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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대선

[대자보] 고교생·주부·직장인도 '안녕들하십니까' 신드롬

잠용(潛蓉) 2013. 12. 17. 07:43

고교생· 주부· 직장인도 '안녕들하십니까' 신드롬
한겨레 | 입력 2013.12.16 20:10 | 수정 2013.12.16 22:10

 

세대·지역·계층 뛰어넘어 전국 확산
"정치의 실종" "온라인 공간 불신" 탓

[한겨레] 대학가에서 확산되기 시작한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는 세대·지역·계층을 뛰어넘은 전국적 현상이 됐다. 대학가는 물론 고등학생과 평범한 직장인, 주부들도 나름의 문제의식을 담은 대자보를 쓰고 있다. 처음 고려대에 대자보를 붙인 주현우(27·경영학과)씨와 함께 '안녕들 하십니까'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는 강태경(25·철학과)씨는 16일 "호응하는 대자보가 너무 많아서 현재 정확한 집계는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페이지에 '좋아요'를 누른 누리꾼은 이날 오후 23만명을 돌파했다. 이들은 대자보 1228건의 '인증샷'을 모으는 것을 목표로 '응답하라 1228' 캠페인도 진행하고 있다.

 

연세대·서강대·한양대·중앙대 등 서울시내 대학에 이어 대전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에는 10여명이 대자보를 붙였다. 이 학교 물리학과 2010학번 이윤석씨는 '안녕하지 못합니다'라는 대자보에 "(국정원 정치개입, 학내 청소노동자 처우 등의) 문제에 대한 비판과 관심은 잠시였다. 비정상적인 권력의 횡포에 안녕하지 못하다"며 "전국 곳곳의 안녕하지 못한 분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함께하고 싶다. 우리 자랑스러운 학우 여러분도 함께하자"고 썼다. 서울 성공회대와 인천대 등에도 '안녕하지 못합니다'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나붙고 있다.

 

고등학생들의 동참도 두드러진다. 시국 비판이나 교육 문제 등 소재는 다양하다. 이날 전북 군산여고 채자은(16)양은 "국가정보원이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선거에 개입한 정황들이 드러나 촛불집회가 일어났을 때도 안녕했다. 왜냐하면 나는 고등학생이니까. 하지만 3·1운동도, 광주학생운동도 모두 학생이 주체가 되었다. 우리도 일어서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적은 대자보를 학교 외벽에 붙였다. 경기도 성남시 효성고 정현석(18)군은 "학생들이 요구하지 않으니, 정작 학생들을 위한 정책은 나오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매년 성적 비관으로 자살하는 학생들이 끊이지 않아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저는 안녕하지 못하다"라고 대자보에 썼다.

 

광주 북구의 한 전봇대에는 '대한민국 평범한 고2 학생' 명의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가 붙었다. 여기에는 "철도 민영화로 인한 철도파업. 그분들을 보면서 부끄럽게도 저는 안녕했습니다. 그리고 곧 의료보험 민영화. 감기 때문에 병원에 가는데 몇십만원씩 내야 합니다. 이때도 안녕할 수 있을까요?"라고 적혀 있다. 경찰은 이 대자보가 불법 게시물이라며 떼어냈다.

 

사회참여에 소극적이던 시민들도 대자보 쓰기에 나섰다. 서울시 통합 민원안내 창구인 '다산콜센터'의 한 노동자는 "노조 활동을 하는 동료를 뜬구름 잡으러 다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3만원짜리 명절상품권을 8만원짜리 현금으로 바꾸기 위해 여성 동료가 삭발을 했다. 그들이 만들어낸 성과 앞에서 나는 비굴했고, 미안했다. 더는 고민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안녕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내용의 익명 대자보를 썼다. 자신을 '82학번, 너희들의 엄마'라고만 밝힌 한 시민은 '안녕들 하십니까' 현상이 시작된 고려대 정경대 후문에 "너희들을 키우면서 부끄럽게도 성적과 돈에 굴종하는 법을 가르쳤구나. 미안하다. 이제 너의 목소리에 박수를 보낸다"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였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의 원인을 '정치의 실종'이나 '온라인 공간에 대한 불신' 등으로 다양하게 분석한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불통·독선의 박근혜 정부와 함께 여야 모두 시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제도화된 정치 과정에서 수렴하지 못하고 있다. 아무도 자신을 대표해주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인 집단행동에 나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치평론가 김민하씨는 "온라인상에 글이나 댓글을 남기면 정치적 입장에 따라 비난과 저주에 가까운 반응이 이어지지 않나. 특히 국정원 댓글 사태는 결정적이었다. 시민들은 이제 온라인 공간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대자보라는 아날로그 방식의 소통을 다시 시도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송호균 기자, 광주 대전/정대하 전진식 기자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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