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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대참사

[세월호 2주기] '오늘도 배 안에는 9명이 남아 있습니다'

잠용(潛蓉) 2016. 4. 16. 06:31

[영상] 세월호, 그 후 2년의 '타임라인'
노컷뉴스 2016-04-15 06:00CBS



세월호가 가라앉은지 어느덧 2년입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 2년 전 그날은 조금씩 흐릿해져 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2년 간 '현재진행형'이었던 세월호 사태가 어떻게 매듭지어지고 있는지 매 순간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세월호 2주기, 아직 배 안에는 9명이 남아 있습니다. 잊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지난 2년 간의 궤적을 다시 기록합니다. [노컷뉴스 김지수 기자]

 

[그날 오후] 진도체육관 찾은 박 대통령


[세월호 2년]"이제 그만" vs "기억해야"
뉴시스 | 황보현 | 입력 2016.04.15. 05:03


[서울=뉴시스] 황보현 기자 = 세월호 참사 이후 꼭 2년이 됐다. 304명의 안타까운 목숨이 희생된 최악의 인재(人災) 사고가 발생한지 2주기가 됐지만 아직도 명확하게 밝혀진 사고 원인은 없다. 진상규명은 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정치적 공방만 벌어지는 탓에 국민들의 실망과 피로감만 누적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상당수 국민들 사이에선 일종의 '세월호 피로감'이 만연하고 있다. 누적된 피로감은 망각으로 이어진다. 1주기가 다르고, 2주기는 더더욱 망각의 속도가 가파르다. 하지만 세월호는 우리사회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회의 부조리, 모순, 부도덕 등이 쌓이고 쌓인 결과다. 세월호를 잊고 지나간다면 세월호는 끝나지 않는 현재 진행형이 될 뿐이다.

 

 

◇ 지겹다 vs 기억해야… 두 개로 갈라진 목소리

그동안 세월호 유가족들은 인터넷에 떠도는 막말에 많은 상처를 받아왔다. 인터넷상에는 "죽어서 보상금 타주는 게 효도다", "이제 그만해라 지겹다, 수학여행 가다 사고로 죽었는데 왜 이리 유난 떠냐", "자식 팔아 시체장사 한다, 세월호가 로또냐, 벼슬인 듯 행세하지 마라" 등등 이런 종류의 막말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봉사단 등 보수단체들도 가세했다. 이들은 수시로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유가족 단식 농성장에서 소란을 피우며 유가족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했다. 이들의 행동에 배후 세력이 있다는 점이 밝혀지면서 논란을 빚었다.

 

한 매체가 "어버이연합이 2014년 4월부터 11월까지 39회의 세월호 반대 집회를 하면서 일당 2만 원을 주고 탈북자 1259명을 고용한 것을 확인했다"고 보도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낳았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한 목소리도 높다. 전국에서 세월호 2주기 추모를 위한 갖가지 행사가 준비 중이고 서울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희생자 분향소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진상 규명을 위한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광화문 세월호 분향소에서 만난 한 자원봉사자는 "배 안의 아이들이 내 자식들이라고 생각하니 한 순간도 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의 무관심이 슬프다고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에서 잊혀져가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여기에 간혹 보수단체가 시비를 걸어올 때는 더욱 힘이 빠진다. 그는 "우리는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인데 왜 색안경을 끼고 보는지 모르겠다" 며 "가슴 아파하는 유가족들을 볼때마다 마치 내가 죄인이 된 기분이다"고 한숨쉬었다.

이어 "세월호의 모든 의혹이 풀리고 유가족들이 "이제는 됐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 전문가들, "불신의 감정 사회적 트라우마로 나타나"

전문가들은 세월호 참사를 통해 불신의 감정이 사회적인 트라우마로 나타났고 이를 제대로 풀지 못해 여러 부작용을 낳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보수단체의 경우 '정부불신'이라는 국민의 심리를 통해 정치적으로 이용된 희생양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권준수 교수는 "정권에 대한 분노를 조장하는 일부 외부 세력이 개입해 상처를 더 깊게 만들었다" 며 "되풀이되는 안전사고에 나타나는 정부의 관리 부실 소식을 들으면서 분노가 커졌다"고 말했다.

 

박래군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은 "지난 2년의 시간동안 세월호의 기억을 지우려는 세력과 이날을 기억하려는 세력 간 대결의 시간이었다" 면서 "(피해)가족과 시민, 사회단체의 3주체가 만나서 새로운 사회를 위한 동력을 만들어가고 담론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다시는 이런 참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정부의 노력과 반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유범상 한국방송통신대 행정학 교수는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는 시민들의 기억을 지우려 하는 것은 물론, 일부 보수 논객들은 분열을 선동하고 시민들은 개인적인 애도와 대비책 마련에 급급했다"고 말했다. 박명림 연세대 정치학과 교수는 "세월호 참사의 극복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명예회복과 보상배상, 기념과 추모, 치유와 회복의 과제를 성취하는 것이다"고 밝혔다. 이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 구조 개혁의 경우 생명권과 안전권 등이 보장되는 새로운 인간조건과 국가상태의 건설로 극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hbh@newsis.com]

 

"유속 빠른 곳서 통째 인양은 세계 최초... 성공 확률 50%"
중앙일보 | 김호.김민상 | 입력 2016.04.15. 01:38 | 수정 2016.04.15. 03:00

 

해수부, 7월까지 육상 인양 목표

에어백 넣어 선체 중량 줄이기 작업

태풍 등 날씨와 잠수사 상태 변수

인양된 선체 추모관 전시 방안 논의

진도군 "주민 의견 엇갈려 합의 필요"

지난 12일 오후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방파제. 2년 전 세월호 사고 이후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얼굴 사진이 난간에 고정된 채 바람에 나부꼈다. 일부 가족들은 여전히 팽목항을 떠나지 못했다. 딸 은화(당시 단원고 2학년 1반)를 찾지 못한 조남성(53)·이금희(47)씨 부부가 그렇다. 세월호 인양을 위한 작업이 시작된 이후 한동안 팽목항 임시숙소에서 생활하다가 집으로 돌아갔던 부부는 지난달 다시 팽목항을 찾았다. 이씨는 “요즘 은화 꿈을 자주 꾼다”며 “세월호 안에 은화를 포함한 9명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사진] 인양준비 현장 모습. /프리랜서 오종찬

 

진도군에 만든 ‘기억의 숲’과 ‘기억의 벽’. [프리랜서 오종찬]실종자 9명을 찾기 위한 세월호 인양 작업은 본격 시작 단계 직전에 있다. 현재 선체 내·외부에 부력제를 넣고 있다. 에어백 등으로 5000t의 부력을 확보하면 세월호 선체 중량은 8300t에서 3300t으로 내려간다. 이 상태에서 700t의 힘만으로도 세월호 앞 부분을 5도 정도 들어올릴 수 있다. 이 공간을 활용해 폭 1.8m, 길이 28m의 27개 철제 리프팅빔을 밀어넣는다. 세월호 인양은 이 리프팅빔 양 끝단에 연결된 쇠줄을 들어올리면서 시작된다.

 

해양수산부는 7월 말까지 세월호를 육상에 올려놓는 것을 목표로 작업하고 있다. 태풍이 오지 않고 작업 중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7월 중 날씨가 좋은 날을 골라 반잠수 상태로 대기 중인 플로팅도크에 세월호를 올려놓을 계획이다. 플로팅도크는 2~3일 시간을 두고 천천히 뜬다. 작업이 순조롭다면 세월호는 2년3개월 만에 수면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전문가들은 올해 안에 세월호를 인양할 확률을 50% 정도로 보고 있다. 이규열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명예교수는 “맹골수도와 같이 유속이 센 곳에서 선체 절단 없이 끌어올린다는 계획 자체가 세계 최초”라며 “태풍의 영향과 선체 균형을 잡으면서 이동하는 것 등 변수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구남국 동의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날씨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대기하거나 장비를 철수시켜야 하기 때문에 인양 기간과 비용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잠수사 상태도 중요하다. 지난해 세월호에 남아 있는 기름을 빼다가 부상당한 잠수사도 있다. 현재 두 척의 현장 작업선에서 잠수사 90명을 포함해 300여 명이 생활하고 있다. 진도를 통해 식수와 식량을 조달하고 있지만 넉넉하지 못하다. 인양 업체 관계자는 “급수선을 통해 물을 조달하고는 있지만 육지보다는 물이 부족하다”며 “식량과 생필품 물류비도 예상보다 많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왕웨이핑(王偉平) 상하이샐비지 현장총괄감독은 “정상적인 잠수 작업은 유속 1노트에서 이뤄지지만 인양 현장은 4노트인 데다 수압도 세다”고 말했다.

 

7월 안에 세월호가 육지 위에 올려지면 실종자 수색 작업이 시작된다. 세월호를 올려놓을 곳으론 목포 신항이나 광양항이 거론되고 있다. 장기욱 해수부 인양추진과장은 “기술상 배를 옆으로 누운 그대로 육지에 올릴 수밖에 없어 수색 작업에도 위험이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배가 옆으로 기울어진 상태라 인양 후에도 내부에 화물 추락 위험이 있다. 실종자 수습이 완료되면 선체 보존 문제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해외에서 인양된 침몰 선박은 대부분 고철로 재활용됐지만, 세월호는 추모관에 전시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인천시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에 이어 경기도 안양시에 400억원을 들여 해양안전체험관을, 전남 진도군에 270억원을 투입해 추모관을 건립할 예정이다.

[도표] 숫자로 본 세월호 참사사건

 

인양된 세월호가 보존된다면 거리가 가까운 진도군 추모관으로 옮겨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진도군청 관계자는 “주민 의견이 반반으로 엇갈려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근 여수시도 엑스포박람회장 부지에 세월호 전시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여수시 관계자는 “해양 안전을 가르치는 청소년 해양관을 운영할 예정인데 교육용으로 전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영진 해수부 세월호 해양정책실장은 “실종자 수습이 구체화된 뒤에야 선체 활용 여부를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도·세종=김호·김민상 기자]

 

[동영상] 세월호 수중 인양작업

 

[동영상] 세월호 인양 브리핑 애니메이션


▶관련 기사
① "세월호 인양 어떻게…" 2주기 사고해역 찾아간 유가족들
② 하단 존치교실 이전 오늘 협약식, 유족들은 침묵

 

[진도 팽목항 르포]

"혹시 내 딸 은화가 저 배 안에 없을까봐 무서워요"
국민일보 | 진도=김영균 기자 | 입력 2016.04.16. 04:01


304명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 발생 731일째인 14일 오전 10시 진도군 팽목항. 항구에 정박한 배에 탑승하려는 차량과 선원들이 이따금 오갈 뿐 항구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참사 2주기를 앞두고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설치해 둔 분향소는 한산했다. 긴 추모행렬이 이어졌던 1주기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가족대기실을 지나 30㎡ 남짓 작은 분향소에 들어서니 애잔한 음악과 함께 벽걸이형 TV에서 희생자들의 영정 사진이 돌아가고 있었다. 예쁘고 환한 미소, 멋 부린 헤어스타일, 가지런한 옷매무새를 한 희생 학생들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갔다는 사실에 마음이 착잡했다.

 

 

[사진] 세월호 참사 2주기를 앞둔 14일 자정 무렵 전남 진도군 팽목항.

“내 아들! 미안하고… 또 미안하고… 사랑한다∼” 등 추모의 글이 적힌 돌들 뒤로 노란 리본이 달린 십자가와 별의 궤적이 보이고 있다. /진도=윤성호 기자

 

 

[사진]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가족들이 전남 진도군 팽목분향소에 갖다 놓은 검정고무신과 노란고무신이 14일 가지런히 놓여 있다. 오른쪽 사진은 추모객이 팽목항에서 사고 해역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2년의 세월에 노란 추모 리본이 흰색으로 변색되고 헤져 있다. /진도=윤성호 기자

 

벽면에는 사고 사망자 295명과 미수습자(실종자) 9명 등 304명의 영정사진이 걸려있었다. 영정 사진들 아래 제단 위에는 과자, 우유, 초코파이, 초콜릿, 사탕 등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제단 향로에는 타다만 작은 향이 애처롭게 꽂혀 있었다. 분향소 안을 감도는 슬픔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다 태우지 못한 듯 보였다. 제단 오른쪽 바닥 한쪽에는 어른 검정고무신 8켤레와 예쁘고 앙증맞은 아이 노란고무신 1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한 단원고 조은화·허다윤양, 남현철·박영인군, 양승진·고창석 선생님과 일반 승객 권재근·이영숙씨, 아빠 권재근씨와 함께 배를 타고 가다 돌아오지 못한 혁규군의 신발이다.

 

팽목항 가족대기실에는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은화양 어머니 이금희(47)씨와 아버지 조남성(53)씨, 동생 재근씨와 조카 혁규군을 잃은 권오복(60)씨, 사고 7일 만에 시신을 수습한 단원고 진윤희양 삼촌 김성훈(40)씨 등 4명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은화양의 아버지는 아직도 2년 전 4월 16일에서 시간이 멈춰져 있다. 그날 이후 팽목항 분향소를 지켜온 김씨는 “은화를 찾아 함께 이곳을 떠나겠다는 생각밖에는 없다. 그래야 은화를 잃은 아픔을 조금이나마 삭일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오전 11시가 가까워지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등 30여명이 분향소를 찾았다. 두 교육감은 고인들에 대해 묵념한 뒤 가족대기실서 직원들과 함께 사망자와 미수습자 가족들이 편집해 만든 영상을 10여분 동안 시청했다.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배에 오르는 아이들을 학부모들이 배웅하며 다정히 손을 흔드는 장면, “배가 잠기고 있어요. 무서워 지금 너무 무서워”라며 사고 당시 문자를 보내는 2년 전 참사 당시의 아이들의 안타까운 모습이 담긴 영상에 이들은 고개를 떨궜다. 선내에서 “구명조끼 입으라는 것은 침몰되고 있다는 것 아니야”라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들의 마지막 모습이 나올 때는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국가가 가장 먼저 구한 사람은 그들을 버리고 나온 (세월호) 선장과 선원이었다’는 자막과 함께 이준석 선장과 선원들이 해경에 구조되는 영상에는 함께 분개했다.

 

은화양 어머니 이금희씨는 이재정 교육감과의 면담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4명의 아이들이 세월호 인양 후 돌아오면 (공부하던) 교실에 한 번 갈 수 있게 해 달라”며 무릎을 꿇고 울면서 애원했다. 낮 12시. 팽목항 방파제 등대길로 나온 은화양 어머니는 ‘내 가족을 못 찾을까 봐 무섭습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을 가리키며 “저 글이 가장 무섭다”고 했다. 그는 “세월호 인양이 끝났는데도 ‘배 안에 혹시 은화가 없으면 어떡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가장 무섭다”며 “상상하기도,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부는 선체의 중량을 줄이는 부력 확보 작업을 펼치는 등 사고 해역에서 세월호를 끌어올리기 위한 사전작업을 한창 진행 중이다. 다음 달까지 세월호의 선수를 들어올린 뒤 선체 밑에 인양용 리프팅 빔을 설치해 7월까지 인양을 끝낼 계획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정부가 인양을 비공개로 진행하자 감시단을 구성해 인양작업 일지를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인양 현장에서 2.6㎞ 떨어진 6동거차도 뒷산에 천막으로 작은 움막 3동을 설치해 임시 거처를 마련한 뒤 3∼4명 단위로 11개 조사팀을 구성해 1주일씩 교대로 인양 현장을 800㎜ 줌 카메라로 지켜보고 있다. [진도=김영균 기자 ykk22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