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旅館房' (1940)
< 1 > 가슴을 파고드는 싸늘한 바람에
< 3 >
(박향림 노래)
'쓸쓸한 여관방' / 심연옥 노래
(가수 심연옥)
< 1 >
< 2 >
(심연옥 노래)
◆ <쓸쓸한 旅館房>은 가수 朴響林님이 1940년 2월에 오케 레코드에서 발표한 노래입니다. <英子야 가거라; OK-20011/ 李寅權 노래>와 같이 발매된 이 노래는, 趙鳴岩 作詩/ 朴是春 作編曲의 작품으로, 오케 이적 후에,<無情告白 1940.1>에 이어 발표한 곡인데, 발매 직후 상당히 호평을 받았다고 합니다. 월북작가 작품인 이 노래는, 1950년대 말에 개사하여, 60년대 초반에 沈蓮玉님이 다시 불렀던 작품입니다. <雲水衲子>
◆ 박향림(朴響林, 1921~ 1946 요절가수)은 일제 강점기에 주로 활동한 가수이다. 본명은 박억별이며, 데뷔 초부터 박정림(朴貞林)이라는 예명도 함께 썼다. 함경북도 경성군 주을온천 부근에서 출생했다. 집안 배경이나 학창 시절에 대해서는 어머니가 음식점을 경영했고, 박향림은 원산부의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를 다녔다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1937년 주을에는 인기 작곡가 박시춘이 포함된 오케레코드의 오케연주단이 내려와 공연을 했는데, 가수를 지망한 박향림이 연주단을 찾아가 노래를 불러 보였으나 사장 이철의 반대로 발탁되지 못했다는 일화가 있다.
태평양 전쟁 중 이철과 오케 레코드사가 친일가요 보급에 동원되면서, 박향림도 천황의 병정이 되는 것이 소원이라는 혈서를 쓰면서까지 지원한다는 내용의 <혈서지원>과 같은 군국가요(軍國歌謠)를 부른 일이 있다. 인기 가수 남인수, 백년설과 함께 부른 이 노래 때문에 광복 후 이미 박향림이 사망한 뒤에 김승학이 정리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친일파 명단에는 혈서지원자로 잘못 표기되어 포함되어 있기도 하였다. <혈서지원> 외에도 <陳頭의 남편>, <銃後의 자장가>, <화랑> 등의 군국가요를 부른 것으로 알려졌다. 1946년 아기 출산 직후 강원도 홍천군에서 열린 공연에 참가했다가 산후병이 발병하여 요절했다. 그해 7월 동양극장에서는 박영호(朴英鎬)가 추도사를 읽은 박향림 추도공연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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