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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애청곡

[유성기 가요] '항구의 일야' (1930년대 초) - 전옥(全玉) 노래

잠용(潛蓉) 2016. 6. 8. 19:58

 

[劇 레코드]

'港口의 一夜' (1930년대 초)

작사 작곡 王平 (본명 이응호)/ 노래 대사 全玉

 

세상이 덧없으니 믿을 곳 없어
마음 속 감춘 한을 그 누가 아랴.

그 누가 아랴?

 

잔 들어 이 설움을 잊어나 볼까?
떠나는 그를 잡고 울어나 볼까?

 

외로운 이 한밤을 울며 세우니
하늘가 별빛마저 고향이 그려
고향이 그려~

 

(劇 레코드 '항구의 일야'-전편)

 


 

[劇레코드] '港口의 一夜'

(원작 왕평, 노래 대사 전옥, 1930년대 초)  

 

 

(배 역)
탄심 - 주인공, 전옥
이철 - 탄심의 애인, 남성우
영숙 - 탄심의 친구, 천선녀
박민 - 탄심의 의형제(오빠), 김영준

 

(눈물의 여왕 전옥 1911~1974)

 

마도로스인 남성우(이철 역)은 어느 항구에 정박하여 하루를 지내는 동안 항구에 위치한 캬바레 여급인 전옥(탄심 역)과 사랑을 나누며 장래를 약속한다. 그러나 이후 그는 소식이 없었고, 기다림에 지친 탄심은 이철을 찾아간다. 그러나 그는 이미 다른 여자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고 있었고, 하룻밤 풋사랑의 허무함을 느낀 탄심은 자신이 여급으로 지내던 항구로 다시 발길을 돌린다.

 

전옥(全玉)이라면 먼저 “눈물의 여왕”이 떠오른다. 레코드로 또는 무대에서 관객들과 눈물로 만나 왔기 때문이지만 또 그의 삶도 눈물로 이어오다가 58세의 짧은 삶을 마쳤다. 1911년 함경도 함흥에서 태어난 전옥 (본명 全德禮)는 오빠 전두옥을 따라 어린시절 서울로 상경 토월회(土月會)에 들어갔다. 토월회는 조선조 말 박정양 대감 아들 박승희(朴희勝)가 만든 연극단체로 연극도 하고 영화도 했으며 연극이 방송극이던 시절 복혜숙, 김연실, 김선초 등과 함께 자연스레 방송극에도 출연하게 되었다. 전덕례는 토월회 무대에 서면서 전옥이라는 예명을 사용했다. 오빠 전두옥에서 "두"자를 뺀 것이다.

 

전옥이 16살 어린 시절 영화의 중요한 역을  담당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다. 무대에서 연기를 하며 노래를 부르면 관객들은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쳤다. 그러던 전옥의 노래가 음반으로 되어 나오고 1930년대 초 황성의 옛터 작사가로 유명한 왕평과 함께 출연한 「항구의 일야」가  음반으로 제작되어 나오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장안의 화재가 되었다. 목소리나 소문으로만 들은 사람들은 그의 연극무대를 찾았다. 영화나 연극을 선전하면서 전옥을  앞세웠다.  「눈물 없이는 볼 수없는」이라는 수식어를 붙혀 관객을 끌어들였다. 사람들은 그 연극도 연극이러니 와 전옥의 모습을  보러 찾아들었고 같이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치다가 연극이 끝날 때면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1928년 동료 연예인 강홍식과 결혼해 같이 노래도 부르고 연극도 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1935년 월간 <삼천리>지에서 실시한 가수 인기투표에서 두 사람 모두 남녀 부문에서 각각 4위에 오를 만큼 노래도 인기를 끌었다. 강효실, 강효선, 강효제 삼남매를 낳은 부부는 그 무렵 이혼했다. 아들 딸들은 전 남편을 따라 북한으로 갔지만 딸 강효실은 6.25 때 평양에 간 국군 선무공작대원이 되어 국군을 따라 서울로 올라와 그리던 모녀가 만났다. 그리고 1950년 대부터 영화배우로 활약한 유명한 강효실이 바로 전옥의 딸이다.

 

남한에서 활동하며 최일과 재혼한 전옥은  남편과 함께 1954년 백조가극단을 만들고 또 백조영화사를 창설해서 1957년 늘 전옥에 붙어 다니던 「항구의 일야」를 영화로  제작하면서 주연을 맡았다. 그 상대역은 최무룡이고 그 최무룡이 곧이어 강효실과 결혼하면서 전옥의 사위가 된다. 전옥은  1958년에도 「눈 내리는 밤」「목포의 눈물」을 제작하면서 주연을 맡았다. [출처: 춘하추동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