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용의 타임머신... 영원한 시간 속에서 자세히보기

불교음악

[선시음악] '연곡사에서' (逍遙禪師 선시) - 홍순지 노래

잠용(潛蓉) 2014. 12. 23. 12:20

 

 

'연곡사에서'
소요 태능 선시/ 백영운 작곡/ 홍순지 노래

 

저 많은 경전 손가락 같아서
손가락 따라 하늘의 달 보네
달 지니 손가락도 잊어 아무 일 없으니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잠잔다. 

百千經卷 如標指(백천경권 여표지)
因指當觀 月在天(인지당관 월재천)
月落指忘 無一事(월락지망 무일사)
飢來喫飯 困來眠(기래끽반 곤래면) [題 燕谷寺香閣]

 

넓은 벌판 산과 강물이 바로 나의 집이라
다른 어느 곳에 고향집 찾는가?
산을 쳐다보다 그만 길을 잃고 미쳐버린 나그네.

온종일 가도 고향집에 못 가리. 

大地山河 是我家(대지산하 시아가)
更於何處 覓故鄕(갱어하처 멱고향)
見山忘道 狂迷客(견산망도 광미객)
終日行行 不到家(종일행행 불도가) [無位一色五]

 

해탈이여 또는 해탈이 아님이여
열반이 어찌 고향이리
취모장검 빛이 번뜩이나니
입 벌리면 그대로 목이 잘린다.

解脫 非解脫 (해탈 비해탈)
涅槃 豈故鄕 (열반 기고향) 
吹毛 光爍爍 (취모 광삭삭)
口舌 犯鋒鋩 (구설 범봉망) [悟道頌]

 

(원시추가 잠용, 사진 구품연지춤)

 



 

소요 태능선사(逍遙 太能禪師)

 

조선 중기의 선사. 호는 소요(逍遙). 속성은 오(吳)씨다. 전라도 담양 출신. 선조 7년(1574) 13세에 장성 백양사(白羊寺)에서 진(眞)에게 출가하여 경률(經律)을 익히고 그 뜻을 통달했다. 황벽(黃檗)에게 계속 공부하여 많은 후진을 교화했다. 속리산과 해인사에서 교화를 펴고 있던 부휴 선수(浮休 善修)에게 대장경(大藏經)을 배우고 다시 묘향산에서 청허 후정(淸虛 休靜)의 문하에서 20년을 수학하고 법을 받았다.

선조 14년(1581) 20세에 휴정의 명으로 개당하여 교화를 폈으며, 선조 17년 화엄사에서 부휴선사가 대장경을 강설할 때 동참하였다. 부휴의 휘하에 있는 수백명 제자 가운데 운곡 충휘(雲谷沖徽)와 송원 응상(松月 應祥)과 함께 법문 삼걸(法門三傑)이라 칭송되었다.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화엄사에 있던 소요(逍遙), 자운(慈雲), 중관(中觀), 설홍(雪泓) 등과 함께 승장이 되어 출전했다.

 

난이 끝나고 선조 34년부터 금강산과 오대산, 구월산 등지에 머물면서 계속 교화했다. 만년에는 지리산 연곡사(燕谷寺)에 머물며 교화하다가 인조 27년(1649) 11월 21일 나이 88세, 법랍 75세로 입적하였다. 효종이 조선조 최초로 혜감국사(慧鑑國師)라는 시호를 내리고 비를 세웠다. 휴정의 문하 중에서 편양 언기(鞭羊彦機)와 함께 조선 선종(禪宗)의 양대 고승으로 추앙되었고, 수백 명 문하가 일파를 이루니 이름하여 소요파(逍遼派)라 불렀다. 그 중 침굉 현변(枕肱 縣辯)은 그의 선법(禪法)을 따랐고, 해운경열(海運 敬悅)은 교법(敎琺)을 이었다. [불교사전]


연곡사 일주문의 주련(柱聯) 글귀

"歷千劫而 不古(역천겁이 불고)하고 亘萬歲而 長今(긍만세이 장금)이라"(恒이 아니라 원래는 亘이다) 이 글귀는 일찍이 함허선사(涵虛禪師)가 <금강경오가해 金剛經五家解> 서문에 적은 법문이다. “有一物於此(유일물어차)하니 一物(일물)이 何物(하물)고 “여기 한 물건이 있으니 이 물건이 무슨 물건인고” “凡有事物이 小不能大하고 大不能小로대 此則反是하야 能小而細入隣虛하고 能大而廣包法界라”(범유사물 소불능대 대불능소 차즉반시 능소이세입인허 능대이광포법계) “무릇 온갖 사물들이 작은 것은 능히 클 수 없고 큰 것은 능히 작아질 수 없으나 이것(마음자리)은 사물과 반대로 능히 작고 미세하여 인허(매우 작은 것)에 들어가기도 하고 능히 커서 온 법계를 널리 에워싼다”는 뜻이다. 이어서 “歷千劫而不古(역천겁이불고)하고 亘萬歲而長今(긍만세이장금)이라”하였다. 그 뜻은 "마음자리는 천겁이 지나도 옛 것이 아니고, 만세에 걸쳐도 항상 지금의 마음자리"라는 뜻으로 불법 공부에 있어 마음자리가 그처럼 중요함을 이르는 말이다, [금강경오가해 함허선사 서문에서]


연곡사에서 / 홍순지가 부르는 명상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