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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청와대

[개관] 서울 상암동에 새로 문을 연 '박정희 기냠관'을 가 보니...

잠용(潛蓉) 2012. 10. 26. 09:23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너무 작아 어떡하냐?”
[한겨레] 2012.02.22 15:53

△ 박정희 기념관 전경

[현장] 머리 희끗한 중장년층 발걸음 이어져
긍정적 내용 일색… ‘쿠데타·독재’ 등은 설명 없어

서울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 기념관 앞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20여m 높이의 육중한 6개의 기둥이 관람객을 맞는다. 기념관 건물을 전체적으로 떠받치는 기둥들인데 규모가 커 다소 위압적인 느낌을 준다. 건물 오른 편 한 켠에는 새마을 깃발 2개가 태극기와 함께 펄럭이며 방문객을 맞는다.

 

기념관 개관 첫날인 22일 아침 박정희 기념관을 직접 방문해 이곳 저곳을 살펴보았다.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날 아침 10시에 문을 연 기념관에는 10시30분까지 30여명이 입장한 상태였다. 1분에 한명 꼴이었다. 대체로 머리가 희끗한 중장년층 방문객들이 주를 이뤘다. 윤정경(76·서울시 강남구 역삼동)씨는 이른 아침 집을 나서 일반인으로서는 첫 방문객으로 기념관을 찾았다.

 

윤씨는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의 첫번째 방문객이 되고 싶어 서둘러 나왔다. 박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공산화하는 것을 막고 경제건설에 도움을 준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윤씨는 기념관 쪽이 제작해 나눠준 ‘박정희 대통령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적힌 100쪽 짜리 책을 받아들고 흐뭇해 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남성 (62·서울시 강남구)은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기념관에 들어섰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에 비해 기념관 규모가 너무 작다. 아이들이 교육 삼아 많이들 올 것이고 세계적 관광지가 될텐데 규모가 이렇게 작으면 어떡하냐”며 안타까워 했다.

 

건물 바깥의 화강암으로 된 계단 20여개를 올라서면 너른 나무 데크로 짠 고급스런 느낌의 마당이 나오고 이곳은 제1 전시실 입구로 이어진다. 입구에는 이명박 대통령, 김황식 국무총리의 화환과 이희호 여사의 화환이 함께 놓여 있다.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방문객이 맞닥뜨리는 것은 약 4m 높이의 거대한 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이다. 청와대 집무실에 앉아 어느 한 곳을 지긋이 바라보는 편안한 모습의 박 전 대통령 사진이다. 일부 방문객은 박 전 대통령의 사진을 보고 고개를 숙여 묵념했다.

 

박 전 대통령 사진 옆에는 ‘세계 석학들이 보는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글귀와 함께 박 전 대통령의 평가가 담긴 조형물이 놓여 있었다. 리콴유 싱가포르 초대 총리의 말도 담겨 있었다. “아시아에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세 지도자로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와 중국의 덩샤오핑, 한국의 박정희를 꼽고싶다.”

 

 

△ ‘쿠데타’를 통해 정권 잡았다는 내용 대신 ‘5.16 혁명’이라고 적혀 있다.

전시실 규모는 매우 크고 내용도 풍부했다. 총 3개로 나뉜 전시실을 모두 살펴보는 데 거의 30여분 이상 걸릴 정도였다. 기념관은 전체면적 5260㎡에 3층 규모로 1층은 전시실, 2층은 전시실과 일반 열람실, 3층은 특별자료 열람실로 구성돼 있다.


1층 전시실 입구의 너른 홀 한쪽 벽면에는 박 전 대통령의 역사가 연도별로 빼곡하게 정리돼 적혀 있다. 박 전 대통령 관련 역사기록은 ‘1961.5.19. 군사혁명위원회를 국가재건 최고회의로 개칭’ 이라는 글귀로 시작했다. 그가 1961년 5월16일 군사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았다는 내용은 빠져 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이 무엇을 선언하고 무엇을 발표했는지 연도별, 월별로 자세히 적어 놓았는데 그와 관련한 부정적인 내용은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제1 전시실에 발을 들이면 ‘5·16 군사 쿠데타’에 대한 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기념관 쪽은 쿠데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 전시물을 설치해 놓았다.

 

“3·15 부정선거에 의한 4·19 혁명으로 인한 자유당 정권의 붕괴와 이어진 민주당 정권의 무능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극도에 달하였으며 군의 정풍과 정군이 절실히 요구되었음. 당시의 모든 정세와 환경이 혁명이 생길 수 있는 요인을 유발함. 윤보선 대통령은 혁명 후 기자회견 시 ‘올 것이 온 것’이라고 말함.” 

 

 “4·19 혁명 후 시위의 남발과 혼란으로 (중략) 퇴보와 좌절이 계속됨. 박정희 장군의 지휘하에 민족중흥과 근대화를 목표로 사회체제를 개혁함. 516 혁명은 민족 중흥과 근대화 혁명”

 

516쿠데타를 미화한 전시물 통로 옆에는 영상물 상영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5분여 동안 상영되는 ‘집권 18년6개월 동안의 기록’이라는  영상물은 비교적 지루하지 않게 잘 만들어졌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 집권시에 실행한 새마을 운동과 경제개발 정책 등에 대해서만 다루었을 뿐, 그의 집권기에 있었던 여러 부작용 등은 조금도 언급하지 않았다.

 

집권 후반기 부마항쟁이 발생할 정도로 박 전 대통령의 독재가 심각했다거나 결국 그가 암살당했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살펴볼 수 없다. 영상만 보고 있으면 박 전 대통령은 ‘근대화의 아버지’로만 기억될 것 같았다.

 

 

△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맨 오른쪽)이 21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에 개관한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을 돌아보는 중에 한 관람객이 박 전 대통령 사진을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박정희기념관은 1999년 김대중 대통령의 기념관 건립 지원 약속 이후 국고 보조금이 회수되고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을 벌이는 등 사회적 논란 끝에 13년 만인 이날 문을 열게 됐다. /공동취재 사진단

제2 전시실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어떻게 고속도로 건설을 지시했는지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한 전시물에는 “여론의 반대와 차관 도입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1968년 2월 착공해 1970년 7월 준공했다”고 써 있었다. 또 박  전 대통령의 친필 메모도 유리 전시관 속에 전시해 놓았는데 “예산, 노폭, 공사기간, 건설장비, 건설자재 등을 꼼꼼하게 확인하신 것을 알 수 있는 메모”라고 설명해 놓았다.

 

또 제2 전시실은 영화 세트장처럼 박 전 대통령이 변화시켜 놓은 농촌 가옥 등을 설치해 놓았다. 전시실은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초가집이 현대식 집으로 바뀌었다”고 소개했다. 이 외에도 새마을운동 관련 각종 전시물 등 다양한 볼거리를 꽤 풍부하게 전시해 놓았다.

 

 제3  전시실에는 ‘인간 박정희’ 라는 주제로 박 전 대통령의 인간적인 모습 등을 살펴볼 수 있게 해 놓았다. 그가 사용하던 선글라스, 도장, 메모철과 같은 유품 등이 전시돼 있다.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 잡게 하는 유품 중 하나는 그가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에서 사용한 가위였다.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은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에 참여한 뒤 암살당했다. 가위 아래에는 ‘삽교호 준공식에서 각하께서 사용하신 가위’라고 안내문을 적어 놓았다.

 

박상범(73·서울시 은평구 북가좌동)씨는 동네 할머니들과 함께 이 가위를 눈여겨 살펴봤다. 박씨는 “대통령의 귀중품을 보니 그 시절도 생각나고 실감이 난다. 우리 세대에게 박 전 대통령은 잊을 수 없는 위대한 대통령이다”고 말했다. 전시실 한켠에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가난한 산골 소년으로 태어나 어려움을 딛고 대통령이 됐다. 집권 18년6개월 동안 혼란스러웠던 대한민국을 바로 잡고 조국 근대화의 기틀을 만들었다”고 소개한 글귀가 걸려 있다.

 

전체적으로 박정희기념관은 박 전 대통령 집권 기간 우리나라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살펴 볼 수 있도록 다양한 볼거리들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간의 논란은 조금도 소개하고 있지 않아 학생들에게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장소로는 부적합해 보였다.

 

허재원(서울시 상암중학교 2학년)군은 “뉴스를 보고 찾아왔는데 박 전 대통령이 이렇게 우리나라에 많은 일을 한 분인 것을 여기 와서 처음 알았다” 면서도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문객들은 대체로 “박정희 기념관이기 때문에 한쪽 면만 소개해도 괜찮다”는 반응이었다. 권택상(57·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씨는 “기념관은 원래 긍정적인 내용만 담는 것이다. 역사의식 없는 사람들은 문제가 있다. 부정적 내용만 보려고 하면 역사적 허무주의에 빠진다”고 말했다. 권씨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한쪽 면만 소개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냐?”라는 질문에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박정희기념관은 서울시가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디지털 미디어 시티’ 바로 맞은 편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의 개발이 완료되면 기념관 자리는 금싸라기 땅으로 변모한다. 이 때문에 한 시민은 기념관을 지나다 의문을 표시했다. 근처에 회사가 있다는 안아무개(54)씨는 “오며가며 어떤 건물이 세워지고 있는 것은 알았는데 박정희 기념관인줄 몰랐다. 이곳은 박 전 대통령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지역인데 왜 이곳에 기념관이 세워졌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기념관 쪽이 나눠준 홍보 팸플릿에는 기념관 건립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었다. “이곳에는 조국 근대화에 일생을 바친 박 대통령의 치적이 전시되어 있고 각 전시물에는 위대한 지도자를 추모하는 온 국민의 염원이 깃들어 있습니다. 아무쪼록 뜻 깊은 관람을 통해 위대한 선각자의 정신과 역사를 배우고 이를 밀알로 삼아 앞으로 영원히 지속될 조국의 발전에 기여하시길 기대합니다.”

 

박정희 기념관 건립에는 국고 200억원이 투입됐다. 기념관은 도서관으로도 함께 사용돼 향후 많은 학생들이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영상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