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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애청곡

[유성기 가요] '이 몸이 죽고죽어' (1942) - 백년설 노래

잠용(潛蓉) 2016. 10. 13. 16:07

'이 몸이 죽고죽어' (1942) 
조명암 작사/김해송 작편곡/백년설 노래

 

< 1 >

이 몸이 죽고죽어 百番 죽은들
님 향한 일편단심 잊으오리까?
봄밤에 피는 꽃도 님의 恩惠요
새벽에 뜨는 별도 님의 은혤세
세상의 모든 것이 그 사랑일세.

 

< 2 >

이 몸이 죽고죽어 千番 죽은들
疆土의 한 줌 흙을 잊으오리까?
큰 동쪽 새 살림도 님의 福이요
웃으며 사는 것도 님의 福일세
日月이 도는 것도 그 사랑일세.

 

< 3 >

이 몸이 죽고죽어 萬番 죽은들
忠魂의 그 盟誓를 버리오리까?
살아서 가는 길도 님의 길이요
죽어서 가는 길도 님의 길일세
生死의 모든 길이 님의 것일세~

 

 


<이 몸이 죽고 죽어>는 가수 白年雪님이 1942년 8월에 오케레코드에서 발표한 親日歌謠입니다. <내 故鄕;OK-31121/ 白年雪 노래>과 같이 발매된 이 노래는, 趙鳴岩 作詩/ 金海松 作編曲의 작품으로, 高麗 忠臣 鄭夢周先生의 <丹心歌>를 援用하여 만든 곡인데, 그리 많이 소개된 작품은 아닙니다. <雲水衲子>

 

[漢詩] 丹心歌 - '이 몸이 죽고 죽어'
"이 몸이 죽고 죽어..." 는 정몽주(鄭夢周) 또는 백제여인 한주(韓珠)의 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白骨)이 진토(塵土)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丹心歌)

 

이성계(李成桂)가 위화도(威化島)에서 회군하였을 때, 뒤에 조선 태종(太宗)이 된 이방원(李芳遠)이 포은의 뜻을 떠보려고 읊은 《하여가 何如歌》에 답하여 부른 것이다. 《청구영언 靑丘永言》에 실려 있는 전문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여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이며, 《포은집 圃隱集》에는 한역(漢譯)되어 실려 있다.

 

此身死了死了 一百番更死了
白骨爲塵土 魂魄有也無
向主一片丹心  寧有改理也歟.”

 

라고 실려 전한다. 종장에서 작자는 "님 향(向)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라고 노래하고 있는데 이미 기울어 가고 있던 고려이지만 끝까지 굳은 결의를 지키려는 유학자의 자세와 두 왕조를 섬기지 않는 충신의 일관된 신념이 잘 나타난 부분이다. 한편《해동악부 海東樂府》에도 역시 한역되어 전한다. 

 

한편, 일제강점기의 역사학자 신채호(申采浩)는《조선상고사 朝鮮上古史》에서 《해상잡록 海上雜錄》을 인용하여 이 시조의 작자는 정몽주가 아니라 백제 여인 한주(韓珠)라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여기에 따르면, 고구려 안장왕이 아직 태자로 있을 때 백제에 잠입하여 지금의 경기도 고양시에 해당하는 개백현(皆伯縣)에서 적국의 정세를 살피다가 한주라는 미녀를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안장왕이 임무를 마치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고구려로 돌아간 뒤 개백현의 태수가 한주의 미모를 탐하여 취하려고 하였으나, 한주는 이 시조를 읊어 안장왕에 대한 절개를 지켰다는 것이다. 안장왕과 한주의 사랑 이야기는 《삼국사기 三國史記》에도 실려 있으며, 고양시 성석동과 일산동 일대에서 구전되었다.<출처: 한국전례원>

 

"친일가수" 백년설 가요제를 둘러싼 논란
오마이뉴스 | 오정식 | 입력 2003.04.09. 08:32

 

경남 밀양의 박시춘가요제에 대한 논란에 이어 경북 성주에서도 친일행적이 드러난 가수 백년설의 이름을 딴 가요제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백년설 가요제는 재경 향우회(회장 이상희 -전 내무부장관-)가 성주군과 함께 주도하는 행사로 5월 25일 성밖숲야외무대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성주군에서는 이 가요제를 전국적인 가수등용분을 겸한 가요제로 정례화 시킬 계획이며 가요제 입상시 상금과 함께 가수인증서를 준다고 밝히고 이미 참가신청을 받고 있다.

 

 

가수 백년설(본명 이창민)은 "나그네 설움", "번지없는 주막"등의 히트곡을 불렀으며 , 고향은 성주군 성주읍 예산리이다. 1938년 일본에서 취입한 "유랑극단"으로 가수데뷔했으며 이후 태평양레코드의 전속가수가 되어 활동했다. 특히, 1940년에 발표한 "나그네 설움’은 당시 우리나라 음반시장의 연간 판매량이 30만장 정도이던 상황에서 10만장이나 팔리는 등 남인수와 함께 당시 대중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가수였다.

 

그러나 일제하 "아들의 혈서", "혈서지원", "이몸이 죽고 죽어", "지원병의 어머니", "복지만리"등의 친일가요를 불렀으며, 해방 이후에는 김구와 임시정부측에서 만든 숙청대상 친일인사 명단 초안에도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월간중앙 2001. 8)

 

한편, 백년설이 부른 대표적 친일가요들을 살펴보면, 

▲ <아들의 혈서> (1943 작 / 작사 조명암 / 작곡 박시춘 / 노래 백년설),

"어머님 전에 이 글월을 쓰옵노니

병정(兵丁)이 되온 것도 어머님 은혜

나라에 밧친 목숨 환고향(還故鄕)하올 적엔

쏘다지는 적탄(敵彈) 아래 죽어서 가오리다...

 

▲ <혈서지원> 작곡 박시춘 / 노래 백년설, 박향림, 남인수)

"무명지 깨물어서 붉은 피를 흘려서

일장기 그려 놓고 성수만세 부르고 ...

대동아공영권(大同亞共榮圈)을 건설하는 새 아츰

구름을 헤치면서 솟아오는 저 햇발 기쁘다

반가워라 두 손을 합장하고 나랏님의 병정되기 소원입니다"

 

이러한 구체적인 친일행적들이 드러나자 성주군청 게시판에 가요제에 대한 반대의 글이 올라오고 있으며, 성주군 농민회를 비롯한 지역 사회단체들도 가요제에 대한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이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한 여현진(45, 성주군 초전면)씨는 "포로에 잡힌 적군중에서도 나팔수는 더 엄격하게 처벌한다. 백년설은 우리 동포들에게 일본 천황을 위해 군대에 가자고 노래를 불렀던 나팔수이다. 그 나팔수를 추모하기 위해 성주에서 가요제를 개최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만약에 친일파 가요제가 열린다면 단상 위에는 태극기를 걸어놓을 것이 아니라 일장기를 걸어 놓아야 할 것이 아닌가?" 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성주군 농민회 이재동 사무국장도 "김구선생의 지시에 따라 김승학선생이 작성한 친일파 1차 명단 263명중 백년설이 올라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친일을 했다. 그런 사람에 대해 자치단체가 1억 5천만원이나 되는 군민의 혈세를 가지고 추모한다는 것은 일제에 항거하다 죽임을 당한 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다시 한번 죽이는 것" 이라며 가요제 폐지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백년설 추모사업회측은 “백년설은 암울했던 일제시대 우리 국민들에게 삶의 희망과 민족애를 일깨운 민족가수다. 일부에서 지적하는 친일론은 실제보다 확대된 것으로 일제의 호된 고문과 협박을 받아서 억지로 부른 것"이라고 해명하고 동상 제작과 기념관 설립까지 추진할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한편 서울에서 열릴 친일음악전시회(4월 21일〜30일 / 국립 중앙도서관, 주관:민족문제연구소)에 백년설에 대한 자료들이 포함될 예정이어서 가요제를 둘러싼 논란은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