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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음악

[불교가요] '용궁사의 밤' - 불자가수 최유나 노래

잠용(潛蓉) 2015. 1. 11. 18:39

 

 

'용궁사(龍宮寺)의 밤' - 최유나 

 

< 1 >

파도소리 철석철석 밀려오는 용궁사에

수도승의 염불인가, 용녀의 하소연인가?

백팔계단 석불전에 슬피 우는 여인은

꿈 같은 첫사랑도 떠나버린 그사람도

속세에 다 묻어놓고

 

백일정성 올리는데

 아~ 아~ 밤 깊은 용궁사에

풍경소리 나를 울리네.

 

< 2 >

달빛만 고요히 흐르는 용궁사에

무슨 사연 그리 많아 이 한밤을 지새우나?

백팔계단 석불전에 슬피 우는 여인은

꿈 같은 그 시절도 사랑했던 그사람도

속세에 다 묻어놓고

 

백일정성 올리는데

아~ 아~ 밤 깊은 용궁사에

풍경소리 나를 울리네.

 

(사진: 해동용궁사의 밤 풍경 - 구다무)

 

 


 

해동용궁사(海東龍宮寺)의 내력


"바다도 좋다하고 청산도 좋다거늘/ 바다와 청산이 한 곳에 묀다 말가/ 하물며 청풍명월 있으니 여기가 선경(仙境)인가 하노라" 춘원 이광수는 이 곳을 이렇게 묘사했다. 국내 3대 관음성지의 하나로 손꼽히는 용궁사는 시(詩)처럼 풍광이 빼어나다. 대개의 사찰이 산 속 깊숙이 있는 것과는 달리 해송(海松) 가득한 해변가에 자리잡고 있고 검푸른 바닷물이 바로 발 아래 있어 수상법당(水上法堂)이라 불린다. 용궁사는 고려시대 1376년(우왕 2)에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懶翁) 혜근(惠勤)이 창건하였다.

 

혜근이 경주 분황사(芬皇寺)에서 수도할 때 나라에 큰 가뭄이 들어 인심이 흉흉하였는데, 하루는 꿈에 용왕이 나타나 봉래산 끝 자락에 절을 짓고 기도하면 가뭄이나 바람으로 근심하는 일이 없고 나라가 태평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이 곳에 절을 짓고 산 이름을 봉래산, 절 이름을 보문사(普門寺)라 하였다. 그후 임진왜란의 병화로 소실되었다가 1930년대 초 통도사의 운강(雲崗)이 중창하였다. 1974년 정암(晸菴)이 부임하여 관음도량으로 복원할 것을 발원하고 백일기도를 드렸는데, 꿈에 흰 옷을 입은 관세음보살이 용을 타고 승천하는 것을 보았다고 하여 절 이름을 '해동용궁사'로 바꾸었다.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하여 굴법당, 용왕당(용궁단), 범종각, 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은 주지 정암이 1970년대에 중창하였다. 대웅전 옆에 있는 굴 법당은 미륵전이라고 하여 창건 때부터 미륵좌상 석불을 모시고 있는데 자식이 없는 사람이 와서 기도하면 자식을 얻게 된다 하여 득남불(得男佛)이라고 부른다. 대웅전 앞에는 4사자 3층석탑이 있다. 원래 이 자리에는 3m 높이의 바위(미륵바위)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절이 폐허가 되고 6·25 전쟁 때 해안경비망 구축으로 파괴됨에 따라, 1990년에 정암이 파석을 모으고 손상된 암벽을 보축하여 이 석탑을 세우고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불사리 7과를 봉안하였다.

 

이밖에 단일 석재로는 한국 최대의 석상인 약 10m 높이의 해수관음대불과 동해 갓바위 부처라고도 하는 약사여래불이 있다. 절 입구에는 교통안전 기원탑과 108계단이 있고, 계단 초입에 달마상이 있는데 코와 배를 만지면 득남한다는 전설이 전한다. 진심으로 기도하면 누구나 현몽을 받고 한 가지 소원을 꼭 이루는 신령스러운 곳으로 알려져 수 많은 참배객과 관람객이 줄을 잇고 있다. [http://yongkungsa.or.kr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