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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434

[흔적의 역사] '조선판 하멜 <표류기>'의 주인공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관리에, 선장에, 홍어장수까지… '조선판 하멜 '의 주인공들 경향신문ㅣ2021.04.06 05:00 수정 : 2021.04.08 09:37 ▲ 1819년 1월 강원 평해(현 경북 울진)에서 출항한 선박이 일본 돗토리번에 표착해서 9개월만에 귀환했다. 이 그림은 돗토리번에 표착한 조선인 12명을 그린 초상화이다. 담뱃대를 물고 있는 안의기(53)를 중심으로 권인택(52), 김삼이(60), 안택이(43), 전성철(32), 김일손(50), 안용태(39), 심정손(40), 안용택(38), 이동백(32), 최오복(22), 이덕수(43) 등의 이름과 나이가 쓰여져 있다. 피부색과 마마를 앓은 자국, 옷주름, 담뱃대, 부채 등 소품의 특징묘사가 뛰어나다. 그림 윗부분에 대문짝만 하게 흘림체로..

흔적의 역사 2021.05.18

[흔적의 역사] 사라진 송산리 29호분, '도굴’ 88년 만에 발굴하는 이유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사라진 송산리 29호분, 일인 교사 '도굴’ 88년 만에 발굴하는 이유 경향신문ㅣ2021.03.23 06:00 수정 : 2021.03.25 09:11 ▲ 웅진백제 시대 왕과 왕족의 무덤이 모인 공주 송산리 고분군(사적 13호).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일제강점기(1933년)에 조사되었지만 70년 가까이 정확한 위치를 가늠하지 못하다가 정식조사에 참여한 일인학자(아리미쓰 교이치)가 2002년 뒤늦게 발굴보고서를 내면서 지점을 특정한 29호분을 조사하기로 했다. 29호분은 2018년 지하물리탐사 등의 기법으로도 그 흔적을 확인했다. /국립공주박물관 제공 왜 하필 29호분일까. 최근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웅진 백제 시기(475~538년) 왕릉의 구조와 상장례를 규명한다면서 첫번째로 지목..

흔적의 역사 2021.05.17

[흔적의 역사] '조선의 미라' 문화재인가 무연고 시신인가?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조선의 타임캡슐' 미라는 문화재인가 무연고 시신인가? 경향신문ㅣ2021.03.09 06:00 수정 : 2021.03.09 08:34 ▲ 조선시대 미라의 최첨단 분석 과정. ‘소년 미라(윤호)’의 일반방사선 전신 사진, 실제 전신 사진, 컴퓨터단층촬영 후 뼈에 대한 3차원 모델 사진(①)과 ‘파평 윤씨 모자 미라’의 3차원 복원 영상(②), ‘김의정(가칭) 미라’의 폐사진. 왼쪽 폐에서 낭성병변이 보인다(③), ‘진성이낭 미라’의 CT 촬영결과 뚜렷하게 확인되는 뇌 사진(④), ‘학봉장군’ 미라의 3차원재형성 사진. /김한겸 교수·단국대박물관 제공 ‘혹시 암이 아닐까?’ 2002년 9월 경기 파주 교하의 파평 윤씨 묘역 중 무연고 묘에서 나온 미라의 옆구리 쪽을 살피던 김한겸 교..

흔적의 역사 2021.03.09

[흔적의 역사] 1500년간 '흠결' 숨긴 78호 반가사유상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4㎜의 반전매력'… 1500년간 '흠결' 숨긴 78호 반가사유상 경향신문ㅣ2021.02.23 06:00 수정 : 2021.02.23 09:36 ▲ 2015년 국립중앙박물관이 개최한 ‘고대불교조각대전’에 나란히 출품된 국보 78호(왼쪽)와 83호(오른쪽) 금동반가사유상. 출가 전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고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부처의 출가전 이름) 태자를 조각한 상이다. 동시에 전시된 적은 딱 두 번(2004 ·2015년) 밖에 없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세상사가 힘들 때 찾아와 영혼까지 치유받고 간다”는 문화유산이 있다.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다. ‘반가사유’는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무릎 위에 얹고 손가락을 뺨에 댄채 생각에 잠긴 자세를 가리킨다. 출가 전 인간의 생로병사..

흔적의 역사 2021.03.09

[흔적의 역사] 한성백제판 '대릉원' 연접분의 정체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석촌동은 '백제 리즈 시절' 증언… 한성백제판 '대릉원' 연접분의 정체 경향신문ㅣ2021.02.09 06:00 수정 : 2021.02.09 09:54 ▲ 석촌동 고분군의 항공사진. 북쪽(맨왼쪽)에 근초고왕릉으로 비정되는 3호분이 있고, 1·2·4·5호분 등이 복원되어 있다. 이번 발굴은 1호분 북쪽 공원에 발생한 동공 때문에 시작됐다. /한성백제박물관 제공 “어, 이거 웬 구멍이야?” 2015년 5월, 서울 송파구 석촌동 고분군(사적 243호)을 관리하던 이가 이른바 석촌동 1호분의 북쪽 잔디광장에서 직경 25㎝의 동공을 발견했다. 순간 머리카락이 바싹 섰다. 고분군 밑으로 백제고분로 지하차도가 관통하고 있는데다 그 밑에서는 지하철 9호선 공사가 한창이었다. 도굴 가능성 뿐 아니..

흔적의 역사 2021.03.09

[흔적의 역사] 해치는 과연 '서울의 상징' 자격이 되나?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해치는 과연 '서울의 상징' 자격되나?… "물짐승 아닌 하마비일뿐" 경향신문 ㅣ2021.01.26 06:00 수정 : 2021.01.28 08:56 ▲ 광화문 앞 양옆에 서있는 해치상. 1870년(고종 4년) 10월 9일자를 보면 “대궐 문에 해치를 세워 한계를 정했으며, 조정 신하들은 그 안에서는 말을 탈 수가 없다”는 내용이 나온다. 경복궁 중건 때 해치상을 세움으로써 대궐의 안팎을 구별했고, 이곳에 이르러서는 말을 내려야 한다는 일종이 ‘하마비’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아니 해치가 언제부터, 왜 서울의 상징이 되었을까? 그리고 원래 해태가 아니었나?’ 서울 시내 여기저기서 보이는 ‘해치 캐릭터’를 보고 늘 의아스럽게 생각했던 게 바로 ‘서울의 상징동물이 해치’라는 것..

흔적의 역사 2021.02.05

[흔적의 역사] 최치원 초상화 속 두 동자승은 왜 지워졌을까?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최치원 초상화 속 '숨은그림'… 두 동자승은 왜 지워졌을까? 경향신문ㅣ2021.01.12 06:00 수정 : 2021.01.15 10:10 예전엔 마산이었지만 지금은 경남 창원시 합포구로 행정지명이 바뀐 ‘월영대’를 얼마 전에 찾았다. 그곳에는 통일신라말 대문장가인 최치원(857~?)이 ‘월영대’라는 친필 글씨를 대자로 새긴 것으로 유명한 2m가 넘는 각석이 우뚝 서있다. 최치원이 가야산에 입산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머물러 ‘노닐며’ 대를 쌓아두고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유서깊은 곳이다. ▲ 최치원의 초상화인 ‘운암영당고운선생 진영’(경남 유형문화재 187호). 의자에 앉아 화면 왼쪽을 응시하고 있는 전신상의 최치원을 그렸다. 2009년 국립진주박물관의 X선 촬영결과 이 영정의 제작시..

흔적의 역사 2021.02.05

[흔적의 역사] '백제의 무늬 전돌' 중 최초·최고 산수인물화 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백제 8가지 무늬 전돌' 중 최초·최고의 산수인물화 있다 경향신문ㅣ2020.12.29 06:00 수정 : 2020.12.29 09:40 ▲ 1937년 충남 부여 규암면 외리에서 발견된 ‘문양전(무늬 전돌)’ 중 산수인물화의 시원으로 꼽히는 ‘산수무늬 전돌’. 하단에 물, 중앙에는 산과 나무, 그리고 윗부분에는 하늘을 그렸고, 오른쪽 하단부에 스님인지, 도인인지 모를 신비의 인물이 암자로 보이는 팔작기와 건물을 향해 걷고 있다. /국립부여박물관 제공 아니 금관이나 반가사유상이 아니었던가? 얼마 전 1960~2019년 사이 해외전시를 다녀온 한국문화재 순위를 집계한 자료를 문화재청과 국립중앙박물관에게서 받았는데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금관(국보 87호 금관총 출토·5회·1895일)..

흔적의 역사 2021.02.05

[흔적의 역사] 2~3점 뿐이던 안평대군 진적, 오구라 유물에도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단독] 2~3점 뿐이라던 안평대군 진적, 알고보니 오구라 유물에도... 경향신문ㅣ2020.12.15 06:00 수정 : 2020.12.15 19:29 ▲ 일제강점기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1870∼1964)가 반출해 간 ‘오구라 유물’에 속한 안평대군 이용의 ‘행서칠언율시축’. 이 작품은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오구라 유물을 조사한 뒤 펴낸 도록에 실려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도록에서 ‘어, 안평대군의 글씨가 있네. 진적이 거의 없다고 하더니만….’ 얼마 전 필자가 이른바 ‘일제강점기 오구라(小倉)와 오쿠라(大倉)의 한국 문화재 반출’ 기사를 준비하면서 이른바 ‘오구라 유물’의 도록을 훑어보았다. 도록은 2007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국외소재 문화재 조사사업의 하나로 일본 도..

흔적의 역사 2021.02.05

[흔적의 역사] 한국문화재 털어간 '큰 창고 (오쿠라) 작은 창고 (오구라)'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일제강점기, 한국문화재 털어간 '큰 창고 (오쿠라) 작은 창고 (오구라)' 경향신문ㅣ2020.12.01 05:30 수정 : 2020.12.03 13:23 ▲ 오구라 유물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전 경남 출토 금관’. 신라의 전형적인 ‘출(出)자’형이 아니라 가야의 특성인 ‘초화(草花)’ 형 금관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도록에서 “장관님, 오쿠라(大倉)가 아니라 오구라(小倉)입니다.” 2015년 2월 웃지 못할 기사가 하나 떴다. 한 시민단체 소속 학생들이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공개질의서를 보냈다는 것이었다. 당시 문화부 장관이 2014년 11월 열린 한·중·일 문화장관 회의에서 일본 문무과학생 대신에게 “오쿠라 컬렉션 등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가져간 한국문화재를 함께 논의..

흔적의 역사 2020.12.04