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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창조과학부] '미래'도 '창조'도 안 보여

잠용(潛蓉) 2013. 12. 12. 20:14

'미래'도 '창조'도 안 보이는 미래창조과학부
SBS | 정영태 기자 | 입력 2013.12.11 09:33

 

전 국민을 유료방송의 볼모로 삼는 UHD 유료화 정책방향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의 주도로 정부가 추진 중인 방송산업발전종합계획을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유료방송 편향적이라는 비판이 핵심인데, 특히 차세대 방송인 초고화질 UHD 방송을 유료방송을 통해서만 볼 수 있게 한다는 정책방향 때문입니다.

 

 

오늘 정부의 최종 발표에서도 이런 정책방향이 다시 한번 확인됐습니다. UHD 방송 상용화에 대해 정부는 콘텐츠 수급과 표준화 현황, 비즈니스 모델 창출 등을 감안해 매체별 UHD 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UHD는 여전히 프리미엄 서비스로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국민 무료 보편 서비스를 위한 지상파 UHD용 주파수 할당에 대해선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무료 보편서비스인 지상파만 배제하고 유료방송만으로 UHD를 추진하려 한다는 우려를 사는 대목입니다.

 

 

UHD, 즉 울트라 HD 방송은 현재의 HD 방송보다 화질이 4배에서 최대 16배까지 선명한 초고화질 방송을 말합니다. 과거 4:3 화면의 SD 텔레비젼이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16:9 비율의 HD 텔레비젼으로 급격히 대체됐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때로부터 이제 10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 이제는 HD를 대신할 차세대 방송으로 UHD 기술이 급속하게 현실화 되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영화나 다큐가 UHD로 제작되고 있고 지상파 방송사들에 의한 UHD 드라마 제작도 시작됐습니다. 부분적으로 UHD 장비를 동원해 UHD 기술을 접목하는 제작 기법도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내년 소치 동계 올림픽과 브라질 월드컵이 UHD 콘텐츠의 보급과 UHD 텔레비젼의 확산에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입니다.그런데 미래창조과학부의 정책 담당자들은 'UHD는 프리미엄 서비스가 돼야 하며 따라서 지상파 주파수를 통해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무료 보편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계속해 왔습니다. 즉 케이블과 IPTV, 위성 등 유료방송 가입자들만 선택적으로 누리면 된다는 주장입니다. 천만원이 넘는 고가의 초대형 UHD TV를 살 수 있고 유료매체에 가입한 사람들만 보면 된다는 겁니다. 반면 UHD TV를 살 수 없고 지상파만을 보는 국민들은 보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정작 시장은 이런 미래부의 'UHD콘텐츠=프리미엄 서비스' 논리, 즉 'UHD 콘텐츠 유료화' 논리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UHD TV의 가격하락과 보급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빠릅니다. 삼성전자 윤부근 사장의 말이 이런 시장 상황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윤 사장은 불과 1년 전인 독일 가전 박람회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UHD TV는 소비자가 돈을 더 주고 산 만큼 가치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전용 컨텐츠가 없으면 가치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UHD TV를 내놓으면 기존 컨텐츠를 업스케일 해야 하는데 여러 부작용이 많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으로 5-10년은 걸릴 겁니다" 즉 UHD 방송은 시기상조며 보급 확산에는 상당히 긴 시간이 걸릴 거라는 취지입니다.일면 미래부의 'UHD=프리미엄 서비스'논리와 닮은 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윤 사장의 말은 1년만에 상당히 많이 바뀌었습니다. 지난달 전 세계 애널리스트들을 상대로 윤 사장이 한 말을 볼까요.

 

"UHD TV는 성장동력이다. 올해는 전세계 시장이 120만 대 밖에 안 됐지만, 내년엔 다섯 배 가까운 560만대, 3년 뒤인 2016년엔 무려 천 7백만 대가 팔릴 것이란 전망이 있다. 우리는 이런 전망보다 더 빨리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장 상황이 이렇게 바뀌고 있는 것은 한중일을 중심으로 한 가전사들의 치열한 경쟁 때문입니다. 특히 소니를 중심으로 한 일본 가전사들이 UHD 시장 선점에 사활을 걸고 뛰어들었습니다.

 

기존 HD TV 시장에서 삼성과 LG에 뺏긴 주도권을 차세대 TV인 UHD에서 되찾아 오겠다는 겁니다. 실제로 현재 UHD TV의 세계시장 점유율에서 소니가 이미 1위를 선점한 상태입니다. 또 중국 가전사들의 가격 공세도 무섭습니다. 소니에 이어 세계 시장 점유율 2,3위를 차지한 중국 기업들은 HD 텔레비전 보다 싼 UHD TV를 내놓으면서 무서운 기세로 시장을 장악해가고 있습니다.

 

삼성과 LG도 초대형 프리미엄 UHD TV 위주에서 탈피해 55인치, 65인치대의 보급형 UHD TV를 내놓고 이 경쟁에 가세했습니다. 한중일 TV 제조사들이 보급형 UHD 시장에서 그야말로 피 튀기는 경쟁에 들어간 겁니다. 자연히 UHD TV의 가격은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내년이 되면 UHD TV 가격이 HD TV의 1.3배 수준으로 내려갈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내년부터 줄줄이 예정된 스포츠 빅 이벤트가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소치 동계 올림픽과 브라질 월드컵을 맞아 제조사들이 사활을 건 가격 인하 경쟁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어 16년에는 리우 하계 올림픽, 18년에는 평창 동계 올림픽과 카타르 월드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UHD 방송은 일부 계층만 누리는 프리미엄 서비스가 아니라 현재의 HD를 빠르게 대체할 보편적 서비스가 될 거라는 점을 시장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미래창조과학부가 ' UHD 방송 = 프리미엄 서비스 = 유료매체 서비스'란 논리를 고집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주파수 때문입니다. 지상파 UHD 방송 서비스에 필요한 주파수 대역은, 지상파의 디지털 전환 후에 비어 있는 700MHz 대역 말고는 사실상 없습니다. 그러나 미래부는 이 대역도 모두 통신업체들에 경매 할당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UHD는 프리미엄 서비스라서 유료매체로 서비스하면 되는 것이지 지상파까지 서비스할 필요는 없다는 게 표면적인 설명이지만, 실제로는 지상파에 주파수를 줄 수 없으니 지상파는 놔두고 유료매체로만 UHD방송 서비스를 하면 된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주파수 때문에 지상파는 UHD를 포기하라는 것인데, 프리미엄 서비스 운운하며 포장을 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 발표를 통해 이런 우려가 기우가 아니라는 점을 또 한번 확인시켜준 대목이 있습니다. 유선뿐만 아니라 무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UHD, 3D 방송 등을 추진하겠다며 기가급 인프라 구축을 선도하겠다는 부분입니다. 무선인터넷까지 기가급으로 서비스하는 기술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지만, 그런 상황이 오게 되면 통신사들의 주파수 수요는 상상이 안 될 정도로 늘어납니다. UHD를, 무료 서비스인 지상파 방송을 제쳐두고 케이블과 함께 무선 인터넷 기반, 즉 통신사를 통해 서비스하면 된다는 발상 자체가 통신 편향적인 미래부(구 정통부)에서 나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통신을 위한, 통신에 의한, 통신의 방송서비스가 될 수도 있는 겁니다.(케이블도 요즘 볼 수 있듯이 IPTV에 맹렬한 속도로 따라잡힐 것입니다.)

 

하지만, 지상파만을 배제하고 케이블과 통신 등 유료방송만의 UHD를 하겠다는 미래창조과학부의 정책 방향이 바뀌지 않는다면 잃을 것이 너무 많아 보입니다.

 

첫째, "방송콘텐츠는 창조경제의 핵심"이란 대통령의 말과 정부의 정책방향이 정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지상파의 주장은 '지상파만 UHD방송을 하겠다'는게 아닙니다. '케이블, 위성, IPTV와 함께 지상파도 같이 UHD를 시작해야 경쟁을 통한 상생'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요즘은 유료방송에서도 좋은 콘텐츠를 많이 만들고 있습니다만 지상파는 여전히 양질의 콘텐츠 공급 근간입니다. 이는 쉽게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상파가 UHD 콘텐츠를 만들지 않고, 유료방송이 만드는 UHD 콘텐츠만으로는 UHD 활성화가 속도를 내기 어려워 보입니다. 무엇보다 국가적 차원에서 UHD 계획을 일사불란하게 추진하고 있는 일본과의 경쟁에서 자칫 우리가 밀려날 수도 있습니다.

 

둘째, 전 국민을 유료방송의 볼모로 삼는 정책이라는 점입니다. 미래부의 현재 정책방향이 확정돼 그대로 추진된다고 해봅시다. 언젠가 HD를 대신하게 될 UHD 방송은 오로지 유료방송 가입자들만 볼 수 있게 됩니다. 지상파 주파수를 통해서는 HD 방송만이 시청 가능합니다. 지상파들이 드라마나 다큐를 비롯한 UHD 콘텐츠를 만든다고 해도 이것을 국민들에게 보내줄 수단, 즉 주파수가 없습니다. 결국 차세대 방송인 UHD 방송은 유료방송을 대신할 대체재가 없는 시장이 형성됩니다. 쉽게 말해 국민들이 유료방송 말고는 선택할 여지가 없다는 겁니다.

 

현재 HD 방송의 경우 굳이 돈을 내고 유료방송을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은 '주파수를 통한 지상파 시청'이란 방법이 있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아이들 교육 등을 생각해서 유료방송에 가입하지 않고 그냥 전파로 전달되는 지상파 방송만을 무료로 보는 방법이 있는 겁니다. 하지만 미래창조과학부의 정책대로라면 UHD는 전 국민을 유료방송의 볼모로 내주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가령 유료매체들이 UHD 방송을 볼 수 있는 상품의 가격을 대폭 올린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국민들은 이를 피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싸게 올라간 UHD 상품 가격을 다 내거나, 과거로 후퇴해 HD 방송만을 봐야합니다. 지상파 주파수를 통한 UHD 시청 수단이 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경제는 '공정한 경쟁, 그리고 경쟁과 함께하는 상생'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지상파만 배제한 유료방송만의 UHD 정책'과 '지상파와 유료방송이 같이 경쟁하고 상생하는 UHD 정책' 가운데 어느 것이 창조경제에 보다 보탬이 될까요? 답하기가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정영태 기자jytae@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