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곡) ---(개사곡) * 어데로 → 어디로 * 고향봄도 → 고향꿈도 * 南北統一 → 北進統一 * 울어보자 → 웃어나 보자
(굳세여라 금순아 - 현인 원곡) 현인 - 굳세어라 금순아 (원곡 LP 음향) 현인 - 굳세어라 금순아 (원곡 가요무대 1989) 현인 - 굳세어라 금순아 (개사곡) ◆ 강해인(姜史浪). 1911~1985 작사가 본명은 강해인(姜海人). ·오케(Okeh)레코드 직원. 1911년 2월 6일에 전라남도 여수 출생했으며, 본명은 강대은(姜大恩)이다. 광복 이전에는 강해인이라는 예명을 사용했고, 광복 이후에는 강사랑(姜史浪)이라는 예명을 주로 사용했다. 작사가로 데뷔하기 이전 이력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1935년에 태평(太平)레코드에서 발매된 <승리의 거리>라는 곡이 처음 가사를 쓴 작품으로 보이는데, 이후 곧 오케레코드에 직원으로 입사했다고 한다. 1936년에 가수 남인수(南仁樹)가 시에론(Chieron)레코드에서 오케레코드로 옮겨올 당시 같은 종씨라는 이유로 보증인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남인수의 본명은 강문수(姜文秀)이다). 이후 1938년에 빅타(Victor)레코드, 1939년에 포리돌(Polydoe)레코드에서 몇 작품을 발표한 예가 확인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직원으로 일한 오케레코드에서 가사를 썼다. <향수>(1938년), <감격시대>, <뒤져 본 사진첩>, <안개 낀 상해>(이상 1939년), <비 젖는 화륜선>, <얼시구 당기>(이상 1940년)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해방 이후에는 1953년까지 강해인이라는 예명을 계속 사용하다가 1954년 무렵부터 강사랑으로 바꾸었다. <굳세어라 금순아>(1953년), <청춘쌍곡선>, <아리랑 목동>, <눈물의 자장가>(이상 1956년), <추억에 우는 여인>, <서귀포 사랑>(이상 1957년)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1956년에 설립된 대한레코드작가협회 간사를 역임했고, 1960년대 이후 신문이나 잡지에 대중가요 관련 일화를 많이 소개했다.
“아아, 신라의 밤~이~여.
현인은 ‘신라의 달밤’ 외에도 피란민의 애환을 그린 ‘굳세어라 금순아’나 ‘비 내리는 고모령’ ‘청포도 사랑’ ‘전선야곡’ 등을 불러 한국전쟁으로 실의와 절망에 빠졌던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줬다. 또 번안곡인 ‘베사메무초’ ‘꿈 속의 사랑’ 등을 불러 이국적인 번안곡 열풍을 이끌었다. 현인은 성악가 출신답게 성악을 바탕으로 한 혀 짧은 소리에 턱을 떨며 부르는 독특하면서도 절도 있는 창법으로 유명했고, 당시 민요나 트로트 일색이던 대중음악계에 혁신을 일으켰다. 현인은 지병인 당뇨병을 앓다가 2002년 4월13일 별세했고, 장례는 한국 연예예술인장으로 치러졌다.(향년 84세). 사후에 ‘굳세어라 금순아’의 무대인 부산 영도대교 남단에 현인의 동상과 함께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비가 세워졌고, 경주에도 ‘신라의 달밤’ 노래비가 세워졌다. 또 그를 기리기 위해 2005년부터 그의 고향 부산에서 매년 <현인가요제>가 열리고 있다. (경향신문 2011-04-12 21:29:27)
|
'음악·애청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운 가곡] '세노야' - SNU Choir 노래 (0) | 2012.10.22 |
---|---|
[추억의 가요] '마상일기' (馬上日記 1940) - 진방남 노래 (0) | 2012.10.21 |
[연주곡 감상] '돌아와요 부산항에' - 폴 모리아 악단 (0) | 2012.10.21 |
[어머니 노래] '고추잠자리' (1981) - 조용필 노래 (0) | 2012.10.21 |
[옛날동요] '따오기' (1925) - 한정동 작사, 윤극영 작곡 (0) | 2012.1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