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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애청곡

[유성기 가요] '선술집 풍경' (1938) - 김해송 노래

잠용(潛蓉) 2016. 10. 22. 17:47

 


 

'선술집 風景' (1938)
朴英鎬 작사 / 金松奎 작곡/ 노래 金海松
 
< 1 >

모여든다 모여들어 어중이떼중이 모여들어
홀태바지 두르막이 온갖 雜湯이 모여든다.
애 山月아 술 한잔 더 부어라
술 한잔 붓되 곱빼기로 붓고
곱창, 회깟, 너버니 等屬 있는대로 다 구우렸다.

어허 크 어~ 술맛 좋다 어 좋아 어 좋아

선술집은 우리들의 파라다이스~


< 2 >

모여든다 모여들어 어중이떼중이 모여들어
당꼬바지 방갓쟁이 닥치는대로 모여든다
애 一善아 술 한잔 더 내라
술 한잔 내되 찹쌀 막걸리루 내고
鰍湯, 선지꾹, 뼈다귀뀩, 其他 있는대로 다 뜨렸다.

어허 크 어~ 술맛 좋다 어 좋아 어 좋아
선술집은 우리들의 파라다이스~


< 3 >

모여든다 모여들어 어중이 떼중이 모여들어
고약꾸패 조방군이 박박 긁어 모여든다
애 蓮花야 술 한잔 더 내라
술 한잔 내되 네 분 손님으로 내고
일 다섯 잔 술안주루다 매운탕 좀 끓이렸다.

어허 크 어~ 술맛 좋다 어 좋아 어 좋아

선술집은 우리들의 파라다이스~

 

---------------------------------------------

* 어중이떠중이 : 각 방면에서 마구 모인, 변변하지 못한

여러 사람을 통틀어 얕잡아 이르는 말
* 홀태바지 : 통이 매우 좁은 바지.

* 너버니 :  너비아니. 얇게 저민 뒤 양념을 하여 구운 쇠고기.
* 당꼬바지 : 위는 펄렁하고 밑은 단추 등으로 여미어 딱 붙게 한 바지.

주로 남성 근로자들이 입었다. 
* 방갓쟁이 : 상제가 밖에 나갈 때 쓰던, 삿갓 모양의

둥근 갓을 쓴 사람을 이르는 말.
* 고야꾸 패 : 고야꾸(こやく)는 영화나·연극에서 아역(兒役)을 말한다.
* 조방꾸니 : 사창가에서, 남녀 사이를 소개하는 일을 주선하고

잔 심부름을 하는 사람.

 

<이상 Daum 국어사전에서>

 


◆ <선술집 風景>은 1938년 2월에 金海松님이 콜롬비아레코드에서 발표한 노래입니다.'新傾向 流行歌"라는 이름으로 발매된 <電話日記; C.40800/ 金海松 노래>와 같이 발매된 이 노래는, 당대의 일류 작사가인 朴英鎬(필명; 金茶人, 處女林, 不死鳥)님이 아주 재미있는 노랫말을 쓰고, 이 노래를 부른 金海松님이 노랫말에 어울린 곡을 달아, 직접 불렀읍니다. 그러나 이와 함께 나온 <電話日記>에 가린 감이 있으나, 작사가 朴英鎬/ 작곡가 金松奎님의 才氣가 번뜩이는 작품이 아닌가 합니다. 작사가 박영호/작곡가 김송규님이 콜롬비아레코드에서 발표한 첫 작품인 이 노래는, "신경향 유행가"인 <전화일기>와 더불어, 이 두분의 화려한 비약을 보여주는 작품이 아닌가 합니다. 이 노래와 가수 南一燕님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 않은가 합니다. <雲水納子>


日帝治下의 선술집 풍경
노래를 들어보면 만요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지는데, 가사지에는 의외로 신민요라고 소개되어 있다. 신민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3박자를 쓰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전통적인 장단이나 선율을 쓰는 것은 더더욱 아닌데 굳이 신민요라고 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물론, 신민요 자체의 정의가 그리 명확하지 않은 탓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가사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달리 추정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박영호가 쓴 작품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너무나 서민적인, 어쩌면 약간은 저속하다고까지 여겨질 수도 있을 노랫말이 민요적 분위기와 연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눅거리 음식점'에서도 지금은 생소한 눅거리란 말이 나왔던 것처럼 '선술집 풍경'에서도 회깟, 고약꾸, 조방군이 같이 언뜻 이해가 안 되는 말들이 보인다. 회깟은 소나 돼지의 내장으로 만든 회를 말하고, 조방군이는 주색잡기와 관련된 일이나 여자를 소개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고약꾸는 아마도 일본어인 듯한데, 하급 관리를 이르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말들은 비록 지금은 이해하기가 어렵고 사전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것이지만, 1930년대 당시에는 생생한 일상어였을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유행가가 가지고 있는 가치의 한 면을 찾을 수 있다.물론, '선술집 풍경'에서 정작 더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분야는 생소한 어휘보다 당시 서민들의 음주문화에 관한 것.

요즘이야 소주나 맥주를 대중적인 술로 치지만 1930년대에는 아직 막걸리가 더 중요한 대중주였던 것 같다. 막걸리, 청주, 소주로 나뉘는 전통적인 분류에서도 서민들의 술은 막걸리였고 기계식 소주 공장과 맥주 공장이 세워지고 '정종'으로 대표되는 일본식 청주가 들어온 뒤에도 서민들의 술은 역시 막걸리였다.

 

안주는 어차피 술을 따르는 법이니, 막걸리에 어울리는 온갖 구이와 탕이 먹음직스럽다. 고단한 일상을 접어두고 소박하지만 풍성한 술상 앞에서 잠시나마 흥겨울 수 있는 선술집은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정말 우리들의 파라다이스인지도 모른다. 마치 '시네마 파라다이스'가 그랬던 것처럼. 식민치하에서도 흥겨운 술자리는 있었고, 그 술자리를 그리는 유행가가 있었다. 결국 고락이 교차하는 것이 삶이니, '선술집 풍경' 속에서도 그 삶을 바라보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유행가가 가장 많이 불리는 곳으로 술집을 꼽을 수 있다. 술 몇 잔 거나하게 들이키고 나면 자연스럽게 노래 한 가락을 흥얼거리기 마련이다. 그 때문인지 술이나 술집을 소재로 한 유행가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는데, 여기서 하나 발견할 수 있는 독특한 점은 그렇게 만들어진 광복 이전 유행가들의 분위기가 대체로 그다지 밝지는 않다는 것이다. 아마도 제목에 '술'이란 말이 등장하는 최초의 유행가인 것으로 보이는 1932년작 '술은 눈물일까 한숨이랄까'부터가 벌써 심상치 않은 분위기이고 '항구의 선술집'이니 '번지 없는 주막'이니 하는 노래들을 봐도 눈물과 이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암울한 시대 분위기 때문에 술맛마저 싹 달아나 버렸던 것일까? 하지만 심각 일변도로 흐르는 것은 유행가에 있어 그야말로 참을 수 없는 무거움. 비련과 유랑을 읊으며 눈물만 자아냈던 것으로 오해받기 쉬운 일제시대 유행가 가운데 흥겨운 신민요와 익살맞은 만요가 있었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른 어디보다도 흥청거리는 곳이 술자리인 만큼 그러한 흥겨운 광경을 그려내는 유행가가 없을 리 없다.'선술집 풍경'은 바로 1930년대 도시 서민들의 술자리를 가장 재미있게 표현한 유행가가 아닐까 싶다. 만요에 특출한 재능을 보인 김해송이 콜롬비아에 입사한 첫 작품으로 작곡에다 노래까지 했고,  박영호가 노랫말을 만들었다.<퍼옴>

 

유행가 시대(37)- 그래도 흥겨운 '선술집 풍경' / 이준희
 

김해송 / 선술집 풍경 가사지 

 

예나 지금이나 유행가가 가장 많이 불리는 곳으로 술집을 꼽을 수 있다. 술 몇 잔 거나하게 들이키고 나면 자연스럽게 노래 한 가락을 흥얼거리기 마련이다. 그 때문인지 술이나 술집을 소재로 한 유행가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는데, 여기서 하나 발견할 수 있는 독특한 점은 그렇게 만들어진 광복 이전 유행가들의 분위기가 대체로 그다지 밝지는 않다는 것이다.
 

아마도 제목에 '술'이란 말이 등장하는 최초의 유행가인 것으로 보이는 1932년작 '술은 눈물일까 한숨이랄까'부터가 벌써 심상치 않은 분위기이고 '항구의 선술집'이니 '번지 없는 주막'이니 하는 노래들을 봐도 눈물과 이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암울한 시대 분위기 때문에 술맛마저 싹 달아나 버렸던 것일까? 하지만 심각 일변도로 흐르는 것은 유행가에 있어 그야말로 참을 수 없는 무거움. 비련과 유랑을 읊으며 눈물만 자아냈던 것으로 오해받기 쉬운 일제시대 유행가 가운데 흥겨운 신민요와 익살맞은 만요가 있었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른 어디보다도 흥청거리는 곳이 술자리인 만큼 그러한 흥겨운 광경을 그려내는 유행가가 없을 리 없다.


'선술집 풍경'은 바로 1930년대 도시 서민들의 술자리를 가장 재미있게 표현한 유행가가 아닐까 싶다. 만요에 특출한 재능을 보인 김해송이 콜롬비아에 입사한 첫 작품으로 작곡에다 노래까지 했고, 앞서 자주 언급한 바 있는 박영호가 노랫말을 지었다. 
 

↑ 작사가 박영호

 

노래를 들어 보면 만요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지는데, 가사지에는 의외로 신민요라고 소개되어 있다. 신민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3박자를 쓰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전통적인 장단이나 선율을 쓰는 것은 더더욱 아닌데 굳이 신민요라고 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물론, 신민요 자체의 정의가 그리 명확하지 않은 탓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가사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달리 추정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박영호가 쓴 작품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너무나 서민적인, 어쩌면 약간은 저속하다고까지 여겨질 수도 있을 노랫말이 민요적 분위기와 연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눅거리 음식점'에서도 지금은 생소한 눅거리란 말이 나왔던 것처럼 '선술집 풍경'에서도 회깟, 고약꾸, 조방군이 같이 언뜻 이해가 안 되는 말들이 보인다. 회깟은 소나 돼지의 내장으로 만든 회를 말하고, 조방군이는 주색잡기와 관련된 일이나 여자를 소개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고약꾸는 아마도 일본어인 듯한데, 하급 관리를 이르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말들은 비록 지금은 이해하기가 어렵고 사전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것이지만, 1930년대 당시에는 생생한 일상어였을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유행가가 가지고 있는 가치의 한 면을 찾을 수 있다.


물론, '선술집 풍경'에서 정작 더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분야는 생소한 어휘보다 당시 서민들의 음주문화에 관한 것. 요즘이야 소주나 맥주를 대중적인 술로 치지만 1930년대에는 아직 막걸리가 더 중요한 대중주였던 것 같다. 막걸리, 청주, 소주로 나뉘는 전통적인 분류에서도 서민들의 술은 막걸리였고 기계식 소주 공장과 맥주 공장이 세워지고 '정종'으로 대표되는 일본식 청주가 들어온 뒤에도 서민들의 술은 역시 막걸리였다. 안주는 어차피 술을 따르는 법이니, 막걸리에 어울리는 온갖 구이와 탕이 먹음직스럽다.


고단한 일상을 접어두고 소박하지만 풍성한 술상 앞에서 잠시나마 흥겨울 수 있는 선술집은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정말 우리들의 파라다이스인지도 모른다. 마치 '시네마 파라다이스'가 그랬던 것처럼. 식민치하에서도 흥겨운 술자리는 있었고, 그 술자리를 그리는 유행가가 있었다. 결국 고락이 교차하는 것이 삶이니, '선술집 풍경' 속에서도 그 삶을 바라보게 된다.


"1930년대의 술집 풍경"/ 이동순의 그 시절 그 노래

술은 인간에게 독일까요? 아니면 약일까요? 이에 대한 느낌과 해석은 사람마다 각양각색일 터입니다. 술은 일반적으로 담배와 함께 근심을 덜어주는 좋은 도구로 인식되어 왔으나, 그 반대로 술을 평화와 질서의 적으로 단정하는 부정적 견해도 적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다루고 이용하는가에 따라서 인식은 천차만별로 나타났습니다. 하여간 술은 인간에게 있어서 힘든 시절을 견디고 지탱하게 해주는 효과를 지니고 있으므로 담배와 더불어 근심을 없애는 소우(銷憂)의 기능으로서 그 유익한 역할을 일단은 수긍할 수밖에 없습니다.

 

↑ 선술집 풍경을 부른 가수 김해송 ©문화콘텐츠닷컴

 

술안주, 작부, 술꾼들 군상 생생하게 그려낸 1938년 가요 ‘선술집 풍경’

1938년 2월, 서울 콜럼비아레코드사에서는 박영호 작사, 김송규 작곡으로 김해송이 불러서 취입한 흥미로운 음반 하나가 나왔습니다. 노래의 곡목은 ‘선술집 풍경’(음반번호 40800)입니다. 이 노래를 유심히 귀 기울여 들어보면 지금으로부터 어언 80년 전, 서울의 뒷골목 허름한 선술집 풍경을 너무도 생기롭게 경험해볼 수 있습니다. 선술집이라면 말 그대로 술청 앞에 서서 간단히 술을 마시게 되어 있는 술집을 이르지만 일반적으로는 설비가 간단하고 가격이 싼 술집을 통틀어 일컫는 말입니다. 어디 한번 가사를 찬찬히 음미해보실까요?

 

모여 든다 모여들어 어중이 떼중이 모여들어/

홀태바지 두루마기 온갖 잡탕이 모여 든다/

얘 산월아 술 한 잔 더 부어라/ 술 한 잔 붓되 곱빼기로 붓고/

곱창 회깟 너버니(너비아니) 등속 있는 대로 다 구우렷다

크윽 어 술맛 좋다(꺽) 좋아(꺽) 좋아(꺽)/

선술집은 우리들의 파라다이스

 

모여 든다 모여들어/ 어중이 떼중이 모여들어/

당코바지 방갓쟁이 닥치는 대로 모여 든다/

얘 일선아 술 한 잔 더 내라/ 술 한 잔 내되 찹쌀막걸리로 내고/

추탕 선지국 뼈다귀국 기타/ 있는 대로 다 뜨렷다/

크윽 어 술맛 좋다(꺽) 좋아(꺽) 좋아(꺽)/

선술집은 우리들의 파라다이스

 

모여 든다 모여들어/

어중이 떼중이 모여들어/

고야꾸패 조방군이 박박 긁어 모여 든다/

얘 연화야 술 한 잔 더 내라/ 술 한 잔 내되 네 분 손님으로 내고/

열다섯 잔 술안주로다/ 매운탕 좀 끓이렷다/

크윽 어 술맛 좋다(꺽) 좋아(꺽) 좋아(꺽)/

술집은 우리들의 파라다이스  <선술집 풍경>

 

암울했던 식민지 시절, 아픔을 달래주던 막걸리 ©플리커

 

1930년대 후반, 서울에는 선술집들이 많았습니다. 술 종류는 대개 막걸리였지요. 이곳에서 손님상에 내고 있는 술안주의 종류가 흥미롭습니다. 곱창(돼지나 소의 창자), 회깟(소의 간, 처녑, 양, 콩팥 따위를 잘게 썰고 갖은 양념을 하여 만든 회), 너버니(얇게 저민 뒤 양념을 하여 구운 쇠고기, 즉 너비아니), 추탕, 선지국(소피국), 뼈다귀국(돼지등뼈를 고아서 거기에 우거지, 감자 등을 넣고 오래 끓인 국. 살이 워낙 적어서 그릇에 등뼈를 가득 채워 줄 수밖에 없었으니 이런 이름으로 부른 것 같습니다), 매운탕 등이 보이네요. 술집에서 일하는 여성의 이름도 등장하는데 산월이, 일선이, 연화가 바로 그 주인공들입니다. 술집에서 손님을 접대하며 술을 따르는 여자를 작부(酌婦)라고 하는데, 이 여성들이 바로 그러한 허드렛일을 맡고 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하는 저녁 무렵, 선술집에 모여드는 술꾼들도 별의별 군상들이 확인됩니다. 홀태바지(통이 매우 좁은 바지), 두루마기, 당코바지(위는 펄렁하고 밑은 단추 등으로 여미어 딱 붙게 한 일본식 바지, 주로 일본 남성노동자(男工だんこう)들이 입었습니다), 방갓쟁이, 고야꾸패(고야꾸는 곤약, 혹은 일본어로 곤야쿠(こんにゃく)라 부르는 흐물흐물한 음식으로 ‘고야꾸패’란 말은 이미 만취상태로 몸을 못 가누는 술꾼을 가리키는 말), 조방군이도 보이네요. 그들은 조방꾼, 즉 기녀들에게 생활비를 대주고 살 집을 마련해주면서 웃음과 몸을 팔아 돈을 벌게 하고 이익을 가로채던 하층민의 한 부류. 이들을 일명 ‘기부(妓夫)’라고 불렀으며, 기방에서 걸핏하면 일어나는 여러 곤란한 일들을 해결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기녀와 조방꾼은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관계와도 흡사합니다.

 

이들 모두를 통칭하여 ‘어중이떠중이’ 즉 온갖 잡탕의 군상으로 일컫고 있네요. 각 방면에서 마구 모인, 변변하지 못한 여러 사람을 통틀어 얕잡아 이르는 말이기도 하지요. 자기입장이 분명하지 않고 모호하며, 할 줄 아는 것이 별로 없어 사회적으로 쓸모가 없는 사람도 어중이떠중이라 불렀습니다.

 

술꾼들의 허기를 채워준 곱창과 해물파전 ©플리커

 

암울했던 식민지 시절의 아픔과 시대사(史) 절절하게 묻어나

자, 어떻습니까? 이만하면 1930년대 후반, 난세(亂世)의 선술집 풍경이 그림처럼 머리에 떠오르지 않습니까? 그들은 선술집을 술꾼들의 파라다이스라고 지칭합니다. 음주의 방식에는 절제와 겸손이 없습니다. 술꾼들의 주량에는 예나 제나 거의 무한정이지요. 한 잔이 열다섯 잔이 되고, 1차가 2차, 3차로 줄기차게 이어집니다. 가사의 후반부에는 선술집에서 들리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실감나게 들려옵니다. 술꾼들의 술맛에 대한 연이은 감탄과 딸꾹질(술꾼들이 너무 급하게 술을 많이 마셔서 위가 지나치게 팽만되어 나는 소리) 및 작부에게 마구 외쳐대는 혀 꼬부라진 소리까지 줄곧 들려옵니다. 마치 그 선술집 한쪽 구석에 우리가 앉아서 함께 술을 마시는 것 같은 현장감마저 느껴집니다.

 

술집과 술꾼이란 예로부터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서 존재했을 터이지만 이 노래가 출현했던 1938년 부근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우리 민족이 일본의 식민지백성으로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가 참으로 혼란하고 암울했던 시절임에 틀림없습니다. 일본군 육군지원병령(陸軍志願兵令)이 공포되어 이 땅의 청년들이 강제징발을 당하게 되었지요. 총독부에서는 일본어를 국어로 부르게 하면서 항시 상용하도록 강압했지요. 틈만 나면 방공훈련, 등화관제란 명목으로 전체 주민을 전쟁과 공포의 분위기로 휘몰아 넣었습니다. 그 이듬해에는 한국인의 성명을 아예 일본인의 그것으로 바꾸게 하는 창씨개명(創氏改名)이란 것도 강요되지 않았습니까? 시대가 이처럼 암담했으니 ‘할 짓이라곤 술 마시는 일 뿐이었다’라는 말이 반드시 술꾼들의 군색한 변명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늘은 모처럼 한잔 술을 부어놓고 일제말 선술집의 술청에서 들려오던 왁자지껄한 소리와 분위기를 떠올리면서 이 노래를 들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하찮은 것이라 여기던 가요작품 속에 이처럼 시대사(時代史)의 실감나는 풍경이 들어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논객닷컴=이동순  dslee5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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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 계명문화대 특임교수,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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