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일명 ‘금강경’
(Elder Subhūti addresses the Buddha. Detail from the Dunhuang block print) ◇ 금강경 해설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은 범어로 Vajracchedikā Prajñāpāramitā Sūtra, 영어로는 Diamond Sūtra라 부른다. 이 경은 한국 불교 조계종의 소의경전이다. 줄여서 <금강경> 또는 <금강반야경>이라고도 부른다. 석가모니에 의해 설해진, 공(空)의 사상이 깊이 있게 다루어진 대승불교의 대표 경전으로 서기 402년 천축국의 구마라집(鳩摩羅什)에 의해 한역되었다. 그 후 중국에서는 여러 차례 번역되었으나, 현재 유행하는 <금강경>은 구마라집본이다. 이 경은 조계종뿐 아니라 많은 선종계통의 종단에서 소의경전으로 삼고 있다.
<금강반야바라밀경>은 원래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졌는데 ‘금강(金剛, diamond)’은 영원히 깨어질 수 없는 부처님의 진리를 뜻하는 말이고, ‘반야’(般若)는 지혜를 뜻하고, ‘바라밀’(波羅蜜)은 ‘바라밀다’의 줄임말로 '저쪽 언덕으로 건너가다' 즉 도피안(到彼岸), 다시말해 열반의 세계로 들어간는 말이다. 그러므로 <금강반야바라밀경>은 “무명을 깨치고 열반의 경지에 들어가는 지혜를 가르쳐 준 부처님의 금강석과 같이 귀중한 말씀”이라는 뜻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서 수제자 수보리와 문답한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부처님은 수보리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보살이 마땅히 닦아야 할 수행에 대해 여러가지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이 세상의 온갖 상(相)은 모두가 허망하니 보이는 것이 실상이 아닌 줄 알면 바로 여래를 보리라”고 설명한다. 원래 이 경전은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되고, 한역 <금강경>의 주요 경구는 사구게(四句偈)로 되어있다.
凡所有相 (범소유상) 무릇 모든 상(相)이 있는 것은
세계 최고의 금강경(金剛經) 문헌: 돈황 막고굴(敦煌 莫高窟) - 9세기 당나라 사경(대영박물관 소장)
(The Diamond Sūtra is a Mahāyāna sūtra from the Prajñāpāramitā, or "Perfection of Wisdom" genre, and emphasizes the practice of non-abiding and non-attachment. The full Sanskrit title of this text is the Vajracchedikā Prajñāpāramitā Sūtra. A copy of the Chinese version of Diamond Sūtra, found among the Dunhuang manuscripts in the early 20th century by Aurel Stein, was dated back to May 11, 868. It is, in the words of the British Library, "the earliest complete survival of a dated printed book")
금강반야경(金剛般若經)은 짧고 긴요한 핵심교리를 담은 대승불교 경전으로 동아시아에서 널리 읽히고 있는데 비구와 보살(붓다가 될 사람)들의 모임에서 붓다와 질문자인 제자 사이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금강경>은 실체 없는 현상세계의 성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거대한 천상의 구(球) 속에 별·어둠·빛·신기루·이슬·거품·번개·구름이 나타났다가 꿈과 같이 사라지듯이, 개체로 나타나는 모든 것은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대부분의 짧은 개념으로 서술되는데, 종종 어떤 것과 그것과 반대되는 개념을 동일시하는 등 인상적인 역설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표현형식은 정신적인 깨달음은 초월적인 이성에 의존한다는 이 경의 주제를 강조한다. 부분적으로 이러한 이유에서 <금강경>은 정신적으로 선(禪)에 가장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산스크리트 경전이다.
예로부터 <금강경>을 강의하는 고승이 많았으나, 특히 선종(禪宗)에서 육조혜능(六祖慧能) 이후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 중시하고 있다. <금강경>의 경문은 처음 '여시아문'(如是我聞: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부터 '과보역불가사의'(果報亦不可思議:과보도 또한 불가사의하다)까지가 전반부에 해당하고, 그뒤인 '이시수보리백불언'(爾時須菩提白佛言:그때에 수보리가 붓다에게 말하기를)부터 경의 끝에 이르기까지가 후반부에 해당된다. 그런데 역대의 〈금강경〉 주석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경문의 전반부와 후반부 경문의 어구와 내용은 현저하게 다르다고 한다. 승조 (僧肇)는 경의 전반부에서는 중생공(衆生空)이 설해졌고, 후반부에서 설법공(說法空)이 설해졌다고 했다. 전반부는 붓다가 근기(불교의 이해 수준)가 예리한 사람들을 위하여 설한 것이고, 후반부는 나중에 모인 근기가 둔한 사람들을 위하여 설한 것이다.
<금강경>의 한역본은 위의 구라라집 한역본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역본이 많이 알려져 있다 ① 북위시대(北魏時代)에 보리류지(菩提流支)가 번역한 <금강반야바라밀경>, ② 진(陳)나라 때 진제(眞諦)가 번역한 <금강반야바라밀경>, ③ 수(隋)나라 때 달마급다(達磨及多)가 번역한 <금강능단반야바라밀경 金剛能斷般若波羅密經>, ④ 당(唐)나라 때 현장(玄奘)이 번역한 <능단금강반야바라밀다경 能斷般若波羅密多經의 권77 능단금강분을 번역한 것), ⑤ 당나라 의정(議淨)이 번역한 <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능단금강경이라고도 함) 등이다. <금강경>은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유통되고 있었으나, 지금은 세계적으로 널리 읽혀지고 있다. (브리태니커)
금강반야바라밀경 보물877호
<금강반야바라밀경>은 줄여서 ‘금강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조계종의 근본경전으로 <반야심경> 다음으로 널리 읽히고 있는 경전이다. 대승불교와 소승불교가 대립하기 이전에 형성되어 ‘공혜(空慧)’를 근본으로 삼고 ‘일체법무아(一切法無我)’의 이치를 요점으로 무집착(無執着)의 정신을 설명하고 있다. 이 경전은 중국 선종 제 5조 홍인(弘忍)과 제 6조 혜능(慧能) 이래로 선종에서 특히 중시되고 있는 경전이며, 삼국시대 우리나라에 유입되었던 초기부터 전래되어 고려시대 지눌(知訥)의 권장에 의해 널리 유포되었다. 이 불경은 위 사진의 공민왕 6년본(1357년)을 비롯해서 공민왕 12년본(1363년), 우왕 13년본(1387년), 14세기 전기 고려본(高麗本) 등이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공민왕 6년본은 1357년에 전주에 살던 김저(金貯)가 덕운사(德雲寺)의 지선(志禪)과 조환(祖桓)에게 부탁하여 간행한 것인데,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전체 크기는 세로 32㎝, 가로 24.4㎝이다. 책머리에는 불경의 내용을 요약하여 그린 변상도(變相圖)가 있는데 부처가 설법하는 그림을 넣었다. 처음 두루마리 형태로 만든 것을 일정한 크기로 접어 책으로 만들었으나, 불상의 복장 유물로 넣기 위해 다시 각 장을 이어 붙여 현재는 두루마리 형태로 말아서 보관하고 있다. 변상도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은 암송해야 할 여러 불경의 본문과 발원문(發願文: 불경을 만든 목적과 과정 따위를 적은 글)으로 나누어진다. 특이한 점은 문장의 종류에 따라 글씨의 크기를 다르게 적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출판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다. (인터넷)
◇ ‘금강반야바라밀경’ 본문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서 큰 비구(比丘)들 1,250 사람과 함께 계셨다. 그 때 세존(世尊)께서 식사 때[食時]가 되자 가사(袈裟)를 입으시고 발우를 지니시고 사위성으로 들어 가셨다. 그 성 안에서 탁발하시면서 차례로 빌어 빌기를 마치고는 계시던 곳으로 돌아와 진지를 잡수시고 나서 가사와 발우를 거두시고 발을 씻으신 뒤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如是我聞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與大比丘衆 千二百五十人俱 爾時 世尊食時 着衣持鉢 入舍衛大城 乞食於其城中 次第乞已還至本處 飯食訖收衣鉢 洗足已 敷座而坐)
Thus have I heard at one time. The Lord dwelt at Sravasti, in the Jeta Grove, in the garden of Anathapindika, together with a large gathering of monks, consisting of 1,250 monks, and with many Bodhisattvas, great beings. Early in the morning the Lord dressed, put on his cloak, took his bowl, and entered the great city of Sravasti to collect alms. When he had eaten and returned from his round, the Lord put away his bowl and cloak, washed his feet, and sat down on the seat arranged for him, crossing his legs, holding his body upright, and mindfully fixing his attention in front of him. Then many monks approached to where the Lord was, saluted his feet with their heads, thrice walked round him to the right, and sat down on one side.
[이 법회를 열게 된 까닭] 이와 같이 나는 들었습니다. 한때 세존께서는 슈라와스띠에 있는 제타 숲의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는데, 1,250인으로 이루어진 많은 비구스님들과 훌륭한 보살님들이 함께 계셨습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아침 일찍 옷을 정갈스럽게 입으시고 가사를 구하신 후에, 발우를 가지시고, 슈라와스띠라는 큰 도시로 탁발하기 위해 들어가셨습니다. 차례로 탁발하여 돌아오셔서 공양을 마치신 후에, 세존께서는 발우와 가사를 제자리에 가지런히 정리해 놓으시고, 두 발을 씻으신 뒤에, 부처님을 위해 마련된 자리에 결가부좌를 하시고, 몸을 곧게 세우시고, 주의력을 눈앞에 집중하시어 온 마음을 다하여 선정에 드셨습니다. 그때 많은 스님들이 부처님께 다가가서, 그분의 두 발에 머리를 조아려 인사하고, 부처님의 주위를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나서 한쪽에 물러나 앉았습니다.
2. 선현기청분(善現起請分)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 세존이시여, 즐겁게 듣기를 원합니다.” (時 長老須菩提 在大衆中 卽從座起 偏袒右肩右膝着地 合掌恭敬而 白佛言. 希有世尊如來 善護念諸菩薩善付囑 諸菩薩世尊 善男子善女人發阿多羅三 三菩提心 應云何住云何降伏其心 佛言善哉善哉 須菩提 如汝所說 如來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 汝今諦請當爲 汝說善男子善女人 發阿多羅三 三菩提心 應如是住如是降伏其心 唯然世尊 願樂欲聞)
Now in the midst of the assembly was the Venerable Subhuti. Forthwith he arose,uncovered his right shoulder,knelt upon his right knee,and,respectfully raising his hands with palms joined,addressed Buddha thus : World-honoured one,it is most precious how mindful the Tathagata is of all the Bodhisattvas,protecting and instructing them so well! World-honoured one,if good men and good women seek the Consummation of Incomparable Enlightenment, by what criteria should they abide and how should they control their thoughts?
[수보리가 가르침을 청하다] 그때 수보리 존자도 회중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법의(法衣)를 한쪽 어께에 걸치고 오른쪽 무릎을 꿇은 뒤 부처님께 공손히 합장하고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놀라우신 부처님, 세존이시여 얼마나 많은 위대한 보살들이 부처님의 은총을 받으셨는지! 세존이시여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비할 수 없는 깨달음[아뇩다라삼먁삼보리*]을 얻고자 한다면 어떤 기준에 머물러야 하오며 어떻게 그들의 생각을 다스려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했습니다 : 수보리야, 아주 좋은 말이다. 너의 말과 같이, 여래는 모든 보살들을 잘 보호하고 가르쳐주고 항상 염려해왔다. 이제 잘 들어라, 그리고 내말을 명심하여라 : 나는 비교할 수 없는 깨달음의 완성을 추구하는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어떤 기준에 따라야 하는지 너에게 선언하겠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생각을 통제하는 방법을 말해주겠다. 수보리가 대답했습니다 : 세존이시여 비옵니다. 우리는 기쁜 마음로 그 말씀을 듣고자 청하옵니다.
[불교용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범어로는 znuttara-samyak-sabodhi, 팔리어로는 anuttara-sammāsambodhi, 줄여서 아뇩삼보리ㆍ아뇩보제. 한역하여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ㆍ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으로 나타낸다. 불과(佛果)의 지혜를 말한다. 아뇩다라는 무상(無上), 삼먁삼보리는 정변지(正遍智), 또는 정등정각이라 번역하니 앞의 것은 구역, 뒤의 것은 신역. 줄여서 정각이라 하니, 선남자와 선여인이 불각(不覺)인 데 대하여, 부처님은 미계(迷界)를 여의고 깨달은 바가 원만하여 일체의 진상(眞相)을 모두다 아시는 무상 승지이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뜻을 <반야심경 般若心經>에서 살펴보면,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褥多羅三邈三菩提, 故知 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파냐빠라미따`에 의지하기 때문에 `안웃따라 삼먁삼보디`를 얻는다. 그러므로 `파냐빠라미따`는 매우 신비스러우며, 매우 밝으며, 위 없으며, 비할 바 없는 주문임을 알라.
여기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번역될 당시에, 한자(漢字)들 중에서 범어(梵語)의 소리에 가장 가까운 글자를 썼다고 한다. 음사(音寫)`이다. 한문번역은 阿褥多羅 三邈 三菩提(아욕다라 삼막 삼보리), 불교경전에서는 흔히들 "아뇩다라 삼먁 삼보리"라고 읽는다. 산스크리트어는 anuttarā-samyak-sambodhi, 팔리어는 anuttarā-sammā sambodhi이다. ‘안웃따라 삼먁삼보디’를 소리글자로 써놓고, 곧 이어서 다시 뜻을 풀어주는 문장이 나온다. ‘파냐빠라미따’ 는 “매우 신비스럽고(大神), 매우 밝으며(大明), 위 없으며(無上), 비할 바 없는(無等等) 주문”이라는 뜻이다.
무상(無上), 무등등(無等等)을 뒤에 두고, 대신(大神), 대명(大明)을 앞에 두었다. 정확하게 대칭적 표현이다. 여기서 ‘무상(無上)`은 수직적 개념으로서, 보다 더 높은 단계가 없다는 표시이다. ‘무등등(無等等)`은 수평적 개념으로서, 옆으로 놓고 비교할 만한 것이 없다는 표시이다. 마치 백두산(白頭山) 높은 산꼭대기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면, 더 높이 올라갈 수 없고, 옆으로 주변에 비교할 만한 산봉우리가 없어서 보이지 않을 때와 같다. [청풍명월]
[보살5행] (1) 그 열 가지란 이른바 한량없는 일체 중생계에 들어가는 것이니, 이것이 지혜의 큰 바다에 깊이 들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는 그 첫째입니다. (5) 보살마하살은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부처와 보살·법사·성문·연각 및 일체 중생들의 심은 선근과, 과거 부처님들이 이미 이룬 위없는 보리의 선근과 미래 부처님들이 장차 이룰 위없는 보리의 선근과 현재 부처님들이 지금 이루는 위없는 보리의 선근과, 과거 부처님들이 설법하여 중생들을 교화하고 항복 받아 성숙시킨 선근과 미래 부처님들이 설벌하여 중생들을 교화하고 항복 받아 성숙시킬 선근과 현재 부처님들이 설법하여 중생들을 교화하고 항복 받아 성숙시키는 선근 등을 보살마하살들이 모두 따라 기뻐하면서 그와 같은 선근을 기르고 모으지만 충분하다는 마음이 없나니, 이것이 지혜의 큰 바다에 깊이 들어가 간단하게 줄이면 <정등각>이며 <바르게 평등한 깨달음>이고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은 <바르게 평등한 깨달음의 마음을 낸다> 이다. 이것을 더 줄이면, 발보리심이며 더 줄이면 <발심>이다. 그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낸 사람은 곧 발심한 사람이며 발심한 사람은 수행하는 사람이므로 <발심수행>이란 두 단어가 함께 한다. 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불교의 가장 핵심이며 모든 경전은 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해설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발 아뇩다라삼먁 보리 심>한 사람을 보살이라고 하는데, 곧 발심하여 수행하는 사람을 보살이라고 하는 것이고, 이런 사람이 착하고 훌륭하고 좋은 사람이다. 자신의 마음을 바로 알고 잘못됨을 바로 잡으려 하기 때문이다. 불교는 어리석음을 알고 깨우치는 것이고 수행은 잘못됨을 바로 잡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어리석음을 깨우칠 것인가? 또 어떻게 잘못됨을 바로 잡을 것인가? 어린 아이들은 첫단추가 잘못 끼워졌다고 풀고 다시 끼우자고 하면 귀찮다고 싫어한다. 잘못됨을 잘 모르기 때문이고 단정함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 어른들도 대부분 이런 아이와 같다. 잘못됨을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잘못을 지적해 주면 어린애처럼 짜증만 낸다. 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야 한다. 배우려는 마음을 내어야 한다. [http://blog.daum.net/hekong/16058667]
3.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 (佛告須菩提 諸菩薩摩訶薩 應如是 降伏其心 所有 一切衆生之類 若卵生 若胎生 若濕生 若化生 若有色 若無色 若有想 若無想 若非有想非無想 我皆令入無餘涅槃 而滅度之 如是滅度 無量無數無邊衆生 實無衆生得滅度者 何以故 須菩提 若菩薩 有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 則非菩薩)
Section Ⅲ. The Real Teaching of the Great Way Buddha said: Subhuti,all the Bodhisattva-Heroes should discipline their thoughts as follows: All living creatures of whatever class,born from eggs,from wombs,from moisture,or by transformation,whether with form or without form,whether in a state of thinking or exempt from thought-necessity,or wholly beyond all thought realms-all these are caused by Me to attain Unbounded Liberation Nirvana. Yet when vast,uncountable,immeasurable numbers of beings have thus been liberated,verily no being has been liberated. Why is this,Subhuti? It is because no Bodhisattva who is a real Bodhisattva cherishes the idea of an ego-entity,a personality, a being, or a separated individuality.
[위대한 길로 가는 참 가르침] 부처님은 말씀했습니다 : 수보리야, 모든 보살마하살은 다음과 같이 자신의 생각을 훈련해야 한다 : 모든 종류의 생물, 즉 알에서 태어난, 자궁에서 태어난, 습기에서 태어난, 또는 변태하여 태어난, 형태가 있든 또는 형태가 없든 의식으로 존재하든, 의식이 필요 없든, 혹은 모든 의식의 세계를 초월했든 - 이 모든 존재는 끝 없이 자유로운 열반을 얻고자 하는 [나] 자신으로 말미암아 생기(caused)는 것이니라. 그러함에도, 저 광대하고, 측량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존재가 [열반으로] 해방되어 있을 때는 진실로 어떤 존재도 해방된 것이 없는 것이니라. 수보리야, 왜 그렇겠느냐? 실제로 어떤 보살이 자신의 자아 개체[我相]나, 개성[人相]이나, 자기 존재[衆生相]나, 혹은 분리된 개성[壽者相]으로 떼어서 자기를 소중하게 본다면 그는 더이상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4.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復次 須菩提 菩薩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不住色布施不主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應如是布施不住於相何以故若菩薩不住相布施 其福德不可思量須菩提於意云何東方虛空可思量不不也世尊須菩提 南西北方四維上下虛空可思量不不也世尊須菩提菩薩無住相布施福 德亦復如是不可思量須菩提菩薩但應如所敎住)
Furthermore,Subhuti,in the practice of charity a Bodhisattva should be detached. That is to say,he should practise charity without regard to appearances; without regar to sound,odour, touch, flavour or any quality. Subhuti, thus should the Bodhisattva practise charity without attachment. Wherefore? In such a case his merit is incalculable. Subhuti,what do you think? Can you measure all the space extending eastward? No,World-honoured one,I cannot.
[최고의 자비행조차 상대적이다] 또한, 수보리야, 자비의 실천에 있어서도 보살은 초연해야 한다. 말하자면, 그는 나타난 모습(형상)이나, 소리나 냄새나, 감촉이나, 맛이나, 어떤 특성과도 관계 없이 자비를 실천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따라서 보살은 [어디에도] 집착(애착)하지 않고 자비를 실천해야 하느니라. 왜 그런가? 그런[집착을 가진] 경우에는 [자비를 행한] 그의 공덕을 정확히 헤아릴(계산할 수) 수가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 하느냐? 너는 동쪽으로 퍼져나간 저 허공을 모두 측량할 수가 있겠느냐? 아니요, 세존이시여. 저는 측량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수보리야, 너는 남쪽으로 퍼져나간 허공을 측량할 수가 있겠느냐? 서쪽으로나 북쪽으로 퍼진 허공은 측량할 수 있겠느냐? 천저(天底)나 천정(天井)을 포함하여 어떤 방향으로든지?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좋다, 수보리야. 이와 똑같이 보살이 어떤 형상에도 집착(애착)하지 않고 자비를 배푼 바로[정확히] 그 공덕은 측량할 수가 없다. 수보리야, [그러므로] 보살은 그 수행에 있어서 오직 이 한가지 점을 견뎌내야 하느니라.
5.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온갖 상(相)은 (凡所有相 皆是虛妄 (須菩提於意云何可以身相見如來不不也世尊不可以身相得見如來何 以故如來所說身相卽非身相佛告須菩提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
Subhuti, what do you think? Is the Tathagata to be recognized by some material characteristic? No,World-honoured one; the Tathagata cannot be recognized by any material characteristic. Wherefore? Because the Tathagata has said that material characteristics are not, in fact,material characteristics. Buddha said: Subhuti,wheresoever are material characteristics there is delusion; but whoso perceives that all characteristics are in fact no-characteristics, perceives the Tathagata. The Lord continued: 'What do you think, Subhuti, can the Tathagata be seen by the possession of his marks?' Subhuti replied: 'No indeed, O Lord. And why? What has been taught by the Tathagata as the possession of marks, that is truly a no-possession of no-marks.' The Lord said: 'Wherever there is possession of marks, there is fraud, wherever there is no-possession of no-marks there is no fraud. Hence the Tathagata is to be seen from no marks as marks.'
[실체를 이해하는 궁극적 원리]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를 어떤 물질적 특성으로 인식하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어떤 물질적 특성으로 인식될 수 없습니다. 왜 그러하냐? 부처님이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여래가 실제로 물질적 특성이 아니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물질적 특성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허상이 있다. 그렇지만 모든 특성은 실제로는 특성이 아니라고 인지하는 사람은 [본래의] 여래를 인지(認知)하게 된다. 부처님은 계속했습니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를 어떤 특성을 지닌 이로 볼 수가 있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진실로 그렇지 않습니다. 여래께서 특성을 지닌다고 가르친 것은 곧 아무런 표시도 지니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어떤 특성이 있다면 그것은 거짓이며, 아무런 표시도 없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이 아니다. 그러므로 아무런 표시도 없는 것을 여래의 표시로 보아야 하느니라.
6.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須菩提 白佛言 世尊頗有衆生得聞如是言說章句生實信不佛告須菩提 莫作是說如來滅後後五百歲有持戒修福者於此章句能生信心以此爲 實當知是人不於一佛二佛三四五佛而種善根已於無量千萬佛所種諸善根聞是章句乃至一念生淨信者須菩提如來悉知悉見是諸衆生得如 是無量福德何以故是諸衆生無復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無法相亦無 非法相何以故是諸衆生若心取相則爲着我人衆生壽者若取法相則着 我人衆生壽者何以故若取非法相卽着我人衆生壽者是故不應取法不 應取非法以是義故如來常說汝等比丘知我說法如筏喩者法尙應捨何 況非法)
Subhuti said to Buddha: World-honoured one, will there always be men who will truly believe after coming to hear these teachings? Buddha answered: Subhuti,do not utter such words! At the end of the last five-hundred-year period following the passing of the Tathagata,there will be self-controlled men,rooted in merit,coming to hear these teachings,who will be inspired with belief. But you should realize that such men have not strenghtened their root of merit under just one Buddha, or two Buddhas,or three,or four,or five Buddhas,but under countless Buddhas; and their merit is of every kind. Such men,coming to hear these teachings,will have an immediate uprising of pure faith, Subhuti; and the Tathagata will recognize them. Yes, He will clearly perceive all these of pure heart, and the magnitude of their moral excellences. Wherefore? It is because such men will not fall back to cherishing the idea of an ego-entity,a personality,a being, or a separated individuality. They will neither fall back to cherishing the idea of things as having intrinsic qualities,nor even of things as devoid of intrinsic qualities. Wherefore? Because if such men allowed their minds to grasp and hold on to anything they would be cherishing the idea of an ego-entity,a personality,a being,or a separated individuality; and if they grasped and held on to the notion of things as having intrinsic qualities they would be cherishing the idea of an ego-entity,a personality,a being,or a separated individuality. Likewise,if they grasped and held on to the notion of things as devoid of intrinsic qualities they would be cherishing the idea of an ego-entity,a personality,a being,or a separated individuality. So you should not be attached to things as being possessed of, or devoid of, intrinsic qualities. This is the reason why the Tathagata always teaches this saying: My teaching of the Good Law is to be likened unto a raft. The Buddha-teaching must be relinquished; how much more so misteaching!
[진정한 믿음은 드물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했습니다 : 세존이시여, 지금부터 500년이 지난 뒤에도 진정으로 믿고 이 가르침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이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대답했습니다. 그런 말을 하지 말아라! 여래가 열반하신 뒤 마지막 5 백년의 끝날에도, 선행에 뿌리를 두고 자기 통제를 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가르침을 와서 듣고 믿음으로써 크게 영감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깨달아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단지 한분의 부처나 또는 둘, 셋, 넷, 다섯 부처님에게서 선근(善根)을 얻은 것이 아니라. 수없은 부처님 아래서 그런 선근을 키웠음을 알아야 하느니라. 이러한 가르침을 들으러 온 사람들은 가르침을 듣고 순수한 믿음을 바로 일으킬 것이다. 수보리야, 여래는 그들을 (혜안으로)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 여래는 그들의 순수한 마음을 분명히 인식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뛰어난 도덕적 위대함까지도. 어째서인가? 그런 사람들은 자아개체나, 개성이나, 자기의 존재감이나, 혹은 분리된 개성으로 떼어서 자신을 소중히 생각하는 것에 다시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본질적 자질로 다시는 사물에 대한 집착에 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본질적 자질로 사물에 대한 집착이 없기 때문이다. 어째서인가?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이 자아 개체와, 성격과, 존재와, 또는 분리 된 개성의 마음을 소중히 한다면 본질적인 자질을 가지고 그들이 자아 개체, 성격, 존재, 또는 분리 된 개성의 생각을 소중히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본질적인 자질의 결여로 사물을 파악하는 경우에는 그들은 자아개체나, 개성이나, 자기의 존재감이나, 혹은 분리된 개성으로 떼어서 자신을 소중히 보는 사물의 개념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는 본질적인 자질로서 사물에 집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소유되는 같은 항목에 첨부하거나, 본질적인 자질이 결여되어서는 안된다. 이것이 여래가 항상 이 말을 가르치는 이유이다 : 내가 가르치는 좋은 법은 뗏목에 비유할 수 있다. 나의 가르침은 깨달으면 즉시 버려야 하느니라 하셨거늘 얼마나 더 그렇게 그릇 가르쳐야 되는가!
[불교용어] 사상(四相) (1) 일기사상(一期四相). 또는 과보사상(果報四相). 생(生)ㆍ노(老)ㆍ병(病)ㆍ사(死). ① 생은 출상(出相)이니, 5종이 있다. 초출(初出)ㆍ지종(至終)ㆍ증장(增長)ㆍ출태(出胎)ㆍ종류생(種類生). ② 노는 쇠변상(衰變相)이니, 4종이 있다. 염념로(念念老)ㆍ종신로(終身老)ㆍ증장로(增長老)ㆍ멸괴로(滅壞老). ③ 병은 신병(身病)과 심병(心病)이 있다. 신병이 5종. 인수(因水)ㆍ인풍(因風)ㆍ인열(因熱)ㆍ잡병(雜病)ㆍ객병(客病). 심병이 4종. 용약(踊躍)ㆍ공포(恐怖)ㆍ우수(憂愁)ㆍ우치(愚癡). ④ 사는 명진사(命盡死)ㆍ외연사(外緣死)가 있다. 명진사에 3종, 비명진 시복진(非命盡是福盡)ㆍ비복진 시명진(非福盡是命盡)ㆍ명복구진(命福俱盡). 외연사에 3종, 비분자해사(非分自害死)ㆍ횡위타사(橫爲他死)ㆍ구사(俱死). 횡위타사에 방일사(放逸死)ㆍ파계사(破戒死)ㆍ괴명근사(壞命根死)가 있다. (2) 4유위상(有爲相)이니, 생(生)ㆍ주(住)ㆍ이(異)ㆍ멸(滅). 사물이 변천하는 것을 설명하는 명목으로 온갖 법의 유위(有爲)임을 표시. ① 소승 유부(有部)는 이 4상을 실재한 것이라 하여 모든 법이 생ㆍ주ㆍ이ㆍ멸함은 이 4상에 말미암은 것이라 함. ② 경부(經部)ㆍ대승부(大乘部)에서는 이 4상은 가(假)로 이름한 것이요, 실체가 없다고 하니, 곧 색(色)ㆍ심(心)의 온갖 법은 스스로 생ㆍ주ㆍ이ㆍ멸하는 변화가 있으며, 그 변화의 분위(分位)에 이름한 가법(假法)이니, 현재에 있는 위(位)를 생(生), 생의 위(位)에 잠깐 머무는 위를 주(住), 주하는 것이 앞 뒤가 다른 것을 이(異), 아무 것도 없는 데 돌아간 위(位)를 멸(滅)이라 이른다. (3) 아인사상(我人四相)이니, ① 아상(我相). 5온(蘊)이 화합하여 생긴 몸과 마음에 실재의 아(我)가 있다고 하고, 또 아(我)의 소유(所有)라고 집착하는 소견. ② 인상(人相). 아(我)는 인간이어서 축생취(畜生趣) 등과 다르다고 집착하는 상. 중생상의 위에 한 걸음 나아간 것이나, 아직도 능각(能覺)의 지혜를 갖는 소견. ③ 중생상(衆生相) 아(我)는 5온법으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라고 집착하는 소견. ④ 수자상(壽者相). 아(我)는 일정한 기간의 목숨이 있다고 집착하는 소견. (4) 지경사상(智境四相)이니, 아(我)ㆍ인(人)ㆍ중생(衆生)ㆍ수명(壽命). 중생이 깨달은 경계에 대하여 잘못 알아 집착하는 것. ① 아상. 오(悟)를 집착하여 아(我)라 하는 것. ② 인상. 집착하지 않는다는 데 집착하여 아(我)가 오(悟)하였다는 마음이 있는 것. ③ 중생상. 아상ㆍ인상을 여의었으면서도 오(悟)의 상(相)에 집착하는 것. ④ 수명
7.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 (須菩提於意云何如來得阿 多羅三 三菩提耶如來有所說法耶須菩 提言如我解佛所說義無有定法名阿 多羅三 三菩提亦無有定法如 來可說何以故如來所說法皆不可取不可說非法非非法所以者何一切 賢聖皆以無爲法而有差別)
[위대한 분의 완벽을 넘어선 가르침]
8. 의법출생분(依法出生分) (須菩提於意云何若人滿三千大千世界七寶以用布施是人所得福德寧 爲多不須菩提言甚多世尊何以故是福德卽非福德性是故如來說福德 多若復有人於此經中受持乃至四句偈等爲他人說其福勝彼何以故須 菩提一切諸佛及諸佛阿 多羅三 三菩提法皆從此經出須菩提所謂 佛法者卽非佛法)
Subhuti,what do you think? If anyone filled three thousand galaxies of worlds with the seven treasures and gave all away in gifts of alms,would he gain great merit? Subhuti said: Great indeed, World-honoured one! Wherefore? Because merit partakes of the character of no-merit,the Tathagata characterized the merit as great. Then Buddha said: on the other hand,if anyone received and retained even only four lines of this Discourse and taught and explained them to others,his merit would be the greater. Wherefore? Because,Subhuti,from this Discourse issue forth all the Buddhas and the Consummation of Incomparable Enlightenment teachings of all the Buddhas. Subhuti,what is called "the Religion given by Buddha" is not, in fact, Buddha-Religion.
[작은 선행에 대한 큰 열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이 삼천 대천 세계를 칠보로 가득 채워 그것을 모두 보시로 선물하는 경우, 그는 큰 공덕을 얻지 않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했습니다 : 그렇습니다. 참으로 훌륭합니다, 세존이시여! 왜 그러냐 하면 여래께서는 공덕의 성격이 없는 공덕을 큰 공덕으로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했습니다 : 그러나 반면에, 만일 어떤 사람이 오늘의 가르침 중에서 단 넉줄이라도 받아 간직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 준다면 그의 공덕은 이것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니라. 왜 그렇겠느냐? 수보리야, 그것은 오늘 이 가르침에서 말한 모든 말은 부처님의 비교할 수 없는 깨달음의 가르침을 설한 것이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부처에 의해 주어진 믿음"은 실제로는 부처의[를] 믿음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9. 일상무상분(一相無相分)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실로 아무 것도 아라한이라 할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아라한이 생각하기를, ‘내가 아라한의 도를 얻었노라’ 한다면, 이는 곧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에 집착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저를 일러서 무쟁삼매(無淨三昧)17)를 얻은 사람 중에 제일이라 하셨는데, 이는 욕심을 여읜 아라한[離欲阿羅漢]이기 때문입니다만 저는 제가 욕심을 여읜 아라한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만일 생각하기를, ‘내가 아라한의 도를 얻었노라’ 한다면, 세존께서는 저를 아란나행(阿蘭那行)18) 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만, 수보리가 실로 그러지 않았으므로 수보리는 아란나행을 좋아한다고 하셨습니다.” (須菩提 於意云 何須陀洹能作是念我得須陀洹果不須菩提言不也世尊 何以故須陀洹名爲入流而無所入不入色聲香味觸法是名須陀洹須菩 提於意云何斯陀含能作是念我得斯陀含果不須菩提言不也世尊何以 故斯陀含名一往來而實無往來是名斯陀含須菩提於意云何阿那含能 作是念我得阿那含果不須菩提言不也世尊何以故阿那含名爲不來而 實無不來是故名阿那含須菩提於意云何阿羅漢能作是念我得阿羅漢 道不須菩提言不也世尊何以故實無有法名阿羅漢世尊若阿羅漢作是 念我得阿羅漢道卽爲着我人衆生壽者世尊佛說我得無諍三昧人中最 爲第一是第一離欲阿羅漢世尊我不作是念我是離欲阿羅漢世尊我若作是念我得阿羅漢道世尊則不說須菩提是樂阿蘭那行者以須菩提實 無所行而名須菩提是樂阿蘭那行)
Subhuti,what do you think? Does a disciple who has entered the Stream of the Holy Life say within himself: I obtain the fruit of a Stream-entrant? Subhuti said : No,World-honoured one. Wherefore? Because "stream-entrant" is merely a name. There is no stream-entering. The disciple who pays no regard to form,sound,odour, taste, touch,or any quality,is called a Stream-entrant. Subhuti,what do you think? Does an adept who is subject to only one more rebirth say within himself: I obtain the fruit of a once-to-be-reborn? Subhuti said: No,World-honoured one.Wherefore? Because once-to-be-reborn" is merely a name. There is no passing away nor coming into existence.〔The adept who realizes〕-this is called once-to-be-reborn." Subhuti,what do you think? Does a venerable one who will never more be reborn as a mortal say within himself: I obtain the fruit of a Non-returner? Subhuti said: No,World-honoured one. Wherefore? Because "Non-returner" is merely a name. There is no non-returning; hence the designation "Non-returner."
[참다운 진리에는 이름이 없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성스런 생명의 강에 들어간 제자”가 자신이 나는 생명의 강 참가자의 열매를 얻었다고 말하느냐? 수보리가 말했습니다 :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생명의 강 참가자”는 단지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생명의 강 참가자는 없습니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다원(須陀洹; Stream-entrant, 생명의 강 참가자)에 든 사람이 나는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었다고 스스로 생각하겠느냐? 수보리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수다원이라는 말은 “성자의 강에 들어갔다”는 뜻이지만 그는 들어간 것이 아니며 모양, 소리, 향기, 맛, 감촉과 이치에 빠지지 않음으로써 그를 수다원이라 부르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다함(斯陀含; once-to-be-reborn) 의 경지에 든 사람이 나는 사다함과(斯陀含果)를 얻었다고 생각하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사다함이라는 이름은 “인간 세상에 한번만 돌아올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그러나 그는 실제로 돌아온다는 생각이 없으므로 그 이름을 사다함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나함(阿那含; Non-returner)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나는 아나함과를 얻었다고 생각하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렸습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아나함이라는 이름은 “인간 세계에 다시 오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실제로 다시 오지 않는다는 생각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아나함이라고 부릅니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라한(阿羅漢; Perfective Enlightenment)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나는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고 생각하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진실로 “모든 존재애 아무런 미련이 남아있지 않는 사람”을 아라한 이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아라한이 나는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자아 개체와, 개성과, 자기 존재와, 분리된 개성에 집착한 것이 됩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제가 다툼 없는 삼매(三昧)를 얻은 사람 중에서 가장 뛰어나므로 욕망을 떠난 첫째가는 아라한이라고 하시지만 세존이시여 제 스스로는 나는 모든 욕망을 떠난 아라한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만일 나는 아라한의 도를 얻다고 생각한다면 세존께서는 수보리는 평화로운 삶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으셨겠지만 실제로 수보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수보리는 평화로운 삶을 즐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0.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보살들이 불국토(佛國土)를 장엄하느냐?” (佛告須菩提於意云何如來昔在燃燈佛所於法有所得不不也世尊如來 在燃燈佛所於法實無所得須菩提於意云何菩薩莊嚴佛土不不也世尊 何以故莊嚴佛土者卽非莊嚴是名莊嚴是故須菩提諸菩薩摩訶薩應如是生淸淨心不應住色生心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應無所住而生其心 須菩提譬如有人身如須彌山王於意云何是身爲大不須菩提言甚大世尊何以故佛說非身是名大身)
Buddha said: Subhuti,what do you think? In the remote past when the Tathagatg was with Dipankara Buddha,did he have any degree of attainment in the Good Law?
[불국토의 장엄] 부처님께서 말씀했습니다 :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오랜 과거에 여래께서 아직 연등 부처님[燃燈佛]*과 함께 계실 때, 그는 좋은 법을 얻은 것이 있었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가 연등 부처님일 때 그는 좋은 법을 이루신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보살은 장엄한 불국토을 장엄하였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불국토를 장엄하는 것이 곧 불국토의 장엄은 아닙니다. 그것(불국토)의 장엄은 단지 이름입니다. [그다음 부처님은 계속했다〕그러므로, 수보리야, 모든 보살은 [지위가] 낮든지 높든지, 소리나 맛, 접촉, 냄새 또는 어떤 특성이나, 성질에 따르지 말고 오직 순수하고, 맑은 마음을 닦아야 하느니라. 보살은 무엇이든지 다 내려놓고 마음을 개발해야 하고, 마음을 고정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이것은 마치 거대한 수미산(須彌山) 같은 크기의 사람 몸에 비유할 수 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런 몸은 크지 않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했습니다 : 참으로 큽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아무도 크다고 하지 않은 몸을 크다고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 [불교용어] Dipamkara Buddha(연등불 燃燈佛) 연등불·보광불(普光佛)·정광불(錠光佛)이라고도 한다. 과거세에 수행하는 보살이던 석가모니에게 성도(成道)하리라는 수기(授記)를 준 부처이다. 〈수행본기경 修行本起經〉에 따르면 과거세에 제화위국(提和衛國)에 등성(燈盛)이라고 하는 성스러운 임금이 있었다. 그는 임종 때 태자 정광(錠光)에게 나라를 맡겼다. 그러나 태자는 세상이 무상함을 알고서 동생에게 나라를 물려주고 출가하여 사문(沙門)이 되었다. 그는 여러 해의 수행 뒤에 성불하여 부처가 되었으니, 그가 바로 연등불이다. 그때에 유동(儒童)이라는 수행자가 있었다. 그는 부처가 세상에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서 직접 만나 가르침 듣기를 원했으며, 마침내 편력하며 교화하는 연등불을 만나게 되자 연꽃으로 부처에게 공양하고, 머리털을 진흙에 깔아 부처가 밟도록 했다. 연등불은 그에게 후세에 성도하여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를 주었는데, 이 수행자 유동이 바로 석가모니불이다.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須菩提如恒河中所有沙數如是沙等恒河於意云何是諸恒河沙寧爲多 不須菩提言甚多世尊但諸恒河尙多無數何況其沙須菩提我今實言告 汝若有善男子善女人以七寶滿爾所恒河沙數三千大千世界以用布施
Subhuti,if there were as many Ganges rivers as the sand-grains of the Ganges,would the sand-grains of them all be many? Subhuti said: Many indeed, World-honoured one! Even the Ganges rivers would be innumerable; how much more so would be their sand-grains? Subhuti,I will declare a truth to you. If a good man or good woman filled three thousand galaxies of worlds with the seven treasures for each sand-grain in all those Ganges rivers, and gave all away in gifts of alms,would he gain great merit? Subhuti answered: Great indeed, World-honoured one!
[비정형 진리의 우수성] 수보리아, 만일 갠지스 강의 모래 알 만큼의 갠지스 강이 또 있다면 그 모든 모래 알은 많지 않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했습니다 : 참으로 많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하나의 갠지스 강 모래알도 셀 수 없이 많거늘 하물며 그 모든 갠지스 강의 모래 알맹이야 얼마나 많겠습니까? 수보리야, 나는 너에게 하나의 진리를 선언하겠다. 만일 한 사람의 선남자나 선여인이 삼천대천 세계를 갠지스 강의 모래알 만큼 많은 칠보로 채워서 모두 보시로 선물한다면 그의 공덕이 얼마나 크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했습니다. 참으로 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때 부처님께서 선언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수보리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오늘 나의 이 가르침 중에서 4구게만 듣고 간직하면서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고 설명한다면 그 공덕의 결과는 앞의 공덕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니라.
12. 존중정교분(尊重正敎分) 復次須菩提隨說是經乃至四句偈等當知此處一切世間天人阿修羅皆 應供養如佛塔廟何況有人盡能受持讀誦須菩提當知是人成就最上第 一希有之法若是經典所在之處則爲有佛若尊重弟子)
Furthermore, Subhuti, you should know that wheresoever this Discourse is proclaimed,by even so little as four lines,that place should be venerated by the whole realms of Gods,Men and Titans,as though it were a Buddha-shrine. How much more is this so in
[참 가르침에 대한 공경] 나아가, 수보리야,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이 경(經)이나 혹은 4구게(四句偈) 하나 만이라도 다른 사란에게 설명해준다면 그가 있는 곳은 반드시 모든 대천세계의 천신(天神)과 인간(人間)과 아수라(阿須羅)가 부처님의 사리탑(舍利塔)처럼 그를 공경할 것이니, 이 경을 끝까지 암송할 때에야 그 공덕이 얼마나 크겠느냐? 수보리야,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은 가장 높고 가장 놀라운 진리(眞理)를 얻었음을. 그리고 이 신성한 가르침이 있는 곳에는 곧 부처님이 계신 것과 같으며 또한 존경받는 부처님의 제자들과 함께 있는 것처럼 안락함을 발견할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爾時須菩提白佛言世尊當何名此經我等云何奉持佛告須菩提是經名 爲金剛般若波羅蜜以是名字汝當奉持所以者何須菩提佛說般若波羅 蜜卽非般若波羅蜜是名般若波羅蜜須菩提於意云何如來有所說法不 須菩提白佛言世尊如來無所說須菩提於意云何三千大千世界所有微 塵是爲多不須菩提言甚多世尊須菩提諸微塵如來說非微塵是名微塵 如來說世界非世界是名世界須菩提於意云何可以三十二相見如來不 不也世尊不可以三十二相得見如來何以故如來說三十二相卽是非相 是名三十二相須菩提若有善男子善女人以恒河沙等身命布施若復有 人於此經中乃至受持四句偈等爲他人說其福甚多)
At that time Subhuti addressed Buddha,saying. World-honoured one, by what name should this Discourse be known, and how should we receive and retain it?
[이 가르침을 받아서 간직하는 방법] 그 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경은 어떤 이름으로 알려져야 되오며,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그것을 받아서 간직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대답했습니다, 이 경은 "초월적 지혜의 완성에 대한 다이아몬드"로 알려져야 하고, 그렇게 너희도 받아서 간직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그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부처가 가르쳐준 “초월적 지혜의 완성에 대한 가르침”은 곧 진정한 완성이 아닌 것을 말하는 것이며 "초월적 지혜의 완성"은 단지 그 경에 붙여진 이름일 뿐이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께서 명확하게 표현한 진리의 가르침이 있었느냐? 수보리가 부처님께 대답했습니다. 세존이시여, 가르쳐 준 것이 없었습니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삼천 대천 세계에는 분자가 많다고 할 수 있느냐? 수보리가 대답했습니다.: 대단히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여래는 모든 분자가 진짜 분자가 아니라는 것을 "분자들." 이라고 말한 것이다. 또한 여래는 세계가 정말 세상이 아니 것을 "세상"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는 현자들의 서른 두 가지 육체적 특징[32相]으로 인지(認知)할 수 있겠느냐? 아니옵니다. 여래는 이 32상에 의해 인지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삼십이상" 이라고 말합니다. 여래는 32상이 정말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야i,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어떤 선남자와 선여인이 갠지스강의 모래알 만큼 자기 몸을 보시하고 , 또 다른 사람은 이 경의 가르침 중에서 4구게 하나만 받아 간직하고, 그것을 남에게 설명한다면 후자의 공덕이 훨씬 더 클 것이니라.
[불교용어] 삼십이상 三十二相 (vattiṁsa-mahāpurisa-lakkhaṇa, the thirty-two marks)
세존이시여, 이 실상은 상(相)이 아니므로 여래께서 실상이라 말씀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이 경을 듣고 그대로 믿어 받아 지니기는 어렵지 않으나, 만일 다음 세상의 마지막 5백 세[後五百歲]에 어떤 중생이 이 경을 듣고 그대로 믿어 받아 지닌다면, 이 사람이야말로 제일 희유하리니, 무슨 까닭인가 하면, 이 사람은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곧 아상이 곧 상(相)이 아니요, 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도 곧 상이 아니기 때문이며, 온갖 상을 여읜 이를 부처라 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내가 옛날에 가리왕(歌利王)에게 몸을 갈기갈기 찢길 적에 아상도 없고 인상도 없고 중생상도 없고 수자상도 없었기 때문이니라. 만약 내가 옛날에 몸을 찢길 적에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이 있었더라면 성을 내어 원망하였을 것이니라. 또 저 옛날 5백 생 전에 인욕 선인(忍辱仙人)이었던 일을 기억하건대, 그 때에도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이 없었느니라. 그러므로 수보리야, 보살은 마땅히 온갖 모양을 여의고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낼지니, 빛깔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도 말며, 소리와 냄새와 맛과 감촉과 법(法)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도 말아야 하나니, 마땅히 머무름 없는 마음을 낼지니라. 만일 마음이 머무는 데가 있으면 그것은 머무름이 아니니, 그러므로 여래는 말하기를, ‘보살은 마음을 빛깔에 머무르고서 보시하지 말아야 한다’ 하였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들은 마땅히 온갖 중생들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보시하여야 하나니, 여래는 온갖 상(相)이 곧 상이 아니라 하며, 또는 온갖 중생이 곧 중생이 아니라 하느니라. 수보리야, 여래는 참된 말만 하는 이이며, 실다운 말만 하는 이이며, 여실한 말만 하는 이이며, 속이지 않는 말만 하는 이이며, 다르지 않은 말만 하는 이니라. 수보리야, 여래가 얻은 법은 진실도 아니요, 거짓도 아니니라. 수보리야, 어떤 보살이 마음을 법에 머물러 보시하는 것은 마치 어두운 곳에 있는 사람이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 같고, 어떤 보살이 마음을 법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눈 밝은 사람이 햇빛 아래서 여러 가지 물건을 보는 것 같으니라. 수보리야, 오는 세상에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면, 여래가 부처의 지혜로써 이 사람을 다 알고 다 보나니, 한량없고 끝없는 모든 공덕을 이루느니라.” (爾時須菩提聞說是經深解義趣涕淚悲泣而白佛言希有世尊佛說如是 甚深經典我從昔來所得慧眼未曾得聞如是之經世尊若復有人得聞是 經信心淸淨則生實相當知是人成就第一希有功德世尊是實相者則是 非相是故如來說名實相世尊我今得聞如是經典信解受持不足爲難若 當來世後五百歲其有衆生得聞是經信解受持是人則爲第一希有何以 故此人無我相無人相無衆生相無壽者相所以者何我相卽是非相人相 衆生相壽者相卽是非相何以故離一切諸相則名諸佛佛告須菩提如是 如是若復有人得聞是經不驚不怖不畏當知是人甚爲希有何以故須菩 提如來說第一波羅蜜須菩提忍辱波羅蜜如來說非忍辱波羅蜜是名忍 辱波羅蜜何以故須菩提如我昔爲迦利王割截身體我於爾時無我相無 人相無衆生相無壽者相何以故我於往昔節節支解時若有我相人相衆 生相壽者相應生嗔恨須菩提又念過去於五百世作忍辱仙人於爾所世 無我相無人相無衆生相無壽者相是故須菩提菩薩應離一切相發阿 多羅三 三菩提心不應住色生心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應生無所住 心若心有住則爲非住是故佛說菩薩心不應住色布施須菩提菩薩爲利 益一切衆生應如是布施如來說一切諸相卽是非相又說一切衆生卽非 衆生須菩提如來是眞語者實語者如語者不思語者不異語者須菩提如 來所得法此法無實無虛須菩提若菩薩心住於法而行布施如人入闇則 無所見若菩薩心不住法而行布施如人有目日光明照見種種色須菩提 當來之世若有善男子善女人能於此經受持讀誦則爲如來以佛智慧悉 知是人悉見是人皆得成就無量無邊功德)
Upon the occasion of hearing this Discourse Subhuti had an interior realization of its meaning and was moved to tears. Whereupon he addressed Buddha thus: It is a most precious thing, World-honoured one,that you should deliver this supremely profound Discours. Never have I heard such an exposition since of old my eye of wisdom first opened. World-honoured one,if anyone listens to this Discourse in faith with a pure,lucid mind,he will thereupon conceive an idea of Fundamental Reality. We should know that such an one establishes the most remarkable virtue. World-honoured one,such an idea of Fundamental Reality is not,in fact,a distinctive idea; therefore the Tathagata teaches: "Idea of Fundamental Reality" is merely a name.
[모든 분별에서 벗어나는 데 열반이 있다] 그때 수보리가 이 경의 설법을 듣고 그 뜻을 깊이 깨달아 눈물을 흘리며 울면서 부처님께 말했다. 놀라운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이렇게 깊은 뜻을 말씀해 주시니 제가 옛날 지혜의 눈을 뜬 이후 이와 같은 설법은 한번도 듣지를 못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다시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믿는 마음으로 깨끗하고 진실한 마음을 내면 이 사람은 가장 뛰어나고 놀라운 공덕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런 진실한 마음은 곧 진실한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이런 까닭에 여래는 진실한 마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이 경을 듣고 믿어서 받아들이고 마음에 지니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만 만약 500년 후에 어떤 중생이 이 경을 듣고 이를 믿고 받아서 마음에 지닌다면 이 사람은 참으로 놀라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자아개체나 개성이나 자기존재, 분리된 개성이라는 관념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는 자아개체라는 관념, 개성이라는 관념, 자기존재라는 관념, 분리된 자아라는 관념이 모두 관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란 일체의 관념을 떠난 것을 표현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했습니다. 그렇다.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놀라지 않고, 겁내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매우 놀라운 사람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여래께서 말한 최고의 깨달음은 곧 최고의 깨달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그 표현이 최고의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인욕(忍辱)의 완성도, 여래께서는 인욕의 완성이 아니라고 말했느니라. 왜냐하면 내가 옛날에 가리왕(迦利王)* 에게 몸이 베이고 잘리게 된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때 나에게는 자아의 개체나, 개성이나, 자기존재나, 분리된 개성이라는 관념이 없었기 때문이니라. 왜 그러냐 하면 내가 옛날 사지가 마디마디 잘려나갈 때 나에게 그런 관념이 있었다면 당연히 성을 내고 원망하는 마음을 내었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또 생각하니 나는 과거 500세 동안에 인욕(忍辱)의 스승이었는데 지금 세상에서도 나는 그런 관념이 없느니라. 따라서 수보리야, 보살은 마땅히 모든 관념에 얽매이지 말고 가장 높고 바르며 원만한 깨달음[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어야 하느니라. 다시 말하면 마땅히 잠착 없는 마음을 내어야 하는 것이니 만일 마음에 집착이 있으면 이는 바른 깨달음이 아니니라. 이런 끼딝에 부처님은 “보살은 모양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으로 보시해야 한다”고 말했느니라. 수보리여, 보살은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 마땅히 이와같이 보시해야 하느니라. 여래께서 말한 모든 관념이 관념이 아니고, 여래가 말한 일체 중생도 중생이 아니니라. 수보리여, 여래는 참된 말을 하는 분이고, 실다운 말을 하는 분이며, 한결같이 말하는 분이고, 속이지 않는 말을 하는 분이며, 다르게 말하지 않는 분이니라. 여래가 깨닫고 설한 법에는 실함도 없고 허멍함도 없느니라. 수보리여, 만약 보살이 그 마음을 법에 집착하여 보시한다면 마치 사람이 어두운 곳에서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것 같고, 만일 보살이 법에 집착하지 않고 보시한다면 눈이 밝은 사람이 밝은 광명 아래서 갖가지 사물을 보는 것과 같으니라. 수보리여, 오는 세상에도 만약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능히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면 여래께서 부처의 지혜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보게 되나니, 그는 한량 없고 가없는 공덕을 이루게 될 것이니라. --------------------------------------------------- [불교용어] 가리왕(迦利王)과 인욕선인(忍辱仙人)의 본생설화 옛날 남인도 후단나성 가라후라왕국에 한 바라문이 있어 일찌기 출가해서 산림선경(山林仙境)에서 도를 닦고 있었다. 하루는 가라후라왕[가리왕]이 후궁들과 같이 꽃구경을 왔다. 여러 사람들이 꽃을 따라 배회하다가 한 궁녀가 선인을 발견하고 그를 존경한 까닭에 옆에 앉아 법문을 청해 들었다. 오후가 되어 환궁하려다가 한 후비가 없음을 안 왕은 혹 맹수의 침해를 받았는지도 모르니 찾아보라 하고 자신도 깊이 들어가 꽃밭을 헤매었다. 마침 한 선인의 장소에 이르러 후비(侯妃)를 발견하고 한편 기뻐하면서도 한편 화를 냈다.
“수보리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아침나절에 항하의 모래 수 같은 몸으로 보시하고, 점심나절에도 항하의 모래 수 같은 몸으로 보시하고, 저녁나절에도 항하의 모래 수 같은 몸으로 보시하여, 이렇게 한량없는 백천만억 겁(劫) 동안 보시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이 경전을 듣고 믿는 마음으로 그르다고 하지만 않아도 그 복이 저 보시한 복보다 더 많거늘 하물며 이 경을 쓰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남에게 일러 주기까지 함이겠느냐? 수보리야, 중요한 뜻만을 들어서 말하건대, 이 경에는 말할 수 없고 생각할 수 없고 측량할 수도 없는 많은 공덕이 있나니, 여래는 대승의 마음을 낸 이를 위하여 이 경을 말했으며, 가장 높은 마음을 낸 이를 위하여 이 경을 말했느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여러 사람들에게 일러 주면 여래가 이 사람을 다 알고 보나니, 모두가 한량없고 말할 수 없고 끝없고 생각할 수 없는 공덕을 이룰 것이며, 이런 사람은 여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감당할 것이니라. 무슨 까닭이겠는가? 수보리야, 소승법(小乘法)을 좋아하는 이는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의 소견에 집착되므로 이 경을 듣지도 못하고 읽고 외우지도 못하고 남에게 일러 주지도 못하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어디에나 이 경이 있으면 온갖 하늘 사람ㆍ세상 사람ㆍ아수라들이 공양을 올리리니, 이곳은 보기 좋은 부처님의 탑과 같으므로 모두가 공경히 예배하고 돌면서 꽃과 향으로 그곳에 흩느니라.” (須菩提若有善男子善女人初日分以恒河沙等身布施中日分復以恒河 沙等身布施後日分亦以恒河沙等身布施如是無量百千萬億劫以身布 施若復有人聞此經典信心不逆其福勝彼何況書寫受持讀誦爲人解說 須菩提以要言之是經有不可思議不可稱量無邊功德如來爲發大乘者 說爲發最上乘者說若有人能受持讀誦廣爲人說如來悉知是人悉見是 人皆得成就不可量不可稱無有邊不可思議功德如是人等則爲荷擔如 來阿 多羅三 三菩提何以故須菩提若樂小法者着我見人見衆生見 壽者見則於此經不能聽受讀誦爲人解說須菩提在在處處若有此經一 切世間天人阿修羅所應供養當知此處則爲是塔皆應恭敬作禮圍 以諸華香而散其處)
Subhuti,if on the one hand,a good man or a good woman performs in the morning as many charitable acts of self-denial as the sand-grains of the Ganges,and performs as many again in the noonday and as many again in the evening,and continues so doing throughout numberless ages,and,on the other hand,anyone listens to this Discourse with heart of faith and without contention,the latter would be the more blessed. But how can any comparison be made with one who writes it down,receives it,retains it,and explains it to others!
[이 가르침의 무비의 가치] 수보리야, 한편으로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아침에 갠지스강의 모래만큼 많은 자기 부정의 자선을 베풀고, 다시 낮에도 그렇게 많이 자선을 하고, 또 저녁에도 그렇게 자선을 베풀어서 수많은 세월 동안 그렇게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사람이 진실한 믿음으로 아무런 논쟁 없이 이 설법을 듣고 믿으면 후자에게 훨씬 더 많은 축복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설법을 기록하고, 설법을 받아들이고, 설법을 마음에 간직하고, 그리고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사람과는 어떻게 비교할수 있겠느냐! 수보리야, 우리는 이 설법의 모든 가치를, 머리로 생각하지도, 말로 평가하지도, 그것에 대해서 어떤 한계를 설정할 수도 없다는 말로 요약할 수가 있느니라. 여래는 일찍이위대한 깨달의 길을 안내하는 이익에 대해 “최고의 길”이라고 선언했느니라. 누구든지 이 경을 받아서 간작하고, 그것을 공부하고, 암송하고, 널리 반포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여래가 명확하게 인식하고 기억할 겻이며, 모두가 한량 없고 일컬을 수도 없으며 가 없고 생각할 수 없는 공덕을 성취할 것이니라. 그리고 어떤 경우에나 그런 사람은 비교가 되지 않는 깨달음의 부처[성불]로 인증될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자아 개체나, 개성이나, 자기존재나, 또는 분리된 개성의 개념을 포함하는 제한적인 교리에서 위안을 찾는 사람들은 이 가르침을 받아서, 공부하고, 암송하고, 그리고 공개적으로 이 가르침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야, 너는 이 가르침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삼천대천의 천신과 사람과 아수라가 당연히 공양을 올릴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 가르침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사원처럼 거룩하게 여겨지고 제대로 된 의식으로 숭배될 것이다. 그리고 주위를 돌며 꽃과 향기로 제물을 드리고 숭배할 것이니라.
수보리야, 나는 지나간 세상 한량없는 아승기겁(阿僧祇劫) 동안 연등(然燈)부처님을 만나기 전에 8백4천만억 나유타(那由他) 부처님을 만나서 모두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며 그냥 지내보낸 적이 없음을 기억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다음 말법(末法) 세상20)에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서 얻는 공덕은 내가 부처님께 공양한 공덕으로는 백분의 일도 미치지 못하며, 천분의 일, 만분의 일, 억분의 일도 미치지 못하며, 산수(算數)나 비유(譬喩)로도 미칠 수 없느니라. 수보리야, 어떤 선남자와 선여인이 이 다음 말법 세상에서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는 공덕을 내가 모두 말하면, 이 말을 듣는 이는 마음이 미치고 어지러워서 믿지 아니하리라. 수보리야, 이 경의 이치는 말이나 생각으로 미칠 수 없고[不可思議], 그 과보(果報) 또한 말이나 생각으로 미칠 수 없느니라.” (復次須菩提善男子善女人受持讀誦此經若爲人輕賤是人先世罪業應墮惡道以今世人輕賤故先世罪業則爲消滅當得阿 多羅三 三菩提 須菩提我念過去無量阿僧祗劫於燃燈佛前得値八百四千萬億那由他 諸佛悉皆供養承事無空過者若復有人於後末世能受持讀誦此經所得 功德於我所供養諸佛功德百分不及一千萬億分乃至算數譬喩所不能 及須菩提若善男子善女人於後末世有受持讀誦此經所得功德我若具說者或有人聞心則狂亂狐疑不信須菩提當知是經義不可思議果報亦 不可思議)
Furthermore,Subhuti,if it be that good men and good women,who receive and retain this Discourse,are downtrodden,their evil destiny is the inevitable retributive result of sins committed in their past mortal lives. By virtue of their present misfortunes the reacting effects of their past will be thereby worked out,and they will be in a position to attain the Consummation of Incomparable Enlightenment.
[전생의 죄를 인욕으로 씻음] 또한, 수보리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가르침을 받아 지니고, 읽고, 암송하는 데도 혹시 다른 사람들로부터 멸시당하거나 천대를 받으면, 그 사람은 전생에 지은 죄업 때문에 피할 수 없는 과보로써 이 생에서 남들로부터 무시당하고 천대를 받는 것이니, 이로써 그 사람은 전생의 죄업이 소멸되고 또한 반드시 가장 높고 바르며 원만한 깨달음[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경지에 이를 것이니라. 수보리야, 나는 연등부처님을 만나기 전 무한히 먼 과거를 기억한다. 내가 연등불을 만나기 전에 팔만사천 나유타(那由陀)* 부처님들을 만나서 모두다 받들어 모시고 그냥 지나친 분이 한 분도 없었느니라. 84,000의 무수한 나유타 부처님들을 나는 나에게 최소한의 잘못도 없이 섬겼느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이 이 다음 마지막 세상에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암송하면 그가 받을 공덕은 내가 모든 부처님께 공양한 공덕으로는 백분의 일도 미치지 못하며, 천만억분이나 숫자로는 도저히 비교할 수조차 없는 공덕이 되리라. 수보리야, 만일 500년의 마지막 기간에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경을 받아서 간직하고, 공부하고, 암송하여 얻게 될 그 보상을 자세히 설명하면, 여기에 모인 청중들은 의심으로 가득할 것이며, 마음이 혼란하여 도저히 믿을 수가 없을 것이다. 수보리야, 너는 알아야 하리라, 이 경은 그 의미도 한량이 없지만, 그 보상의 열매 또한 참으로 한량이 없느니라. --------------- [불교용어] 나유타(nayuta) 나유타(那由他)는 한자 문화권에서 사용되는 수의 단위의 하나이다. 나유다(那由多), 나유(那由), 나술(那述)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10×28승을 가리킨다. 나유타(nayuta)는 산스크리트어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수' 라는 뜻이다. 인도에서 아주 많은 수를 표시하는 수량의 이름. 아유다(nayuta, 阿由多, 阿諛多; 10의 14승=1000조)의 100배를 말한다. 수천만 혹은 천억ㆍ만억이라고도 하여, 조(兆) 또는 구(溝)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 이하는 불교에서 사용되는 숫자 단위다.(놀라울 뿐이다) 낙차(洛叉) = 10×5승(10×10×10×10×10=10만)
경주 석굴암의 세존상(통일신라, 국보 제24호)
□ 본문출처 : 동국역경원 한글대장경 □ 산스크리트어 영역: A. F. Pri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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