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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애청곡

[친일가요] '통군정의 노래' (1942) - 고운봉 노래

잠용(潛蓉) 2016. 7. 13. 08:54

 

 

'統軍亭의 노래'(1942)
劉道順 작사/ 韓相基 작곡/ 奧山貞吉 편곡/ 노래 高雲峰
(1942년 콜럼비아레코드 발매)
(사진/ 의주 통군정과 주변의 벗꽃 - 1930년대)

 

< 1 >

白頭山 精氣 품고
흐른 二千里
뱃노래 九龍浦엔
長閑하구나

海東門 옆에 끼고
白馬山 보며
義州라 統軍亭은
우뚝히 섰네.

< 2 >
聚勝堂 그 옛뜰에
杜鵑花 피고
아츰과 지는 해에
鐘이 우는데

北天庵 작은 절엔
念佛聲 나니
義州라 統軍亭은
情懷 깊구나.

< 3 >
九連城 바라보며
섰는 忠魂碑
鴨綠江 건너 서서
이긴 싸움에

大東亞 아츰 해가
떠올랐으니

義州라 統軍亭은
壯嚴도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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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군정(統軍亭) : 평북 의주시 압록강변에 있는 군사용 장대(將臺).

통군정은 고려전기에 건립했다고 전하며, 현재의 건물은

6.25 전란 이후에 복구한 것이다. 관서팔경의 하나.

* 장한(長閑) : 넓고 평온함

* 대동아 아츰해가 : 국국 일본의 대통아 공영권을 나타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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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統軍亭의 노래>는 가수 高雲峰(본명; 高明得)님이 1942년 11월에 콜럼비아 레코드에서 발표한 新歌謠입니다. <똇목 이천리; C.40895/ 李海燕 노래>와 같이 발매된 이 노래는, 劉道順 作詩/ 韓相基 作曲/ 奧山貞吉 編曲의 작품으로, <國境의 埠頭 1939.8; 태평>, <아들의 하소>로 데뷔한 高雲峰님이 불렀읍니다. 데뷔 이후 <南江의 追憶 1940.1> 등의 히트곡을 발표하며 太平에서 8월까지 활동하다 오케로 이적하여 <紅燈日記>, <밤차에 실은 몸>, <모래성 嘆息>, <鐵石의 情>, <船倉>, <白馬야 가자> 등의 히트곡을 발표하며 1941년까지 활동하게 됩니다. 가수 高雲峰님이 1942년에 들어 콜럼비아로 이적하여 부른 첫 노래인 <統軍亭의 노래> 잘듣고 갑니다. <雲水納子>

 

통군정 (統軍亭)의 역사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읍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정. 정면 4칸, 측면 4칸의 합각지붕 건물이다. 의주읍성(義州邑城)에서 제일 높은 압록강 기슭 삼각산(三角山) 봉우리에 자리잡고 있는데, 서북방위의 거점이었던 의주읍성의 북쪽 장대(將臺)로서 군사 지휘처로 쓰였다. 통군정에 올라서면 이끼 푸른 의주성의 옛 성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아래로는 압록강 푸른 물결 가운데에 점점이 떠 있는 여러 섬들이 굽어보인다.

서쪽으로는 멀리 신의주·용암포(龍巖浦) 일대가 바라보이며, 남쪽으로는 ‘의주금강(義州金剛)’이라 불리는 석숭산(石崇山)과 백마산(白馬山) 일대의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와 예로부터 관서팔경(關西八景)의 하나로 꼽혔다.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수 없으나 조선 초기까지 의주성 안에 있던 봉수대의 이름이 ‘통군정’이었다는 점으로 보아 이 곳에 군사용 정자를 지었고, 그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1538년(중종 33)에 의주목사 한천손(韓千孫)이 개축하였고, 1823년(순조 23)에 보수하였는데, 평면이 정방형에 가깝고 바닥에는 앞 부분 절반에만 단을 쌓아 널마루를 깔았다. 바닥 주춧돌 윗면에서 아랫마루까지의 높이는 71㎝, 아랫마루에서 윗마루까지의 높이는 33㎝로서 앞은 높고 뒤를 낮게 하였다. 7도리(道里)의 너비에 통천장으로, 모든 부재들에 조각장식을 붙여 내부를 시원하고 화려하게 꾸몄다. 특히, 이 건물에서는 목재를 적게 쓰면서도 건물의 입체적 강도를 높이기 위해 대들보를 겹으로 하고, 동자주(童子柱 : 세로로 세운 짧은 기둥) 대신 제공(諸貢)으로 틀어올렸다. 우리나라 누각건물을 대표하는 유적의 하나로 6·25 사변때 피해를 입었으나 전후에 복구되었다.

 

『조선고적도보』에 실려있는 일제 강점기 의주 통군정 모습.

 

한시 <등통군정 登統軍亭>
조선 중기에 이안눌(李安訥)이 지은 한시. 의주 용만(龍灣)에 있는 통군정(統軍亭)에 올라 지은 작품이다. 7언율시로, 작자의 문집 『동악집(東岳集)』 권2「조천록(朝天錄)」(1601)에 수록되어 있다. 의주(義州)의 용만과 부산의 동래부(東萊府: 灣府)는 예로부터 군사상 요충지이기 때문에 이 통군정을 두고 지은 시편들이 많다. 그 중 이안눌의 「등통군정」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히고 있으며, 이것은 정철(鄭澈)의 미인곡(美人曲)을 두고 지은 「문가(聞歌)」와 함께 그의 대표작이 꼽히고 있다. 이안눌은 동악시단(東岳詩壇 : 지금의 동국대학교 자리)을 만들어 문사들과 교유하며 시에만 힘쓰고 문(文)을 소홀히 하였기 때문에 그의 문집은 대부분 시로써 채워져 있다.

 

"등통군정"(登統軍亭 : 통군정에 올라)

 

망망한 들판토 하늘에 떠 있고

굽이굽이 흐르는 강은 지형을 찢어놓았다

茫茫大野浮天氣 (망망대야 부천기)

曲曲長江裂地形 (곡곡장강 열지형)

 

우주백년에 인간은 개미와 같고,

산하만리에 나라는 물 위에 뜬 마름과 같다

宇宙百年人似螘 (우주백년 인사의)

山河萬里國如萍 (산하만리 국여평)

 

라고 그의 시정을 옮기고 있다. 이 작품은 의주 용만의 통군정에 올라 만주벌판을 바라보고 읊은 것으로, 작자의 높은 기상을 한눈으로 읽게 해준다. 이안눌은 특히 칠언율시에 뛰어나 당시 권필(權韠)의 오언율시와 나란히 높은 평가를 받았거니와, 이 작품은 칠언율시 중에서도 대표작으로 꼽힌다. [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