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용의 타임머신... 영원한 시간 속에서 자세히보기

범죄·법률·재판

[이석기 1차공판] 이석기 '단언코 내란 음모한 적 없다' [진술 전문]

잠용(潛蓉) 2013. 11. 12. 19:42

이석기 첫 발언 "단언컨대 내란 음모한 적 없다"
연합뉴스 | 입력 2013.11.12 19:28 | 수정 2013.11.12 20:02

 

 

"5.12 강연은 북한의 '남침' 아닌 미국의 '북침'에 대한 것"
(수원=연합뉴스) 최해민 최종호 기자 = 내란음모 사건 수사과정에서 묵비권으로 일관해 온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은 12일 첫 공판에서 "단언컨대 내란을 음모한 적 없다"고 운을 뗐다. 10여분간 이어진 피고인 진술에서 이 의원은 "저와 진보당에 새겨진 주홍글씨가 벗겨지길 희망한다"며 "선입견에서 벗어나 진실을 증명하고 이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주홍글씨를 벗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1980년대 대학 입학 후 운동권으로 살았고 국회 들어올 때도 운동권으로 살겠다고 다짐했다"며 "애초부터 소련이나 북한을 보고 운동을 시작한 게 아니고 내가 서 있는 이 땅에서 진보운동은 충실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발언했다. 자신의 공소사실에 대한 의견도 덧붙였다. 그는 "사건 출발이자 종착점인 5월 12일 강연은 진보당 경기도당의 요청받아 한 것"이라며 "북이 남침했을 때 폭동을 일으키려 한 것이 공소요지인데, 북의 남침이 아닌 미국의 북침을 우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가정보원 수사는 전제부터가 틀렸다.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 이 경우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강연했다"며 "위기는 전환시기의 특징으로 새로운 체제에 한반도가 영구적 평화로 가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고 부연했다. 재판부에 "편견없이 바라봐달라"고 주문한 그는 "북 공작원 만난 적도 없고 지령받은 적도 없는데 내가 한 모든 말과 행동이 지령받아 수행한 것처럼 돼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현 정부 이후 역사가 후퇴한다는 우려가 들려온다. 이 사건 포함해 많은 면에서 근거가 있다"며 "그러나 역사는 결코 후퇴하지 않는다는 믿음 갖고 있다. 그렇게 보일지라도 민중이 독재로 돌아가는 것 불가능하다. 역사는 정의의 편이고, 정의는 민중에 의해 실현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이 발언하는 10여분 동안 탈북단체 회원으로 추정되는 방청객 3명이 "이석기 살려두면 나라 망합니다", "북에서 지령받은 것이다" 등 허락받지 않은 발언으로 재판 진행을 방해해 재판부에 감치명령을 받았다.

 

이밖에 함께 기소된 이상호, 홍순석, 한동근 피고인은 "이번 수사의 본질은 불법 대선개입을 덮기 위한 조작", "진실을 가리면서 진보당을 해산시키려는 것", "감청, 미행 등으로 수집된 증거를 과장해 사건을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goals@yna.co.kr, zorba@yna.co.kr]


'내란음모 사건' 첫 공판… 이석기 혐의 전면 부인(종합)

[연합뉴스] 2013/11/12 19:46 송고

 

 

[사진] 법원 들어서는 이석기 의원 호송차 (수원=연합뉴스) 신영근 기자 = 내란음모 혐의로 첫 재판을 앞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탄 버스가 12일 오후 경기도 수원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2013. 11.12 kjw@yna.co.kr

 

법정서 10여분간 첫 발언…검찰-변호인단 법정공방 치열
일부 방청객 "북으로 꺼져라" 욕설…재판부 3명 감치

(수원=연합뉴스) 최해민 최종호 기자 = 33년만에 열린 '내란음모 사건' 재판에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단언컨대 내란을 모의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12일 오후 2시 수원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김정운)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 이 의원은 이른바 RO의 5월 비밀회합 강연에 대해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를 이룰 수 있게 토론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진실"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내란음모 혐의로 이 자리에 서있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진다"며 "북한 공작원을 만나거나 지령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강조했다.

 

 

검찰의 공소사실 진술과 공동변호인단 의견 진술에 이어 발언 기회를 얻은 이 의원은 그동안 검찰 등 수사기관에서 진술을 거부한 것과 달리 전날 직접 작성한 진술서를 토대로 10여분간 자신의 혐의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홍순석 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 등 나머지 피고인 6명도 "검찰이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을 덮기 위해 내란음모 사건을 조작했다"고 말했다.

 

 

[사진] 이석기 의원 첫 공판 "두 외침" (수원=연합뉴스) 신영근 기자 = 33년만의 내란음모 사건 첫 공판일인 12일 오후 경기도 수원지법 앞에서 이석기 의원의 엄중 처벌을 촉구하는 보수단체(왼쪽)와 석방을 요구하는 통합진보당의 집회가 열리고 있다. /2013.11.12 drops@yna.co.kr http://blog.yonhapnews.co.kr/geenang


검찰과 변호인단은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동원해 이 의원 등의 혐의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검찰은 1시간 여에 걸친 공소사실 진술에서 RO를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처럼 한국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전복하고 김일성 주체사상을 지도 이념으로 한 지하 비밀조직"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RO의 총책 및 간부인 피고인들은 북한의 군사도발 상황을 전시로 인식하고 총공격 명령에 따라 국가기간시설 타격을 협의하는 등 내란을 모의했다"며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보호하고 이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구하고자 기소했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검찰이 밝힌 피고인들의 공소사실은 내란음모죄의 구성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맞섰다.

 

변호인으로 참석한 진보당 이정희 대표는 "국헌문란의 목적과 주체의 조직성, 수단과 방법 등이 특정되지 않았다"며 "검찰은 RO 조직의 구성 시기와 조직 체계 등도 밝히지 못해 재판부는 이번 사건을 기각하거나 무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래픽> 내란음모 첫 공판 검찰 - 변호인 주요 쟁점 (서울=연합뉴스) 반종빈 기자 = 33년만의 내란음모 사건 첫 공판이 열린 12일 검찰은 RO조직을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과 유사한 조직이라고 규정했다. 오후 2시부터 수원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김정원)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검찰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 피고인 7명의 공소사실 요지를 진술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bjbin@yna.co.kr @yonhap_graphics(트위터)

 

그는 "녹취록에 나오는 '선전'이 "성전(聖戰)'으로 '절두산성지'가 '결전성지' 등으로 공소장에서 바뀌어 기재됐다"며 녹취록 왜곡을 주장하기도 했다. 재판은 검찰과 변호인단, 피고인들의 진술이 길어지면서 4시간 20여분간 진행돼 오후 6시 20분께 마무리됐다.

 

이 의원과 변호인단의 의견 진술 과정에서 보수단체 회원으로 추정되는 방청객 5명이 이 의원 등을 향해 욕설을 해 남성 2명과 여성 1명이 감치 명령을 받는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날 검찰에서는 최태원 공안부장 검사를 비롯해 전담수사팀 검사 8명이 법정에 나왔고 변호인석에는 변호인단 김칠준 단장과 이정희 대표 등 16명이 앉았다. 98석에 이르는 방청석도 진보당 관계자와 보수단체 회원 등 방청객들로 만원을 이뤘다. 다음 공판은 14일 오후 2시 열린다. [goals@yna.co.kr, zorba@yna.co.kr]

 

RO 녹취록 증거채택 공방... 재판부 판단 미룬 채 주시
세계일보 | 입력 2013.11.12 19:20 | 수정 2013.11.12 20:26


내란음모 혐의 檢·辯 쟁점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내란 음모 사건 재판은 그동안 4차례의 공판준비기일(정식 공판 전에 쟁점을 정리하는 절차)을 거치면서 쟁점을 크게 두 가지로 압축했다. 하나는 지하 혁명조직인 RO(Revolutionary Organization) 비밀회합 녹취록에 증거능력이 있는지이고, 또 다른 하나는 RO의 실체 여부다. 12일 열린 첫 재판에서도 검찰과 변호인단은 두 쟁점을 두고 치열하게 공방을 벌였다.

 

변호인단의 '제보자 매수' 주장 입증이 관건
70시간 분량의 RO 비밀회합 녹취록에 증거능력을 인정할지는 재판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다. 이 녹취록에는 2010년 5월부터 모두 44차례에 걸친 RO 회의 내용이 담겨 있다. 변호인단은 "국가정보원이 RO 내부자를 '매수'해 녹취록을 입수했다"며 증거로 삼을 수 없다는 주장을 줄곧 펼쳤다. 재판부 역시 "녹취록에 증거능력을 인정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며 21일과 22일 예정된 제보자 증인 신문을 마친 뒤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법조계에서는 녹취록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는 결국 변호인단이 '제보자의 매수'를 입증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고 보고 있다. 법리상 설혹 국정원이 제보자에게 돈을 건넨 사실이 밝혀져도 녹취록을 곧 '매수에 따른 불법증거'로 보기는 어렵다. 제보에 대한 사후적인 편의제공의 경우 녹취록에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는 게 학설과 판례이기 때문이다. 법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국정원이 먼저 돈을 건네며 제보의사가 없는 제보자를 회유했을 때만 녹취록의 증거능력을 부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O 실체 입증 공방
검찰은 RO가 경기 동부·남부·북부 등의 단위로 체계적 조직을 갖고 있는 데다 김일성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한 이적단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RO는 비밀회합을 통해 국가기간시설 타격 등을 협의했고, 조직원이 각자 준비하다가 총공격 명령에 따라 즉각 실행에 옮기는 방법으로 구체적인 내란을 음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의원 측 변호인단은 RO가 검찰과 국정원의 주장과 달리 실체가 없다고 반박했다. 변호인단은 "RO는 구성 시기, 구성원, 조직체계, 활동 내용 모두 확정되지 않았고 실체가 없다"며 "이 의원이 RO 총책이라는 근거자료 역시 전혀 제출된 바 없다"고 변론했다. 형법상 내란음모죄는 내란 시 역할에 따라 처벌 수위가 다른데, RO는 역할을 나눌 만큼의 '조직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뜻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RO의 조직력 수위가 형법상 내란죄 구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구성요건인지에 의문을 보이고 있다. 형법상 내란죄 조문에는 내란 조직이 치밀한 의사조직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구성혐의와 달리 형법상 내란죄의 조직은 조직강도의 강약을 따지지 않는다"며 "내란죄 의율과 관련없는 엉뚱한 사안이 쟁점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박현준 기자 hjunpark@segye.com]

 


[통진당 보도자료]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이석기 의원 모두진술 전문
 
먼저, 오늘 공판에 앞서 진행된 준비기일 동안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이끌어 주신 재판장님의 노고에 대하여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난 8월 28일, 내란 음모 사건이 터졌습니다. 실용과학위성 아리랑 3호 발사 참관을 마치고 러시아에서 귀국한지 3일 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놀랐지만 아마 저보다 더 놀란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단언컨대, 저는 내란을 의도한 적이 없으며 그래서 씌워진 ‘내란음모’라는 엄청난 혐의에 대해 진심으로 놀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내란을 음모한 혐의로 이 자리에 서있다는 사실 자체가 무척 낯설고,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 사건의 피고인으로서 이 재판을 통하여 이 부조리한 풍경이 바로 잡히고 저와 이번 사건으로 인해 진보당에 새겨진 주홍글씨가 벗겨지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이것은 온갖 선입견과 예단으로부터 벗어나 진실을 직면하고 이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80년대 초 대학에 입학한 이후 지금까지 저는 운동권으로 살아왔습니다. 국회에 처음 등원할 때도 저는 스스로 운동권의 마음으로 살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제가 운동권이라고 표현한 것은 20대 홍안의 청년이 갖는 깨끗함, 첫 마음처럼 그 어떤 기득권에도 물들지 않고 또 어떤 도그마에도 갇히지 않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20대 청년기의 정점에서 저는 역사적인 87년 6월 항쟁과 7,8,9월 노동자 대투쟁을 경험하였습니다. 억압이 있는 곳에 민중의 저항이 있으며 하나로 뭉친 민중의 힘 앞에는 이 세상 막을 자 없다는 체험적 각성은 평생의 신념으로 각인되었습니다.

 
저의 30대는 20대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90년대는 동구가 몰락하고 북의 경제적 어려움이 알려지면서 운동권에는 큰 변화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진보운동에 희망이 없다면서 좌절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애초부터 소련이나 북을 보고 운동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서있는 이 땅 우리 민중 현실에서 진보는 출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저는 1997년의 정권교체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선거라는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으로도 사회진보의 큰 발을 내딛을 수 있다는데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진보정당을 통해 사회진보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그런 생각에 따라 진보정당 건설을 일관되게 지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오랜 수배로 인해 이런 생각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2003년 출옥 이후 저는 진보정당을 지원할 수 있는 가장 필요한 일이 무엇인가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설립한 것이 여론조사기관이었고 이를 발전시켜서 선거 전략을 기획하고 홍보를 돕는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솔직히 그때까지는 진보운동은 과거에 해왔던 집회와 시위에는 능하지만 선거는 이른바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면서 아예 관심을 두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먹구구로 그냥 ‘선전’의 장으로만 보는 시각도 있었습니다. 반면 기성의 정치권은 여전히 돈의 힘으로 선거를 치르고 있었습니다. 진보진영이 선거를 기성 정치권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돈으로 표를 모으는 정치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민중의 마음을 모아가는 정치적 실천이 절실하다는 결론을 스스로 찾았습니다. 저는 민심을 과학적으로 읽고 유권자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정책을 개발하는 것으로 돈 선거와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저와 동료(CNP)들은 밤낮으로 일했고 또 성과도 꽤 냈습니다. 무명의 여성 농민이 민주당 호남 아성을 무너뜨리고 선거에 당선되는 기적 같은 사연도, 민주주의 후퇴에 맞서 최초의 야권연대 승리를 만들어낸 수도권 교육감 당선의 감동도 그 과정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진보진영에서 처음으로 과학적 선거를 만들어냈고 그래서 무명이지만 능력 있고 참신한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당선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좋은 평가도 들었습니다.

 

대중적 진보정당 노선에 대해 보다 직접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 저는 작년 총선에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습니다. 사실 국가보안법으로 수감된 경력이 있다는 것이 혹시 당에 누가 되지 않을까? 고민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그 정도도 안 되는 후진적 사회라고는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었습니다. 그러나 선거운동이 시작되기도 전에 저는 보수언론의 표적이 되어버렸습니다. 종북색깔 공세와 함께 당내 비례 경선을 둘러싸고 저를 조준한 부정선거 의혹이었습니다. 검찰은 당원 명부는 물론 모든 당원의 투표내역까지 열어보며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습니다. 경선부정의 몸통처럼 여론을 몰고 갔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저를 기소조차 못하였습니다. 종북 색깔 공세와 경선부정이란 멍에와 함께 시작한 국회의원이지만 저는 진보정당의 의정활동에 최선을 다 했습니다. 미래부장관 후보자인 김종훈씨가 미국 CIA를 위해 일한 것을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국적보다도 미국 정보기관을 위해 일해 온 사람을 핵심부처 수장으로 앉힐 수 있다는 박근혜 정부의 위험천만한 의식을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주한미군이 우리국민 혈세로 지급한 방위비 분담금을 7천억이나 쌓아두고 있음을 폭로한 것도 한국사회에서 미국이란 어떤 존재인지, 우리의 외교와 제도는 어떻게 개혁돼야 하는지를 호소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언론기득권에 정면으로 맞서기 위해 앞장서서 종편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정치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가 (언론)방송이라지만, 저는 눈치 볼 것 주저할 것도 없었습니다. 종편의 왜곡보도는 물론, 태생 자체가 잘못된 종편에 대한 엄정한 재승인 심사기준 마련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세계 10위권의 군사력에다 북의 국내총생산보다 많은 한 해 34조원의 국방비를 쓰면서도 전작권을 60년 동안 미국에 내줘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정치 현실을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분단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국정원과 군사이버 사령부가 불법적으로 대선에 개입한 것은 모두 반북 대결주의 산물입니다. 분단이 유지되는 한 이런 일은 계속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것은 낡은 이념이나 화석화된 신념이 아니라 눈앞의 현실입니다. 이 현실을 외면하자는 주장, 그것이야말로 낡은 선입견이고 무지막지한 도그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제가 지금껏 살아온 과정을 말씀드린 것은 저에 대해 있는그대로 편견 없이 바라봐 주실 것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언론에서 만들어진 이미지처럼 그 어떤 주의에 매몰되어 외눈박이로 살아온 사람이 아닙니다. ‘실사구시’ 현실에서 진리를 찾는다는 것이야말로 저에게 배어있는 원칙이었습니다. 저는 북의 공작원을 만난 적도 없고 그로부터 무슨 지령을 받은 적도 없습니다. 검찰의 기소조차 이와 같은 부분을 적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결국 제가 한 모든 말과 행동이 마치 북의 지령을 받아 이를 수행한 것처럼 되어있습니다. 이런 선입견과 예단이 없었으면 아예 이번 사건이 성립하지도 않았으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이제 이번 사건의 출발이자 종착점이 된 5.12의 강연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5월 12일에 경기도당 임원들의 요청을 받아 강연을 하였습니다. 당시 저는 이 땅에 드리워진 전쟁의 그림자를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북이 남침을 할 경우에 이에 호응해서 그 무슨 폭동을 일으키려 했다는 게 저에게 제기된 공소요지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전제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저는 북이 남침하는 상황을 예상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미국이 북을 공격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탈냉전 이후의 전쟁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모든 전쟁이 미국이 다른 나라를 침공하는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지금, 지구상에서 다른 나라를 공격해 승리할 수 있는 나라는 사실상 미국밖에 없습니다. 북과 미국의 군사적 대결이 이어져 오고 있지만 북이 미국을 침공하여 항복을 받아내는 일은 누구도 상상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라크건 아프가니스탄이건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란이건 북이건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미국이 북을 침공하는 일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제가 우려한 것은 그렇게 되었을 때 우리 사회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위기는 전환적 시기의 특징입니다. 낡은 시스템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을 때 위기가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근근이 평화를 지탱해왔던 정전체제가 위기를 맞고 있다면 이것은 역으로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체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로 갈 수 있는 하나의 기회로 될 수 있다는 게 저의 판단이었습니다. 제가 지난 4월 25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을 통해 전쟁위기 해소와 항구적 평화를 위해 ‘남북미중 4자회담’을 정부에 제안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나아가 저는 이 같은 대전환기를 맞이하기 위해 진보정당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깊이 있게 토론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5.12 강연의 배경이고 진실입니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역사가 후퇴하고 있다는 우려가 들려옵니다. 이번 사건을 포함하여 많은 점에서 그런 우려는 근거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코 역사는 후퇴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비록 잠시 그렇게 보일지라도 한 번 민주주의를 경험한 민중이 독재시대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역사는 정의 편이며 정의는 민중에 의하여 실현되기 때문입니다. 성실하게 재판에 임하겠습니다. 끝까지 경청해주신 재판장과 재판부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2013년 11월 12일 통합진보당 대변인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