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천상병의 명시 ‘귀천’(歸天)
(시인 천상병)
◇ 전체 3개의 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의 매 첫행에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라는 구절이 반복된다. 이 말은 죽는다는 뜻일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는다는 말 대신에 하늘로 돌아간다고 한데 이 시의 묘미가 있다. 언젠가는 다가올 죽음에 대해 아무런 두려움도 없는 사람의 말투다. 두고 가야 할 세상에 대해서도 아무런 미련도, 집착도 없는 무욕(無慾)의 심상에서나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이는 마치 저 서산대사의 입적시와 많이도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태어남은 뜬 구름 한 조각 생기는 것이요(生也一片浮雲起) 죽음은 뜬 구름 한 조각 없어짐이라(死也一片浮雲滅) 뜬 구름 자체가 본시 실체가 없으니(浮雲自體本無實) 태어나고 죽음 또한 그와 같도다(生死去來亦如然) - 서산대사(西山大師) 입적시(入寂詩)에서
하늘로 돌아가면서 시인이 동반할 것이라고는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과 '노을빛'밖에 없다는 말에서도 이 세상의 모든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운 시인의 달관을 보게 된다. 이승에서의 삶을 한 번의 '소풍'에 견줄 수 있다면, 시인은하늘에서 잠시 이승에 귀양살이 온 신선과도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시를 신선같이 행복한삶을 산 자의 노래로 읽는 것은 잘못이다. 그의 삶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과는 달리, 어지간히 괴로운 것이 아니었을까.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의 다음에 놓인 말없음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독자는 생각해 보라. 아름다웠다는 말은 괴로웠다는 말의 역설처럼 들리지는 않는가. 그러나 괴롭다는 말을 글자 그대로 괴로웠다고 말하지 않는 데 이 시인의 정신적 미덕이 자리하고 있다. (daum 오픈지식 猫さん | 2006-03-03 17:38)
[어휘와 구절]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죽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시인의 순명(順命)하는 태도를 보여 준다. 이러한 순명의 태도는 '하늘'이 자기 존재가 비롯된 곳이라는 생각에서 기인한다. 그가 '죽음'을 하늘로 돌아가는 것[歸天]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 이 점을 말해 준다. 그는 죽음을 모든 것을 종말로 이끄는 돌발적인 사건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 즉, 자기 존재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가 죽음을 노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둡고 절망적인 색채가 아니라 밝고 건강한 색채를 띠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이슬'과 '노을빛'은 모두 잠깐 동안 이 세상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소멸해 버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시인이 '이슬과 더불어', '노을빛과 함께' 하늘로 돌아가겠노라고 말한 것은 삶의 덧없음이나 허무를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처럼 맑고 깨끗하고 아름답게 살고 싶다는 시인의 소망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태도가 문자 그대로 무욕(無慾)과 무사심(無私心)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말해 준다. 무욕과 무사심의 경지에 도달했기 때문에 굳이 삶에 대해 집착할 필요가 없으므로 이처럼 담담하게 삶과 죽음을 노래할 수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시인은 자신의 삶을 즐거운 '소풍'으로 파악하고 있다. 자신이 천상의 세계에서 세속의 세계로 '소풍'을 나왔다가 다시 천상의 세계로 돌아가는 어린아이(천사)와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구절은 자신의 맑고 깨끗한 삶에 대한 자족감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가서 아름다웠다라고 말하리라…: '아름다움'의 주체는 이 세상이라고 할 수도 있고, 시인 자신의 삶이라고 할 수도 있다. 비록 가난과 슬픔과 고통의 연속인 삶이요, 그에게 오욕(汚辱)과 가난을 강요한 세상이지만, 적어도 시인에게 있어서 자신의 삶과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진술은 시인이 세속적인 욕망이나 더러움에 오염되지 않은 순결한 영혼의 소요자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시인이 삶과 죽음에 대해 초탈한 자세를 지닐 수 있는 것 또한 이와 같은 청정한 삶의 자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해와 감상] 천상병의 시에서 우리는 순진 무구(純眞無垢)와 무욕(無慾)을 읽을 수 있다. 그는 현란하거나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사물을 맑고 투명하게 인식하고 담백하게 제시한다. 죽음을 말하면서도 결코 허무나 슬픔에 빠지지 않고, 가난을 말하면 서 구차스러워지지 않는다. 그의 시들은 어떻게 보면 우리 시사(詩史)에서 매우 이단(異端)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시인이라는 세속적 명리(名利)를 떨쳐버리고 온몸으로 자신의 시를 지킨, 진정한 의미의 순수 시인이라 할 수 있다.>
<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기 마련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든 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담담한 마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기도 하고, 죽음으로 해서 잃게 될 소유물들을 아까워하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그러한 일반적 태도와는 전혀 다른 한 사람의 모습을 본다. 그는 세 연의 서두에서 똑같은 어조로 말한다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하늘로 돌아간다는 것은 물론 죽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는 죽는다고 말하지 않고 하늘로 돌아간다고 한다. 셋째 연의 말처럼 이 세상의 삶이 마치 한 차례의 소풍인 것처럼 그는 선선히 `돌아가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늘로 돌아갈 때 그가 동반하는 것이란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 이슬'과 `노을빛' 같은 것들에 지나지 않는다. 미래의 언젠가 있을 죽음을 선선히 받아들이기로 하였듯이, 그는 이 세상의 삶 속에서 누리는 소유물들에 별로 미련이 없다. 미련이 없으므로 집착이 없고, 집착이 없으므로 죽음을 억지로 피해 보려는 안타까운 몸부림도 없다.
그러나, 이렇게만 읽고 만다면 아직 이 시를 충분하게 음미하지 못한 것이다. 그가 선선한 태도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라고 말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삶을 한껏 즐겁게 누렸기 때문일까?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작품 전체의 어조와 분위기는 이와 달리 어떤 애조 띤 빛깔로 덮여 있다. 분명하게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에게 삶이란 매우 괴로운 것이 아니었던가 한다. 그 속에서 그는 가족, 친구와 더불어 넉넉하다 할 수 없는 삶을 누려 왔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시간을 짐작하면서 그는 새삼스럽게 그 아쉬운 삶을 돌이켜보게 된다. 그러나 끝없는 집착이란 얼마나 괴롭고 무의미한 것인가? 그리하여 그는 지나온 삶의 자취 속에서 소중한 기억들을 더듬으면서 그래도 자신은 아름다운 한 세상을 살았노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노래하는 간결한 말씨 속에서 우리는 지나 온 삶의 괴로움과 회한을 지그시 다스리며 아름다움을 읽어 내는 맑은 눈을 본다.> (해설: 김흥규)
[작가 소개] 천상병(千祥炳, 1930~1993)은시인이다. 종교는 기독교이며, 소풍 온 속세를 떠나 하늘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귀천(歸天)》으로 유명하다. 1967년 불행히도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심한 옥고와 고문을 겪었으며, 1993년 지병인 간경화로 인해 타계하였다.
일본 효고현 히메지시에서 한국인 부모에게서 출생했으며, 부모를 따라 귀국하였다. 1949년 마산중학교 5학년 때, 《죽순(竹筍)》 11집에 시 《공상(空想)》 외 1편을 발표했으며, 여러 문예지에 시와 평론 등을 발표했다. 1955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다니다가 중퇴했으며, 중앙정보부에 의해 조작 과장된 사건으로 판명된 소위 '동백림사건'(1967년)에 연루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친구 강빈구에게 막걸리값으로 5백원, 천원씩 받아 썼던 돈이 공작금으로 과장되어심한 전기고문을 받았으며 그때 몸과 정신까지 멍들었다. 당시의 처참한 수난상을 천 시인은 이렇게 썼다.
이젠 몇 년이었는가/아이론 밑 와이셔츠같이/(고문)당한 그날은...//이젠 몇 년이었는가/무서운 집 뒷창가에 여름 곤충 한 마리/땀 흘리는 나에게 악수를 청한 그날은.../네 사과 뼈는 알고 있다./진실과 고통/그 어느 쪽이 강자인가를...
이후 천시인은 여러 일화들을 남기는데, 1970년에는 무연고자로 오해받아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되는 일도 있었다. 당시 지인들은 갑자기 사라진 천시인이 죽었다고 생각, 유고시집《새》를 발표하였다.
당시 시집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내 영혼의 빈터에/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내가 죽는 날/그 다음날.//산다는 것과/아름다운 것과/사랑한다는 것과의노래가/한창인 때에/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한 마리 새.//살아서/좋은 일도 있었다고/나쁜 일도 있었다고/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새)
1972년 친구의 여동생인 목순옥 여사와 결혼한 천상병 시인은 1979년 시집 《주막에서》를 민음사에서 펴냈고,《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1984년),《저승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1987년),시집 《요놈! 요놈! 요 이쁜 놈!》(1991년),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1993년)도 발표하였다. 말년에 천주교에 입문한 천시인은 하느님에 대한 소박하고 순수한 기독교적 신앙을 보여주는 작품활동도 하였다.
하느님은 어찌 생겼을까?/대우주의 정기(精氣)가 모여서/되신 분이 아니실까싶다.//대우주는 넓다./너무나 크다.//그 큰 우주의 정기가 결합하여/우리 하느님이/되신 것이 아니옵니까?(하느님은 어찌 생겼을까)
1993년 4월 28일 지병인 간경화증으로 별세한다. 유고시집 <나 하늘로 돌아가네>, <천상병 전집>이 출판되었다.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신리에 천상병 귀천 시비가 있다. 2007년 5월 1일에는 천상병시인을 기념하는 제4회 천상병 예술제가 천시인이 별세하기 전, 10여년간 거주한 의정부시에서 열리기도 했다.
천상병 시인은‘문단의 마지막 순수시인’ 또는 ‘문단의 마지막 기인(奇人)’으로 불리던 그는 지병인 간경변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주막에서》 《귀천(歸天)》 《요놈 요놈 요 이쁜 놈》 등의 시집과 산문집 《괜찮다 다 괜찮다》, 그림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 등이 있다. 미망인 목순옥(睦順玉)이 1993년 8월 《날개 없는 새 짝이 되어》라는 글모음집을 펴내면서 유고시집 《나 하늘로 돌아가네》를 함께 펴냈다.
부인 문순옥(文順玉 1935~2010)은 1935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오빠 친구였던 천 시인과 1972년 결혼했으며 평생을 무직으로 살았던 천 시인의 뒷바라지를 했다. 1985년부터 인사동에서 전통찻집인 '귀천'을 운영했으며, 천 시인이 별세한 뒤 2008년 천상병기념사업회를 만들어 고인을 추모하는 작업을 해왔다. 2010년 8월 10일 별세한다.(위키백과)
[사진]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신리에 있는 천상병 귀천 시비
‘歸天 시인’ 하늘에서 아내 만났을까?
[매일경제] 2011년 04월 20일(수) 오후 05:07
삶에 대한 집착과 욕망을 떨쳐낸 시(詩) '귀천(歸天)'으로 유명한 천상병 시인을 기리는 천상병예술제가 23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올해로 8회째를 맞는 천상병예술제는 매회 다양한 프로그램과 인근 시민의 참여를 유도하는 행사를 통해 문학과 예술의 만남을 이끌어낸 독특한 문화축제다.
올해 예술제에서는 지난해 세상을 떠난 천상병 시인의 아내 목순옥 여사를 추모하는 특별전 '날개 없는 새 짝이 되어'를 축제 기간 내내 개최한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천상병 시인을 사랑으로 돌보며 동반자의 길을 걸었던 목 여사를 돌아보는 이번 추모전은 천상병 시인의 사진부터 육필원고, 시화 전시를 비롯해 문 여사가 소장했던 생활자기, 부채, 족자도 전시될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또한 10명의 조각가ㆍ화가ㆍ사진작가 등 예술가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시인과 그의 아내의 삶에 파고들어 빚어낸 작품들도 함께 전시된다. 특히 조각가 이민수의 조각품 '목 여사'는 생전 목 여사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어 앞에 선 관람객의 발걸음을 쉽게 뗄 수 없게 만든다. 특별 추모전 외에도 다양한 문화행사가 마련돼 있다. '시가 흐르는 천상음악회' '천상백일장' 등의 프로그램은 천상병 시인과 목 여사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시민들이 문학적 영감과 예술적 감동을 받을 수 있게 꾸며진다. [이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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