게끔 한다는 관객이 상당수다. 실제로 이 영화를 만든 정지영 감독은 윤 총장을 블랙머니 시사회에 초대했다고 한다. 윤 총장은 시사회에 가지 않았다.


▲ 영화 ‘블랙머니’ 포스터.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에서 양 검사는 처음 스타 펀드 사건을 알게 되면서 “BIS(자기자본비율)가 뭐냐”고 물으며 금융범죄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 양 검사는 금융업계 용어를 공부하며 스타 펀드의 배후를 추적해간다. 실제 론스타 수사에 참여했던 관계자들에 따르면 윤 총장도 사건 초까지는 BIS와 같은 금융업계 용어를 잘 몰라 처음부터 공부했다고 한다. 윤 총장은 2006년 대검찰청 중앙수사(중수)1과 부부장검사로 론스타 수사를 맡은 주역 중 한 명이다. 영화는 금융위원회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을 승인한 2011년을 배경으로 검찰 수사가 벌어진 것처럼 그린다. 실제 검찰 수사와는 시점부터 차이가 있다. 2006년은 노무현 정부 때고 영화의 배경인 2011년은 이명박 정부 때다.


▲ 윤석열 검찰총장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2006년 꾸려진 대규모 론스타 수사팀
영화 주제처럼 ‘검찰이 론스타 사건을 덮었다’고 보긴 힘들다. 윤 총장을 비롯한 당시 론스타 수사팀의 수사는 급박하게 돌아갔다. 2006년 3월 30일 오광수 중수2과장 등 4명의 검사로 시작한 수사는 서울 역삼동 론스타 본사와 임원 자택 8곳 등에 대해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였다. 그해 8월 중수1과 인력까지 전부 투입되면서 검사 20여명, 수사 인원 100명 이상에 달하는 수사팀이 탄생했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국정농단‧사법농단 등 최근에는 대형 수사팀이 꾸려지는 경우가 많지만, 그때만 해도 굵직한 사건도 검사 3~4명이 처리하던 게 일반적이었다”며 “론스타 수사에 이례적으로 많은 검사가 투입된 건 그만큼 수사 의지가 강했다는 의미다”고 했다.


박영수부터 한동훈까지…'칼잡이' 망라
수사팀의 면면도 화려했다. 박영수 특별검사가 중수부장,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대검 수사기획관을 맡으며 론스타 수사를 지휘했다. 또 당시 검찰 내 최고의 ‘칼잡이’라는 최재경 중수1과장, 이동열 부부장, 이두봉‧조상준‧한동훈‧이복현 검사 등이 수사를 담당했다. 이두봉·조상준·한동훈 검사는 모두 검사장이 됐다. 이들은 윤 총장의 ‘복심’으로 꼽히며 지난 7월부터 대검찰청에서 윤 총장의 참모로 근무하고 있다. 공인회계사 출신으로 론스타 수사의 말석을 맡은 이복현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4부 부장검사가 됐다. 론스타 수사팀은 수사가 끝나고도 1년에 1번씩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다가 최근엔 하지 않는다고 한다.


"당시 검찰, 외신·법원과 싸웠다"
대검 중수부는 론스타 수사를 하는 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다. 검찰이 외국계 대형 펀드 경영진을 대상으로 삼자 파이낸셜타임스·월스트리트저널·뉴욕타임스 등 영·미 언론에 의해 견제를 받기도 했다. 론스타 수사를 ‘마녀사냥’으로 빗댄 외신에 검찰이 항의문을 보내는 일도 있었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정부와 법원, 언론까지 검찰이 과도한 수사를 벌인다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 박영수 전 대검 중수부장이 2006년 12월 7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론스타의 외환은행 불법매각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검찰이 청구한 사건 관계자에 대한 구속영장이 연거푸 기각되면서 검찰과 법원이 초유의 갈등을 빚기도 했다. 검찰은 유희원 전 론스타 코리아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네 번 청구했으나 모두 불발됐다. 검찰이 항의의 표시로 기각된 영장을 한 글자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재청구한 것도 이때가 처음이다.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에 대한 구속영장도 두 차례 모두 기각됐다. 당시 검찰은 변 전 국장이 외환은행이 론스타에 매각되는 과정에 관여했다고 봤다. 론스타 미국 본사 임원에 대한 체포영장까지 잇따라 기각되자 박영수 중수부장은 “영장 발부 요건 기준이 최근 지나치게 확대 해석돼 수사에 장애를 초래하고 있다”고 법원을 비판했다. 채동욱 기획관은 “왜,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영장을 기각했는지 묻고 싶다”는 격양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론스타 코리아 대표 실형, '절반의 성과'
영화 말미에는 론스타 사건과 관련해 지금까지 구속된 사람이 없다고 나오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네 차례나 구속영장이 기각됐던 유 전 대표는 외환카드 주가 조작 혐의로 징역 3년형이 확정됐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에 이어 외환카드까지 싼값에 합병하기 위해 허위 소문을 퍼뜨려 외환카드의 주가를 떨어뜨렸다는 혐의가 인정된 것이다. 유 전 대표는 1심 유죄로 법정구속됐지만 2심에서 무죄로 뒤집히기도 했다. 대법원이 이를 파기환송하면서 결국 유죄가 확정됐다. 유 전 대표의 공판은 이동열 전 서부지검장과 한동훈 대검 반부패부장이 맡았다. 당시 중수부를 거쳐 부산지검에 근무하던 한 검사장은 매주 서울을 오가며 재판에 들어갔다.


▲ 윤석열 검찰총장과 한동훈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 대검찰청 청사에서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구내식당으로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장화식 전 투기자본감시센터 대표는 유 전 대표의 2심이 진행 중이던 2011년 론스타 측으로부터 8억원을 받고 론스타에 대해 비판을 하지 않겠다는 거래를 했다가 적발됐다. 장 전 대표는 구속 기소됐고 2014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영화에서는 론스타 반대 운동을 하던 변호사가 ‘함정’에 빠져 구속되는 장면이 나온다.

윤석열의 '아픈 손가락'으로 남은 수사
검찰이 배임 혐의로 기소한 변 전 국장은 1·2·3심에서 모두 무죄를 받았다. 법원은 공무원이 절차에 따라 사무를 처리했다면 결과적으로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론스타 관계자는 처벌했지만 외환은행 매각에 관여한 공무원을 처벌하는 데는 검찰이 실패한 것이다. 윤 총장과 친분이 있는 한 검사는 “론스타 수사가 끝난 지 10년 넘게 지났는데도 윤 총장은 때때로 그때 얘기를 한다”며 “윤 총장은 열심히 수사해 변 전 국장의 비리를 밝혔다고 생각했지만 무죄가 선고되면서 아무런 처벌도 할 수 없게 된 것이 마음에 많이 걸리는 것 같더라”고 전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