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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음악

[선시음악] '빈 몸이 끊임없이' (芙蓉禪師 선시) - 홍순지 노래

잠용(潛蓉) 2014. 12. 21. 21:07

 



'빈 몸이 끊임없이'

芙蓉禪師(1485~1571) 선시

백영운 작곡 노래 홍순지

 

빈 몸이 끊임없이 공부하느라
  어느새 검은 머리 백발(白髮)되었네
  유마(維摩)도 문수(文殊)에게 묵언(默言)으로 대했고
  석가(釋迦)도  한평생 말 안했다 하셨으니.

空費悠悠 憶少林(공비유유 억소림)
因循衰 到如今(인순쇠빈 도여금)
毘耶昔一 無成臭(비야석일 무성취)
摩竭當年 絶響音(마갈당년 절향음)

 

  우두커니 앉아서 분별(分別)을 끊고
  바보처럼 살면서 시비(是非) 않으니
  모든 생각 산 밖에 날려 버리고
  언제나 청산 속에 말없이 지내리라.

似兀能防 分別意(사올능방 분별의)
如癡必禦 是非心(여치필어 시비심)
故將忘計 飛山外(고장망계 비산외)
終日忘機 對碧岑(종일망기 대벽잠) [心行處滅]

 

  빈 몸이 끊임없이 공부하느라
  어느새 검은 머리 백발되었네
  유마도 문수에게 묵언으로  대했고
  석가도 한평생 말 안했다 하셨으니.

 

(원시추가 잠용)

[출처] 홍순지 '빈 몸이 끊임없이' 작성자 민민

 




 

부용선사(芙蓉禪師 1485~1571)


조선시대 선사. 법명은 영관(靈觀) 벽송 지엄스님의 법맥을 잇고 청허 휴정스님(西山)에게 의발(衣鉢)을 전하였다. 부용 선사는 조선 성종 16년(1485) 경남 삼천포에서 태어났다. 법명은 영관(靈觀), 법자는 은암(隱庵), 법호는 연선(蓮船), 당호는 부용당(芙蓉堂).

 

8살 때 하루는 아버지에게 이끌려 낚시를 갔는데, 선사는 망태기 속의 물고기를 모두 놓아주었다. 아버지가 크게 꾸짓자 선사는 엎드려 울면서 말했다. “사람이나 물고기나 목숨의 귀중함은 같고 아픔을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서 그리 했습니다.” 또 하루는 괴이하게 생긴 어떤 스님이 찾아와 그의 아버지에게 찾아와 이르기를, “이 아이는 불가에서 뛰어난 인물이 될 것, 속세에서 살 그릇이 아니니 출가 시키라”하고 사라졌다. 마침내 선사가 13세 되던 연산군 3년(1497) 어느 가을날, 공문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 견딜 수 없어 마침내 집을 나서게 되었다. 발길을 재촉하여 수일 만에 덕이산(德異山, 지금 덕유산)으로 들어가, 토굴에서 수행하는 고행 선사를 찾아 가르침을 받은지 3년 만에 수계를 받고 승려가 되었다. 17세 되던 해 신총법사를 찾아 교학을 탐구하고, 다시 위봉선사 회상에게서 선의 요체를 참구했다.


그 뒤 덕유산 구천동으로 들어가 손수 토굴을 지었으며, 선당의 이름을 부용당(芙蓉堂)이라 지었다. 몸은 비록 속세에  머물지만 생각은 항상 서방정토에 있으므로 그것을 상징하는 연꽃에서 그렇게 지었다. 9년 동안 두문불출 용맹정진하였으며, 눕지 않는 장좌불와(長坐不臥)를 참행(參行) 하고 와불선(臥不禪)을 확립하였다. 9년 간의 장좌불와를 끝내고 다시 미륵봉 내원암으로 들어가 출입을 끊고 다시 9년 동안 묵언불와(默言不臥)로 생사불수행(生死不修行)을 하였다. 중종 25년(1530) 어느 가을날, 선사께서 무심코 선실 창문을 바라보다가 낙엽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확연대오하였다. 이 때의 선사의 깨침을 시로 적은 것이 바로 이 노래의 원시 <심행처멸 心行處滅>이다. [출처: 수도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