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용의 타임머신... 영원한 시간 속에서 자세히보기

흔적의 역사 432

[흔적의 역사] 숙종의 피난처, 북한산성에 왜 금괴 매장설이 퍼졌을까?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숙종의 피난처, 북한산성에 왜 금괴 매장설이 퍼졌을까? 경향신문ㅣ2022.05.03 05:00 수정 : 2022.05.03 09:45 ▲ 한양도성과 북한산성, 그리고 두 성을 잇는 탕춘대성까지 모두 표현된 중 ‘도성연융북한합도’. 숙종은 1711년 6개월간의 공사 끝에 북한산성을 완성했다. 또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잇는 탕춘대성은 1753년까지 축조됐다. 이로써 한양도성~탕춘대성~북한산성을 잇는 도성 방어체계가 완성됐다.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감탄사를 연발하는 포인트가 있다. 도심에서 걸어서 오를 수 있는 산이 즐비하다는 것이다. 외국인들은 산을 등지고 강을 마주하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자리에 터전을 잡고 살았던 전통 덕분이라는 것을 ..

흔적의 역사 2022.06.14

[흔적의 역사] 경주 월성벽 바닥에서 발견된 최소 27구 인골의 정체는?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경주 월성벽 바닥에서 발견된 최소 27구 인골의 정체는? 경향신문ㅣ2022.04.19 05:00 수정 : 2022.04.19 06:58 ▲ 101년(파사왕 22년) 쌓은 이래 신라의 천년 사직을 지킨 경주 월성. 2014년부터 성 내부와 성벽, 해자 구간을 전면 발굴해왔으며, 지난 15일부터 해자구간 550m는 복원되어 일반에 공개됐다. /국립경주문화재 연구소 제공 지난주 금요일(15일)부터 신라의 천년 사직을 지킨 경주 월성의 해자(垓子)가 일반에 공개됐다. 해자는 적의 침입을 막으려고 성 주변을 둘러 판 물도랑이나 못을 가리킨다. 필자는 일반 공개 1주일 전 장기명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의 설명을 들으며 물을 가득 담은 폭 30m, 길이 550m 가량의 해자를 답사했다..

흔적의 역사 2022.06.14

[흔적의 역사] '744살 청와대 주목', 1000살 땐 어떤 역사를 목격할까?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744살 청와대 주목', 1000살 땐 어떤 역사를 목격할까? 걍향신문ㅣ2022.04.05 05:00 수정 : 2022.04.05 10:10 ▲ 청와대 옛 본관터(옛 집무실+관저)에는 744년 동안 청와대터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보았을 주목이 서 있다. 1278년 무렵부터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니 고려 충렬왕 4년 때의 일이다. (출처:대통령경호처의 , 2019) 대통령경호처의 임무는 기본적으로 대통령과 그 가족의 경호업무라 할 수 있다. 그런 그들이 틈을 내어 펴낸 책이 두 권이 있으니 그것이 (2007년 초판·2019년 증보판)과 (2019년)이다. 청와대와 그 주변이 어떤 곳인가. 1968년 북한 특수부대의 습격사건(1·21사태) 이후 청와대 앞길을 물론 인왕산과 북악산의 ..

흔적의 역사 2022.06.14

[흔적의 역사] 요절한 어린 왕자의 곁엔 정체 모를 고분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요절한 어린왕자의 곁엔 정체모를 고분들... 혀내민 말토기는? 경향신문ㅣ2022.03.22 05:00 수정 : 2022.03.22 09:26 ▲ 1924년 발굴된 금령총의 나무곽 내부 상황. 무덤주인공의 착장상태와 출토유물의 사이즈 등을 검토했을 때 신장이 1m 가량의 요절한 어린 왕자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금관과 족옥을 양끝 기준으로 해서 허리띠가 있는 부분을 토대로 신체비율을 따졌을 때 3세 아이(5등신) 비율에 맞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키가 1m로 추정할 경우 목관의 길이(1.5m)가 지나치게 큰 감이 있다. 추정 나이와 키는 좀더 검토가 필요하다. 그러나 성인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신광철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제공 일제강점기인 1924년 5월 10일부..

흔적의 역사 2022.06.14

[흔적의 역사] "일러줄거야, 네 남편에게"… <청구영언> 19금 노래가 보물이 됐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일러줄거야. 네 남편에게"… 의 19금 노래가 보물이 됐네 경향신문ㅣ 2022.03.08 05:00 수정 : 2022.03.26 11:19 ▲ 의 원본. 통문관 출판사와 통문관 주인인 이겸노의 도장이 찍혀있고, 그 밑에 김천택임을 밝혀주는 ‘남파거사’ 인장이 날인되어 있다. 서문에는 “얼굴이 흰 김천택이 시 300편을 줄줄 외었고, 거문고 연주자인 전만제와 함께 노래를 부르면 가슴 속에 맺힌 응어리가 모두 치유됐다”고 극찬했다.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는 노래로 당세에 이름이 났지만 속되지 않았다. 얼굴빛이 희고 수염은 창처럼 뾰족했다. 어릴 때부터 300편을 줄줄 외었다.”() ○○○는 과연 누구이기에 ‘꽃미남’이고, 시 300편을 줄줄 외울 정도로 ‘뇌섹남’이었으며, ..

흔적의 역사 2022.06.14

[흔적의 역사] 1500년전 몽촌토성 '로터리연못' 고구려 남침'의 블랙박스 열리나?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1500년전 몽촌토성 '로터리' 연못… '고구려 남침'의 블랙박스 열리나? 경향신문ㅣ2022.02.22 05:00 수정 : 2022.02.22 10:06 ▲ 몽촌토성의 백제~고구려 시대 회전교차로 안에 조성된 집수지에서 확인된 명문목간. 한성백제박물관 조사단은이 목간을 대상으로한 연대측정 결과 469~541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파악했다. 조사단은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차지한 475~551년 사이 몽촌토성을 장악·운영했음을 알리는 자료”라고 설명했다. 맞다면 최초로 확인된 고구려 목간이며, 또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간이 된다, 하지만 명문을 판독하지 못했으므로 섣부른 결론은 금물이다. /한성백제박물관 제공 “이건 로타리(회전교차로) 같은데….” 지난 2016년 몽촌토성의 북문..

흔적의 역사 2022.06.14

[흔적의 역사] 프랑스서 돌아온 외규장각 도서, 국보로 지정될 수 없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프랑스서 돌아온 외규장각 도서,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될 수 없다… 예외는 딱 한점 경행신문ㅣ2022.02.08 05:00 수정 : 2022.02.08 10:11 ㅁ 강화도 외규장각에 소장되어 있었던 . 1819년(순조 19) 풍은 부원군 조만영(1776~1846)의 딸인 풍양 조씨(1808~1890)를 효명세자(1909~1930)의 부인으로 책봉하면서 제작한 것이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불탄 것으로 알려졌지만 2017년 프랑스 경매에 출품된 것이 확인되어 구입환수됐다.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74434’라는 숫자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2006년 방영된 MBC의 ‘느낌표-위대한 유산 74434’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숫자이다. ‘74434’는 당시 국외에 흩..

흔적의 역사 2022.06.14

[흔적의 역사] 사형수가 넘쳐난 세종시대… 성군의 치세에 무슨 일이?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사형수가 넘쳐났던 세종 시대의 감옥… 성군의 치세에 무슨 일이? 경향신문ㅣ2022.01.18 05:00 수정 : 2022.01.20 13:49 ▲ 1997년 발굴된 경주 옥사 모습. 원형 담장과 남녀 옥사가 구분되었다. /이은석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장 제공 ‘3m 가량의 높은 담장에 남녀가 구분되어 있는 옥사….’ 얼마 전에 조선시대 감옥을 주제로 한 논문이 발표됐다. 이은석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장이 국립문화재연구소가 펴내는 학술지( 54호 4권)에 발표한 논문(‘조선시대 지방 옥 구조에 관한 고찰’)이다. 발굴유적과 고지도를 비교분석한 논문인데, 그중 감옥의 형태가 원형이고, 남녀 옥사가 구분된 구조라는 것이 필자의 눈길이 쏠렸다. 우선 ‘원형감옥’ 이야기를 해보자. ▲ 지금까지 ..

흔적의 역사 2022.01.23

[흔적의 역사] 일제는 왜 조선임금의 탯줄까지 집단 이주시켰나?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일제는 왜 조선임금의 탯줄까지 집단 이주시켰나? 경향신문ㅣ2022.01.04 05:00 수정 : 2022.01.05 09:39 ▲ 2003년 도굴 때문에 세인의 이목이 집중된 대구 광해군 태실에서 출토된 광해군의 태지석과 태항아리. 태항아리는 왕실의 왕자나 왕녀가 태어났을 때 태(胎)를 담은 항아리를 말한다. 그 주인공의 이름, 생년월일을 기록한 태지석을 함께 묻었다. /문화재청 제공 조선왕릉은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2009년 왕과 왕비 무덤 44기 중 40기가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왜 4기는 빠졌을까. 제릉(태조 이성계의 정비 신의왕후릉)과 후릉(2대 정종과 정안왕후릉)은 북한 땅에 있으니 뭐 그렇다치자. 연산군(1494~1506)과 광해군(1608~1623)의..

흔적의 역사 2022.01.23

[흔적의 역사] 궁궐 현판은 명필 임금도 쓸 수 없었던 이유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궁궐 현판, 명필 임금도 쓸 수 없었던 이유… ‘잘난체 말라’는 뜻 경향신문ㅣ2021.12.21 05:00 수정 : 2021.12.21 10:01 ▲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있었던 제1대와 7대 조선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1852~1919)와 미나미 지로(南次郞·1874~1955)의 현판. 데라우치의 것은 1914년 도쿄(東京)에서 열린 대정동경대박람회에 마련된 ‘조선관(朝鮮館)’이다. ‘관(館)’자의 오른쪽 변인 ‘관(官)’ 대신 ‘환(宦)’으로 대체했다. 미나미의 것은 1938년 덕수궁 안에 마련한 ‘이왕가미술관(李王家美術館) 현판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얼마전 국립중앙박물관이 수장고에 간직한 현판 110점을 조사한 보고서를 펴냈다. 언론에는 문화재청이 경..

흔적의 역사 2021.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