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 정치 vs 공작 정치
중앙일보 | 채병건 | 입력 2013.06.28 00:35 | 수정 2013.06.28 01:12
여야, 대선 전 대화록 유출 논란 공방
새누리 "녹취본 100여개 도청 의심"
입수경로·배후 공개 요구하며 압박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대화록이 지난해 대선에 앞서 유출됐는지를 놓고 여야 간 공방이 확산되고 있다. 민주당은 27일 새누리당과 국정원의 유착 의혹을 제기하며 '중정(중앙정보부) 정치'라고 공격했다. 새누리당은 전날 민주당이 제기한 '녹음 파일'의 출처를 놓고 '도청 정치'라고 받아쳤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귀국 즉시 새누리당이 대선에서 탈법적 정치 공작에 나선 데 대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박정희 시대의 중정 정치가 부활하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며 "새누리당과 국정원의 정치 공작 전모를 밝히고 관련자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했다. 같은 당 전병헌 원내대표도 "(대화록 문건을 봤다고 보도된)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과 (녹음 파일에서 대화록 공개를 언급했던) 권영세 주중대사는 대화록을 어떻게 입수했는지 밝혀야 한다"며 "천인공노할 범죄 커넥션의 배후와 몸통을 밝히겠다"고 했다.
전날 녹음 파일 내용을 폭로하며 대화록의 사전 유출 의혹을 제기했던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이날 국회 본회의장에서 신상발언을 통해 "김 의원의 (지난해 12월) 유세 발언과 (녹음 파일에 나온) 권 대사의 발언은 결코 대화록을 읽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말"이라고 공세를 이어갔다. 박 의원은 녹음파일에서 권 대사가 "내가 5년간 외국 정상들을 만나면서 북한의 대변인이 돼 더러운 역할을 해 왔다"와 같은 노무현 전 대통령 발언 내용을 인용했다고 주장했다.
이날 진선미 민주당 의원실은 "2009년 1월 MBC 노조 등의 파업 때 국정원이 포털 사이트 다음(Daum)에 '안티MBC' 카페를 직접 개설해 정치 개입성 글을 대거 올렸다"며 추가 폭로에 나섰다. 진 의원 측은 "이 카페의 개설자 아이디로 올라온 게시물은 검찰에서 제출받은 국정원 대선개입 범죄일람표에 명시된 '안티MBC' 카페의 (범죄 혐의) 게시물과 일치한다"며 "따라서 국정원 직원이 카페를 개설해 게시물을 올린 것"이라고 했다.
이에 맞서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당 회의에서 "(전날 녹음 파일 100여 개를 확보하고 있다는) 박영선 민주당 의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민주당은 '도청전문 정당'임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고 반격했다. 홍지만 새누리당 원내대변인도 "도청을 하지 않고 어떻게 녹음·녹취본이 100여 개나 되는가. 민주당은 의혹만 제기하지 말고 그 내용과 입수 경로를 국민 앞에 당당히 공개하라"며 "검찰은 녹취본이 도청인지, 제보인지 가려내고 그 배후도 하루빨리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박범계 의원은 "녹음 파일은 그 자리에 참석했던 한 인사에 의해 녹음됐고 이게 민주당에 입수됐으며 도청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을 지난해 10월 처음으로 제기했던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은 의총에서 NLL 지도까지 배포하며 민주당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민주당의 사퇴 요구에 대해 "책임지실 분은 따로 있다. 문재인 의원, 사퇴하십시오"라고 요구했다. 김무성 의원도 민주당이 제기한 의혹과 전날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협조를 안 해서 대화록을 공개하지 못했다"고 그가 말했다는 보도에 대해 김 의원은 "나는 '원세훈'의 '원'자도 말하지 않았다. 어제 보도된 내용은 내가 한 발언과는 전혀 다른 왜곡"이라고 강조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부산 유세에서 그 대화록을 읽었다"고 했다는 부분을 놓고도 "나는 추적추적 같은 말은 쓰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이날 새누리당과 민주당에선 모두 복잡한 내부 상황이 노출됐다. 국회 본회의장에선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이 같은 당 김재원 의원로부터 "제가(김무성 의원이 회담대화록을 거론했다고 외부에 유출한) 발설자로 의심받는다는 소문이 있는데 맹세코 저는 아니다"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받는 장면이 포착됐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비공개 의총에서 전날 박영선·박범계 의원 등 법사위원들이 주도한 녹음 파일 폭로를 놓고 "원내대표와 사전에 협의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와 조율 없이 일을 벌였다는 의미다.
[채병건·이소아 기자 mfemcjoongang.co.kr, 채병건.이소아 기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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