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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433

[흔적의 역사] 궁궐 현판은 명필 임금도 쓸 수 없었던 이유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궁궐 현판, 명필 임금도 쓸 수 없었던 이유… ‘잘난체 말라’는 뜻 경향신문ㅣ2021.12.21 05:00 수정 : 2021.12.21 10:01 ▲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있었던 제1대와 7대 조선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1852~1919)와 미나미 지로(南次郞·1874~1955)의 현판. 데라우치의 것은 1914년 도쿄(東京)에서 열린 대정동경대박람회에 마련된 ‘조선관(朝鮮館)’이다. ‘관(館)’자의 오른쪽 변인 ‘관(官)’ 대신 ‘환(宦)’으로 대체했다. 미나미의 것은 1938년 덕수궁 안에 마련한 ‘이왕가미술관(李王家美術館) 현판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얼마전 국립중앙박물관이 수장고에 간직한 현판 110점을 조사한 보고서를 펴냈다. 언론에는 문화재청이 경..

흔적의 역사 2021.12.27

[흔적의 역사] 바둑 잘 두는 신라공주 중국기성 '마랑'을 만났다면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바둑 잘 두는 신라공주가 중국의 기성 '마랑'을 만났다면… 경향신문ㅣ2021.12.07 05:00 수정 : 2021.12.07 09:39 ▲ 황남대총 남분에서 확인된 ‘마랑’명 칠기. 발굴(1973~75년)된지 50년 가까이 정체를 몰랐다가 최근 ‘마랑’이 중국 서진 시대에 중국 바둑계의 최고수로 추앙받은 기성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따라서 이 칠기는 ‘마랑’의 사인을 새긴 바둑통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은석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장 제공 황남대총은 신라의 왕과 왕비, 왕·귀족이 묻혀있는 경주 대릉원에서도 초대형 고분에 속한다. 표주박 모양으로 조성된 이 고분은 내물(356~402) 혹은 눌지마립간(417~457) 부부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남분이 왕(마립간), 북분이 왕비..

흔적의 역사 2021.12.27

[흔적의 역사] 가야연맹의 '큰형님'이 따로 있었나?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가야연맹의 '큰형님'이 따로 있었나?… 1인자 꿈꾸는 아라가야 경향신문ㅣ2021.11.23 05:00 수정 : 2021.11.23 09:45 ▲ 2019년 함안 말이산 고분군 45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의 복원 모습. 보존처리 과정에서 금동관의 부품임을 확인했다.백제·신라처럼 관테와 세움장식 등을 따로 제작하지 않았다. 하나의 동판에 그림을 그린 뒤 장식 모양에 따라 뚫어서 조각하는 기법(투조)을 썼다. 금공품 연구자인 이한상 대전대 교수가 출토된 금동관편을 토대로 복원했다. 봉황 두 마리가 마주 보고 있는 아라가야 특유의 독창적인 디자인이다. “마치 쌍둥이 같네요.” 얼마전 가야연맹체 중에서도 아라가야의 중심지인 경남 함안 말이산 75호분에서 발견된 중국제 청자가 필자의 눈길을 ..

흔적의 역사 2021.12.06

[흔적의 역사] 신라 금관은 왜 순금이 아니라 19~21K일까?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신라 금관은 왜 순금이 아니라 19~21K일까…발굴 100년 맞아 분석해보니 경향신문ㅣ2021.11.09 05:00 수정 : 2021.11.09 16:34 ▲ 일제강점기인 1921년 사상 처음으로 발견된 금관총 금관(왼쪽)과 1973년 국내 조사단이 학술발굴한 천마총 금관(오른쪽)의 부위별 금함유량. 순금(99%·24K)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82~85%(19~20K)정도의 금함유량을 나타났다. 강도를 높이려고 은을 섞은 것으로 보인다. 금의 함유량은 분위별로 차이가 있었다. /신용비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 학예연구사 제공 올해는 한국고고학사에서 기념비적인 유적과 유물이 출토된지 50년과 100년 되는 해다. 먼저 1971년 공주 송산리에서 “내가 무령왕이요”하고 손들고 나타난 ..

흔적의 역사 2021.12.06

[흔적의 역사] 전두환이 보러온다고 소란 떤 신라고분, 그곳엔 고구려벽화가 있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전두환이 보러온다고 소란 떤 신라고분, 그곳엔 고구려벽화가 있었다 경향신문ㅣ2021.10.26 05:00 수정 : 2021.10.26 09:53 ▲ 1985년 1월29일 당시 대구대 이명식 교수가 경북 영주 순흥에서 발견한 읍내리 벽화분의 그림(모사도). 제작연도를 알 수 있는 명문 7자와 인물상(역사상) 등 다양한 그림이 보였다. /대구대박물관 제공 1960년대부터 대구 경북 지역 골동품상 사이에서 심상치않은 소문이 돌았다. “(영주) 순흥면의 어느 곳에 벽화고분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소문을 허투루 듣지않은 이가 있었다. 당시 진홍섭 이화여대 박물관장이었다. 틈나는대로 순흥 지역을 답사하던 진관장은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에 따라 도굴 구덩이가 있는 무덤을 들어가 벽화의 유무..

흔적의 역사 2021.11.04

[흔적의 역사] 돌아오지 못한 1500년 전 부부총 금동관… 왜 한일협정서에 빠졌나?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돌아오지 못한 1500년 전 부부총 금동관… 왜 한일협정서 빠졌나? 경향신문ㅣ2021.10.12 05:00 수정 : 2021.10.12 10:12 ▲ 1920년 11월 경남 양산 부부총에서 출토된 금동관(왼쪽). 1921년 9월 경주 금관총에서 우연히 발견된 금관(오른쪽)보다 10개월 먼저 나왔다. 형태나 제작기법이 쌍둥이라 할만큼 흡사하다. 부부총 금동관은 남성 피장자가 머리에 쓴 그대로 출토되었다. 따라서 조각난채 분해되어 출토된 금관총 금관을 조립할 때 이 부부총 금동관을 옆에 두고 조금씩 조금씩 맞춰갔다고 한다. /양신시립박물관 제공 올해는 사상 처음으로 금관이 출토된지 꼭 100년 되는 해다. 때는 바야흐로 1921년 9월이었다. 경주 노서리에서 주막집 증축을 위한 터파..

흔적의 역사 2021.11.04

[흔적의 역사] 무령왕 부부 위로 황금 꽃비가 내렸습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무령왕 부부 위로 황금 꽃비가 내렸습니다… 왕릉 속 2715개 연꽃·원형장식의 비밀 경향신문ㅣ2021.09.28 05:00 수정 : 2021.09.28 13:54 ▲ 무령왕릉 안에서 확인된 황금 연꽃 모양의 장식. 금함유량은 93.4~94.1%(큰 것)과 98.8~99.5%(작은 것)로 순금(24K)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순금 연꽃 668점, 은연꽃 137점 등 805점의 연꽃 장식이 수습됐다. /국립공주박물관 제공 ‘무령왕릉에 연꽃비가 내렸습니다.’ 무령왕릉 발굴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를까. 발굴 50주년을 맞아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무령왕릉 발굴 50주년-1971~2021)을 찾은 필자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우선 출토된 묘지석에 따라 삼국시대 고분 가운데 ..

흔적의 역사 2021.10.01

[흔적의 역사] '일가족 죽여묻은 순장 확인'… 1500년전 고인골 DNA 분석해보니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일가족 죽여묻은 순장 확인'… 1500년전 고인골 DNA 분석해보니 경향신문ㅣ2021.09.06 09:00 수정 : 2021.09.08 16:08 1982년 1월14일 해외 밀반출 되려던 유물이 부산세관에 의해 극적으로 적발된다. 은제 새날개형관장식과 순금제귀고리, 금은제 고리자루큰칼, 은제 허리띠 등 15점이 압수됐다. 유물을 빼돌리려던 장물업자 3명은 대구 중부경찰서로 넘겨졌다. 이 유물은 경북 경산 임당동의 구릉에 조성된 과수원(복숭아밭)에서 훔친 도굴품이었다. ▲ 임당유적에서 확인된 순장 무덤. 출토된 고인골의 DNA 분석결과 주곽(으뜸덧널)에 순장된 4~8세 여아는 부곽(딸린 덧널)에 묻힌 순장자 부부(④⑤)의 딸인 것으로 분석됐다. 무덤 주인공(①)을 위해 일가족이 ..

흔적의 역사 2021.09.23

[흔적의 역사] 30년전 '쉬쉬'하며 감췄던 일본식 고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30년전 '쉬쉬'하며 감췄던 일본식 고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경향신문ㅣ2021.08.24 05:00 수정 : 2021.08.24 10:02 ▲ 1991년 장고분 가운데 처음으로 내부구조를 밝힌 전남 함평 신덕고분. 전형적인 일본식 고분(장고분 혹은 전방후원분)으로 알려져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발굴조사보고서는 나오지 않았다. /국립광주박물관 제공 “아니 이건….” 1991년 3월 26일 전남 함평 신덕고분을 찾은 국립광주박물관 조사팀이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고분의 원형부 서쪽에 드러난 도굴구덩이가 보인 것이다. 더욱이 이 도굴구덩이는 불과 며칠 전에 판 흔적이 분명했다. “팠다가 다시 메운 구멍에는 부러뜨린 소나무 가지가 채 마르지도 않은..

흔적의 역사 2021.09.23

[흔적의 역사] '백제의 요서경략' 설파하면 '사이비' '국뽕'인가?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백제의 요서경략' 설파하면 '사이비' '국뽕'인가? 경향신문ㅣ2021.08.10 05:00 수정 : 2021.08.10 19:04 한국사를 공부하다 보면 희대의 기현상과 마주치게 된다. 바로 ‘백제의 요서(遼西·랴오시) 경략’ 관련 기사이다. 를 비롯해 10곳이 넘는 중국 역사서에 명백하게 기술되어 있는데도 그저 ‘설’이라는 모호한 표현이 통용된다. 최근 배달된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 교수(융합고고학과)의 단행본(·서경문화사)을 읽고, 기자의 버킷리스트라 할까 예전부터 꼭 다루고 싶었던 ‘백제의 요서경략’ 기사를 쓰기로 했다. 과문한 기자가 이 교수의 주장이 타당한지 아닌지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이교수의 책을 바탕으로 역사서에 등장하는 ‘백제의 요서경략’ 관련 기사를 검토해보..

흔적의 역사 2021.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