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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애청곡

[가을의 노래] '가을의 黃昏' (1939) - 고복수 노래

잠용(潛蓉) 2013. 8. 24. 05:54

 (Siberian troika in Sunset)

 

'가을의 黃昏'

조명암 작사/ 김영파 작곡/ 노래 고복수
오케레코드(1939 발행)
 

 

<1>

가을도 다 저물어 흰 눈발이 날리는
아득한 荒野에서 누굴 찾아 헤메나?
悽凉한 트로이카 방울소레 울리며
사랑도 없는 길을 아~ 아, 떠나갑니다.
<2>
외롭다 우는 때는 눈물까지 얼구요
슬프다 노래하면 가슴 속이 무너져
曠野의 흰 눈발을 헤쳐가며 갈 사람
사랑의 불길조차 아~ 아, 식어갑니다.
<3>
하루 해 다 저물어 하늘까지 어두워
지난 일 생각하니 마음까지 어둡다
悽凉한 트로이카 칸델라의 붉은 燈
눈길을 비쳐가면 아~ 아, 떠나갑니다.
 
* 트로이카(troika): 시베리아에서 눈 위를 달리는 3두마차


가을의 황혼 - 고복수


◇  고복수 (高福壽 1911~ 1972 울산출신)

 

일제 강점기 때 1911년 12월 29일 경상남도 울산군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그의 집은 국수 공장을 했었다고 한다. 유년시절 축음기에 매달려 노래만을 부르면서 꿈많은 어린시절을 보냈다. 20대 초반 나이에 콜럼비아레코드가 주최한 콩쿠르 부산대회에 나가서 입상하였고 이어서 경성부에서 열린 본선에 진출해 3위를 차지한 것이 가수로 데뷔하는 계기가 되었다. 1934년에 오케레코드에서 <타향>과 <이원애곡>을 발표하여 히트했다. 후에 〈타향살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타향>은 일제 강점기 최고의 대중가요의 하나로 꼽힐 만큼 크게 유행했다. 이후 1936년 말에 발표한 "아 으악새 슬피우는 가을인가요"라는 가사의 <짝사랑>이 또다시 히트하고 이은파와의 듀엣곡인 신민요 <풍년송> 등으로 지속적인 인기를 누렸다. 오케레코드와 전속 공연단인 조선악극단에서 활동하다가 1940년부터 빅타레코드의 반도악극좌(半島樂劇座)로 이동하였다. 여기서 <알뜰한 당신>의 인기가수 황금심과 만나 1941년에 결혼하였다.

 

고복수는 채규엽, 강홍식과 더불어 일제 강점기 초기가수로 분류되며, 이들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인기를 누렸다. 한숨을 쉬는 듯한 분위기의 가창은 <타향>, <사막의 한>, <짝사랑> 등 한탄조의 가사로 이루어진 그의 인기곡에 잘 어울렸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에 남인수와 백년설이 등장하면서 그의 인기가 수그러들면서 1940년대부터는 무대 공연 위주로 활동을 전환하게 되었다. 인기가수였지만 인생에 굴곡이 많았기에 불운한 가수로도 기억된다. 한국전쟁 때는 조선인민군에게 체포되었다가 탈출하는 일도 겪었고, 1957년 은퇴공연 이래 손대는 사업마다 계속 실패하여 어려운 생활을 했다. 아내 황금심이 영화 주제곡을 부르며 생계를 연명하는 사이 고복수는 서적 외판원으로 일해야만 했었다. 이후 뇌신경 고혈압과 식도염으로 투병하다 1972년 2월 10일 사망했다. 향년 62세.

 

황금심과의 사이에서 얻은 자녀 가운데 맏아들이 트로트 가수인 고영준, 둘째 아들 역시 트로트 가수 고영민, 셋째 아들이 작곡가 고병준이며, 둘째 며느리는 대학가요제 출신의 가수 손현희다. 동화예술학원을 경영할 때 배출한 제자로는 이미자와 안정애가 있다. 직업 가수로서 영화 제작도 한 그는 천주교인이고 대표곡으로는 <타향 1934> <휘파람 1934> <사막의 한 1935> <짝사랑 1936> <풍년가 1937> 등이 있다.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