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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애청곡

[유성기 가요] '왕서방 연서' (1938) - 김정구 노래

잠용(潛蓉) 2016. 10. 8. 11:01

 

'왕서방 연서' (王書房戀書 1938) 

김진문 작사/  박시춘 작곡/ 김정구 노래 

 

< 1 >

비단장사 왕서방
명월이 한테 반해서
비단 팔아 모은 돈

퉁퉁 털어서 다 줬어


띵호와이 띵호와이

돈이가 어부서도 띵호와이

명월리 하고 살라셔

돈이가 어부서도 띵호와이

 

우리가 반해서~

아~ 아~ 아~

비단이 팔라도 띵호와이


< 2 >

밥이나 먹어도 명월리
잠이나 들어도 명월리
명월리 생각이 다 나서 
왕서방 병들어 누웠어


띵호와이 띵호와이

병들어 누워도 띵호와이

명월이 하고 살라셔

왕서방 죽어도 괜찮다

 

우리가 반해서~

아~ 아~ 아~

비단이 팔라도 띵호와이

 


(김정구 히트곡 메들리)

 


김정구 - "왕서방 연서" [가요이야기 17]

유행가에 나타난 중국, 중국인"

2003.12.19. 18:08

 

전통적으로 중국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이웃나라이면서 정치, 문화적인 대국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만주족이 대륙을 석권해 청나라를 세우고, 이어 우리나라를 침략까지 한 뒤로는 오히려 중국을 적대시하고 멸시하는 관념이 생겨나기도 했다. 당초 그 대상은 엄밀히 말해 중국이라기보다는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였겠지만,
점차 그러한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중국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념은 이중적인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중국의 힘과 문화에 대한 관념적 동경이 사라지지 않았고, 다른 한편으로 중국인은 돈만 밝히고 지저분하다는 선입견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더구나 일제시대에는 일본이 중국 침략을 기도하는 와중에 발생한 만보산사건(1931년) 등의 영향으로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상이 더욱 강화되기도 했다.


1930년대에 발표된 몇몇 유행가에는 중국에 대한 이러한 이중적 태도가 잘 나타나 있는데, 중국인을 희화적으로 묘사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중국의 이국적 풍취에 대한 가벼운 동경이 나타나 있는 작품도 있다. 1938년에 발표되어 단번에 만요가수 김정구의 이미지를 굳힌 이 '왕서방 연서'는 중국과 관련된 유행가 가운데 대중적인 인기를 가장 많이 누린 곡이며, 동시에 중국인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우스개로 풀어낸 대표적 작품이다.

 

'沒有的', '多多有' 정도로 해석해 볼 수 있는 '무유데', '다다유' 같은 어설픈 중국식 표현은 이국적 흥미를 유발하면서 가벼운 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중국인 비단장수가 명월이라는 기생한테 흠뻑 빠져 돈으로 환심을 사려고 하지만 결국은 다시 돈으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는 설정. 처음에는 일단 웃게 되지만 그 뒤에는 무의식적인 편견의 흔적이 앙금으로 남는 것을 느낀다.

 

이와 유사한 것으로 1933년에 왕수복이 부른 '워띄부싱'<워띄부싱 : 왕수복>이라는 노래도 있다. 제목부터가 '我的不行'이라 중국풍이 상당히 짙은데 내용은 결국 중국인 장사꾼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것이라 '왕서방 연서'와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상당히 이른 무렵부터 이러한 유행가가 나왔다는 것은 주의해서 볼 만한 점이다.

이와는 달리 중국을 관념적이고 피상적인 이국 취미의 대상으로 설정한 유행가도 당시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1930년대 후반 이후 일본의 대륙 침략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정책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중국을 소재로 삼은 경우도 많았지만 그러한 설명이 전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예로 중국을 대표하는 대도시 상해를 제목에서 쓰고 있는 유행가가 열 곡 가량이나 되는 점을 들 수 있다. 당시 국내 제2의 도시였던 평양이 유행가 제목에 등장하는 경우가 그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러한 작품들의 노랫말을 보면 거의 예외 없이 아가씨나 향락적인 낭만에 대한 묘사가 등장하고 있다. 예컨대 선우일선이 부른 '꽃 피는 상해'나 남인수의 인기곡 '안개 낀 상해'가 이러한 경향을 대표하는 작품인데, 광복 이후에 나온 '홍콩 아가씨' 같은 유행가의 선구가 되는 셈이다.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왕서방의 고향일지도 모르는 상해는 천박하기는커녕 그지없이 화려하기만 하다. '안개 낀 상해'의 마지막 대목을 '왕서방 연서'와 비교해 보면서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이중적 관념이 유행가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듯싶다.

 

샹하이 샹하이 흘러온 샹하이
부두의 마도로스 붉은 꿈 푸른 꿈에

그 옛 님이 생각나
내 사랑 내 고향도 내던진 여자다
아, 해 저문 황포강 장쿠가 간다
흘러온 샹하이 흘러온 샹하이

 

<글: 이준희 / 가요114  자료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