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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451

[흔적의 역사] 이것이 공룡 발가락 지문이다... 1억년 전 '백악기 공원'이었던 한반도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이것이 공룡 발가락 지문이다… 1억년전 '백악기 공원'이었던 한반도 경향신문ㅣ2022.09.06 05:00 수정 : 2022.09.06 09:55 ▲ 경남 진주 정촌면 뿌리 일단산업단지 조성공사 구역에서 발견된 발가락 지문을 새긴 초소형 육식공룡. 이 공룡의 발자국 크기는 평균 2.4㎝이고, 공룡의 몸길이는 닭보다도 작은 최대 28.4㎝(추정)에 불과하다. 그런데 공룡의 발자국 4개에 모두 피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공룡의 발바닥 피부 자국은 사람의 손가락·발가락 지문에 해당된다. 마치 ‘엠보싱’처럼 둥근 돌기들의 직경은 0.5mm 미만으로 매우 촘촘하다. /김경수 진주교대 교수 제공 후기 백악기(6800만~6600만년 전)에 살았던 ‘트리케라톱스’라는 초식 공룡이 있다...

흔적의 역사 2022.09.08

[흔적의 역사] 1700년전 백제인들은 임진강변에 '작은 풍납토성'을 세웠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1700년전 백제인들은 임진강변에 '작은 풍납토성'을 세웠다… 아무도 몰랐다 경향신문ㅣ2022.08.23 05:00 수정 : 2022.08.23 08:34 ▲ 경기 파주 적성 육계토성과 서울 풍납토성. 임진강변(육계토성)과 한강변(풍납토성)에 조성되어 있는 평지성이다. 크기는 육계토성(둘레 1.858㎞)이 풍납토성(둘레 3.5㎞)의 절반 규모이다. 육계토성은 ‘제2의 풍납토성’, ‘리틀 풍납토성’ 등의 별명이 붙어있다. /국립문화재연구원 제공 ‘리틀 풍납토성?’ ‘풍납토성의 재림?’ 7월 말 문화재청 소속 국립문화재연구원이 아주 심상치않은 보도자료를 하나 냈다. 임진강변인 경기 파주 육계토성 발굴조사에서 이 토성이 백제 초기(3세기 후반~4세기)에 축조된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었..

흔적의 역사 2022.09.02

[흔적의 역사] "태조 이성계의 사찰에서 사지가 찢긴 불상이 널브러져 있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태조 이성계의 사찰에서 사지가 찢긴 불상이 널브러져 있었다" 경향신문ㅣ2022.08.09 05:00 수정 : 2022.08.09 16:00 ▲ 경기 양주 천보산(423m) 자락에 자리집고 있는 양주 회암사터 항공사진. 발굴결과 산 아래쪽 계곡에 차곡차곡 쌓은 8개의 석축 위에서 70여개 동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발굴 현장을 그대로 노출시켜 놓았다. /양주시립 회암사지 박물관 제공 경기 양주 천보산(423m) 자락에 고색창연한 절터가 버티고 있다. 회암사터이다. 산의 아래쪽 계곡에 차곡차곡 쌓은 8개의 석축 위에 그대로 노출된 70여기의 건물터와 함께 그곳에서 활약한 고승들의 기념물까지…. 사적으로 지정된 구역만 1만여평(3만3391㎡)에 이르는 절터에 서면 600년의 시공을 ..

흔적의 역사 2022.08.13

[흔적의 역사] 선덕여왕이 '신이 노니는 신유림에 묻어달라'고 유언한 그곳은?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선덕여왕이 '신이 노니는 신유림에 묻어달라'고 유언한 그곳은? 경향신문ㅣ2022.07.26 05:00 수정 : 2022.07.26 20:18 ▲ 경주 시내 해발 100m에 불과한 낭산에 조성한 선덕여왕릉. 선덕여왕은 생전에 “나는 모년모월모일(647년 1월8일)에 죽을 것인데 반드시 도리천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신하들이 “도리천이 어디냐”고 묻자 선덕여왕은 “바로 낭산 남쪽”이라고 대답했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신라의 천년 고도 경주를 대표하는 산으로는 토함산(해발 745m)과 남산(468m)이 먼저 떠오른다. 토함산은 불국사와 석굴암을 안고 있는 산이니 말할 것도 없다. 남산은 어떨까. 남산은 석가모니 부처가 하강해서 머무는 ‘영산(靈山)’으로 알려져왔다. 금오봉(468m..

흔적의 역사 2022.08.06

[흔적의 역사] "전하! 제 하소연 좀!"… 북악산은 조선시대 고공 농성장이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전하! 제 하소연 좀!"… 북악산은 조선시대 고공 농성장이었다 경향신문ㅣ2022.07.12 05:00 수정 : 2022.07.12 07:01 ▲ 국기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된 ‘서울 백악산(북악산) 일원’. 북악산은 수려한 자연과 역사 문화적인 요소를 두루 갖췄다는 이유로 명승으로 지정됐다. /‘대통령 경호처의 , 2019년에서’ 어릴적 청운동 산동네에 살던 기자의 기억 속에 떠오르는 북악산(백악산)의 이미지가 몇 장면 있다. 북악산 바위 옆 계곡에서 빨래를 하던 어머니, 어지간히 많았던 송충이, 해마다 5월 쯤이면 단맛을 봤던 아카시아 꽃, 10월이면 부암동 산기슭 과수원에서 한 두 대야씩 사서 먹었던 씨알 작은 능금…. 그러나 1968년 1월21일 밤 콩볶는 듯한 총소리..

흔적의 역사 2022.08.06

[흔적의 역사] 경주 남산사의 정원석 '신라국 김공순' 글자가…"'명필' 김생의 친필"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사찰의 정원석에서 '신라국 김공순' 글자가…"'명필' 김생의 친필" 경향신문ㅣ2022.06.28 05:00 수정 : 2022.06.28 19:26 ▲ 사찰(경주 남산사)의 정원석으로 활용되었다가 1200년전 통일신라시대 명문 비석으로 밝혀진 ‘공순아찬 신도비’. 가로 21~30㎝, 세로 56.5㎝, 두께 25.6㎝ 정도의 비석에 보이는 글자가 95자 정도되었다. /오세윤 문화재전문 사진작가 촬영·박홍국 위덕대연구교수 제공 “우리 절에 정원석이 서있는데 거기서 글자가 보입니다. 한번 봐주시면….” 지난 5월20일 박홍국 위덕대 연구교수는 지인(김은하 전 선덕여중 교사)을 통해 경주 남산사 선오 스님의 전화를 받았다. “사찰 정원석에서 ‘김(金)’ 등의 글씨가 보이는데, 이것이 어떤..

흔적의 역사 2022.07.01

[흔적의 역사] 도굴꾼은 상상도 못했다··· 목관 밑 '보물상자'에 담긴 2100년 전의 삶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도굴꾼은 상상도 못했다··· 목관 밑 '보물상자'에 담긴 2100년 전의 삶 경향신문ㅣ2022.06.14 05:00 수정 : 2022.06.14 07:03 ▲ 1988년 경남 창원 다호리 논바닥에서 발견된 기원전 1세기 무렵의 목관묘(덧널무덤). 구유형의 참나무 목관을 들어내자 밑바닥에 ‘작은 구덩이(요갱·腰坑)’가 보였고, 그 안에 온갖 부장품을 담은 ‘대나무 바구니’가 노출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다호리 일대의 도굴이 말도 못합니다. 심각합니다.” 1988년 1월 국립진주박물관이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에 심상치않은 제보 한 건을 올린다. 급보를 받고 달려간 이는 이건무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전 문화재청장)이었다. 과연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현장이었다. 도굴꾼의 탐침..

흔적의 역사 2022.06.15

[흔적의 역사] '가림성 사랑나무' 너머로 읽은 백제 독립운동사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가림성 사랑나무' 너머로 읽은 백제 독립운동사 경향신문ㅣ2022.06.03 08:56 ▲ 가림성 사랑나무의 하트 문양 사진. 본래 반쪽 짜리 하트 문양 나뭇가지인데, 이것을 합성해서 온전한 하트 문양을 만드는 것이 요즘의 유행이다. 그것을 MZ 세대의 하트놀이라 한다. /백제역사문화원구원·부여군청 제공 부여 하면 떠오르는 답사코스가 있다. 부여왕릉원(능산리고분군), 부소산성, 관북리, 궁남지, 정림사터, 낙화암, 백마강…. 사비백제(538~660) 123년 역사의 숨결이 담겨있는 곳이 아닌가. 결코 백제의 이미지를 벗어난 부여는 생각할 수 없으리라. 그런데 최근 ‘백제와 MZ 세대’를 아우르는 답사코스가 생겼다. ‘가림성 사랑나무’이다. 이름에서부터 역사성이 물씬 풍기는 ‘가림..

흔적의 역사 2022.06.14

[흔적의 역사] 거대사찰 황룡사에 우뚝 선 '80m 랜드마크'와 '서라벌판 광화문 광장'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거대사찰 황룡사에 우뚝 선 '80m 랜드마크'와 '서라벌판 광화문 광장' 경향신문ㅣ2022.05.17 05:00 수정 : 2022.05.17 06:52 ▲ 신라 천년 사직의 상징인 황룡사는 1238년(고려 고종 25) 고려를 침입한 몽골군의 방화로 전소되어 이후 700여년간 초석만 남은채 방치되어 있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서라벌에 절이 별처럼 펼쳐져 있고 탑들이 기러기처럼 늘어서 있다.(寺寺星張 塔塔雁行)” 가 전한 전성기 서라벌 시내 모습이다. 527년(법흥왕 14) 이차돈의 순교로 공인된 불교가 어느덧 ‘절과 절이 별처럼, 탑과 탑이 기러기 행렬처럼 늘어서 있을 정도’로 성행했던 것이다. 553년(진흥왕 14) 짓기 시작한 황룡사는 본래 사찰(寺)로 조성된 것은 ..

흔적의 역사 2022.06.14

[흔적의 역사] 숙종의 피난처, 북한산성에 왜 금괴 매장설이 퍼졌을까?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숙종의 피난처, 북한산성에 왜 금괴 매장설이 퍼졌을까? 경향신문ㅣ2022.05.03 05:00 수정 : 2022.05.03 09:45 ▲ 한양도성과 북한산성, 그리고 두 성을 잇는 탕춘대성까지 모두 표현된 중 ‘도성연융북한합도’. 숙종은 1711년 6개월간의 공사 끝에 북한산성을 완성했다. 또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잇는 탕춘대성은 1753년까지 축조됐다. 이로써 한양도성~탕춘대성~북한산성을 잇는 도성 방어체계가 완성됐다.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감탄사를 연발하는 포인트가 있다. 도심에서 걸어서 오를 수 있는 산이 즐비하다는 것이다. 외국인들은 산을 등지고 강을 마주하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자리에 터전을 잡고 살았던 전통 덕분이라는 것을 ..

흔적의 역사 2022.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