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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애청곡

[어머니 영상시]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 신석정 작

잠용(潛蓉) 2015. 9. 3. 20:03

 

[어머니 영상시]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 신석정 작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대(森林帶)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
멀리 노루새끼 마음놓고 뛰어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지시 타고 내려오면
양지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 소리 구슬피 들려 오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셔요.
그 때 우리는 어린 양을 몰고 돌아옵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내리면,
꿩 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다.
서리 가마귀 높이 날아 산국화 더욱 곱고
노오란 은행잎이 한들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
양지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 때,
나와 함께 그 새빨간 능금을
또옥똑 따지 않으렵니까?

 


 

(시인 신석정)

 

<해설> 이 시는 1932년 [삼천리]에 발표되었다가, 1939년 신석정의 첫시집 [촛불]에 재수록된 글이다. 이 작품은 신석정에게는 일종의 신앙이라고 할 수 있는 자연에 대한 사랑이 아름답게 담겨 있다. 그의 심오한 명상이 만드는 하나의 이상화된 전원을 맑고 잔잔하게 노래 부르고 있는 작품이다. 이상향으로서의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은 이 작품의 주제이기도 하다. (두산백과)

 

​* 시인이 그리워하는 이상향은 한마디로 현실의 시끄러움과 어수선함을 벗어난, 아무런 갈등도 싸움도 없는 평화의 세계이다. 그 평화의 세계는 현실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상상의 세계일 뿐이다. 그래서 '아무도 살지 않는' '먼 나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세계로 함께 가고자 하는 대상은 바로 '어머니'이다. 그 모든 것이 용납되고 수용되는, 넓고 깊고 편안한 안식의 대상인 어머니만이 그 나라에 함께 가고 싶고 또한 갈 수 있는 존재이다. (현대시 목록, 인터넷)

 

* 이 시의 세계는 1930년대의 암담한 국가적, 사회적 상황과 병든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낀 시인이 찾아 낸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 곧 순수한 자연의 세계다. 시인의 이상향은 아무런 싸움도 갈등도 없는 평화의 세계로 현실과 동떨어진 상상의 세계이다. 그것은 정신적 고향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의 안식처가 되기도 하고, 목가 그자체는 현대문명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이 되기도 한다. 이 세계로 같이 가고자 하는 대상은 '어머니'로 나타나 있다. '어머니'는 모든 것이 수용되는 안식과 구원의 대상이기에 그 나라에 함께 가고싶고 갈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이 시는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라는 세개의 똑 같은 연을 기준으로 세부분으로 나누어진다. 1-4연, 5-7연, 8-10연의 세 부분이 모두 이 물음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세 부분에서 나타나는 '그 먼 나라'의 이미지는 다양하면서도 공통되는 측면이 있다. 이상향은 1-4연에서 노루 새끼가 마음놓고 뛰어다니고 비둘기를 키우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곳으로, 5-7연은 어린 양의 이미지와 상통하는 순결한 삶의 공간으로, 8-10연에서는 빨갛게 익은 능금을 따는 풍요와 결실의 공간으로 나타난다. 한편 마지막 부분인 8-10연은 앞의 두 연과 구조적으로 다른 점이 눈에 뛴다. 앞의 두 부분이 청유문으로 끝나는데 반해, 8-10연에서만 의문문으로 끝나는 것이다. 이 시는 이러한 반복과 변조를 통해 통일성과 긴장감을 함께 형성하고 있다. (한권에 잡히는 현대시)


* 시인 장만영은 신석정시인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나무처럼 키가 크고 눈썹이 시커먼 이 사나이는 그렇게밖에는 식민지 치하를 살아갈 수 없는, 어린애같은 꿈과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정이 있을 뿐 아무런 생활 능력도 야심도 없는 천성적인 시인이다." 신석정의 시세계는 도가적 자연사상과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으로 요약할 수 있다. 만년의 그는 난을 비롯한 화초 가꾸기에 정성을 쏟아, 시집에는 관음소심과 같은 난을 예찬한 작품들도 여럿 보인다.

                                                                   

◇ 신석정(辛夕汀 1907 - 1974) 약력
* 1907년 전북 부안에서 출생. 본명은 석정(錫正), 아호는 석정(夕汀), 필명은 소적(蘇笛), 서촌(曙村)이다.
* 1924년 첫 작품 <기우는 해>를 ‘소적’이라는 필명으로 [조선일보]에 발표한 후,
* 1930년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불교전문강원(佛敎專門講院) 국어국문학과에서 불전(佛典) 공부를 했다. [시문학]에 <선물>을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 데뷔했다.
* 1931년 고향으로 내려와 ‘청구원(靑丘園)’에서 도연명의 시와 매창 시집 등을 애독하며 시작(詩作)에 전념.
* 1939년 첫 시집 [촛불]을 간행한 이후, [슬픈 목가(牧歌)](1947), [빙하(氷河)](1956), [산(山)의 서곡(序曲)](1967), [대바람 소리](1970) 등 생전에 도합 다섯 권의 시집을 상재했다.
* 1946년 1950년까지 부안 중학교와 죽산 중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했으며,
* 1952년 태백신문 편집 고문으로 위촉되어 [토요시단]을 주재한다.
* 1954년 7년간 전주고등학교에서 근무,
* 1955년 전북대학교와 영생대학에서 시론(詩論)을 강의했다.
* 1961년 김제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했으며,
* 1967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전라북도 지부장을 역임했다.
* 1964년 전주상업고등학교로 부임해 1972년 정년까지 재직했다.
* 1974년 영면했다.

* 주요 저서로는 시집 5권과 이병기와 공저한 [명시조 감상](1958), [한국 시인 전집](1959), 번역서 [중국 시집](1954) 등이 있다. 이외에 유고 수필집으로 [난초 잎에 어둠이 내리면](1974), 유고 시집 [내 노래하고 싶은 것은](2007)이 있다. 1958년 전라북도문화상, 1968년 한국문학상, 1973년 제5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수상했다. [출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